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437화
110장 소 사료를 만들려고 했을 뿐(2)
하수영이 생산한 볏짚, 곤포 사일리지의 양은 엄청났다.
막말로 지금 확보한, 1만 마리가 조금 넘는 소들이 당분간은 사료 걱정을 전혀 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농협 쌀 납품을 끝내고 남은 쌀이 750만 톤이라는 말에 농식품부와 농협은 발칵 뒤집어져서 하수영을 찾아갔다.
하수영의 대답은 그들이 전혀 상상도 못 한 것이었다.
"아, 그거요? 소여물 좀 넉넉하게 만들려고 하다 보니 쌀이 그렇게 나왔네요."
"소여물이라고요?"
"네, 볏짚을 소여물로 쓰려고요. 제가 이제 미국에 소고기 수출을 준비하고 있잖습니까. 소 키우려면 여물이 많이 있어야지요."
양홍명 식량정책과장은 그 말을 듣자 정신이 아득해졌다.
동행한 안덕훈 축산정책과장도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는 것을 느꼈다.
"그럼……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쌀을 많이 생산하실 예정입니까?"
"쌀을 생산하는 게 아니라 볏짚을 생산하는 겁니다. 쌀은 부산물일 뿐이죠."
"그게 그거잖습니까!"
"전혀 달라요. 저도 지금 쌀을 어떻게 처치해야 할지 골치가 아프다고요. 유엔에 무상으로 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시중에 확 풀어버릴 수도 없고, 진짜 어디에 파묻어야 하나."
"차라리 그럴 바엔 그냥 벼알도 소사료로 주시죠!"
"그건 안 돼요. 그럼 볏짚이 남아돌아서 처치 곤란해진단 말이에요. 볏짚은 소여물로밖에 못 쓰는데."
"으아아아!"
양홍명 식량정책과장은 마침내 패닉에 빠져서 눈알이 풀렸다.
안덕훈 축산정책과장도 할 말을 찾지 못해서 애꿎은 입천장만 혀로 연신 핥았다.
"그리고 저는 벼알보다는 볏짚을 먹여서 소들을 키울 겁니다. 그게 더 고기질이 좋아지거든요."
"그, 그런다고 별 차이는 없습니다!"
"있어요. 제가 키운 벼는 벼알보다는 줄기가 소한테 더 좋은 먹이가 됩니다."
거듭 말하지만 엘릭서 비료의 강화효과는 작물마다 다르게 작용한다.
(물론 성장촉진 외에 효과가 없을 수도 있다.)
벼의 경우, 엘릭서 강화 효과는 알곡보다는 줄기에 중점적으로 적용되었다.
즉 쌀은 그저 맛있는 게 전부이지만, 줄기인 볏짚은 다르다.
엘릭서의 효능이 강화시킨 줄기는 가축의 먹이로서 최고의 효능을 가지게 되었다.
소의 성장을 촉진시키고, 사육 환경을 무시하여 고기 맛을 더 좋아지게 하는.
전 세계의 모든 소고기 맛을 알고 있다는 비프스가 한 입 먹고 반해서 달려들었을 정도로, 그 점을 확인한 하수영은 소들한테 볏짚이 아닌 알곡을 먹일 마음이 없었다.
'왜 볏짚을 먹이려는 건데, 지구상어디에서든 먹힐 만한 특급 소고기를 생산하기 위해서지.'
질 좋은 먹이 놔두고 굳이 질 나쁜 먹이를 먹일 필요가 있나?
하지만 그런 사정을 모르는 두 과장은 눈앞이 캄캄했다.
'설마 쌀 시장을 접수하려는 게 아닐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의도로밖에는 해석되지 않았다.
이 추세로 보면 매년 1천만, 2천만 톤 이상씩 생산할 기세인데, 상식적으로 그 많은 쌀을 갖다 버릴 리가 없잖은가.
"그럼 쌀은 어떻게 처분하실 생각 이십니까?"
"시장에 풀었다가는 쌀 가격, 시장이 박살 나겠죠? 그래서 일단 풀진 않기로 했습니다."
풀지 않는다는 것에 안도하기보다는, '일단'이라는 말에 더욱 신경이 쓰인다.
저 말은 수틀리면 풀어버릴 수도 있다고 해석될 수도 있으니.
"아, 저소득층에 한정해서 무상으로 일정량을 배송해 줄 계획입니다. 이 정도는 시장에 큰 충격을 주지 않겠죠?"
"그 정도야 당연히……."
지출이 줄어드니 정부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지만, 정부에 납품하던 업체 입장에서는 매출이 줄어드는 일이다.
하지만 그 정도는 미약한 영향력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외 나머지는 어떻게 할까 지금 생각 중이에요. 정 뭐 하면 바다에 갖다 부어 버릴까요?"
"바다에 갖다 붓다니요! 큰일 날 말씀이십니다!"
야, 한국이 쌀 750만 톤을 바다에 부었대.
뭐? 지구 반대편에서는 하루에도 수십만 명씩 굶어주는데, 그 많은 쌀을 바다에 갖다 버렸다고?
라고 국제적으로 욕을 먹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한국은 다른 식량강국처럼 가격 조절을 위해 임의로 그 많은 쌀을 폐기했다가는 욕을 먹기 쉽다. 식량약소국의 설움이다.
'어떻게든 일단 750만 톤을 처리해야 한다.'
'저게 시중에 풀렸다가는 쌀 가격방어가 박살 난다.'
'그런데 어떻게 처리하지?'
정부에서 매입을 해?
하지만 지금 보유한 비축미만으로도 창고가 가득 찼는데?
작년 벼농사가 망했으니 올해 벼농사는 다들 아마 열심히 지을 테고, 가을이 되면 쌀이 쏟아질 것이다.
그런 미래가 뻔히 예상되는데 750만 톤이나 되는 쌀을 매입하라고?
쌀값만 22조 5,000억 원은 할 텐데, 그 돈은 또 어디서 조달한단 말인가.
***
농식품부는 쌀값 안정을 위해 필사적으로 방법을 찾았다.
일단 하수영이 보유한 750만 톤을 처리하는 게 급했다.
"시장 투매는 안 한다고 했지만, 사람 생각은 언제 바뀔지 모르는 일이지."
"맞습니다. 쌀 보관료도 만만치 않은데 그거 나가는 돈이 아깝고 또 빨리 처리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면 그냥 시장에 투매해 버릴 수도 있어요."
"차라리 해외에 수출하면 안 됩니까?"
"어떤 나라가 우리나라 쌀을 750만 톤이나 사갈 거 같아? 미국 중국? 러시아 베트남? 필리핀? 일본?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양홍명 과장의 핀잔을 들은 식량정책과 직원은 순간 아 하고 탄성을 질렀다.
"일본! 일본입니다!"
"일본?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일본을 쌀 자급률이 거의 100% 되는 나라라고, 뭐하러 우리나라 쌀을 사겠어? 그것도 750만 톤이나."
"과장님, 못 들으셨군요. 일본도 작년 강우강풍 때문에 곡창지대와 양곡 창고가 꽤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뭐?"
"우리나라처럼 쌀이 바닥난 건 아니지만, 위급하다 싶은 정도로 쌀비축량이 줄었을 겁니다."
양홍명 과장은 그제야 눈빛을 달리하며 캐물었다.
"그걸 자네가 어떻게 알았어?"
"일본인 친구 하나가 농림수산성에 다니고 있어요. 저번에 언뜻 들은 이야기인데 상황이 마냥 좋지는 않더라고요. 물론 우리나라가 처했던 상황만큼은 아니지만요."
"좀 더 자세히 알아볼 수 있나?"
"네, 알아보겠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직원은 양흥명 과장이 좋아할 만한 결과를 가져왔다.
"일본 정부가 식량안보를 위해서 600만 톤의 쌀을 해외에서 수입할 것 같다고 합니다."
"600만 톤이나?"
"네, 당장은 문제가 없지만 식량안보를 위해서 그 정도는 추가로 비축을 해놔야 안심이 되겠다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반년에 걸쳐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수입을 진행할 모양입니다."
"조용히?"
"일본 정부가 원래 자기들 약점을 드러내는 걸 극도로 싫어하잖습니까. 그래 봐야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지만요. 일본 국민들은 전혀 상황을 모릅니다."
굳이 알아도 상관없을 정도로 심각한 위기는 아니겠거니 했다.
작년에 물난리 이후 한국이 난리 난 것에 비하면, 보름달 앞에 반딧불이나 마찬가지 수준.
"한 번 수출을 추진해 볼까?"
"그러려면 외교부의 협조가 필요할 텐데요."
"조용히 수출한다면 가능할 것도 같은데…… 일본도 우리나라 쌀을 수입하는 게 더 낫지 않아? 품종도 같은데, 중국산이나 베트남산은 일본도 원하지 않을걸."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도 우리나라 쌀이 훨씬 낫죠. 다른 나라 쌀은 바로 티가 날 겁니다."
"한 번 추진해 보자고."
그 이후에는 관료제의 단점을 힘겹게 돌파하는 시련의 연속이었다.
상사에 보고를 올리고, 차관의 재가를 받고, 장관의 허가까지 얻고, 마침내 외교부와 정식으로 협조를 하게 되었다.
콧대 높은 외교부 앞에서 꼬리를 살랑거려가며, 겨우 일본 농림수산성과의 협상 약속을 받아낼 수 있었다.
외교부가 농식품부를 대리해서 일본 농림수산성과 협상을 했지만, 이제부터가 진짜 시련의 시작이었다.
"스고이, 좋습니다. 한국산 쌀의 수입을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습니다."
일본 농림수산성의 긍정적인 화답을 들었을 때만 해도, 금방이라도 쌀을 처리할 수 있을 거라고 희망에 부풀었다.
"잘하면 750만 톤 전부를 처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양홍명 과장은 신이 나서 하수영을 찾아갔다.
"의원님, 잘하면 쌀 750만 톤을 정부에서 처리해줄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그러니 부디 시중에 푸는 것 만큼은 당분간 참아 주십시오."
"시중에 풀 생각 없다니까요. 그리고 750만 톤이 아니라 700만 톤입니다."
"네?"
"50만 톤은 따로 저소득층 230만 명한테 주기로 했거든요."
"아, 그렇군요. 정말 좋은 일을 하십니다. 그 마음씨에 감복했습니다."
양홍명은 더욱 마음이 편해졌다.
처리해야 하는 쌀의 양이 무려 50만 톤이나 덜어졌다.
"근데 700만 톤을 사서 정부가 보관하시게요?"
"아닙니다. 해외 수출망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수출이요?"
"네, 만약 성사가 된다면 정부에서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업무를 처리 해드리겠습니다. 의원님은 그냥 우리 정부에 쌀을 팔았다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당연히 다른 작물과 마찬가지로 세금도 없습니다."
혹시라도 일이 잘못될 것을 우려 해, 양홍명은 일본과 협상 중이라는 말은 아꼈다.
***
농식품부와 외교부는 일본 농림수산성과 팽팽한 줄다리기 협상을 벌였다.
특히 수출 가격을 놓고 벌어지는 신경전이 상당했다.
농식품부는 조금이라도 가격을 올려 받고 싶었고, 일본 농림수산성은 가격을 후려치려고 했다.
"한국쌀 품종은 일본쌀 품종에 비해 현저하게 뒤처집니다. 귀국이 제시한 가격은 우리 농림수산성이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이 가격은 국내 시세에서 소정의 유통비를 더했을 뿐입니다. 여기에 관세까지 물리는 것은 너무 부당합니다."
"관세 부과는 당연한 조치입니다."
심지어 일본은 쌀을 제외한, 자국산 다른 식량을 한국이 매입할 것을 요구했다.
즉 일본이 700만 톤의 쌀을 사는 대신, 그만한 가치의 일본산 식량을 한국이 뭐든지 매입하라는 요구였다.
"우리 일본산 수산물은 아주 품질이 좋습니다."
참고로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은 '아직은' 정상적으로 가동하고 있는 중이다.(방사능 누출 사태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는 소리)
"그것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수산물 자체가 위험해서가 아니라, 그만한 수산물을 한꺼번에 맞수입하게 된다면 국내 수산 시장은 어떻게 되겠는가?
수산업 종사자들은 벌떼같이 들고 일어날 것이다.
"맞거래가 아니라면, 이 거래는 곤란합니다. 우리만 일방적으로 쌀을 수입할 수는 없습니다."
양흥명은 속에서 천불이 나는 것을 느꼈다.
어쨌든 간에 일본은 작년 물난리 때문에 쌀 비축량이 부족해서 수입을 준비 중이고, 그래서 한국이 거래를 제안했다.
그런데 거기다가 자국산 수산물을 맞수입하자는 조건을 굳이 끼얹다나.
"이거 거래하기 싫다는 뜻 아니야?"
"제가 보기에도 그렇게 보입니다."
"그럼 그냥 싫다고 하면 되지, 왜 이렇게 질질 끄는 거야?"
"자기들이 거절하게 되면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니까, 그게 싫어서가 아닐까요?"
"제 생각은 조금 달라요. 일본은 지금 이 거래가 필요해요. 하지만 자기들이 원한다는 티를 내기 싫은 거죠."
"그게 무슨 말이야?"
"한국 너희가 하도 사달라고 애걸 복걸하니까 할 수 없이 우리가 응해 주는데, 대신 수산물을 사주는 성의 정도는 보여라, 그래야 우리도 거래를 해도 체면이 살지, 이런 심리 아닐까요?"
"희한한 심리일세. 이해할 수가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