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429화
108장 펜션 개장!(3)
크루즈선에서 헬기 한 기가 날아올랐다.
요란한 로터음을 뿌리며, 헬기는 곧 수영펜션에 설치된 착륙장에 동체를 내렸다.
학자들이 산악지대를 탐사할 때 입는 소탈한 작업복을 입은 안살린 왕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수행비서 지하크가 언제나처럼 그림자라도 되는 양 뒤에서 따르고 있었다.
"초대해 줘서 고맙습니다, 하수영사장."
"어서 오세요, 교수님. 뭘 또 호텔을 타고 오셨습니까. 여기도 방 많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잠시 일본을 방문중이었는데, 마침 근처에 제 요트가 한 척 있더군요. 겸사겸사 끌고 왔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순간 자신들의 귀를 의심했다.
'지금 요트라고 한 거 맞지?'
'크루즈가 요트급? 아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뭔가 뉘앙스가 우리가 낚싯배 말하는 듯이 요트라고 부르는 느낌이었어.'
"별장이 아담하고 예쁘군요. 경치도 좋고요. 하수영 사장의 기호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별장이라고?'
'아담하고 예쁘다고?'
'땅값만 천몇백억을 썼는데?'
의심할 여지없는, 세계 최고의 대부호, 순수한 개인 자산만 5조 달러가 넘는 자원왕.
안살린은 석유왕이라는 호칭보다는 자원왕이라는 칭호로 불린다.
보유한 석유도 석유거니와, 천연가스, 다이아몬드광, 금광과 은광 등 값어치 있는 지하자원을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케미야 대표는 안 왔습니까?"
"바쁘셔서 어찌 될지 모른다고 하시더군요. 가급적 늦은 밤이라도 들러보겠다고 하셨습니다."
"음, 내가 사람 한 명을 소개해도 괜찮습니까? 마침 같이 움직이고 있던 터라."
"그럼요. 얼마든지 환영합니다."
하수영의 시선이 안살린의 뒤에 있던 40대 백인 남성의 얼굴다.
"인사해요. 비프스 캘론이라고 합니다. 비프스, 이쪽은 내가 누누이 말했던 하수영 사장."
"영광입니다. 비프스라고 불러 주십시오."
"하수영입니다."
하수영은 흔쾌히 악수를 하며 영어로 인사를 나누었다. 비프스는 안살린과는 달리 한국어를 거의 못 했다.
"비프스 이 친구는 한국 방문이 이번이 처음입니다."
"아, 그렇군요."
"제가 별장 파티 초대를 받았다고 하니까 꼭 오고 싶다고 졸라서 허락했습니다. 이 친구, 수영라면을 엄청 좋아합니다."
"하루에 한 번도 빠짐없이 수영라면을 먹고 있습니다! 정말 놀라운 라면입니다!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고, 먹을수록 몸이 좋아지는 것을 느낍니다!"
비프스는 기다렸다는 듯이 눈을 빛내며 주먹까지 불끈 쥔 채 열변을 토했다.
"수영라면처럼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고 몸에도 부담이 없는 그런 좋은 식품을 개발하는 것에 요즘 부쩍 힘을 쏟고 있습니다!"
"실례지만, 식품 관련 일을 하시나 보군요?"
"허허, 미국에서 자그맣게 목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 말에 안살린이 쿡 웃으며 핀잔처럼 농담을 던졌다.
"비프스, 미국 최고의 축산업자인 당신이 그렇게 소개하면 다른 동료들은 뭐가 되겠어요?"
"축산업자시라고요?"
하수영은 순간 잠시 동안 침묵했다.
어쩐지, 하는 감정이 그의 표정에 슬쩍 흘렀다.
"비프스, 비프스테이크…… 아, 웃으면 안 되는데."
설마 일부러 이름을 개명한 것은 아니겠지? 그래도 철자는 서로 다르지 않을까?
"미국 사는 사람이라면 비프스 목장에서 키운 소고기를 먹지 않는 게 불가능하다는 말이 있을 정도죠. 축산업계의 거물이자 최고 재벌입니다."
"회장님이 그리 말씀하시니 너무 부끄럽습니다."
"사실인 걸요. 당신이 키운 소고기는 나도 좋아합니다."
"이런…… 이런 거물이 오실 줄 알았으면 오늘 파티에 소고기는 뺄 걸 그랬습니다."
하수영이 살짝 난처해하는 듯 하자 비프스는 눈을 빛내며 관심을 보였다.
"소고기라고요? 혹시……?"
"저도 자그맣게 소고기 유통이나 해볼까 하고 몇 마리 키운 송아지가 있습니다. 오늘 파티에서 고기맛이 어떤지 한 번 평가받으려고 낼 생각이었는데, 부끄럽게 됐네요."
"수영농장산 소고기라니, 기대됩니다."
"에이, 우리 농장은 축산 전문 농가도 아닌걸요."
"하수영 사장, 비프스 소목장은 사실 옥수수와 콩 재배로 올리는 수익이 훨씬 큽니다."
"그래요?"
하수영이 의외라는 듯이 바라보자비프스는 쑥스러워하면서 말했다.
"사료값 때문에 남는 게 없어서 자급 조달해 보자고 옥수수와 콩 농사를 시작했는데 그게 어쩌다 보니 덩치가 좀 커졌습니다. 허허."
하수영은 이 덩치 큰 40대 백인 남자가 왠지 마음에 들었다.
청담동 후원회 노인들은 자기들끼리 수군거렸다.
"다저스 구단주, 맞지?"
"맞아. 확실해."
"오, 우리 하수영 의원이 다저스구단주하고 친분이 깊다더니, 역시……."
"왠지 오늘 올 거 같긴 했어. 설마 크루즈선을 끌고 올 줄은 몰랐지만."
"후우, 서울에서 여기까지 고생고생해서 내려온 보람이 있어. 내 평생 안살린 왕자를 보게 될 줄이야."
"하수영 의원, 자네란 사람은 정말이지…… 이 감동을 주체할 수가 없군."
"진짜 우리 하 의원은 강남구의회에서 머물러야 할 그릇이 아니야. 국회로 나아가서 7선까지 해먹고 대권에 도전을 해야 해."
펜션 분위기는 어느덧 안살린을 중심으로 묘한 감정적 기류가 형성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조금씩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하면서도, 안살린의 한 걸음한 걸음을 의식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펜션 주변에 갑자기 경호원이 늘지 않았나?"
"아, 그러고 보니 그렇군. 언제 저렇게 펜션을 에워싸고 있었지?"
"역시 안살린 왕자답게 경호원들도 특급 인재들만 데리고 다니는가 보군. 너무 자연스럽게 펜션을 둘러싸서 눈치채지도 못했어. 위화감이 없어, 위화감이."
"그러고 보니 근처 바다를 순찰하는 보트도 몇 척 보이는데?"
아닌 게 아니라, 어느덧 펜션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경호망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러면서도 펜션 인원들한테 특별한 위화감을 끼치지는 않는다. 마치 경호도 파티의 일부인 듯 자연스럽게 주변 분위기에 녹아든 것이다.
매니저가 장효주에게 소곤거렸다.
"이거 대박인데, 하수영 회장님께 저런 인맥이 있었어?"
"오빠, 이제 숨 좀 쉬어져?"
"야, 아까는 진짜 숨 막혀 죽는 줄 알았다. 내가 뉴스에서나 보던 그런 사람을 마주치게 될 줄 어찌 알았겠어?"
청담동 부자 노인 수백 명이 슈퍼카 그룹을 끌고 나타났을 때만 해도, 남은 인생 동안 이보다 더 강렬한 경험을 하기는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맛보기였고, 진짜 메인디시는 바로 안살린 왕자의 출현이었다.
"하수영 사장, 진짜 대단한 사람이었구나. 그냥 평범한 청담동 부동산재벌이 아니었어."
"청담동 부동산 재벌 자체가 이미 평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이제는 그게 평범해 보일 정도니까 그렇지. 어휴, 드라마 한 편에 이천억 넘게 팍팍 쏟아부은 포스가 역시!"
매니저는 다시금 흥분이 올랐는지 벌겋게 달아오른 채 열을 뿜다가 회접시에 눈을 주었다.
"이 활어회 싱싱한 것 좀 보소. 이게 다 수영참치 양식장에서 키운 생선들이다. 이거지?"
"언제는 자연산 아니면 쳐다보지도 않더니, 양식은 생선도 아니라며."
효주야, 살아보니까 잘 키운 양식 장 생선이 더 낫더라. 일단 기생충걱정이 덜하잖아. 양식이 안 되는 어종이야 어쩔 수가 없지만."
매니저는 다양한 접시에 담긴 회요리를 즐겼다.
어느덧 해는 오륙도 위로 비스듬하게 내려앉으며 자취를 감출 준비를 하고 있었다.
펜션 야외 정원은 수영농장산 식품의 전시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쫄깃한 식감을 자랑하는 수영참치, 황비버섯으로 만든 각종 전골 요리들, 김치공장 사장 안희철이 직접 가져온 수영김치, 양식장에서 직접 키운 다양한 생선으로 만든 회와 매운탕, 전골 요리 등등…….
이택진 셰프는 펜션 주방 인원들과 함께 마음껏 솜씨를 부렸다.
하수영과 안희철, 최진국, 박영식이 가져온 육해공 식재료가 한 가득이었던 터라, 칼을 쥐지 않고는 충동을 참을 수가 없었다.
수영농장산 식재료가 총망라하여 만들어낸 맛의 잔치는 펜션에 모인 이들의 입맛을 흡족하게 만들었다.
입맛 까다롭기로 유명한 청담동 노인들도 군말 없이 상이 무너지도록 쌓인 요리의 맛을 즐겼다.
"역시 수영농장산 식재료가 으뜸이야."
"요즘에 청담동 며느리들이 수영마트에서 파는 식재료 아니면 쳐다도 안 본다고 하더라고."
"황비버섯은 꼭 마트 개장하고 얼마 안 가서 바닥을 치던데, 좀 더 들여놓을 순 없는 건가?"
"그보다는 이 밀가루가 예사롭지 않은데? 이보게, 하 의원, 이 밀가루는 수영마트에 들여놓을 생각이 없나?"
"그보다 이번에 정부에 팔았다는 수영농장산 쌀 말이야. 그거 수영마트에는 언제 들어오는 건가?"
"하 의원, 요즘 수영마트에 너무 소홀한 거 같아. 조금 더 신경 써줘."
펜션 개장 파티 참여자들은 어느덧 음식의 맛을 즐기는 데만 흠뻑 빠져서, 서로 대화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안살린도 진정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놀라운 맛인데요. 그렇지 않습니까, 미스터 비프스?"
비프스의 안색은 잔뜩 굳어 있었다.
그는 장산 밀가루로 구운 빵을 막 먹은 뒤였다.
"빵의 식감과 향이 아주 좋습니다. 내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맛이에요. 이럴 수가. 겨우 빵 조각 하나일 뿐인데……."
비프스의 놀라움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생선요리들은 그냥 크게 흠잡을 것 없는 수준이지만, 다른 요리들이 정말 놀랍습니다. 특히 이 닭 요리들! 이건 솜씨도 훌륭하지만 요리에 쓰인 닭 자체가 달라요!"
비프스는 침까지 튀기며 자신의 흥분을 드러냈다.
"이 치킨스튜! 안에 들어간 황비비섯과 송이버섯, 각종 채소, 그리고 이 특별한 닭고기가 하나가 되어 놀라운 맛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건 최고급 레스토랑에서도 충분히 메인 타이틀로 내세울 만한 퀄리티입니다!"
정신없이 칭찬하며 맛을 보는데, 마침내 오늘의 진짜 보스가 나타났다.
"뭐? 아직도 요리가 남아 있었다고?"
소고기 스테이크가 등장하자 비프스는 충혈된 눈을 빛내며 포크를 들고 달려들었다.
소고기.
이미 수영라면으로 자신을 광팬으로 만들었던 수영농장에서 새로 길러본 소를 도축한 것이다.
과연 수영농장에서 기른 소는 다른 식재료들처럼 남다른 맛을 자랑할까?
'저 닭요리, 수영농장산 콩을 사료로 먹고 자란 거라고 그랬었지.'
겉보기에는 그냥 맛좋은 스테이크일 뿐이다. 딱히 비범함을 느낄 순없다.
그러나 포크가 당자마자 고기가 부드럽게 찢어진다. 마치 물에 젖은 종이를 찢는 것처럼 아무런 저항 없이, 하지만 결을 지키며 분리된다.
입안에 넣자 치아에 씹히는 쫄깃하면서도 적당한 식감, 그리고 혀 위로 가득 지는 육즙의 맛이 비프스의 눈을 번쩍 뜨이게 만들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스테이크를 끝까지 먹어치웠다.
다른 부위로 만들어진 스테이크도 전부 찾아서 먹어치웠다.
그리고 냅킨으로 입을 닦은 후, 각 테일 한 잔을 들고 하수영을 향해 다가갔다.
비장한 표정을 한 비프스를 보고 하수영이 잠시 대화를 멈추고 시선을 향했다.
"불편하신 거라도?"
"미국에 소고기를 유통해 보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