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440화
111장 카르텔의 파편들(1)
"본격적으로 사료 생산을 하신다고요?"
사료업체 사장들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최진국은 지금 '본격적으로' 라는 말에 유독 강한 악센트를 실었다.
'수영농장에서 제대로 사료 생산을 시작한다고?'
'맙소사. 그렇게 되면…….'
'가격 경쟁력에서 절대로 이길 수 없어.'
가뜩이나 수영농장 때문에 사료 시장이 줄어든 상황이다.
최진국은 수영치킨에 가장 많은 닭을 공급하는 양계장주이지만, 닭 사료를 거의 구매하지 않는다.
수영농장에서 생산한 공을 닭 먹이로 쓰기 때문이다.
소목장은 그나마 낫다.
어차피 한국에서 소비할 육류가 아니라고 했으니, 장기적으로 보면 국내 사료업체와는 무관하다.(거기에 사료를 팔지 못하는 것은 매우 아쉽지만) 그런데 이제는 아예 사료 생산 자체를 본격적으로 한다고?
한 사장이 확인차 질문했다.
"사장님이 운영하시는 모든 농가에서 쓸 사료를 전부 직접 생산한다는 뜻입니까?"
"아닙니다. 다른 축산농가에 팔 사료를 생산하겠다는 뜻입니다. 본격적으로요."
최진국은 다시 한 번 '본격적으로'라는 단어에 강한 악센트를 실었다.
사장들의 안색이 더욱 새파랗게 질렸다.
"아시겠지만 우리 소목장에서는 질좋은 볏짚을 먹이로 사용합니다. 그런데 볏짚을 만드는 과정에서 부산물로 쌀이 많이 나오잖습니까. 그걸 어떻게 처리할까 하다가, 그냥 사료산업을 해보면 어떨까 했습니다."
"그, 그냥 시중에 팔면 되지 않습니까?"
"너무 양이 많아요. 그랬다가는 국내 벼 농가가 박살 납니다."
"사료시장도 박살이 납니다, 사장님!"
"최 사장, 너무합니다. 우리더러 앉은 자리에서 굶어 죽으라는 이야기입니까?"
최진국은 한껏 미안한 표정을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제가 미리 말씀을 드리는거 아니겠습니까. 대비할 시간은 드리려고요."
"아이고, 최진국 사장님! 제발 살려 주십시오!"
가뜩이나 사료의 원료는 대부분을 해외 수입에 의존한다.
원료의 상당량을 직접 생산량으로 대체할 수 있는 기업이 끼어든다면, 경쟁력에서 도저히 못 이긴다.
게다가 벼가 주성분이 된 동물 사료라니.
축산농장주들은 좋아라 하면서 사서 먹일 것이다.
'그래도 사람 먹는 쌀로 만든 사료가 더 좋지.'
'기왕이면 쌀이 듬뿍 들어간 사료가 당연히 더 좋지 않나?'
끔찍한 미래가 그려지자, 사장들은 그저 눈앞이 컴컴했다.
최진국은 한껏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쐐기를 박았다.
"그래도 5, 6개월 정도는 시간이 있을 겁니다. 그 안에 사업을 정리하시는 대책을 마련하시는 하세요. 저도 그간의 정이 있어 여러분들에게 미리 시간을 드리는 겁니다."
'내가 진출하면 어차피 너희 망해.'
'미리 알려주는 거니까 알아서 대비해.'
'시간은 반년 준다.'
살벌한 경쟁사회에서 이 정도만 해도 참으로 너그러운 신흥 경쟁자다.
무려 반년이나 되는 시간까지 주지 않는가.
하지만 하루아침에 사업을 정리해야 하는 입장이 된 사장들한테는 그런 게 보일 리가 없었다.
"아이고, 최진국 사장님!"
"제발 한 번만 살려 주십시오!"
"사장님, 제발 이러지 말아주세요! 살려 주십시오!"
몇 명이 바짓가랑이까지 잡으면서 매달리는 바람에 최진국은 자리를 빠져나오는 데 한참이나 애를 먹어야 했다.
***
소문은 날개 돋친 말처럼 업계에 쫙 퍼졌다.
"최진국 사장이 사료 산업에 발 담근다더라."
"남아도는 벼를 가지고 배합사료를 만든다더라."
"효성사료, 진태사료를 인수하기로 이미 약속했다던데?"
"발 빠른 놈들이네. 벌써 그쪽에 붙었단 말이지?"
사실 인수 이야기 자체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근거 없는 소문까지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정도로 사료 산업계는 큰 패닉에 빠져 있었다.
"최진국 사장이 수영농장 밑으로 들어갔다지?"
"그렇다네. 자기가 운영하던 목장이고 땅이고 전부 수영농장에 팔고, 목장 월급사장이 되기로 했다나 봐."
"그럼 최진국이가 아니고 하수영사장이 사료 산업에 진출하는 거라고 봐야겠지?"
"청담동 재벌을 무슨 재주로 이겨…… 부동산만 2조 가까이 된다던데."
"그 사람이 우리나라 석유왕인 건 알아?"
"뭐? 정말?"
"그렇다니까. 프라임오일이 그 사람 거잖아. JS칼텍스도 그 사람 말이라면 껌뻑 죽는대."
"어쩐지, 농민들한테 기름도 팍팍뿌리고 그러는 게 이상하다 싶었어.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 많은 기름을 다 사주려면 아까울 텐데……."
"이번에 쌀 팔아선 받은 돈만 19조 원이라잖아, 19조 원! 심지어 쌀값이라서 소득세도 한 푼도 안 냈어요!"
"그런 공룡이 개미들 서식지에는 뭐 먹을 게 있다고 들어오는 거야?"
사료업체들은 걱정이 태산이었다.
이 바닥에서도 하수영의 이름은 유명했다.
그 많은 곤포 사일리지를 생산했을 때부터 다들 불안한 눈으로 주목하던 중이었다.
"반년 안으로 사업 정리하라고?"
"그래도 미리 말이라도 해주는 게 어디야. 다른 대기업 같았으면 갑자기 치고 들어와서 줄줄이 도산시켰을 텐데, 적어도 마음의 준비는 하게 해주잖아."
"지랄! 그걸 말이라고 해? 평생 이 일만 해왔는데 이제 와서 강제 은퇴하라고 하면 앞으로 뭐 먹고 살라고!"
사료업체 종사자들은 둘만 모였다 하면 그 이야기를 하면서 분루를 흘리고 절망을 품었다.
***
축산농가의 분위기는 달랐다.
"수영농장에서 사료 산업에 진출한다고?"
"그렇다네."
"잘됐어. 가축 키우는데 사료값이 절반 이상인데, 이제 사료값을 많이 아낄 수 있게 됐어."
"뭘 근거로 그렇게 생각하나? '수영사료'가 다른 업체보다 사료를 싸게 판다는 보장이 어디 있어?"
"다른 사료업제 싹 망하고 나면 오히려 가격 올릴걸?"
"무슨 소리야. 남아도는 벼 처분할데 없다고 500톤이나 되는 걸 양돈가에 무상으로 나눠준 게 하수영 사장이구먼."
"뭐? 그게 정말인가?""
"작년에 겨울태풍 때문에 난리 났을 때 건물 세입자들 힘들다고 월세도 몇 달이나 안 받고 그랬었어. 가난한 농민들한테 농기구 굴릴 기름도 공짜로 주고, 또 자기 돈으로 사료 사서 가난한 농가에 꾸준히 준 사람이라고."
"몰랐었네. 그런 사람인 줄."
"그럴 수 있네. 자네는 부농이니까 그런 지원을 안 받아봤겠지."
"하수영 사장이 한 달에 전국 농가에 지원하는 것만 9억, 10억 원은 족히 된다고 하더라고."
"혹시 사료 생산도 우리 축산농가들 경영 지원해 주려고 그러는 거 아니야?"
수영농장이 사료 산업에 진출하면, 사료값이 한결 싸질 것이다.
축산농가들은 그런 희망에 부풀었고, 당연히 기존 사료업체들의 절망에 무관심하게 되었다.
***
상황은 최진국이 의도한 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축산농가는 수영농장의 사료 산업진출을 환영했고, 기존 사료업체들은 발등에 불화살을 맞고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다.
혼란의 와중에, 농협이 중재자로 나섰다.
최진국은 농협중앙회 농업농촌지원본부장을 시큰둥한 태도로 맞이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개인이 사료산업 해보려고 나선다는데 협동조합이 왜 그걸 만류하려는 겁니까."
"최진국 사장님, 그래도 한 번만 다시 생각해 주십시오. 그 많은 사료업체들이 줄줄이 도산하게 생겼습니다."
"이봐요, 본부장님, 지금 축산농가 들을 한 번 보세요. 농가 경영비는 매년 오르는데 소득은 제자리걸음이거나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건……."
"농가 폐업 숫자가 늘고 있고, 이러다가 10년, 20년 후에는 우리나라 사람들 죄다 수입산 돼지, 소, 닭만 먹을 수도 있습니다. 그 꼴 보고 싶으신 겁니까?"
본부장은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최진국의 말에 당황했다.
사료업체들의 하소연에 밀려서 농협이 중재를 하려고 왔건만, 오히려 욕만 들어먹고 있었다.
"농협이 제일 중요시해야 하는 가치가 뭡니까?"
"그야 당연히 농가 지원이지요. 하지만 사장님, 사료업체들도 크게 보면 농가의 일원……."
"그건 농협이 해야 할 일이고요. 저는 중요시해야 하는 가치를 물었습니다."
본부장은 말문이 막힌 채 입만 빼끔거렸고, 최진국이 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우리나라 식량 자급률을 높이는것! 그게 바로 중요시해야 하는 가치가 아닙니까!"
"……!"
"생각해 보세요. 만약 당장 내년, 내후년이라도 세계적인 식량 위기가 닥친다면 우리나라처럼 식량 자급률이 낮은 나라는 어떻게 되겠어요?"
"하, 하지만 식량 위기라는 게 그렇게 쉽게 오는 게 아닙니다."
"사람 일은 모르는 법이에요. 지금 우리나라 장수말벌이 미국에서 킬링말벌이라고 불린다죠? 만약 내년이라도 미국 꿀벌들이 우리나라 장수말벌들 때문에 멸종해서 미국산 곡물들 생산량이 바닥을 치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건 너무 억측……."
"아무튼 우리는 당장 내년이라도 식량 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각오를 한 채 대응해야 합니다. 정부가 공공비축미를 상시 축적하는 이유가 뭐겠어요? 다 그런 대비를 위해서입니다."
사료업체와의 중재를 위해서 방문했던 본부장은 쏟아지는 최진국의 말에 정신이 안드로메다로 이탈하려 하고 있었다.
이야기 주제가 삼천포로 빠진 지오래라는 것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만큼,
"그래서 축산농가들 부담을 덜어주고 축산업을 장려하기 위해서 사료산업에 진출하려는 겁니다. 농가들이 부담 없이 사료를 공급받을 수 있게끔 해주려고요."
"……."
"그런데 그걸 막으시겠다니, 정말 농민들을 위하는 조합이 맞습니까?"
최진국이 농민 조합원이기 때문에 이렇게 본부장을 밀어붙일 수 있는 것이었다.
"본부장님이 오늘 한 이야기들을 제가 축산농장주 단톡방에 흘리면 어떻게 될까요?"
"그, 그것만큼은 제발 참아 주십시오!"
"무엇이 진정으로 축산농가들을, 이 나라 식량 자급력을 위한 일인지 생각해 주십시오."
결국 농협 본부장은 아무런 수확없이 잔뜩 타박만 듣고 돌아가야 했다.
***
패닉에 빠진 전국의 사료업체는 결국 행동에 들어갔다.
최진국의 목장을 찾아와서 시위를 시작한 것이다.
물론 시위자 대부분은 최진국과 전혀 인연이 없는, 타지역 사료업체인들이었다.
그러자 최진국을 옹호하는 축산농장주들이 또 찾아와서 맞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사료업계를 죽이려 하지 마라! 우리는 살고 싶다!"
"선량한 농민을 핍박하지 마라!"
"옳소! 최진국 사장은 우리가 지킨다!"
감정이 격해지면서 간혹 유혈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감정이 과격해짐에 따라 지상파 저녁 뉴스에서 짤막하게나마 시위가 보도되기도 했다.
생존이 걸린 사료업체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고, 어떻게든 살아남을 길을 찾으려 했다.
농협에 이어 농식품부까지 나서서 하수영을 설득했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 문제는 최진국 사장님께 일임했습니다. 저한테 말해봐야 소용없어요."
심지어 해양수산부까지 이 문제에 끌려 들어오다시피 발을 담그게 되었다.
가축사료라는 것은 당연히 양식업과도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양식업에 종사하는 어민들도 더 저 렴하게 사료를 공급받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품고 시위판에 참가 했다.
축산농민, 어민, 사료업체, 농협, 농식품부, 해수부.
그리고 수영농장.
이들이 얽힌 갈등의 무대는 어느덧 '가축식량 지배권'을 놓은 싸움으로 발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