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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 464화

117장 슬기로운 청강생활(5)

한국대학교 농축수산업과학대, 이것이 단과대학 정식 명칭이다.

농업은 물론이고 축산, 수산에 관한 전반적인 학문을 다루는 종합단 과대학.

물론 자세히 파고들면 산림과학, 식물생산과학, 식품생명공학 등 세부적인 종류로 나뉜다.

그래도 말이 종합단과대학이지, 종산묘 교수가 있는 C대 농대가 들으면 코웃음을 친다.

"한국대는 작물재배 연구와 축수산업이 대체 무슨 상관이 있다고 한데, 묶어 놓은 건지 모르겠네."

"그냥 다들 덩치가 고만고만하니까 한꺼번에 묶어서 관리하는 거잖아..

저렇게 통폐합당하다가 나중에 단대 없어지고 그러는 거지. 퇴출 수순밟는 거야."

"진정한 농대라면 우리 C대학처럼 농업기술대학이 독자적으로 존재해야지, 축산업, 수산업 학과가 왜 끼어들어?"

대체로 이런 비웃음이다.

아무튼 학과가 통합된 덕분에 농대에는 농업과학 연구자 외에도 축산업, 수산업 연구에 종사하는 교수들이 있었다.

"전부 제가 하는 것들이군요. 종합패키지라서 오히려 더 좋은데요. C 대학은 농업학과밖에 없어서 좀 그렇더라고요."

"다행이에요. 우리 단대가 조금 작아서 그렇지, 하수영 회장님이 필요로 하는 모든 학과는 골고루 갖추고 있지 않습니까. 허허."

농업, 축산업, 수산업 전공 교수들은 하수영 앞에서 조금이라도 잘 보이기 위해 아양 공세를 떨었다.

"제가 농업이 주력이긴 하지만, 축산업과 수산업에도 손을 대고 있습니다. 지금은 참치 정도만 양식하지만, 양식장도 점점 더 크기를 키울 겁니다."

"부산에서 따로 종합 양식장을 하나 더 운영하시지 않습니까? 그곳에서 참치를 제외한 다양한 어종을 키우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아, 그것들은 유통하는 게 아니고, 해운대 펜션 손님들 대접 용도로 키우는 것들입니다."

"아아! 그렇군요! 해운대 수영펜션이야기는 저희도 기사에서 봤습니다!"

농대 교수들이 뛸 듯이 기뻐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치의대, 경영학과, 회계학과 등 다른 학과들이 아무리 잘나가고 입결이 높고 부유해도 이제는 소용없다.

그들이 아무리 잘나 봤자 하수영이란 학생 한 명을 유치한 것보다는 못하다.

'우리 학과는 재학생이 시장에서 이미 조 단위 매출을 올리고 있다고!'

'너희는 이런 재학생 있어? 없잖아?'

'졸업생 중에는 있어? 없잖아!'

젊은 농업인 재벌이 현재 재학하는 농대학과, 이 얼마나 가슴을 울리게 하는 단어란 말이더냐.

"그리고 교수님들, 말씀 편하게 해주세요. 저는 지금 구의원으로 온게 아니라 예비 신입생 입장으로 온 겁니다. 그렇게 상전 대하듯이 구는 것은 조금 민망합니다."

"알겠습니다. 아니, 알겠네."

"네, 감사합니다."

학장은 너털웃음을 지으면서 교수들을 향해 은근한 눈길을 주었다.

"우리 하수영 학생이 원한다고 하니 다들 그렇게 하십시다. 그렇다고 너무 넘지는 말고, 선은 적당히 지켜가지요."

"카. 역시 우리 학장님 가슴 뻥 뚫리게 시원시원하십니다."

"그런가? 좋게 봐주니 고맙군."

분명히 학장은 은근한 경고를 주었다.

'편히 대해달라고 하니 그렇게 하되, 알아서 다들 선은 잘 지키자?'

그리고 하수영은 그런 발언을 가지고 가슴이 뻥 뚫리도록 시원하다며 칭찬을 했다.

비록 교수가 타 직종에 비해 사회 생활 노하우가 적은 편이라지만, 그 정도 암시를 알아들을 눈치는 다들 있었다.

"참, 남상진 교수님."

"네! 아, 아니! 왜 그러시나, 하수영 학생?"

저도 모르게 군기가 바짝 들어 대답했던 교수는 혀를 끌끌 차는 학장을 보고 얼른 말을 바꿨다.

"우리 농대에서도 종자 연구를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렇다네. 다양한 종묘들을 많이 갖고 있지. 시장성은 그다지 없네만은."

종묘가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생산력이 좋아야 하고, 병충해에 강해야 하고, 관리 및 재배가 한결 쉬워야 하고, 맛도 좋아야 한다.

이 모든 것을 두루두루 골고루 갖춰야 시장 경쟁력을 가진다.

이 중 어느 하나라도 과락이면 그 종묘는 시장에서 퇴출된다.

예를 들어 생산력이 높고 맛도 좋지만, 병충해에 지나치게 취약한 종자를 누가 쓰겠는가.

"혹시 맛 하나는 기가 막히게 좋은 그런 종자는 없나요?"

"있기야 있지. 하지만 생산력이 너무 떨어지거나 병충해에 취약하다는 이유 등으로 종자은행에 처박혀 있는 신세일세. 더 많은 개량이 필요 하다네."

"오, 꼭 한번 보고 싶습니다. 우리 농장에서 제가 한번 키워보고 싶네요."

남상진 교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맛이 좋은 벼 종자가 있긴 한데 병충해에 너무 취약해서……."

"정확히 왜 병충해에 취약한 겁니까?"

"기존 농약에 너무 취약하다. 농약을 치면 죽어버리니 키울 수가 없네. 그렇다고 농약을 안 치면 해충들한테 죽어버리지."

"오, 그거 우리 농장에 딱인 종자 같은데요?"

"어째서인가?"

"우리 농장은 농약을 전혀 안 씁니다. 100% 무농약 작물들이죠."

"뭐라고!"

교수들은 깜짝 놀랐다.

그들은 수영농장의 무지막지한 생산력을 보고, 당연히 농약을 칠 거라고 생각했었다.

"아니, 아무리 하우스식 재배라지만 농약을 안 치고 어떻게 그런 생산력이 가능한 건가? 병충은 어떻게 처리하고?"

"보여드릴까요?"

하수영은 노트북을 꺼내서 빔 프로젝터에 연결했다.

잠시 후 풍성한 고추들이 달려 있는 고추밭의 모습이 나타났다.

"수영농장 고추밭 섹터입니다."

"아! 저기서 수영김치를 담글 때 쓰는 그 고춧가루들이 나오는 거군."

"네, 맞습니다. 수영김치가 맛이 괜찮죠?"

"허허, 수영레스토랑에서 한 번 그 김치를 먹고 이후 다른 김치는 못먹게 됐어요. 이거 어떻게 책임질 겁니까?"

"김치를 유통까지 하기에는 아직 생산라인이 그리 크지 않아서요. 안희철 사장님과 한 번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근데 이거 영상은 누가 찍고 있는 건가? 농장 직원?"

"수영농장은 100% 무인농장입니다. 지금 이것은 비행드론이 촬영하고 있는 겁니다. 경비조죠."

"경비조?"

영상에는 곧 허공을 비행하는 조그만 드론의 모습들이 나타났다. 저것과 같은 기종의 드론이 동료들의 모습을 촬영해서 송출하는 것이다.

고추 줄기 근처를 낮게 비행하던 드론 중 한 기가 갑자기 붉은 빛줄기를 쏘기 시작했다.

"방금 저게 뭔가? 무슨 빛 같은 것을 쐈는데?"

"해충한테 레이저를 조사한 겁니다."

"……뭐라고요? 해충? 레이저?"

교수들은 너무 놀란 나머지 저도 모르게 다시 존댓말을 하고 말았다.

드론들은 여전히 고추 줄기를 샅샅이 탐색하며 계속해서 레이저를 조사하고 있었다.

"고센서 확대카메라를 장착해서 아주 작은 진드기나 멸구 같은 벌레들도 모두 식별이 가능합니다. 정확히 해당 벌레만 죽일 수 있을 만큼의 레이저를 조사해서, 식물 줄기에는 전혀 피해를 입히지 않는 거죠."

"……."

"레이저 조사가 어려운 위치에 있는 해충은 미세로봇팔을 이용해서 직접 물리적인 제거를 합니다. 보시죠."

이번에는 드론에서 작은 팔 같은 게 뻗어 나와서 고추 줄기에서 뭔가를 떼어내는 모습이 보였다.

줄기에서 벌레를 떼어낸 후 바닥에버리고, 그대로 레이저를 조사한다.

벌레는 깔끔하게 불탔고,

"저출력 레이저라서 근거리에서 벌레나 겨우 죽일 수 있을 정도입니다. 피부미용에 쓰는 레이저보다도 훨씬 약하죠. 그래서 사용허가는 문제없이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경비조 로봇들이 하루 종일 농장을 순찰하면서 벌레들을 실시간으로 잡아 죽인다, 이런 시스템인가? 그래서 농약이 일절 필요 없는 것이고?"

"네, 맞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약안 치고 핀셋으로 잡아 족치는 게 가장 좋죠. 농약은 아무리 안전한 거라고 해도 결국 작물에 피해를 입히니까요."

"……."

"……."

교수들은 입을 다물었다.

영상에 보이는, 셀 수도 없이 많은 드론들이 줄기를 샅샅이 수색하며 벌레들을 잡아서 죽이고 있다.

저런 방식은 사람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아니, 그나저나 로봇이 언제 저 정도로 발달한 것인가?

광학 센서만으로 벌레들을 정확히 식별해서 레이저로 태워 죽일 수 있다니.

'농기구에 저렇게 투자했으면…… 조 단위로 매출을 올려도 남는 게 있기는 한 건가?'

오죽하면 교수들은 그런 생각까지했다.

"그 맛 좋다는 벼 종자 한번 주세요. 저희 농장에서 재배를 해보겠습니다."

"그, 그렇게 하시게나. 저 정도로 병충 관리가 철저하면 농약 안 치고도 키울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맛은 좋지만, 농약에 취약해서 실험실 환경이 아닌 일반 논에서는 수확이 불가능한 종자.

하지만 수영농장에서는 충분히 제 몫을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

그렇게 하수영은 청강 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달라진 게 있다면, 교수들의 강의가 열의를 띠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하수영을 위한 일대일 맞춤 족집게 과외 같은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강의는 하수영의 요구에 따라 일대일 토론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강의 내용을 교수가 미리 정리해서 업로드하면 하수영이 그것을 미리 읽고 공부를 한 뒤 자기 것으로 만든다.

그리고 해당 내용을 강의 시간에 질의하고 대답하면서 토론을 진행하는 것이다.

"종자 개량에는 결국 유전자 조작이 일정 부분 필요할 수밖에 없겠네요."

"그렇지. 그걸 위해서는 안전한 유전자 조작 기술이 핵심이지. GMO에 대한 일반 소비자의 거부감은 어쩔 수 없지만."

"우리 대학에서도 그쪽으로 연구투자를 많이 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C대학이 선두지요?"

"맞네. 안 그래도 다음 달부터 최교수가 GMO 콩 실험실 재배를 시작할 예정인데……."

"꼭 불러 주십시오. 저도 보고 싶습니다."

"학사 일정에 올려뒀으니 언제라도 와서 보면 된다네."

하수영은 가장 앞줄에 앉아서 교수와 강의 내내 이야기를 나누었다.

토론식 수업은 교수가 가르친다기 보다는, 하수영이 일방적으로 그의 지식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보였다.

갑자기 달라진 분위기에 당황한 것은 기존에 다른 공부를 하던 재학생들이었다.

"저 사람 누구야?"

"우리 학과에 저런 학생이 있었나? 몇 학번이지?"

교수나 하수영이 직접 말을 하지 않는 한, 하수영이 청강생이라는 것을 알 방법은 없었다.

대부분은 학기 초에는 안 나오다가 부랴부랴 출석하기 시작한 학생으로 알고 있었다.

"근데 저 사람 수업 되게 열심히 듣는다."

"저 사람 혼자만 열심히 들으니까 교수님들도 저 사람에 맞춰서 수업을 하는 거 같애."

"우리가 딴 공부하는 거 교수님들도 모르진 않았으니까."

"근데 이런 식이면 시험 볼 때 우리만 너무 불리한 거 아니야?"

"학점은 F만 안 뜨면 됐지, 뭐. 어차피 너나 나나 공인회계사 자격증만 패스하면 그만이잖아."

농대 재학생들은 심드렁한 반응을 보였다.

그들은 농업 자체에 애초에 관심이 없었고, 하수영이란 인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흔하게 널린, 자신과는 무관한 재벌 중의 한 사람일 뿐이었다.

그런 사람이 바로 자신들과 같이 수업을 듣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모른 채, 열심히 각자 준비하는 자격증 시험에 올인했다.

***

"이번에 학칙을 변경하기로 했네. 청강생이 강의를 모두 수료하고 학적 등록을 하면, 청강 때 들었던 학점을 소급해서 인정해 주기로."

"오, 저한텐 좋은 제도로군요. 그럼 이번 중간고사는 저도 치러야겠습니다. 그리고 소소하지만, 이번 학기 청강료로 1억 원을 납부하겠습니다."

"아이구, 그럴 것까지는 없는데."

"그냥 기여입학 등록금이라고 생각하시죠. 정식 입학하면 그때는 약속드린 대로 10억씩 내겠습니다."

"고맙네. 덕분에 총장 앞에서 면을 세울 수 있게 됐어. 총장이 자네를 빨리 등록시키라고 어찌나 닦달하던지."

하수영의 청강 생활은 조용히 진행되었다.

같은 수업을 듣는 농대 학생들은 자기 공부하느라고 그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다.

또한 엠블럼 없는, 단조로운 디자 인의 검은 세단을 타고 다니는 그에게 큰 관심을 두는 사람도 없었다.

젊은 학생이 꽤 큰 세단을 타네, 돈이 좀 있나 보다. 이 정도로만 그 쳤던 것이다.

"이쯤이면 슬슬 소문이 퍼질 만도한데, 왜 조용한 거지? 교수님들이 진짜 철저하게 입단속 하시는 건가?"

-보안이 유지되고 있다는 건 좋은 현상이 아닙니까?

"좋은 현상 맞지. 근데 믿기지 않아서 그래. 사람들 입이라는 게 얼마나 가벼운데, 진작 소문이 났어도 이상하지 않은데 조용하니까 이상하잖아."

-……뭐가 이상한 겁니까, 마스터?

"자, 봐, 교통사고가 전혀 나지 않는 것은 좋은 현상이지. 그런데 사고라는 게 현실적으로 0이 될 순없잖아."

-맞습니다.

"일정 비율로 사고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자연 현상인데, 사고율이 0이라는 것은 뭔가가 잘못된 거지."

-모두가 빠짐없이 안전운행을 해서 그런 게 아닐까요?

"야, 그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알고 보니 사람들이 모두 앓아누워서 오늘 아무도 운행을 안 했다. 이런 이상한 원인이 있을 수도 있다. 이거야."

-그래서 마스터의 신원에 대한 소문이 퍼지지 않는다는 것은 방금 말씀하신 원인과 비슷한 이상한 원인이 개입되어 있다는 이야기이십니까?

"그렇지."

하수영에 대한 소문이 전혀 퍼지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농대는 그 소문에서 철저한 사각지대였을 뿐이다.

그에 대한 소문은 엉뚱하게도 간호대에서 조금씩 퍼지고 있었다.

"야, 하수영 이사장님이 다음 학기 때 우리 과 신입생으로 들어오신대."

"뭐? 청담수영병원 오너이신 하수영 이사장님이?"

"그렇다니까. 지금 일반인 청강 신청해서 간호대 1학년들 사이에 끼어서 수업 듣고 있다고 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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