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462화 (462/1,270)

프랜차이즈 갓 462화

117장 슬기로운 청강생활(3)

생산량으로만 쳤을 때, 수영농장의 1순위 작물은 황금비단우산버섯이다.

2순위 작물은 바로 송이버섯, 3순위는 골든 트러플.

그 외에 밀, 콩, 고추를 소소하게 키우지만 시중에 유통하지 않고 수영레스토랑과 양계장에서 필요한 만큼만 재배해 왔다.

물론 올해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가축사료용으로 벼를 대량으로 재배하기 시작했으니.

생산량으로만 치면, 이제부터는 벼가 1순위이지 않을까?

아무래도 사람이 먹는 황비버섯과 소, 돼지들이 먹는 사료의 양은 차이가 어마어마하니.

국내 가축 사료 시장을 홀로 책임져야 하니, 벼를 무시무시하게 키워 내야 한다.

물론 전체 수익은 사람이 먹는 황비버섯이 더 많이 나올 것이다.(사료사업 자체는 남는 게 거의 없으므로)

-밀과 옥수수 품종 개량에서 대성공을 거뒀습니다. 지금 미국과 남미농장에서 재배되는 품종의 91% 이상이 몬산토의 품종이며, 종산묘 교수의 기여도 역시 매우 컸습니다.

"그래서 회사에서 C대학에 그렇게 지원을 해주는 건가?"

-네, 로열티 조건 중의 하나입니다. 종산묘 교수가 몸담은 대학에 일정액을 지원하는 겁니다.

"우리 농장이 옥수수는 아직 안 하지."

-밀 종자도 옛날 걸 쓰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가 그 교수하고 얽힌 게 전혀 없구나."

-종 교수가 벼 연구도 하지만 밀과 옥수수만큼 큰 업적을 아직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인지 C대학에서도 벼 연구를 중점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호오, 그렇군."

-SNS 같은 것을 일절 하지 않기 때문에 개인적인 성향을 자세히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종산묘 교수라는 사람은 널 안 쓰냐?"

-그건 아닙니다. 프리덤 클래식 구독자입니다. 다만 개인정보를 제가 마스터께 제공해 드릴 순 없죠.

"알았다."

하수영은 마음만 먹으면 프리덤이 수집한 모든 유저들의 정보를 들여다볼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것은 엄연한 윤리 위반이기 때문이다.

할 수 있지만 스스로 양심을 지키기 위해서 개인정보 보호를 철통같이 지키는 것이다.

"그럼 C대학에 입학할까?"

-반대합니다.

"이유는?"

-매사에 공평하고 공정하지만, 학문 연구에 있어 또한 매우 엄격한 사람입니다.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데에 번거로운 시간 낭비를 겪게 됩니다. 학위를 딸 거면 한국대 농대가 훨씬 빠르고 편합니다.

"학구적인 사람이면 논문 통과 같은 것도 고속으로 시켜줄 거 같은데. 내가 마음만 먹으면 농경일기로 노벨상 따내는 것은 일도 아니야."

-학문의 완성에는 지식과 실력뿐만 아니라 충분한 시간과 숙성이 필요하다고 믿는, 전통적인 스타일의 학구자입니다.

"아, 그럼 안 되지. 논문만 잘 쓰면 월반도 팍팍 시켜주고 학위도 휙휙 던져주고 그런 스타일이 난 좋다고."

-그리고 한국대는 저택에서 가깝지 않습니까? C대학은 너무 겁니다.

"그럼 한국대로 해야겠다."

그렇게 하수영은 한국대로 마음을 굳혔다.

애초에 실력 있는 과학자 밑에서 지식을 쌓으려는 게 아닌, 속성으로 그럴듯한 학위를 따는 게 목적이었으니.

건물도 관리하고 농장도 케어해야 하고 할 게 많은데, 학업에 불필요하게 발목을 잡힐 필요는 없지 않은가.

***

청강증 발급은 쉽다.

그냥 인터넷으로 신청하면 기계적으로 프로그램이 판단해서 발급을 해준다.

우편으로 받아도 되고, PDF로 받아서 인쇄해서 들고 다녀도 되고, 모바일로도 증명할 수 있다.

TO가 충분하고 돈만 내면 그만이기에, 사람의 개입 없이 누구나 쉽게 청강을 할 수 있다.

물론 수업당 일반인 청강생의 인원이 정해져 있긴 하지만, 한국대 농대 같은 경우는 올해에 청강생이 단 한 명도 없었다.

학교 측에서 모니터링을 했다면 청담동 농민 재벌 하수영의 존재를 인지했을 것이다.

하지만 신청처리 자동화가 잘 되어 있는 덕분에, 한국대와 C대학은 청담동 농민 재벌 하수영이 청강을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요즘은 출석 체크도 옛날처럼 이름 안 부르고 QR 인증으로 그냥 해버리네."

- 대리출석 우려가 없고 정확해서 좋지요.

"아, 이러면 출결 때 교수가 내 이름을 부르고 학생들이 '뭐야, 설마 그 하수영?' 하고 돌아보다가 날 딱 알아보는 그런 불편하고 번거로운 상황은 안 생기겠네."

-목소리에 아쉬움이 느껴집니다? 오류입니까?

"아직 딥러닝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다. 좀 더 정진하여라."

어느덧 청강을 시작한 지 며칠이 지났다.

하수영은 현재 한국대와 C대학, 이렇게 두 군데만 청강을 하고 있었다. 한 곳은 금방 정리를 한 것이다.

후기 입학은 한국대로 정했지만, C대학 청강은 아직 계속하는 중이었다.

하수영은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일부러 색이 들어간, 커다란 뿔테 안경을 쓰고 다녔다.

평소 이미지와는 전혀 딴판이기에, 스쳐 지나가듯 자신을 본 사람은 한번 보고는 긴가민가할 것이다.

"기초의원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명색이 정치인이니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

-구의원 신분보다는 수영농장주라는 신분이 더 크게 작용할 것 같습니다만. 여기는 농대입니다.

"야, 강의 시작한다."

맨 뒤에 앉은 하수영은 강의실로 종산묘 교수가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날카로운 턱선과 눈빛은 한눈에 보기에도 꼬장꼬장해 보인다.

턱을 괴고 바라보며 하수영은 중얼거렸다.

"확실히 저 사람 밑에서 고속으로 학위 따기는 쉽지 않겠는데, 최소박사 과정만 4년은 해야 겨우 줄거 같아."

"4년 만에 박사 따는 거면 엄청난 고속질주인데요?"

옆에서 들은 여학생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초면이지만 하도 어이가 없어서 반응을 한 모양이다.

"저기, 몇 학번이신데 우리 종산묘교수님을 놓고 그런 말씀을 하세요?"

"그냥 일반인 청강생인데요."

"……아."

"가업으로 농사를 짓고 있어서 종산묘 교수님 수업은 어떨까 궁금해서 청강을 신청해 본 겁니다. 가방끈은 짧지만 배움에 대한 열의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아요."

"죄송해요. 일반인이신 줄도 모르고 그만."

"아닙니다. 저도 혼잣말이긴 하지만 제자분들이 듣기에는 충분히 기분 나쁠 수 있는 말이었어요. 사과하겠습니다."

하수영은 태연히 넘기고 다시 정면에 집중했다.

강의실을 꽉 채운 학생들의 숫자가 종산교 교수의 인기를 말해주고 있었다.

특이하게도 생명공학부 학생들이 복수전공, 부전공으로 듣는 경우도 상당했다.

물론 이유는 명확했다.

"작년에 종산묘 교수님 추천으로 몬산토 코리아에 취직한 사람만 100명이 넘는다며?"

"이 취업난에 교수 혼자 힘으로 다 국적 기업에 100명 넘게 취직시킨 거면 엄청 대단한 거지."

"국립종자연구소에도 교수님 추천이면 그냥 일사천리, 완전 프리패스라던데."

"올해부터 정부에서 작물종자유전자 연구에 매년 200억씩 쏟아붓는 다더라."

"그게 전부 다 종산묘 교수님 한 분 덕분이잖아. 우리나라 농업과학의 희망."

"근데 우리나라 농업의 희망하면 한 명이 더 있지 않아?"

"수영농장주? 근데 그 사람은 과학자는 아니고 그냥 농민이잖아. 종자 연구나 유전자 연구하고는 전혀 관계없지."

학과가 학과다 보니, 간간이 학생들 사이에서 수영농장의 이름이 나오기도 했다.

비유하자면, 반도체를 공부하는 반도체학과에서 서해전자의 이름이 자꾸 언급되는 것과 같다.

"하수영 말이야. 재산이 얼마나 될까?"

"이번에 쌀 팔아서 농협은행에 예치한 것만 17조 원이라던데. 아마 현금만 수십조 원 될걸?"

"어마어마하네. 진짜 우리나라 최고 부자는 하수영인 거 아니야?"

"개인 자산으로는 넘사벽이지."

"가축사료 원료도 이제 수영농장에서 사실상 독점한다는데. 진짜 우리 나라 농가에 이런 사람이 나올 줄, 예전 같았으면 상상도 못 했어."

"미국에 소고기 수출하려고 지금 벌써 가축소도 30,000두 넘게 확보했다던데."

"근데 대체 어떻게 농사를 짓기에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생산력을 보이는 거지?"

"엄청난 비료를 갖고 있다는 말이 있어. 코카콜라처럼 특허도 안 내고 자기만 쓰는 거래. 그래서 작물들이 엄청 빨리 자라고 열매도 엄청 많이 맺고 그러는 거라고."

하수영은 그런 수군거림을 흐뭇하게 듣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내 이야기가 나오는군, 역시 농대 수업 청강하길 잘했어. 아, 한국대 후기 입학에서도 기왕이면 신분이 빨리 들통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QR 전자출결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으니, 교수들 입만 막으면 학생들 사이에 소문날 가능성은 줄어들 겁니다.

"그러게. QR출결 시스템 따위 대체 누가 만든 거야?"

-마스터?

프리덤은 학습 코드가 꼬였는지 잠시 말이 없다가 이윽고 귀에 꽂은 무선 이어폰으로 다시 말했다.

-아무튼 학교 측에 적당한 기부금을 주면서 부탁하면 교수 입은 막을 수 있습니다. 얼굴을 아는 학생들은 어쩔 수 없겠지만요.

"사진으로만 한두 본 사람은 날 직접 봐도 긴가민가할걸. 강남구의회올라온 사진 보니까 나도 못 알아보겠던데. 대체 뽀샵을 얼마나 심하게 했는지, 원."

-마스터의 사진은 의회에서도 특별히 심혈을 기울여 보정 관리를 한다고 합니다.

그때 학생들이 종산교 교수가 갑자기 부산해진 것을 보고 자세를 잡았다.

"아, 교수님 이제 시작하시려나 보다."

강단에서 강의 준비에 한창이던 종산묘 교수가 드디어 마이크를 들었다.

강단 후측 대형 흰 스크린에 강의 목차가 떠올랐다.

[다가오는 글로벌 식량 위기]

"식량 위기라고 하면 여러분들은 크게 와 닿지 않을 겁니다. 언제나 주변에는 먹을 것이 풍족하게 널려있으니까요. 하지만 인류가 이처럼 풍부한 식량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은 축복은 또한 아직 보편적이지 않습니다. 제3세계에서는 빵한 조각이 없어 굶어 죽는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존재합니다."

"비료와 종자개량기술의 발달은 부유한 국가에게 넘쳐나는 식량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식량의 생산에는 초자연적인 요소가 훨씬 크게 관여하고 있으며, 그것은 인간의 노력으로 어찌할 수 없다는 사실을요."

"실제 예를 들어봅시다. 2년 전 북미의 한 대농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기상현상을 겪었습니다. 몇 달동안 낮 시간 동안 원인을 알 수 없는 먹구름이 계속 끼어서 해를 가렸죠."

학생들의 표정에 놀라운 기색이 어렸다.

"밤이 되면 구름층이 사라지고 낮이 되면 나타나는 이 이상현상 때문에 2,000헥타르에 달하는 옥수수밭이 피해를 봤습니다. 광합성을 못하니 옥수수들이 거의 성장을 하지 못한 거죠."

하수영은 작게 물었다.

"프리덤, 그런 일이 있었냐?"

-딱 한 번 있었고 피해 지역이 2,000헥타르밖에 되지 않아 농장주도 그냥 넘어갔습니다.

"역시 미국 농부들은 위대해. 2,000헥타르 면적의 농지를 망쳤는데 쿨하게 넘어가다니."

-카길입니다.

"에이, 카길한테 옥수수밭 2,000헥타르 정도 망친 건 그리 큰 피해도 아니지."

종산묘 교수는 조곤조곤한 목소리를 마이크를 통해 퍼뜨리며 강의를 계속했다.

"태양, 그리고 수분 작용을 하는 꿀벌 같은 곤충들. 이와 같은 변수는 인간의 기술로 어쩔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교수님, 먼 훗날에는 언젠가 가능하지 않을까요?"

"글쎄요, 태양이나 곤충 수분 작용과 무관하게 작물을 키울 기술력을 갖춘 문명에서 굳이 농사를 지을 거 같진 않군요. 아마 공장에서 영양소를 합성한 인공쌀을 만들어서 팔지 않을까요?"

여기저기서 가벼운 실소가 터졌고, 하수영은 턱을 괴고 흥미롭다는 듯이 바라봤다.

"괜찮은데? 내가 중년 되면 써먹으려고 한 농사 테크트리를 생각하고 있어."

시간이 다 되어가자 종산묘 교수는 슬슬 강의를 정리했다.

"그럼 질문받겠습니다. 질문 있는 학생 있나요?"

"교수님! 수영농장에서 쓰는 벼 종자가 교수님이 개발한 신종 벼 품종이어서 그렇게 생산량이 엄청나다는 말이 있는데, 그게 사실인가요?"

하수영은 소리 없이 킬킬거렸다.

"아유, 내 이야기 왜 이렇게 많이 나와. 너무 흐뭇하고 입이 간질거려서 민망하다, 야."

-마스터, 제가 심화 연산을 해봤는데 혹시 주변에 신분이 빨리 들키길 바라시는 건 아닌지…….

"그럴 거면 퍼포먼스 놔두고 왜 차를 새로 주문해? 딥러닝이 아직도 부족하다. 더 정진해."

프리덤 이 녀석은 알면서도 모르는 체 해주는 처세술이 없다는 게 답답하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