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448화
112장 부자는 입원하고 싶다(3)
세경그룹, 한국 재계 10대 재벌에 들어가는 대기업이며, 가장 많은 다리를 가진 문어발 기업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안 건드리는 사업이 없다는 것.
칫솔부터 반도체, 이동통신과 인터넷, 화물, 해운, 항공 운송까지 전부 다 한다.
(물론 반도체 생산이 아니라 반도 체 제조공정에 필요한 물질이나 설비 등을 생산해서 납품.)
재계 순위로는 5위 안에는 못 들지만, 벌이고 있는 사업 개수로는 압도적인 1위라고 할 수 있다.
"이것저것 안 건드리는 게 없으면서 저렇게 안정적으로 덩치를 키운 것 자체가 정말 대단한 거지."
"왕세경 회장이야말로 진짜 최고의 경영가야. 서해그룹 이창영 회장?
솔직히 이창영 회장은 옛날부터 알아주던 만석꾼 집안이었어."
"왕세경 회장은 진짜 아무것도 없이 맨바닥에서 지금의 모든 걸 혼자 일궜으니까. 말 그대로 안 해본 게 없을 정도라고."
그런 왕세경 회장도 세월과 노화는 이기지 못했다.
정정했던 몸은 80세가 넘어가자 여기저기 삐그덕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심장이 말썽이었다.
그가 처음 청담수영병원을 방문한 것은, 바로 그의 인생에서 두 번째로 찾아온 급성 심근경색 때문이었다.
"가장 가까운 응급실이 어디야!"
"처, 청담수영병원입니다!"
"거기로 가자! 어서!"
임원들은 술자리 중에 쓰러진 회장을 구급차에 태우고 얼른 청담수영병원으로 향했다.
세경그룹이 운영하는 회사 구급차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24시간 왕세경 회장을 따라다닌다. 덕분에 지체 없이 응급조치를 시행하며 응급 실로 향할 수 있었다.
"회장님!"
"어서 심폐소생술을! 어서!"
필사적으로 심폐소생술을 실시했지만, 4분이 넘어가고 6분이 넘어가도록 심장 박동은 돌아오지 않았다.
"회장님! 제발"
"심장님! 제발 뛰어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구급차에 동행한 고창식 전무와 상무가 필사적으로 애원했다.
구급요원은 땀을 뻘뻘 흘려가면서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시간은 어느덧 10분을 향하고 있었다.
마의 10분.
뇌에 산소 공급 차단이 10분이 넘어가면 비가역적인 뇌 손상이 시작된다.
이렇게 되면 깨어나도 깨어난 게 아니다.
눈을 뜨더라도 평생 말이나 거동도 제대로 못 할 것이고, 식물인간으로 살아가야 할 수도 있다.
"형님!"
"회장님!"
여전히 돌아오지 않는 심박동에 고창식 전무와 상무는 울음마저 터뜨렸다.
그들에게 있어 왕세경 회장은 평생을 바친 주군이자 큰형이나 다름없었기에, 그룹 내의 권력 분쟁을 넘어선, 일생을 공유한 반려를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그때 구급차는 청담수영병원에 막 들어섰고, 심정지 시간은 10분을 아슬아슬하게 넘어서던 참이었다.
바로 그 순간, 죽은 듯이 멎어 있던 심장이 미친 듯이 쿵쿵거리기 시작했다.
"심장 박동이 돌아왔습니다! 일단 살았어요!"
"어서 응급실로! 어서!"
살아나긴 했다.
하지만 이미 10분이 지났고, 왕세경 회장은 더 이상 예전의 왕세경이 아닐 것이다.
의료진의 조치를 받은 왕세경이 중 환자실로 호송되는 동안, 왕세경의자녀들이 모여 대책을 논의했다.
"내일 장 열리자마자 주가 폭락부터 찍고 시작하겠네."
"우리 그룹은 아버지의 존재감이 절대적이었으니까. 어쩔 수 없지."
세경그룹은 왕세경 회장의 원맨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의 영향력이 구석구석까지 뻗어 있었다.
자녀들은 왕씨를 가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능력에 맞지 않는 자리를 꿰차고 있을 뿐이다.
"들어보니까 심정지가 10분이 넘으면 살아나도 평생 중증장애인 아니면 식물인간으로 살아야 한다던데."
"어쩔 수 없네. 안타깝지만 아버지는 이제 물러나시고 큰형님이 회장 자리를 이어받는 수밖에 없을 거 같소."
"아니, 왜 꼭 큰형님이 물려받아야 하지? 둘째 형님은 뭐 아버지 자식 아닌가?"
"뭐야, 이놈 자식아?"
부친이 중환자실에 실려 간 지 한 나절도 안 지났건만, 왕씨 자녀들은 벌써부터 회장 자리를 놓고 다툼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회장님이 건강히 깨어나셨습니다!"
"뭐? 건강히?"
"네! 정말 기적입니다! 대화도 제대로 하시고 거동을 하시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으십니다! 조금 느릿하긴 하지만 심각한 뇌 손상은 보이지 않는답니다!"
"아니, 심정지가 10분 넘어가면 깨어나도 깨어난 게 아니라며?"
말도 안 되는 기적이었다.
왕세경 회장은 하루도 지나지 않아 의식을 되찾았고, 표정과 발음을 똑바로 했다. 손발을 움직이는 것도 전혀 지장이 없었다.
"허어… 환자 뇌세포들이 평소에 몰래 산소 몇 분 치를 어디 꿍쳐두기라도 했나?"
"뭐, 우리 청담수영병원에서 이런 일이 어디 한두 번입니까?"
"하긴, 살아서 스틱스강을 넘어왔는데 이 정도 회복은 당연히 보여야지."
왕세경 회장은 의료진의 수군거림을 듣고 궁금증이 도져서 물었다.
"이보게, 의사 양반들. 그게 무슨 말이오?"
"아, 회장님, 그게 말입니다…"
의료진은 '청담수영병원과 스틱스강' 이야기를 간략하게 해주었다.
일단 살아서 병원 안으로 들어오기만 하면 죽어서 나가는 일은 없었다. 전부 다 기어이 건강을 되찾았다. 그런 설명을 듣자 왕세경은 껄껄 웃었다.
"그것참 신기한 징크스로군. 그 덕분에 나도 산 건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희끼리 웃으면서 하는 말입니다. 모두 회장님이 버텨내신 덕분입니다."
그리고 얼마 후, 왕세경은 무사히 퇴원할 수 있었다.
그는 집으로 향하는 전용차 안에서 오른팔인 고창식 전무의 보고를 받았다.
"첫째와 둘째가 회장 자리를 놓고 서로 싸웠다고? 내가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데?"
"네, 형님."
"못난 놈들 같으니. 내가 경영권 다툼만큼은 그래도 장례식 끝나고 나서 하라고 그렇게 당부를 했거늘."
왕세경의 표정에는 실망감이 가득했다.
하지만 자녀들의 불효에 큰 분노나 상실감을 느끼지는 않은 눈빛이었다.
'어, 어떻게 너희들이 이 아비한테 그럴 수가 있느냐!'
이게 아니라.
'너희들 그릇이 정말 그거밖에 안되느냐?'
이것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믿고 회사를 맡길 만한 놈들이 없어. 그러니까 내가 이 나이 되도록 경영에서 손을 못 떼는 거지. 믿을만한 놈이 나타난다면 내 핏줄이 아니더라도 회사를 맡길 텐데."
이것저것 안 하는 게 없는 기업이라는 게 이럴 땐 문제다.
세경그룹의 주인이 될 자는, 일단 회사가 손대는 수많은 사업에 대해 깊이 파악해야 한다.
다양한 분야에 걸쳐 이해와 지식 습득이 필요하고, 그 많은 사업체 간에 시너지 효과를 조율해야 한다.
그 많은 사업체들을 제대로 묶어내지 못하면, 그룹은 결국 여러 개로 분열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통신회사 오너로서 실비아컴퍼니 같은 기업과 망 사용료 문제를 협의하고, 서해전자와 반도체 공정물질 납품거래를 협상하고, 자동차 타이어 제조에 사용할 고무원료 수출국을 살살 달래줄 줄 알아야 한다.
세경그룹은 1위를 이룬 영역은 없지만, 대신 거의 모든 사업 분야에 걸쳐 준수한 성과를 내고 있다.
압도적으로 잘하는 것은 없지만, 거의 모든 것을 적당한 수준으로 잘하는 기업.
축구로 치면 골키퍼부터 수비수, 미드필더, 공격수, 코치, 감독, 구단 주까지 '적당히 다 할 줄 아는 놈이 필요하다.
"자식 농사 헛 지었어. 쓸 만한 놈이라고는 전혀 없으니, 쯧쯧…… 그런데 왜 이렇게 숨이 차지?"
"어디가 안 좋으십니까?"
"가슴이 갑자기 답답하이답 없는 자식놈들 생각해서 그런가? 가슴이 왜 이렇게 뻐근한…… 커억!"
왕세경 회장은 가슴을 쥐어뜯으며 고통을 호소했다.
고창식 전무는 화들짝 놀라서 지시했다.
"차 돌려! 빨리 차 돌려! 병원으로 돌아간다!"
다행히 병원을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운전기사의 프리덤은 상황을 파악하고는 재빨리 말했다.
- 병원까지 직진할 수 있도록, 방해가 될 모든 차량에 정지 협조 요청을 보냈습니다!
"고맙다. 프리덤!"
-향후 경찰 교통과에 소명 자료를 제출하겠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그건 네가 알아서 해!"
프리덤은 병원까지 질주하는데 필요한 차량만 골라서 정지 협조 요청을 보냈다.
긴급 환자 발생은 운전수들에게 특별한 일이 아니었고, 별다른 잡음없이 협조를 받을 수 있었다.
진행로에 있던 차량들은 좌우로 비켜서며 도로를 확보해 주었고, 사거리 좌우에 있는 차량들은 그 자리에 정지해서 왕세경의 전용차가 지나갈 수 있도록 배려했다.
청담수영병원으로 들어서자 왕세경은 거짓말처럼 회복되었다.
다만 다시 한번 정밀검사를 받느라고 며칠 더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회장님, 그럼 살펴 가십시오."
"그냥 며칠 더 입원하면 안 되겠나? 왠지 여기 있어야 할 거 같아서 하는 말일세."
"이미 회장님은 회복되셨습니다.
이제는 자택에서 정기적으로 통원치료를 받으시면 됩니다. 꼭 저희 병원에 입원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청담수영병원은 전국에서 가장 병실이 부족하기로 유명한 병원이었다.
병실 수가 적은 것은 아닌데, 찾는 환자들이 워낙에 많기 때문이다.
신기하게도 의료진은 부족하지 않고 넘쳐났다. 병실의 규모에 비해 의료진 규모가 큰 덕분이다.
"세경병원으로 가자. 거기에라도 당분간 입원해야겠다."
"네, 형님."
왕세경은 그룹이 운영하는 세경병원으로 이동했다.
적당한 중급 규모의 2차병원이지만, 그래도 나름 알아주는 브랜드의 병원이다.
그리고 세경병원 VIP실 생활을 한지 한 달 후, 그는 또 한 번 심장발작을 경험했다.
"회장님! 회장님!"
의료진은 뇌 손상을 막기 위해 서둘러 인공 심폐 장치까지 연결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록 심장은 다시 뛰지 않았다.
"이제는 방법이 없습니다. 심장이 식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식에 적합한 심장을 어디서 찾는답니까?"
왕세경의 자녀들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들 입장에서는 왕세경이 빨리 죽어야 자기들이 그룹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테니까.
그때 왕세경의 개인 변호사가 나타났다.
"회장님이 얼마 전에 작성하신 유언장입니다. 자기가 심장 발작으로 쓰러져 의식이 없을 시 공개하라고 하셨습니다."
"의식이 없을 때? 사후 공개가 아니라?"
"사후 공개용 유언장은 따로 있습니다. 그럼 읽어드리겠습니다."
유언장에는 재산 분배에 관한 내용은 일절 없이, 짤막한 내용만 담겨 있었다.
[나를 청담수영병원으로 옮겨서 치료를 받게 하라.]
[이에 반대하는 놈들은 그룹에서 영구적으로 내쳐라, 유산도 한 푼도 못 준다.]
자녀들은 당황했지만, 아버지의 유언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사후처리에 관한 내용이 없으니 이걸 유언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왕세경은 에크모를 단 채 청담수영병원으로 전원되었다.
그의 주치의이자 피고용자인 세경병원장은 구급차가 이송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 병원장님! 기증자가 나타났습니다!
"오, 그래? 정말 잘됐군, 잘됐어!"
병원장은 뛸 듯이 기뻐했다.
이렇게 곧바로 기증자가 나타날 줄이야.
운이 좋다고밖에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 병원장님, 회장님이 깨어나셨습니다!
"뭐, 뭐라고?"
- 중환자실에 들어가시고 한 시간 정도 지나서 심장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의식도 차리셨고요. 조금 힘들어하시지만 의식은 분명하십니다.
"돈은 얼마든지 주겠소. 심장수술해 주시오."
"죄송하지만, 회장님은 이제 이식 대상 조건에서 탈락이십니다. 기증심장은 더 위중한 다른 환자에게 돌아갔습니다."
"이식은 바라지도 않으니, 그 뭐냐? 관상동맥우회술인가 뭔가 하는 거라도 해주시오."
"지금으로써는 그럴 필요는 없어 보이는데요. 며칠 더 경과 지켜보고 퇴원하시면 되겠습니다."
"안 된다! 나 퇴원 못 한다! 수술해주기 전까지는 이 병원을 나가지 않을 거요!"
"저희가 일반병실 자리가 없어요..
중환자실도 이제 슬슬 비워주셔야."
"수술시켜 달란 말이오!"
결국 수영병원은 떼를 이기지 못하고, 간단한 심혈관 수술을 해주었다.
다만 병실에는 여전히 자리가 없어, 8인실에 '9번째로 낑겨서 눈칫밥을 먹다가 겨우 3인실에 자리가 나서 옮길 수 있었다.
환자분, 이제 퇴원하셔야지요.."
"자네는 누군가? 의사는 아닌 거 같은데."
"저는 이 병원 코디네이터입니다.
입원 및 진료비 등 병원생활의 전반적인 상담을 합니다. 하 코디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얼굴이 뭔가 어디서 본 듯한……
근데 나 퇴원 안 하고 여기 계속 살면 안 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