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427화
108장 펜션 개장!(1)
김씨는 30대 중반의 축산업자였다.
원래 축산농가에서 태어났고,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따라 소를 돌보다가 가업을 물려받은 케이스였다.
물론 부친이 20대부터는 축사 근처에는 얼씬도 못 하게 했다.
-그 나이에는 젊음을 즐겨야 한다. 이놈아.
-어차피 평생 소 키우기로 작정했으면, 그 나이에만 즐길 수 있는 걸 즐겨라.
그래서 대학을 거쳐 취업 등 도시생활을 어느 정도 거쳤다.
지금 생각해 보면 부친의 선견지명이었던 듯싶다.
도시 자취 생활도 오래 누려봤었기에 도시 생활에 대한 동경심 같은 것도 없이, 20대 후반에 미련 없이 고향으로 돌아와 축산업에 투신할 수 있었다.
"원 없이 놀 만큼 놀았드냐?"
"네, 아버지."
"그럼 이제 됐다. 네가 우리 집안후계자다."
"근데 제가 외동이잖아요?"
"어허, 어디서 이 자슥이 토를 달고."
아무튼 김씨는 부친을 도와 열심히 가업을 이어 나갔다.
부친은 지역에서도 알아주는 부농이었다.
축산으로만 올리는 수입이 연 2.5억가량 됐으니까.
이 정도면 축산농가 중에서는 가히 최상위급이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겨울태풍이 닥쳤다.
우박을 동반한 겨울태풍 덕분에 소 10두가 폐사하는 등 농가도 상당한 피해를 봤다.
겨울태풍이 지난 후, 김씨는 고심 끝에 부친한테 말했다.
"아무래도 축사를 개조해야겠어요."
"뭐?"
"요즘 이상기후 현상이니 뭐니 하면서 날씨가 심상치가 않아요. 소잃고 외양간 고치느니, 차라리 아주 튼튼한 외양간을 새로 만들어두는 게 두고두고 맘이 편할 거 같아요."
"한번 해봐라."
그리하여 허락을 얻은 김씨는 축사를 아예 새로 지어버렸다.
축사 지지층 자제를 철근콘크리트로 1.5미터 이상의 높이를 만든 것이다.
주변에 물이 빠질 만한 배수로를 파고, 산사태가 일어날 만한 동산에는 산사태 방지 철망을 덮었다.
물이 빠지는 방향에는 비스듬하게 경사진 큰 입구를 만들어서, 소들이 부담 없이 드나들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지대를 높일 필요까지가 있는 거냐?"
"아버지, 예전에 한 번 발목까지 물이 찬 거 생각해 보세요. 큰비라도 오면 이 정도는 되어야 안심이에요."
"이건 네 의견이니까 비용은 네 수익금에서 까마."
"아버지!"
그리고 개조된 축사의 위엄을 보일때가 왔다.
개조를 마치고 몇 달이 지나지 않은 여름, 강우와 강풍이 한반도를 급습한 것이다.
열차가 탈선하고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할 정도로 전국적인 큰 물난리였다.
하지만 평지보다 1.5미터 이상 높은 축사지대, 그리고 잘 정비된 배수로 덕분에 소들은 물에 빠질 걱정이 없었다.
김씨는 처음으로 아버지의 흐뭇한 미소를 봤다.
"잘했다. 까딱했으면 우리 소 전부 폐사할 뻔했는데, 네가 집안을 살렸구나."
김씨도 마음이 마냥 편했던 것은 아니었다.
만약 축사 개조를 하지 않았으면 집안이 망했을지도 모를 엄청난 대재난이었다.
만약 몇백 두나 되는 소들을 전부 잃었다면, 생각만 해도 그저 끔찍하다.
주변에서는 날마다 곡소리가 들려 왔다.
축산농가고, 양계농가고, 벼농가고 간에 모두 농사를 전부 망친 것이 그나마 벼농가는 한 해 농사만 망친 것이니 사정이 조금은 낫다.
하지만 소와 닭을 모두 폐사당한 축산농가와 양계농가는 올 한 해뿐만이 아니라 내년 이후도 모두 망쳐버린 것이다.
"이번 물난리로 한우 농가가 피해를 안 본 데가 없다. 내년에 한우값이 금값이 될 거다."
"호주나 미국에서 수입하면 되지 않아요? 정부도 명분이 있으니 수입을 망설이진 않을 텐데."
"한우 프리미엄이 어디 그리 쉽게 죽을 것 같냐? 한우 먹는 사람들은 수입산 안 먹는다."
"그래도 인터넷 반응 보면 우리 한 우가 너무 비싸서 경쟁력 없다고 불평하는 사람들 많던데."
"……."
"그 사람들도 누가 명절 선물로 한우 주면 어이쿠 감사합니다 하고 넓죽 받는다."
"자기가 돈 주고 사먹을 수가 없으니까 불평불만만 하는 거야. 눈앞에서 한우 대접 싫다는 사람, 내가 한번도 못 봤다. 소고기 자체를 안 좋아하는 사람 말고."
부친은 내년 장사를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준비했다.
이참에 아예 한우 시장에 목장의 이름을 널리 알리고, 브랜드화하겠다는 포부를 품었다.
김씨도 열심히 부친을 도왔다.
그러던 어느 날, 부친이 뜻밖의 소식을 가져왔다.
"수영농장 알지?"
"알죠. 거길 모르는 농부가 어딨습니까."
"거기에서 이번에 벼 190만 톤을 정부공공미로 납품한다고 하더라."
"올해 벼농사는 다 망치지 않았어요?"
"수영농장주가 심심풀이로 재배한 벼가 있는데, 그게 전부 수확하면 190만 톤 정도 될 거라고 하더라."
"우와…… 아니, 그렇게 넓은 논을 갖고 있었다고요?"
"거기에서 나오는 곤포를 살 생각이야."
"네? 곤포를요?"
"그래, 곤포를 소 사료로 구매하면 정부 지원금도 나오고, 또 수영농장산 볏짚이니 품질이 얼마나 좋겠니? 이번에 나오면 우리 농장에서 가능한 많이 구입해야겠다."
그리하여 김씨 목장에서는 곤포 사일리지를 최대한 많이 구매했다.
화물차들이 주렁주렁 싣고 온 곤포덩이들을 정리한 후, 일단 1개를 뜯어보았다.
부친은 혀를 내둘렀다.
"이 볏짚 실한 거 보소. 색깔 자체가 다르네, 달라. 봐봐라, 누렇기만한 게 아니라 뭔가 금칠을 한 것 같지 않냐?"
"색이 뭔가 다른 곤포와 다르긴 다르네요."
"가격도 다른 곤포보다 훨씬 싸더라. 수영농장주가 참 자비심이 있어. 온 나라 농가들이 피해 봤는데 자기만 돈 벌 수 없다고, 시세보다 저렴하게 곤포를 팔더라고."
"정말 난 사람은 난 사람이네요."
"곤포가 가성비 사료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소들이 잘 클 거야."
김씨 부자는 부지런히 볏짚을 실어다가 소들에게 여물로 한 번 먹여보았다.
소들이 킁킁 냄새를 맡더니 이내 자연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볏짚을 씹어 삼키는 속도가 무척이나 빨라졌다.
"오, 잘 먹는데요? 이 정도면 굳이 삶아서 주지 않아도 되겠어요."
"작년에 김포에서 사온 곤포는 소화를 제대로 못 시키는 애들이 있어서 어찌나 손해 봤는지 말이다."
소들은 수영농장산 볏짚을 아주 잘먹었다.
몇백 두나 되는 소들에게 볏짚을 여물로 전부 주고 난 김씨는 저녁을 먹고 다시 축사로 돌아왔다.
그는 황당한 광경을 보고는 눈을 비볐다.
"뭐야? 아버지! 아버지!"
연락을 받은 부친이 부리나케 축사로 달려왔고, 김씨는 얼굴이 창백해져서 알렸다.
"소들이 이상해요. 반추(되새김질)를 안 해요!"
"뭐야?"
위장이 4개인 소는 섭취한 먹이를 보관했다가 다시 꺼내서 씹고 다시 삼키는 되새김질을 반복하면서 미생물의 소화 및 분해를 촉진한다.
아까 먹이를 먹었으니 지금은 한가 하게 누워서 열심히 되새김질을 하고 있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어느 소도 되새김질을 하지 않는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부친도 처음 보는 상황에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라서 발만 동동 굴렀
"수의사를 불러야겠다, 빨리!"
"네!"
곧 친하게 지내는 소돼지 전문 수의사가 저녁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한달음에 달려왔다.
그는 소 몇 마리를 면밀히 살핀후 별거 아니라는 듯이 간단히 대답했다.
"그냥 최종 소화 다 시켜서 반추를 더 이상 안 하는 겁니다."
"이렇게 빨리한다는 게 말이 되오?
내가 수십 년 소를 키우면서 이런건 한 번도 본 적이 없소만."
"마지막으로 사료를 먹은 게 언제 인데요?"
섭취 시간을 들은 수의사의 표정도 살짝 심각해졌다.
반추를 끝냈다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던 것이다.
"이런…… 이상하긴 하지만 일단 소들은 아무 문제 없으니 내일 한번 더 먹여보세요. 이번에는 먹이고 나서 계속 한 번 지켜보시고요. 동영상을 찍어두시면 더 좋겠습니다."
"알았소. 수고했어요."
다음 날 아침, 김씨 부자는 사료를 먹이면서 면밀히 반추 모습을 확인했다.
먹이를 다 먹고 난 후 소들은 반주를 하긴 했다.
문제는 얼마 하지도 않고 금방 끝내버렸다는 것이다.
"벌써 끝난다고?"
음식물을 소장으로 넘겨 버려도 좋을 만큼 충분한 소화 분해를 완료했다는 뜻인데, 믿어지지 않았다.
"볏짚이 싸긴 해도 보통 억세서 다른 것보다 반추를 오래 할 터인데…… 희한하구만."
"아버지, 수영농장산 벼라서 뭔가 다른 게 아닐까요?"
"어떻게 말이냐?"
"뭐 사람 음식도 그런 게 있잖습니까. 입에 넣자마자 사르르 녹는다는가, 삼키자마자 순식간에 소화 분해 돼서 소화기관에 부담이 거의 안 가는……."
"네 말도 일리는 있구나."
"이럴 줄 알았으면 돈을 더 끌어모아서 곤포를 더 살 걸 그랬어요."
***
최진국은 어린 송아지 30마리를 따로 추려내서, 축사에 공간을 만들었다.
바로 하수영 전용의 송아지가 될 녀석들이다.
이 정도는 비용을 굳이 청구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지만, 하수영은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며 정확한 비용 정산을 요구했다.
"우리 하 의원님은 매사에 철저하기도 하시지. 정말 큰일을 할 분이야."
수영농장에서 보낸 곤포도 도착했다.
처음에 볏짚을 먹인다는 말에는 최진국도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래도 이제 막 젖을 뗀 애들인데, 억센 볏짚을 먹여서 좋을까 싶은데. 차라리 닭들 먹이는 그 수영농장산 콩을 먹이는 게 낫지 않을까?"
물론 곤포를 뜯자마자 그런 생각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충분한 발효를 마친 볏짚에서는 마치 금을 칠한 듯한 선명한 황금빛깔이 났던 것이다.
뭔가 눈으로 보기에도 질 좋은 사료요, 라고 한껏 뽐을 내는 듯했다.
최진국은 하수영의 지시대로 송아지들에게 볏짚을 먹였다.
다른 소 사료는 일절 섞지 않고, 오로지 수영농장에서 보낸 곤포에서 나온 볏짚과 물만을 먹였다. 그게 하수영의 지침이었으니, 김씨목장처럼 그도 송아지들이 반추를 거의 하지 않는 것을 보고 기겁했다가, '반추 분해를 빨리 끝냈을 뿐이다.'라는 수의사의 소견을 듣고 안심했다.
"워, 역시 수영농장산 작물은 볏짚도 뭔가 다르구나. 달라."
놀라운 일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수영농장산 볏짚만을 먹은 송아지들은 다른 송아지들보다 월등히 빨리 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성장 속도가 빠른 것뿐만 아니라 몸집도 하루가 다르게 커졌고, 털의 빛깔 자체가 달랐다.
무럭무럭 자라나는 송아지들을 보고 최진국이 두려움을 느낄 정도였다.
"이게 대체 무슨 마법의 볏짚이란 말인가?"
수영농장산 콩을 먹은 병아리들의 성장 속도와 몸집 역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낱 볏짚 따위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생육 속도를 촉진하다니.
"허허, 수영농장에서는 무슨 풍요의 신의 축복이라도 받은 땅에서 농사를 짓는 건가?"
무럭무럭 자라는 송아지들을 보고 최진국은 혀를 내둘렀다.
어느덧 해가 바뀌었고, 이제 더 이상 송아지라고 부를 수 없는 몸집이 된 소 30두를 보며, 최진국은 하수영한테 보고했다.
-의원님, 이제 유통을 해도 충분한 상품성을 갖춘 거 같습니다. 진짜 놀랍습니다. 이렇게 무럭무럭 잘 크다니요.
-그럼 이번에 해운대에 오실 때 두 마리만 도축해서 가져오실래요?
-아, 소고기 파티하면 좋겠군요. 알겠습니다. 그때 2두만 도축해서 가져가겠습니다.
1월 초,
하수영은 수영펜션 영업 개시와 동시에 지인들을 펜션에 초청해서 파티를 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