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453화 (453/1,270)

프랜차이즈 갓 453화

114장 병원을 벗어나면 안 돼(2)

-남은 수명 : -42일

하수영은 거기서 정신 집중을 풀었다.

거짓말처럼 왕세경에 관한 요약 정보들이 눈앞에서 씻은 듯이 사라졌다.

'남은 수명이 마이너스라…… 병원밖을 벗어나면 그럼 죽게 되는 건가.'

왕세경은 하수영이 측은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도 알지 못한 채 신이 나서 말을 이었다.

"여기 병원이 정말 신기하단 말이지. 평소에 가슴이 답답하고 묵직한 게 항상 있었는데, 그런 게 씻은 듯이 싹 사라졌어."

"플라시보 효과 같네요. 원래 사람이 안 아프다, 안 아프다 생각하면 정말 안 아프게 되는 겁니다."

"내가 입원하고부터 우리 하 코디이야기만 주구장창 찾아서 읽어봤어. 정말 놀랍더군. 내가 마흔은 되어야 구축한 부를 자네는 겨우 2년도 안 되어서 쌓아 올렸어."

수영라면의 미국 매출, 그리고 프리덤.

왕세경은 그것들을 제대로 모르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러고 보니 세경그룹이 자산 규모로는 우리나라에서 한손으로 꼽는다고 들었습니다."

"부끄럽지만 시총보다는 자산총액이 더 크다네. 그리 큰 비전이나 도약은 별로 기대 안 한다는 거지."

"대신 매우 안정적이죠."

"이번에 육류 사업도 크게 한다고 들었는데. 미국 소고기 시장 진출도 노린다면서?"

"네, 앞으로 소 100만 두 이상을 갖춰서 소고기 유통을 할 겁니다."

"소 100만 마리 양성이라니. 놀랍네. 외부 투자 유치도 일절 없이 그만한 성과를 달성했다는 것도 대단해."

하수영과의 대화는 즐거웠다.

막내 손녀보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이야기가 물 흐르듯이 잘 통했다.

경영 방식에 있어서는 관점의 차이가 있으나, 그것은 방향성이 다른 것이지 단계의 차이는 아니었다.

"아! 이사장님! 언제 또 오셨습니까!"

그때 멀리서 최윤 병원장 일행이 하수영을 알아보고 서둘러 달려와서 인사했다.

마주앉은 하수영과 왕세경을 바라보는 최윤과 교수들의 얼굴에는 뿌듯함이 가득했다.

두 거목이 세월의 격차를 뛰어넘어 오랜 벗처럼 자연스럽게 교류하는 모습은, 남자의 가슴을 떨리게 하는 심쿵 포인트가 있었다.

"여러분들도 커피 한 잔 하시겠어요?"

하수영이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면서 말하자 최윤이 얼른 두 손으로 받아들었다.

눈도장을 찍어둘 이런 좋은 기회를 감히 놓칠 순 없다.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최윤은 자판기로 후다닥 사라졌고, 엉거주춤 서 있던 교수들은 하수영의 권유에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최윤이 돌아와서 캔커피를 교수들마다 하나씩 나눠주고, 하수영한테 카드를 공손히 내밀었다.

다시 이어진 대화는 당연하게도 하수영과 왕세경이 주로 주고받고, 의사들은 귀 기울여 들으며 추임새를 넣는 쪽이었다.

"내가 그래서 요즘 우리 와이프한테 용돈 받으면서 산다니까. 내 벌이는 죄다 병원비로 나가서 들어오는 게 없어요, 허허."

"우리 왕세경 환자분, VIP실 입원료 말고 추가로 나가는 진료비가 있나요?"

"워낙 건강하셔서 기본 추적검사말고 따로 나가는 처방은 없습니다. 현재로서는 상태 관찰만 하는 중입니다."

"기본 추적검사가 얼마죠?"

"한 달에 20억 정도 나가고 있습니다."

MRI 촬영, 혈액검사, 뭐 이런 것들이다.

원래라면 나라에서 정해준 금액대로 받아야 하지만, VIP환자이므로 예외.

얼마를 받는 환자만 오케이하면 그만이다.

"지금 추세라면 연간 1,400억 정도는 나가겠네요."

"그래봤자 닥터헬기 1기 값이긴 하군."

"할부나 대물변제도 가능하니까 혹시 현금 흐름에 문제가 생긴다면 얼마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내가 개인 소득만 2,000억이 조금 안 되는 수준이야! 이까짓 병원비, 내 사비로도 얼마든지 낼 수 있어."

"오, 2,000억이나 되시는군요."

"소득세 내고 건강보험 떼고 해도 병원비는 충분히 지불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게. 병원비 떼어먹고 야반도주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하하, 걱정 안 합니다."

한편 의사들은 속으로 무척 놀랐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왕세경 회장의 재력은 엄청났다.

그룹에서 받는 배당수익, 개인 자산을 운용한 투자수익, 부동산 임대 수익, 기타 이것저것 잔뜩 벌여놓은 사업체에서 들어오는 수익 등등.

연간 손에 쥐는 현금만 2,000억원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건 말 그대로 현금 소득일 뿐, 지분 등 보유자산의 가치 증가로 인한 자산 증가는 아예 별개다.

'매년 2,000억을 전부 다 써대도 자산이 계속 늘어나는 사람이라니…….'

세경그룹은 이것저것 안 하는 게 없이 다 준수하게 잘하는 편이지만, 특출하게 잘해서 1등을 먹은 영역은 없다.

그래서 10대 재벌임에도 다소 가볍게 보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세경그룹이 생각보다 얼마나 더 크고 튼튼한 기업인지 다들 오늘 알게 되었다.

'그룹 자산총액이 100조 원이라니…… 시총보다 훨씬 크잖아?'

'순환출자 없이 세경홀딩스가 계열사 전부를 수직지배하는 구조라니. 전혀 몰랐었네.'

세경그룹은 크게 2개의 지주회사가 있다.

(주)세경금융과 (주)세경홀딩스이다.

세경금융은 1금융권 은행, 카드, 투자증권, 2금융권, 대부업 등 일체의 금융업체를 거느린 지주회사였다.

그리고 세경홀딩스는 제조업과 서 비스업, 유통업, 통신 및 운송업 등 대부분의 회사 주식을 쥐고 있는 지주회사다.

세경홀딩스는 휘하의 모든 회사 지분을 최소 51%에서 100%까지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왕세경은 그런 세경금융과 세경홀딩스의 최대주주였다.

또한 다른 주주들도 왕세경과 오랜 세월을 함께 한 우호주주들이었다.

"내가 그래서 근심이 많아요. 세경그룹을 더 키우지는 못해도 최소한 지금을 유지할 수 있는 후계자를 세워야 하는데, 자식놈들 중에서 마음에 드는 놈들이 없어."

부자의 '나도 힘들거든?'이라는 넋두리는 없는 자들의 짜증을 불러일으킨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도 부자 나름, 왕세경의 넋두리는 귀를 홀리며 푹 빠지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다.

"내 오랜 친구들도 근심 걱정이 많아. 다음 세경 회장이 지금의 그룹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하고, 에휴, 다 이뤘다고 생각했는데 인생 막바지에 이르러서 깨달았지. 앞만 보고 달리느라고 가장 중요한 것 하나를 신경 못 썼다는 걸 말이야."

10대 재벌 회장의 위엄을, 그들은 눈앞에서 몸소 느낄 수 있었다.

하수영 이사장이 아니었으면 감히 왕세경 앞에서 캔커피를 호로록 마신다는 것은 꿈도 못 꿨을 일이다.

"환자분이 우리 병원의 좋은 마스코트라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10대 재벌 회장임에도 불구하고 일반 환자들에게 먼저 다가가시는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그거 아는가? 내 앞에서 그렇게 나를 품평하듯이 칭찬하는 사람은 30년 만에 접하는 걸세."

"영광입니다."

"환자분, 환자분 하고 부르는 것도.그런데 그 호칭이 참 듣기 좋아. 아들놈들한테도 항상 회장님, 회장님 소리만 듣고 살아서 그런지 더 정겹네."

***

-프랜차이즈 갓의 지식의 보고를 맛본 느낌이 어떠하냐?

"나쁘지 않네요. 잠깐 집중하고 나면 머리가 아프지만, 그래서 오래는 못 켜두겠어요."

-네가 아직 많이 부족해서 그런 거란다. 그러니 부지런히 엘릭서를 복용하거라. 그래도 하위신 진입도 못 했는데 지식의 보고 접근할 권능부터 얻은 것은 대단한 것이다.

"제가 인간의 몸으로 신적 권능을 얻은 게 어디 이번이 처음입니까?"

언어로서 우주를 창조하는 권능, 신어.

무한의 지식이 담긴 주식의 보고에 접근할 권능.

인간의 신분에 걸맞지 않는 대단한 것들이지만, 하수영은 여전히 시큰둥했다.

-아무튼 지식의 보고에 동기화되었으니 이제부터는 더욱더 수련에 정진해야 할 것이다. 부동산은 그만 좀 기웃거리고, 전 우주를 다스릴 놈이 청담동 건면적 평수나 따지고 있어야 되겠느냐!

"제가 다음 주신으로 확정된 거예요? 아직 가능성 9조 분의 1밖에 안 되지 않았어요?"

-네 경쟁자가 될 만한 후계자를 아직 못 찾았으니, 현재로써는 네가 가장 유력하지.

"만약 경쟁자를 찾으면……."

-둘이 모든 것을 걸고 싸워서 승리를 쟁취한 자가 다음 세대 우주를 통치할 프랜차이즈 갓이 되는 법!

"제 의붓동생한테 전 그냥 여기 지구 하나 다스리는 것으로 만족할 테니까 주신 자리는 가져도 된다고 전해주세요."

-뭬이야? 이놈아! 이놈아!

하수영은 아버지 은하신목의 잔소리를 잠시 뒤로 한 채 안방을 나섰다.

마당에 있는 한옥에서는 언제나처럼 최우석 노인이 부채질을 하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 의원, 이제 출근하시게?"

"네, 같이 가시죠."

"오늘은 몸이 영 안 좋아서 쉬고 싶은데……."

"그래도 부의장 어르신이 빠지면 우리 강남구의회가 제대로 돌아가지를 않습니다."

"에잉, 그래 봤자 늙은 표결 거수기일 뿐인데……."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최우석은 기분 좋게 웃으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하수영은 문득 마당 한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 한옥은 아버지가 오래전에 지은 거지. 여기 성역 효과는 수영병원에 비교하면 어느 정도나 될까?'

최우석의 오랜 친구이기도 했던, 마당 한옥이 딸린 청담 저택의 전 주인.

그가 죽은 것을 보면 한옥의 효과는 아마 청담수영병원에 비하면 한참 부족하지 않을까?

'남은 수명이 마이너스라……."

이미 명이 다했음에도 건강하게 지내는 왕세경 회장.

아마 부친은 세상의 혼란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서, 한옥에 건강 독려 효과 정도만 부여했던 것 같다.

하수영은 정신을 집중하고, 최우석노인을 주시했다.

[최우석]

통찰안(이라고 스스로 명명한)이 최우석의 정보를 주르륵 띄워서 보여준다.

이름, 나이, 자산, 성격, 기타 등등.

하지만 남은 수명은 보이지 않고 있다.

일부러 그 부분은 보고 싶지 않다고 의식을 집중했더니, 통찰안(이라고 명명한)이 알아서 필터링을 하는 것이다.

하수영은 정신집중을 해제하고 피식거렸다.

"전자현미경을 항상 착용하고 다닐 필요는 없지."

시도 때도 없이 모든 것을 본다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차라리 불행이다.

물론 하수영에게는 불행까지는 아니고, 그냥 좀 피곤해지는 불편함정도에 지나지 않지만, 최우석과 같이 캠핑카를 타고 의회로 출근했다.

"하 의원, 요새 병원 운영은 잘 되시나?"

"늘 그렇듯 적자죠, 뭐."

"저런, 수영병원이 흑자를 내야 오래오래 영업을 할 수 있을 텐데."

"괜찮습니다. 프라임오일에서 벌어들이는 돈, 쓸 데도 없어요. 사회환원 사업이라 생각하고 붓는 거죠."

"그래도 이익 실현이 되어야 뭐든 오래 갈 수 있는 거야. 차라리 영리 병원으로 전용하는 것은 어때?"

"아직 그거 법도 통과 안 됐습니다."

"돌아가는 꼴 보니까 조만간 통과 될 거 같은데. 서해그룹이 칼을 갈고 밀어붙이고 있어서 말이야."

"정 힘들다 싶으면 VIP실 7개를 제대로 돌리면 그만이에요. VIP실은 마음대로 제한 없이 돈을 받아도 되거든요."

"응? 지금 VIP실 8개 아니었나? 그렇게 알고 있는데."

"1개는 얼마 전에 VIP환자를 받았습니다."

참고로 현재 왕세경의 병실을 제외한 다른 VIP실 7개는 일반 환자들이 쓰는 중이다.

"오, VIP환자를 받았어? 누군데?"

"세경그룹 왕세경 회장님입니다."

"응? 왕 회장이 입원했어? 어디 심각한가?"

"그분을 아세요?"

잘 알고 있는 눈치에 하수영이 슬쩍 바라보자 최우석은 가볍게 웃음을 터뜨리며 설명했다.

"왕 회장이 누구 덕분에 그렇게 컸는데, 전부 내 덕분이라네."

"그래요?"

"암, 내 덕분이고말고, 왕 회장 가족, 나 어렸을 때 우리 집 머슴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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