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443화
111장 카르텔의 파편들(4)
인간은 고기를 얻기 위해 가축을 죽인다.
그 때문에 동물에 대한 연민으로 채식주의자가 되는 이들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고기를 얻기 위해 사육과 도살은 피할 수 없는 일.
다만 가축에게 최소한의 고통만을 주도록 노력할 뿐이다.
"사실 배양육 같은 걸 보편화하는 게 맞는 일이지만, 시대를 너무 앞서나가는 일은 안 하려고요."
"그래도 가축들한테 스트레스와 고통 없는 죽음을 주는 것은 가능하니까요. 이 도축장은 고통의 최소화가 아니라 고통의 제로화를 추구합니다."
실제로 가축들은 죽기 전까지 다른 목장으로 이사를 온 줄로만 안다.
기분 좋게 편안하게 잠이 빠진 상태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도축만 생각하면 이 넓은 목장 플은 비효율적이죠. 하지만 가축들의 스트레스를 덜어주는 데는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죽은 가축을 일일이 실어 나르는 게 일이겠군요. 소돼지들은 보통 무거운 게 아닌데."
"걱정하지 마세요. 그건 노예들이 할 겁니다."
"노예라고요?"
"아, 전자노예요. 제 농장에서 일하는 로봇 같은 녀석들을 도축장에서 쓸 겁니다. 지금 부품 주문해서 기다리고 있는 중이에요."
그리고 도축장도 마찬가지로 프리 덤이 관리하게 된다.
"현재 기술로는 이 펄스 발사기가 더 이상 소형화가 불가능합니다."
"확실히 그림만 봐도 커 보입니다.
실제 크기는 정확히 어느 정도입니까?"
"가로세로가 10미터는 넘어갈 겁니다. 무게도 그만큼 상당하고요."
"한 번 설치하면 이동이 어렵겠습니다. 혹시 사람이 위험할 일은 없습니까?"
"안심하세요. 중앙시스템에서 제어하고 식별장치도 있어서 절대 사람이 위험해질 일은 없습니다. 심지어 목장 안에 사람이 같이 있어도 아무 피해 없습니다."
"오, 그건 다행이군요."
기기를 잘 모르는 최진국은 그저 하수영이 장담하니까 안전하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사람이 안전한 진짜 이유는 근본설계 자체에서 사람은 목표에서 제외하도록 설정했기 때문이다.
다른 이가 몰래 개조를 해서 사람도 목표 설정이 가능하도록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개조가 가능한 인물이라면 이미 이 시대 인물이 아니다.
애초에 그런 인물이라면 더 쉽고 효율적이고 강력한 인간살상병기를 따로 만들 것이다.
일단 무식하게 커서 대형 트레일러에 실으려고 해도 분해를 해야 하는 놈이니.(분해하면 당연히 작동 안한다)
'책잡히지 않으려면 일반 도축 도구들도 갖춰놓고 검증받아야겠군."
어차피 대항성병기 다운그레이드모델은 지금 시대 인간들이 봐서는 그냥 쓸모없는 잡동사니일 뿐이다.
그러니 주변에서 납득할 만한 도축시설은 일단 갖춰놓아야 한다.
'아무튼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이거지?'
그렇게 이해한 최진국은 마음이 다소 편해졌다.
소는 지능이 높다.
도축장으로 끌려갈 때 자기의 죽음을 직감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하지만 하수영의 신축 도축장은 소들에게 여기가 죽는 장소라는 암시조차 주지 않는다.
죽음을 앞두고 받는 스트레스가 없이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도축 고통을 덜어주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혹시 다른 농가에서도 이용 가능합니까?"
"당연히 그렇게 해줄 겁니다. 그러려면 도축장을 여러 개 지어야겠지요. 장소 선정은 최 사장님이 해주세요."
수영목장 관리를 최진국이 하는 만큼, 도축장 입지 역시 그에게 맡겨야 한다.
결국 이 도축장은 최진국 전용 시설이나 마찬가지니까.
"알겠습니다. 제가 적당한 위치를 잡겠습니다. 혹시 가축별로 하루에 몇 마리씩 도축할 수 있을까요?"
"도축 속도 효율이 문제가 되지는 않을 테니, 그 점은 염려하지 마세요. 축사장에서 도축장까지 이동하는 거리와 동산만 고려하세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기존에 도축 종사자들을 배려하시는 것도 잊지 말아주십시오."
하수영의 당부에 최진국은 조용한 웃음을 머금었다.
이 와중에도 그들을 배려하는 그의 마음씨에 포근한 기분이 들었다.
난 참 좋은 고용주를 만났구나."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며 한번 인사하라고 했던 친척, 최우석한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최진국이 잠시 도축장을 둘러보는 사이, 하수영은 감회에 젖은 눈으로 대항성병기 축소 모델을 바라봤다.
'구시대의 유물이지만 이렇게 재활용이 가능하군.
어디까지나 기본 작동 원리만 동일할 뿐, 출력이나 성능만 따지면 전혀 다른 모델이다.
본래의 목적, 항성을 블랙홀로 만드는 무기로서 활용하려면 위성 정도의 크기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대우주시대에서 제대로 씨보지도 못하고 금세 시대에 뒤쳐지고 말았다.
"역시 고물이라고 해도 언젠가는다 쓸 데가 있구나."
위성 크기의 대항성병기가 사람에게는 해를 끼치지 않고, 가축을 고통 없이 도축하는 장비로 활용된다.
아마 전생의 개발자들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농협 신임 회장 김산은 기다렸던 보고서를 받아 들었다.
[수영농장의 국내 식품 시장에 대한 영향력 보고서]
첫 타이틀부터 거창한 제목이다.
김산은 부디 안에 담긴 내용도 제목만큼이나 충실하기를 빌면서,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프라임컴퍼니는 황비버섯라면 하나로(타 식품회사와의 제휴 포함) 연간 매출 20조 원, 영업이익 1조 6,000억 원을 올리고 있음.]
[수영농장은 프라임컴퍼니에 황비버섯 납품으로 연간 7,200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음.]
"휘유. 7,200억 중에서 수익 비율이 대체 얼마야? 버섯납품은 식량재배 수익이라 소득세도 전혀 안 낼텐데."
[현 수영농장을 짓는 데 소요된 비용은 적어도 1조 원이 훌쩍 넘는 것으로 추산됨.]
[서락읍 일대에 새로 짓는 3차 수영농장의 건설 비용은 포함하지 않은 금액임.]
"무슨 농장 하나 짓는 데 조 단위돈이 들어가는 게 말이 되나?"
[무인농장을 운영하는 고가의 로봇들, 그리고 로봇들을 제어하는 슈퍼컴퓨터의 가격이 농장건설비의 대부 분을 차지하고 있음.]
"아, 그 로봇들이 참 대단하긴 했지."
김산 회장은 얼마 전 쌀을 인수하면서 견학했던 수영농장의 내부 풍경을 떠올렸다.
수없이 많은 로봇들이 질서정연하게 자기 할 일을 하면서 24시간 돌아가는 무인농장이라니..
평생 농사에 몸을 담아온 몸이다.
보니, 그때 받은 충격은 아직도 잊어버릴 수가 없다.
[밀가루, 콩, 고추 등을 생산하고 있지만 시중 판매는 하지 않고 있음.]
[황비버섯과 송이버섯을 제외한 나머지 작물 대부분은 자사 브랜드의식재료 공급 목적으로 사용됨.]]
[골든 트러플은 더 이상 판매하지 않고 백화점 VIP라운지에만 공급되고 있음.]
"백화점에서도 수영농장이라고 하면 껌뻑 죽으니."
[수영치킨이 소모하는 생닭은 연간 13억 마리 이상으로 추정됨.1원래 한 해 닭 도축량이 6, 7억 마리 정도다.
그런데 일개 프랜차이즈 배달치킨에서 소모하는 양만 13억 마리가 되었다.
국내 소비자들의 닭 소비가 거의 3배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배달치 킨 외의 분야에서도 닭을 소비하므로)
[전 국군 장병 50만 명을 대상으로 매달 황비버섯을 무상으로 지급 중.]
[향후 저소득층 가정에 연간 50만 톤 이상의 쌀 지원을 할 것으로 보임.]
[국군 장병 가정에도 쌀 지원을 할 예정이라고 함.]
[전국의 영세농가에 유류, 비료, 농기구 등 다양한 지원을 하고 있으며, 그 비용이 연간 100억 원 이상.]
탐욕스럽게 자기 욕심만 챙기지도 않는다.
이것저것 사회를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좋은 일도 벌인다.
[이미 전 국민의 식탁에 황비버섯이 오르고 있으며, 비가역적인 입맛변화가 이뤄지고 있음.]
된장찌개, 부대찌개, 김치찌개, 전 골 등 국물이 들어가는 요리라면 무조건 황비버섯을 넣어서 먹는 게 당연시 되었다.
오로지 집밥 요리에 쓸 황비버섯을 얻을 목적으로 황비버섯라면을 사는 사람들이 과반이다.
라면 시장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도 바로 그 덕분.
[국내 배달치킨 시장의 90% 이상은 수영치킨이 접수했음.]
[비 수영치킨 매장에서도 수영치킨에서 식재료를 구매하고 있음. 수영치킨은 비가맹점 개인점주들에도 충분한 배려를 하고 있어 인기가 상당함.]
"라면 시장만 싹쓸이한 줄 알았는 데, 전 국민이 먹는 배달치킨과 국물 요리까지 이미 싹쓸이했었군."
[그동안 치킨 외의 육류와 수산물, 쌀 시장에는 진출하지 않았음. 하지만 그간 수영농장이 보인 저력과 자본력을 보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접수할 수 있는 상태였음.]
김산 회장도 이번에 수영농장이 보인 어마어마한 쌀 생산 능력을 목격했다.
대관절 그 작은 무인농장에서 어떻게 그 많은 쌀을 생산할 수 있었는지, 지금도 의문이었다.
단위면적당 소출량은 이미 수영농장이 비공식적으로 전 세계 신기록을 갈아치워 버린 상황이다.
[다만 육류 시장은 이미 간접적으로 지배하게 되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님.]
[수영사료는 향후 국내 배합사료시장을 100% 지배할 것으로 추정됨. 배합사료생산 업체들은 수영농장이 제공하는 벼 등 곡물을 전량사료생산에 사용하게 될 예정임.]
[이는 수영농장이 사실상 전 국민이 먹는 국산 육류를 간접적으로 지배하게 되었다고 봐야 함.]
김산은 그 부분에서 입술을 힘껏 깨물었다.
라면, 배달치킨, 그리고 국물요리.
여기에 이어서 모든 국산 육류를 지배하게 되었다.
소, 돼지, 닭, 오리 등 식용 가축들이 먹는 모든 배합사료를 하수영이 간접적으로 독점하게 되었으니까.
'이 정도면… 고기의 왕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닌데?'
표현이 조금 우습긴 한데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국민들은 전혀 모르는 사이에, 하수영한테 식탁을 지배당하게 된 것이다.
이제 하수영은 국산 육류의 가격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합법적인 힘을 얻었다.
그가 사료 원료값을 어떻게 책정하느냐에 따라서 유통되는 고기값이 요동치게 된다.
"인정할 수밖에 없군. 수영농장…… 아니, 하수영 회장은 곡물을 제외하면 이 나라 주요 먹거리의 지배자가 되었어."
프라임컴퍼니에서 스낵 등 여러 가지 과자 산업에도 진출하는 것은 우스워 보일 정도다.
결국 사람은 간식거리가 아닌 주식에 의존하고 있고, 하수영은 그 중 육류를 완전히 지배하게 되었으니.
곡물은 손을 대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
아니면 그가 언제 곡물에까지 마수를 뻗칠지를 불안에 떨며 지켜봐야 할까.
"이렇게 견고한 카르텔이 불과 2년도 안 돼서 만들어지다니. 우리나라의 식량 패권은 이미 수영농장에 넘어갔다."
불현듯 궁금해졌다.
이 모든 것은 애초에 하수영이 원한 것일까?
아니면 농사짓고 사업 확장하다 보니 어쩌다가 이렇게 된 것일까?
'재벌 기업들이 자기들끼리 시장먹겠다고 다투는 게 우스워 보일 줄이야.'
유통 시장, 물류 시장, 전자제품시장 등등…
그런 시장을 놓고 다투는 대기업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다.
결국 사람은 먹어야 살 수 있고, 식량은 가장 기본적이며 최후의 최후까지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니까.
[지금 상태로 2년만 지나도, 수영농장의 식량 권력은 누구도 건드리지 못할 철옹성이 될 것이 분명해 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