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455화
115장 폭탄을 한 개 더 (2)
"네?"
신광룡 농협은행장은 하수영이 꺼낸 이야기에 당황했다.
처음에는 자신이 잘못 들었나 했지만, 하수영의 표정은 진지했다.
"그러니까 백두반도체가 서해전자에 빨리 매각될 수 있도록 농협은행이 움직여달라는 겁니까?"
"네, 맞습니다."
"허어……."
신광룡은 마른침을 삼켰다.
백두반도체는 백두그룹이 거느린 반도체 제조사, 매년 적자가 수천억원씩 쌓이고 있는 애물단지다.
때문에 백두그룹은 버티다 버티다, 이제는 팔아버리고 반도체 제조업에서 손을 떼려고 하고 있었다.
백두그룹과 농협은행 등 채권단은 가능한 좋은 값을 받기 위해 여기저기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현재는 미국의 윈텔, 대만의 TSMC(파운드리 전용회사), 그리고, 서해전자 이렇게 3파전 구도가 형성되어 있었다.
"회장님…… 채권단은 TSMC를 1순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2순위는 윈텔이고요. 서해전자는 솔직히…… 힘듭니다."
"가격 때문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서해전자는 터무니없이 싼 가격에 가져가려고 배짱을 부리고 있어요. 윈텔이 제시한 가격과 무려 2.5조 원 이상 차이 납니다."
"아무래도 백두반도체 공장은 국내에 있으니까요. 그 점에서 외국기업보다는 유리하죠."
정부로서는 국민 정서라는 걸 무시못 한다.
가능하면 국내 기업이 인수해서 운영하는 것이 지지율 유지에도 좋다.
하지만 백두그룹과 채권단 입장은다르다.
어디에 팔든 간에 가장 많은 돈을 주는 곳에 파는 게 장땡 아닌가.
"그래도 서해전자에 팔면 즉시 현금이 들어오지 않습니까? 다른 두곳은 시간이 걸릴 텐데요."
"그건 그렇지만, 굳이 서둘러서 헐값에 매각할 이유는 없습니다. 다른 채권단 은행도 반대할 겁니다."
농협은행이 최대 채권자이긴 하지만, 백두반도체의 채권단은 한둘이 아니다.
농협은행 혼자서 결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백두반도체를 서해전자에 떠넘겨야 하는데.'
서해전자가 백두반도체를 사려는 이유가 뭔가.
결국 공정라인의 증설, 즉 공장 덩치를 키우려는 것이다.
지금 100조 원으로 잡고 한창 짓고 있는(현재 35조 원 이상 투입됨) 신 공장만으로는 부족한 것이다.
서해전자가 지금 백두반도체를 사게 만든다면, 서진파운드리'가 공개 되었을 때 더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늦어도 내년 안까지는 시범공장이 공개될 텐데.'
지금 한창 올라가는 서진파운드리 공장.
본격적인 파운드리 생산은 아직 멀었다.
하지만 시범공장 및 시제품 생산공개는 그보다 빠른 시간 안에 이뤄진다.
시범공장을 공개하고 서진파운드리의 생산력을 공개하는 순간, 기존의 반도체 제조공장들은 직격탄을 맞을 것이다.
1, 2년만 더 기다리면 반도체 제조패러다임이 바뀌는 걸 뻔히 아는데, 기존 방식의 공장에 누가 큰 수주를 주겠는가.
"제가 서해전자 반도체에 투자를 한 게 있습니다."
"네? 그게 정말입니까?"
"네, 지금 넣은 것만 10조 원입니다."
"10조 원이라고요!"
신광룡은 눈을 부릅떴다.
"조용히 진행해서 모르셨나 봅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이미 잘 알려진 건데요."
"그, 그렇습니까?"
"미국에 유학 간 어떤 천재 반도체 과학자가 투자 좀 해달라고 해서 작년에 지갑 좀 열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10조 원이 움직인 반도체 투자 사업인데, 여태껏 자신이 몰랐다니.
신광룡은 농협은행의 안일한 태도를 느끼고 부끄러워졌다.
"아무튼 그래서 저는 서해전자가 백두반도체를 무조건 인수했으면 좋겠습니다."
서해전자 반도체(가 망하는 데)에 10조 원을 넣어놓은 것은 엄연한 사실.
"윈텔이나 TSMC는 안 됩니다. 꼭 서해전자가 인수했으면 좋겠습니다."
"……."
"무작정 밀어붙이라는 건 아니니 안심하세요. 농협이 원하는 걸 말씀하세요.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해드리겠습니다."
신광룡은 고민했다.
이미 농협은 하수영한테 빚진 게 많다.
그는 조 단위 쌀 매매대금을 농협은행에 예치하고, 3년간 이자 수익을 전혀 받지 않겠다고 했다. 이자수익은 모두 피해 입은 농민들을 구제하는 데 사용된다.
그리고 자신이 지지하는 조만식 조합장을 나중에 농협 회장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도, 하수영의 지지는 필요하다.
'백두반도체를 서해전자에 넘기면 정부와 국민이 확실히 좋아하긴 하지. 애초에 서해전자가 꼭 버려야 할 카드는 아니야. 그렇다면 약간의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이 순간 신광룡은 마음을 어느 정도 굳혔다.
"알겠습니다. 저도 내심으로는 그래도 우리나라 기업이 맡는 게 조국발전을 위해서 좋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서해전자가 인수 대상자가 되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뒤로 몇 가지 더 논의를 한 후에 하수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쁘신 모양입니다."
"아, S은행장하고 면담이 있어서요."
"S은행장이요? 혹시……."
그쪽에 주거래를 트려는 것은 아니겠지?
큰손을 뺏길 위험을 느낀 신광룡의 안색이 굳어지자, 하수영이 피식 웃으며 안심시켰다.
"S은행도 백두반도체 채권단이더라고요."
"아, 그러시군요."
신광룡의 안색이 환해졌고, 하수영은 다시 말했다.
"S은행까지만 끌어들이면 이번 인수는 무난하게 진행이 될 테니까요."
***
하수영은 S은행을 방문해 설득에 성공했다.
극비리에 움직이면서 보안을 당부 했기에, S은행의 결정책임자는 하수영의 이름을 절대 발설하지 않았다.
덕분에 서해전자는 하수영이 물밑에서 움직인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그러나 농협은행과 S은행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틀었다는 소식은 접할 수 있었다.
"농협은행과 S은행이 우리 손을 들어주기로 했다니. 역시 회장님의 이름값이 주효했어."
"다행입니다. 불필요하게 힘 뺄 필요 없이 시간을 절약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창영 회장의 카리스마, 그리고 정부의 압박.
서해전자 경영진은 그 두 가지가 톡톡히 효과를 발휘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그런 덩치 큰 기업을 해외에 넘긴다는 게 말이 안 되지. 내수고용 창출이 얼마나 중요한데 말이야."
"그러게 말입니다. 윈텔이 사봤자 필요한 알맹이만 챙기고 회사 가치 키운 다음 되팔이만 할 게 뻔하지요."
"좋아, 백두반도체 인수까지 마치면 이제 TSMC에 더 이상 위탁생산을 주지 않아도 되겠어."
서해전자는 그간 TSMC에 상당한 생산물량을 위탁하고 있었다.
나날이 늘어나는 스마트폰, 램 등의 점유율 덕분에 쏟아지는 해외 주문을 감당할 수 없어서였다.
그래서 부랴부랴 경기도에 100조원을 들여서 신 공장도 증설하고, 백두반도체 인수도 시도했던 것이다.
농협과 S은행이 넘어가자 매각 협상은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원래 서해전자에 백두반도체를 주고 싶어했던 정부.
협상을 최대한 질질 끌며 이득을 보려는 윈텔과 TSMC.
그리고 정부 편을 들기로 한 농협과 S은행.
한순간에 상황이 변했고, 백두그룹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왜 갑자기 분위기가 이렇게 바뀌었어?"
"농협은행과 S은행이 방향을 바꾸면서 이렇게 됐습니다."
"그놈들이 갑자기 왜? 그놈들도 기왕이면 제값 받고 팔고 싶어 했던 거 아니었어?"
백두그룹은 자세한 사정을 조사했지만, 서해그룹과 마찬가지로 하수영의 흔적은 찾지 못했다.
하수영이 딱 두 명만 만나서 설득을 했기 때문에, 당사자들도 철저히 보안을 지킨 것이다.
하수영의 이름이 흘러나가면 누가 입이 가벼운지는 너무나 뻔히 드러나기에.
신광룡과 S은행 인수협상책임자는 서해전자 반도체 산업(이 망하는 것)에 10조 원을 투자한 하수영의 심기를 거슬리고 싶지 않았다.
만약 그 돈에 타격을 주게 되면, 자신들이 어떤 보복을 당할지 상상만으로도 두려웠으니.
"정부 압박이 상당합니다. 해외 기업에 회사를 넘기는 것을 용납 못한다는 기존 입장이 더 강경해졌습니다."
"끄응……."
"회장님, 지금 반도체 시장 전망이 너무 안 좋습니다. 윈텔과 TSMC가 반드시 우리 백두반도체를 인수한다는 보장도 없고요."
"보장이 없어?"
"네, 적어도 TSMC는 인수 그 자체보다는 매각 자체를 최대한 지연시키는 목적이 분명한 것으로 보입니다. 훼방을 놓겠다는 거지요."
"어째서?"
"서해전자가 백두반도체를 인수하면 TSMC에 주던 위탁생산 물량이 줄어듭니다. 차후에는 서해전자가자사 물량을 전부 자사 공장에서 생산하게 됩니다. TSMC로서는 서해 전자라는 고객을 잃기 싫은 거죠."
고객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그 고객과 인수 경쟁전을 벌이는 아이러니.
"강력한 인수경쟁자 하나가 블러핑이라. 그럼 윈텔만 남은 건가."
"윈텔도 그걸 알고 있으니, 결국 2파전입니다. 하지만 윈텔에 백두반도체를 주게 되면 서해반도체의 경쟁력이 뒤처지게 됩니다. 정부와 국민들이 그걸 용납할 리가 없습니다."
"이거 인수 가격이 문제가 아니었군."
조금이라도 제값을 받으려다가 자칫 하다가는 이도 저도 아닌 수렁에 빠지게 생겼다.
"윈텔마저 두 손 들고 떠나면 인수후보가 서해전자 하나만 달랑 남을 수도 있습니다. 내년에는 연간 적자가 조 단위를 돌파할 예정입니다. 털 수 있을 때 털어야 합니다."
백두그룹 입장에서 백두반도체는 덩치만 큰 애물단지였다.
서해전자는 말할 것도 없이, 국내 2위인 화이트닉스에도 이리저리 치이고 있는 실정이니.
백영호 회장은 결국 어쩔 수 없이 결정을 내렸다.
[서해전자, 백두반도체 인수 전격결정!]
[지분 전량 인수! 상장 폐지!]
[백두반도체, 오롯이 서해전자의 품에 안기다!]
[부채 탕감은 얼마나? 최종인수가 44조 원으로 협의!]
서해전자의 백두반도체 인수 성공.
백영호 회장은 좀 아쉽고, 이현덕부회장은 펄쩍 뛰며 좋아할 빅딜이었다.
***
"내 입장에서는 가장 신나는 전개고 말이야."
"뭐가요?"
정서희가 고개를 돌리면서 물었다.
태블릿으로 기사 화면을 보면서 키득거리던 하수영은 별거 아니라는듯이 손사래를 쳤다.
"서해전자가 백두반도체를 인수하기로 했다네요. 44조 원으로요."
"아, TSMC와 윈텔은 결국 탈락한 거예요?"
"네, 그렇게 됐습니다."
"저도 그럴 거 같았어요. 백두반도체 직원이 몇 명인데, 그걸 외국 회사에 줄 거 같진 않더라고요. 국민감정이라는 것도 워낙 크고."
백두그룹이야 누구든 간에 돈 많이 주는 데에 넘기고 싶었겠지만.
하지만 기업의 덩치가 커질수록 인수합병에는 사회의 눈치를 많이 봐야 한다.
"그럼 서해전자는 이제 더 커지겠네요. 외부 파운드리에 이제 위탁도 안 줘도 되고, 안 그래도 지금 메모리반도체는 압도적으로 1위인데."
"글쎄요, 덩치가 더 커질지 쪼그라들지는 모를 일이죠."
"무슨 말이에요?"
"백두반도체가 독이 든 성배일 수도 있는 거 아니겠어요?"
정서희의 눈빛이 조금 더 진지해졌다.
"설마 백두반도체에 알려지지 않는 큰 하자라도 있는 건가요?"
"그거야 저도 모르죠. 하지만 백두반도체 인수가 결과적으로 좋지 않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이런, 이번에 서해전자에 좀 묻어 놨는데 바로 빼야겠어요."
"아직 안 빼도 됩니다. 나중에 제가 말씀드릴 때 그때 빼세요."
"역시, 뭔가 알고 있군요?"
정서희는 불현듯 친오빠 정서진을 떠올렸다.
캘리포니아로 반도체 유학을 떠나더니, 일 년도 안 돼서 한국에 돌아와 파운드리 회사를 차렸다. 그것도 하수영의 투자를 받아서.
혹시 그것과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인수금액도 절묘하네. 44조 원이라."
죽음 사(死) 자가 두 번이나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