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456화
115장 폭탄을 한 개 더(3)
[서해전자, 44조 원에 백두반도체 인수!]
[100조 원 규모의 신 공장 증설에 이어서 백두반도체까지 인수에 성공! 거듭 날개를 다는 서해반도체!]
[TSMC, 게 섯거라!]
서진파운드리 CEO 정서진은 뉴스에서 쏟아지는 속보 호들갑을 지켜보고 있었다.
경쟁자이긴 하지만 저절로 혀가 처진다.
"쓸모도 없는 공장을 44조 원이나 주고 인수하다니."
백두반도체는 팹(설계) 인프라는 별거 없다. 99%가 공정생산라인에 치중돼 있다.
서해전자도 어디까지나 반도체 생산 증설 목적으로 백두반도체를 인수한 것이다.
나날이 확장되는 모바일 시장의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서 백두반도체를 인수했을 텐데, 최악의 선택이었다.
"우리 회사가 정상 가동하면 TSMC도 망할 판인데."
입자집합명령을 이용한 반도체 공정 방식.
기존의 반도체보다 원재료 대비 수율이 훨씬 높다. 낭비되는 재료가 거의 없으니.
게다가 공정 과정에서 독한 화학약품을 사용하지도 않아 환경오염 문제가 없다.
공정 단계도 획기적으로 줄어들어 생산 속도도 비교할 수 없이 빨라진다.
고수율에, 속도도 빠르고, 환경오염도 없으며, 생산비용도 낮아지는 것이다.
서진파운드리는 반도체 업계 생태계를 어지럽히는 교란종이 될 것이다.
속도, 단가, 환경보호에서 경쟁이 안 되니, 서해전자는 울며 겨자 먹기로 서진파운드리에 수주를 줄 수밖에 없다.
"그럼 서해전자가 공정 증설에 얼마를 파묻은 거지?"
-경기도 신 공장에 현재까지 35조원, 이번에 백두반도체 인수에 44조원을 사용했습니다.
"흐음…… 총 79조 원이군."
-백두반도체에 지속적으로 쌓이는 적자와 운영비를 고려하면, 서진파운드리 시범공장을 발표할 때쯤에는 매몰비용이 최소 85조 원까지 늘어날 전망입니다.
"85조 원을 그냥 묻어버리다니. 끔찍한 일이야. 그 돈이면 대체 국밥이 몇 그릇이지?"
-국밥집으로 가늠하는 게 효율적입니다. 적어도 100만 개는 짓고도 남을 겁니다.
"세상에! 국밥도 아니고 국밥집이 100만 개라니!"
이러다가 정말 서해전자가 반도체 증설에만 100조 원을 날려 버리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거 같다.
"이거 보통 회사라면 CEO는 해임되고 주주들한테 고소당해야 하는 감인데."
잘못된 경영 판단으로 100조 원을 날려 버린 셈이니.
물론 이현덕 부회장이 소송을 당할 일은 없을 것이다. 애꿎은 회사와 주주들만 피해를 보고 말겠지.
하지만 어디 100조 원만으로 끝날까?
하수영은 서해전자에 별로 감정이 좋지 않다.
최소 85조 원 이상을 날린 서해전자가 반도체 위탁생산을 맡기려고 해도, 순탄치 않을 게 분명했다.
"이제 시범공장이 완성되기만 하면 게임은 끝이다."
정서진은 가슴이 두근거려서 벌떡 일어났다.
전자부품을 취급하는 전 세계 모든 회사들이 이제 곧 서진파운드리 앞에 무릎을 꿇으리라.
반도체 시장을 제패하는 절대 황제가 될 날이, 이제 멀지 않았다.
그 날을 상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곤 한다.
'입자집합명령 장치는 반도체뿐만 아니라 모든 미세부품 분야에 적용 할 수 있어.'
메모리반도체, 비메모리반도체뿐만 아니라 전자기기에 들어가는 대부분의 다양한 미세부품들도 만들 수 있다.
'크기 상한선 규격을 조금만 더 키울 수 있으면 스마트폰도 만들어낼 수 있을 거 같은데.'
아쉽지만 스마트폰 자체는 못 만든다.
주요 부품인 액정이 입자집합명령장치의 허용 최대치 규격을 초과하기 때문이다.
현재 입자집형명령 장치가 만들 수 있는 부품의 크기는, 최신 서버용 초대형 CPU(그래봤자 아기 손바닥) 정도였다.
손목에 차는 래플 워치용 디스플레이 정도는 만들 수 있겠지만, 일반스마트폰 액정은 무리다.
'근데 이거 꼭 일부러 크기 제한을 걸어놓은 느낌 같은 느낌이 든단 말이야. 왜 최신형 초대형 서버 CPU의 크기가 딱 상한선인 거지?'
마치 반도체 말고 다른 건 만들지 말라는 것처럼.
예를 들면 스마트폰 액정 같은 고부가가치 부품 말이다.
-32번 클러스터 작업로봇 테스트가 끝났습니다. 총 50기 모두 이상 없이 350시간의 테스트를 마쳤습니다.
"알았다. 창고에 넣어두고 잘 보관해."
-예, 주인님.
서진파운드리 공장은 100% 무인 공장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모든 공정은 하나부터 열까지 로봇들의 손으로 이뤄지며, 사람이 개입할 일은 없다.
하수영이 실비아컴퍼니에서 구매했다는 프리덤 프로버전 덕분이다.
프로 버전은 일반 버전과는 유용성면에서 차원이 달랐다.
기업의 모든 사무직의 업무를 프리덤 혼자서 뚝딱뚝딱 처리했던 것이다.
재무회계부, 법무부, 총무부 등등.
반드시 사람이 직접 움직여야 하는 일(예를 들면 비즈니스 접대)이 아니라면, 프리덤은 혼자서 모든 사무직의 역할을 해냈다.
덕분에 정서진은 아직까지 직원을 고용할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반도체 공장이야 완전 무인자동화시설이고, 정비나 순찰 등도 로봇들이 알아서 할 것이니, 사람이 정말 필요 없었다.
비즈니스를 위해 바이어들을 상대하는 일 말고는 사람이 필요 없어 보인다.
"실비아컴퍼니가 이 좋은 서비스를 공개하지 않는 이유는 역시 컴퓨팅자원 때문이겠군."
하나의 대기업이 프리덤 프로 버전을 돌리려면 얼마나 많은 연산 자원을 잡아먹을까? 상상하기도 어렵다.
"소수의 프로 구독서비스를 팔아서 괜히 경쟁자 역량만 키워주는 것도 손해고 말이야."
구독 서비스를 팔아서 돈을 벌 게 아니라면, 차라리 혼자서만 쓰는 게 나을 것이다.
"프리덤, 요즘 업계 반응은 어때?"
-서해전자의 백두반도체 인수 때문에 술렁이느라고 우리 회사에 대한 의구심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아직도 나는 사기꾼인 건가?"
-요즘은 그보다는 하수영 사장이 나노소프트와 장기적인 협동 구축을 위해 IT와 반도체에 슬슬 투자하는 게 아닐까 하는 쪽으로 보고 있습니다.
"오, 이제 사기꾼은 면한 건가. 다행이군."
서진파운드리를 처음 세웠을 때만 해도, 국내 반도체업계에서 정서진은 사기꾼 취급을 받았다.
IT라고는 모르는 돈 많은 농민 재벌을 꼬셔서 말도 안 되는 거액의 투자금을 받아냈다고.
-10조 원이라는 거액의 자본금 때문에 신경 쓰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기술 인프라가 전혀 없기 때문에 경계하지는 않습니다.
"이제 서진파운드리가 세상을 놀라게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어."
-오후 미팅 일정에 맞추려면 이제 슬슬 출발하셔야 합니다.
"알았다."
***
카르본은 미국 굴지의 반도체 회사, 마이크론의 이사였다.
그는 오늘 미팅 자리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이 장시간의 비행 여행에 걸쳐 부랴부랴 한국에 들어와야 하는지 그것부터가 짜증 났다.
'나노소프트 녀석들, 왜 하필이면 한국에서 보자고 한 거야?'
그가 한국 땅을 밟은 것은 바로 나노소프트의 미팅 요청 때문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회사 기밀이라며, 만나서 이야기를 하자고 요구했던 것이다.
마이크론 CEO는 옳다구나 하고 카르본에게 출장을 지시했고, 그는 미팅 안건이 뭔지도 모른 채로 한국을 찾아야만 했다.
한 직급 아래인 동료 맥콜린이 옆에서 투덜거리며 말했다.
"나노소프트 녀석들이 뭐 때문에 우리를 한국에서 보자고 한 거지?"
"이번에 출시하는 제품에 들어갈 부품을 주문하려는 거겠지."
"뭘 출시하려는 걸까? 서피스? 엑스코트? 설마 일체형 데스크탑 같은 건 아닐 테고."
"서피스나 엑스코트 부품 주문을 하는데 우리를 한국으로 부를 이유가 뭐가 있어?"
"모르지. 서해전자와 협업해서 물량을 확보하려는 건지도."
"서해전자와 우리를 둘 다 불러놓고 협상을 할 거면 보통 물량으로는 어림도 없을 텐데."
"틀림없이 신제품 물량을 어마어마하게 기획하고 있는 거야. 서해전자와 우리 마이크론의 공정 라인을 어느 정도 동시에 독점할 필요가 있을 정도로, 엄청나게 많이."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 환영이지만…… 그러면 시애틀로 불러야지 왜 한국으로 부르겠나?"
"글쎄."
얼마 후 나노소프트의 미팅 담당자가 나타났다.
그의 얼굴을 본 순간, 카르본과 맥콜린은 나노소프트가 무슨 모델을 준비하는지 대번에 깨달았다.
"미스터 자이오든, 반가워요."
"먼 길 오느라 고생했습니다. 나도 한국은 처음이라서 힘들었어요."
"나노소프트가 차세대 게임기 모델하드웨어를 준비하고 있는 중인가 보군요."
미팅 담당자는 다름 아닌, 나노소프트가 자랑하는 비디오 게임기 '엑스코트'의 총책임자 자이오든이었던 것이다.
"미팅이 긍정적으로 끝나기 전에는 아무것도 확답을 줄 수 없습니다."
자이오든은 미소를 지은 채 애매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가 나타난 이상, 비즈니 스의 대상이 엑스코트 게임기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마이크론에 GDDR6 메모리를 주문하고 싶습니다."
"하드웨어는 얼마나 생산하실 예정이시죠?"
"그건 말씀드릴 수 없고, 일단 1,000만 개 정도를 주문할까 합니다."
"1,000만 개라……."
생각보다 캐파가 크다.
이 정도면 다른 경쟁사에는 전혀 주문을 넣지 않는, 마이크론 단독주문일 가능성이 컸다.
엑스코트 신모델을 최소 1,000만대 이상은 생산한다는 소리니까.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당연하겠죠. 어떤 조건입니까?"
"그중 적어도 300만 개 이상은 우리가 지정하는 파운드리 회사에 위탁생산을 맡겨야 한다는 겁니다."
카르본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어려운 문장이 아닌데도, 언뜻 이해되지 않는 조건이었다.
"GDDR6 메모리는 우리도 위탁생산을 일절 맡기지 않고 100% 자사공장에서만 생산하는 제품입니다. 그런데 그걸 다른 파운드리 회사에 맡기라고요? 우리가 뭐하러 기술 유출 위험을 감수하면서 경쟁자를 키워줍니까?"
"그건 염려할 거 없습니다. 우리가지정하는 파운드리 업체는 절대로 설계 쪽에 진출하지 않습니다."
"TSMC입니까?"
위탁생산을 맡기면 반도체 설계도를 당연히 넘겨준다. 즉 설계 기술이나 노하우가 도둑맞을 위험이 있다.
때문에 TSMC는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며, 창립 이후 한 번도 설계 쪽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있다.
덕분에 설계 중심의 회사, 종합반도체회사도 안심하고 TSMC에 위탁생산을 맡긴다.
"아니오, 신생업체입니다."
"신생업체라면 더더욱 설계 기술 유출의 위험이……."
"그건 걱정 마시죠. 우리가 보장합니다. 이 업체는 절대로, 어떤 식으로는 설계 쪽으로 진출하지 않습니다. 영구히 파운드리 업체로만 남을 겁니다."
나노소프트가 이렇게까지 강력하게 보장하는 것에, 카르본은 자연히 흥미가 갔다.
"나노소프트가 새로 회사를 인수했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요. 어딘지 궁금하군요."
맥콜린이 설마 하는 표정으로 자이 오든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미스터 자이오든, 혹시 그 회사가……."
"아, 지금 오는군요."
시선을 돌리자 한 동양인 청년이 이쪽을 향해 미소 지으며 다가와서 손을 내밀었다.
"인사하시지요. 한국의 서진파운드리 CEO, 미스터 정서진입니다."
서진파운드리라는 말에 맥콜린이 역시, 하는 표정을 지었다.
자본금 10조 원은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도 화제가 될 만한 소재다.
'정말 서진파운드리였을 줄이야.'
카르본과 맥콜린은 서진파운드리가 돈 말고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설계 기술의 유출을 염려할 게 아니라, 모래알이나 제대로 쌓을 수 있는지 걱정해야 하는 곳이다.
"미스터 자이오든, 설마 서진파운드리가 나노소프트에서 키워주고 있는 회사였습니까?"
"어렵게 생각하실 것 없습니다. TSMC라 생각하고 편안하게 위탁주문을 넣으면 됩니다. 계약 조건에서 특별한 혜택을 줄 필요도 없고요."
"허…… 좋습니다. 만약 서진파운드리가 계약을 지키지 못하면 그 책임은 누가 집니까? 우리 마이크론이져야 합니까?"
"걱정 마십시오. 우리 나노소프트가 집니다. 그 어떤 책임도 마이크론에 전가하지 않겠습니다."
"그렇게까지 나노소프트가 신경 써서 케어해 주는 회사란 말입니까?"
"……."
그 순간 자이오든은 나노소프트의 전대 CEO이자, 사내 매점 최고책임자인 발머 스틴의 신신당부를 떠올렸다.
-우리 나노소프트가 수영라면으로 얼마나 많은 돈을 버는지 잘 알지? 이번 거래는 절대 문제가 생기면 안돼.
마이크론 담당자들은 서진파운드리를 나노소프트가 애지중지 키워보려는 아기 회사로 알고 있다.
자이오든은 자연히 헛웃음이 나왔다.
'키워주는 것은 무슨, 상전 중의상전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