프랜차이즈 갓 467화
118장 그리운 반도체공학부(1)
하수영은 10억 원에 종자 특허를 구매했다.
남상진 교수 및 농대 측은 당연히 신이 났다.
애초에 어디 쓸 데도 없는 종자라서 그냥 보관만 하고 있던 놈이다.
1억에 사줘도 감지덕지인데, 무려 10억에 사주다니.
"남 교수, 수고했어. 정말 우리 농대를 위해서 큰 건을 하나 해냈군."
"제 공이라고 할 만한 게 있겠습니까? 하수영 회장님이 우리 단대를 위해서 선심을 베풀어 주신 겁니다."
"어허, 우리끼리 있으니 회장님, 회장님 하지만 절대 그분 앞에서는 그런 실수 저지르지 않도록 하게."
보통은 반대가 아닌가?
자리에 없는 당사자를 향해 극존칭을 쓰는 게 실수라니.
"네, 그분 앞에서는 실수 저지르지 않게 하겠습니다."
"음, 아무튼 수영농장에서는 그 ACP-32 종자가 쓸모가 있다. 이거로군."
"네, 역시 농약을 전혀 쓰지 않고 병충을 처단하니까 그런 거 같습니다. 다른 농장에서는 절대로, 절대로 불가능한 방법이죠."
"완벽한 실내농법을 적용하는 데다가 그 비싼 로봇들을 엄청나게 많이 운용하니까 가능했던 거죠."
"여기에 수영농장에서만 사용한다고 알려진 특별한 비료까지 더해지면…… 우리나라 쌀 시장에 뭔가 큰 변혁이 일어나는 거 아닌가?"
"……."
"……."
자칫 일반 벼 농가들이 전부 파산하거나 수영농장에 흡수당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겠다.
남상진 교수가 얼른 고개를 저었다.
"그렇진 않을 겁니다. 회장님이, 아니 하수영 청강생이 얼마나 농민들을 아끼는데요. 그래서 소먹이용 볏짚 만들고 남은 쌀들도 시장에 안풀고 그대로 가축사료로 만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네, 저도 하수영 청강생이 일반쌀시장에 진출하진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수출을 염두에 두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일본이 적당할 거 같습니다."
"일본 수출이라……."
농대 학장은 그 말에 수긍이 간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ACP-32 종자라면 일본인들 입맛도 쉽게 사로잡을 겁니다. 일단 맛하나는 기가 막히게 좋으니까요."
"일본인들 쌀 소비량이 워낙 높으니, 우리나라 시장을 노리느니 그쪽으로 진출하는 게 나을 겁니다. 수영농장은 애초에 다른 벼 농가하고는 체급 자체가 달라요, 달라."
"어, 정말 해외 시장을 노리는 걸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하수영 청강생이 이미 일본에는 참치를, 중국에는 황비버섯라면을 수출하고 있지 않습니까?"
국내 쌀 시장 교란이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들자 학장은 안심이 되었다.
"타학과에서 하수영 청강생 때문에 크게 술렁이고 있습니다. 이미 우리 한국대에 들어온 것은 확실한데, 어느 과인지는 모르니 다들 찾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어리석은 것들. 우리 하수영 청강생은 농업으로 크게 자수성가한 분이신데, 간호대, 의대, 건축학과 그런 곳을 왜 간단 말인가. 그럴 리가 절대 없잖아."
"참, 그러고 보니 로봇공학부에서 유독 크게 관심을 갖고 있답니다."
"로봇공학부는 왜요?"
교수들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물었고, 발언을 한 교수가 말을 이었다.
"수영농장 농사로봇들, 그거 상당수 부품을 우리 한국대 로봇공학부에 주문해서 받은 거랍니다."
"아, 그렇겠군요. 하긴, 로봇들이 땅에서 솟아난 게 아니니 어디서 사온 거겠지요."
"듣자 하니 작년에만 부품을 천억원어치 팔았다는데요?"
그 말에 다른 교수들은 물론이고 학장까지 눈을 부릅뜨며 크게 놀랐다.
"처, 천억이라고! 그게 정말인가!"
"네,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재료비, 공임비 등등 해서 원가를 제하고도 이백억 정도 남겨 먹어서 쏠쏠했다고 합니다."
"이런 미친…… 아, 미안합니다.
너무 흥분해서 나도 모르게 그만 말이 험하게 나왔어요."
"아닙니다. 저도 그 심정 너무 이해합니다."
"로봇쟁이들이 우리 하수영 청강생이 고생해서 피땀 흘려 식물 키워 번 돈을 그렇게 악랄하게 탈취했을 줄이야! 이래서 로봇쟁이들은 안돼!"
농대 교수 회의는 순식간에 로봇공학부를 성토하는 분위기로 변했다.
***
이렇듯 한국대 농대의 철저한 신원보호 속에서 하수영은 별 탈 없이 청강 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약간만 탈이 생겨주면 정말 좋을 텐데, 개똥도 약에 쓸려면 없다는 말을 철저하게 절감하고 있었다.
"휴우, 정말 차를 바꿔야 하나. 근데 어느 세월에 또?"
티타늄 합금으로 주문을 넣고, 다시 받는 데까지 한세월이다.
그렇다고 아무 차나 렌트하자니, 그것은 자존심이 허락치 않고, 그렇게 쓸쓸하게 하교하던 하수영은 불현듯 차창 밖에 비치는 학부 건물을 보았다.
"어, 반도체공학부 건물이네?"
반도체 설계 등 관련 기술을 연구하는 공학부.
불현듯 옛날 생각이 나자 하수영은 잠시 차를 멈추고 차창을 내린 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예전 모습하고 조금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위치하고 전체적인 느낌은 그대로네. 박효산 교수님은 아직도 계시려나?"
-반도체과학자 박효산 박사는 현재 한국대가 아닌 서해전자 반도체 사업부에 있습니다.
"그렇군. 이번 생에는 교수보다는 기업을 택하셨군. 아, 맞다. 정서진 박사님이 한국대 반도체공학부 출신이지?"
-네, 그렇습니다. 박효산 교수 밑에서 석사를 준비하려다가 집안의 반대로 모든 것을 접고 JM식품에 입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인연이로다, 인연이야."
전생 생각에 잡혀 있던 하수영은 차를 주차 칸에 세우고 내렸다.
반도체공학부 건물을 한 번 훑어보던 그는 안으로 성큼성큼 발을 내디렸다.
-마스터, 내부를 들어가시렵니까?
"그냥 들어가지 않고 주변 둘러만 볼 거야. 잠깐 옛날 생각이 나서."
-반도체공학부에 추억이 있으신가 보군요.
"많지. 아주 많아. 아, 저기가 바로 우리 하나송하고 몰래몰래 비밀데이트했던 벤치네. 나무가 앞뒤를 가려 줘서 사람들 몰래 뽀뽀하고 그러기에 딱이거든."
하수영은 키득거리며 목을 살짝 빼들고 나무 사이 벤치를 바라보았다.
젊은 대학원생 커플이 부스스한 머리를 한 채 막 입술이 닿으려 하고 있었다.
"역시 한 번 명당은 영원한 명당이네. 죄지은 대학원생들을 위해서 내가 잠시 피해줘야겠어."
몰래 짬을 내어 연애를 해보겠다는 대학원생들을 위해 하수영은 등을 돌렸다.
그때 하필이면 유리병을 밟았고, 병이 쨍그랑하며 깨지는 소리가 울렸다.
대학원생들은 기겁을 해서 일어났다가 하수영을 보고 민망해서 시선을 피했다.
"아, 미안합니다. 길을 잘못 들어서요."
"여기는 막다른 벤치… 어? 어? 어?"
궁색하게 대답하려던 남자 대학원생이 불현듯 크게 놀라 입을 떡 벌렸다.
여자 대학원생도 마찬가지로 경악해서 입으로 손을 가린 채 어쩔 줄 몰라 하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하수영은 적당한 수준의 난처함을 정교하게 표정에 두른 채 사교적이게 난감해하는 웃음을 머금었다.
"아, 이거 참."
"호, 호, 혹시? 혹시? 혹시?"
"하하, 나 이거 참."
"하! 하! 하수영 회장님 아니십니까?"
"어이구, 내 이름이 하수영이 맞긴한데,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았어요? 우리가 면식이 있었나요?"
"저희가 어떻게 회장님을 못 알아보겠어요! 전에 회장님을 직접 뵌 적도 있는 걸요!"
"아, 날 직접 본 적이 있었다고요?"
어쩐지 한눈에 바로 알아보더라니, 실제로 근거리에서 본 적이 있는 모양이다.
원래 사진으로만 보던 사람을 실물로 처음 접하고 한 번에 알아보기는 쉽지 않다.
특히 전혀 무관한 장소에서 맞닥뜨리면 딜레이는 더 커진다.
"네! 수영레스토랑 청담 본점에서 몇 번 뵌 적이 있어요! 저희가 거기에서 정말 맛있게 먹었거든요!"
"아하, 그러시구나. 제가 종종 홀서빙을 하곤 하죠. 혹시 실수한 건 없었습니까?"
"그럴 리가요! 와! 어떡해! 이런 데서 하수영 회장님을 뵙게 될 줄이야! 아, 정말 우리 대학교 수업 청강하고 계신 거 맞으신가요?"
"어? 제가 '한국대에서 다음 학기 후기 입학을 고려하고 미리 면학 분위기를 살펴보고 적응 기간도 가질 겸 해서 일반인 청강 신청해서 수업듣고 있는 건' 어떻게 아셨어요?"
"어떻게 알긴요! 소문이 쫙 났는걸요! 어느 학부인지 다들 알고 싶어서 아주 몸이 달아 있어요!"
"아, 혹시 여기에 계신 걸 보면 설마 우리 반도체공학부인가요?"
하수영은 미소를 머금고 대답했다.
"반도체공학부는 흥미가 없었지만 오늘부로 갑자기 청강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데요?"
"와! 대박! 대박!"
"저희가 학부 안내해 드릴까요? 안내해 드리고 싶어요!"
"야! 안 돼! 나도 안내해 드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지금 회장님은 학교 눈에 안 띄고 조용히 학문에 힘쓰고 싶어하시는데, 우리가 대놓고 안내하면 사람들이 알아보게 되잖아!"
하수영은 작게 헛기침을 했다.
"아니, 적당히 알아봐 주는 것은 괜찮은데……."
"그, 그럴까? 역시 너무 눈에 띌까?"
"아니, 그러니까 적당히 눈에 띄는 것은 크게 지장이 없……."
"그렇다니까! 우리가 지금 이 꼴로 회장님을 안내하면 누가 봐도 중요한 손님 에스코트하는 건데, 당연히 사람들이 누구야 하고 물어보게 되고 결국 눈에 띄게 되는 거지."
"그렇겠다. 회장님 지금 조용히 학문을 탐구하고 싶으신 건데 사람들이 달려들긴 하겠네."
"우리 학교 교수님들이 얼마나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면서 귀찮게 하겠어? 안 그래도 서진파운드리 때문에 지금 교수님들 가슴에 헛바람 잔뜩 들어가 있다고."
하수영은 어정쩡하게 손을 내밀면서, 두 대학원생 커플의 대화에 끼어들려고 애썼다.
"아니, 그러니까 사람들이 돈 때문에 달라붙는 거 적당한 수준까지는 나도 즐기고 좋아하는데……."
"어떡하지? 어떡하지? 회장님이 우리 반도체공학부에 관심이 많으신 거 같은데……."
하수영은 잠시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한 뒤, 다시 눈을 뜨고 또박또박 말했다.
"혹시 두 분이 아실지 모르겠는데, 제가 반도체산업에 작게나마 투자한 게 있어요."
"당연히 알죠! 우리 학부에서 서진 파운드리 투자 건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반도체 산업에 10조 원을 투자한 거물.
반도체 연구개발을 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모를 수가 없다.
"제가 투자한 우리 정서진 박사님이 여기 학부 출신이더라고요."
"그럼요! 정서진 선배님 지금 엄청 대스타예요! 언제 한 번 학교 방문해주기만 다들 손꼽아 기다리는데, 언제 오실지."
"제가 믿고 투자한 분입니다. 그분이 어떤 환경에서 공부하셨는지 한번 살펴보고 싶은데, 조용히 안내가능할까요?"
"저, 정말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알아보고 귀찮게 다가오기라도 하면……."
"그런 제가 감수할 테니 안내 부탁드립니다. 대신에 제가 근사한 저녁한 끼 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저희가 안내해 드릴게요!"
안도의 한숨을 내쉰 하수영은 둘을 따라가다가 불현듯 놓친 것을 깨닫고 멈칫했다.
'아차, 아까 농대 청강이란 말을 빼먹었잖아! 가장 중요한 걸 빠뜨렸네.'
-마스터.
"왜, 프리덤?"
-아까 유리병 밟은 거, 정말 실수입니까? 동작 모션을 보면 실수보다는 고의성이 다분하다고 판단되어…….
"그럼 내가 일부러 밟았겠냐? 막 재들이 날 알아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일부러 인기척을 낸 거라고 생각해? 그럴 리가 없잖냐."
-알겠습니다. 딥러닝 데이터베이스에 그렇게 입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