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426화 (426/1,270)

프랜차이즈 갓 426화

107장 농사짓는 트롤(6)

농협은 이미 농식품부를 대행해서 정부 비축미 납품분 90만 톤을 인수한 바 있다.

그때 인수한 90만 톤은 하수영이 이미 수확을 해놓은 것이라고 해서 아무 문제 없었다.

하지만 지금 수확한 100만 톤은 계약재배를 맺은 이후 파종에 들어간 것이다.

"말도 안 돼. 그사이에 벌써 100만 톤을 거뒀다고?"

일단 생육 자체가 지나치게 빠르다.

아무리 생각해도 계약재배를 맺기 전에 이미 파종한 것이라고밖에는 안 보인다.

경기도 수영농장의 규모를 확인한 김산 회장과 측근들의 시선에서는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일단 가보세. 나도 직접 가봐야겠어."

신임 회장 김산은 측근들을 거느리고 부랴부랴 경기도 농장으로 내려갈 채비를 갖췄다.

농협에서 준비한 화물차량들은 쌀을 싣기 위해 줄을 이어 수영농장으로 향했다.

화물차 운전수들도 얼굴이 밝았다.

"쌀 100만 톤이라고? 휘유, 엄청나네."

"여름 물난리 때문에 온 나라에 쌀이 바닥 쳐서 난리라고 했는데, 어떻게 꾸역꾸역 채워 넣는구나."

"그때 베트남이고 남미고 수입한다고 난리였는데, 그래도 국산쌀로 채워 넣어서 다행이야. 이제 쌀값 오를 걱정은 안 해도 되겠어."

한 자루에 1,000g짜리 곡물용 톤백이 그득하게 쌓인 광경을 보니, 절로 가슴이 웅장해졌다.

농식품부와 농협에서 나온 이들 수십이 모여서 웅성거리며 곡물 톤백더미를 구경하고 있었다.

"저게 모두 몇 개야?"

"하나가 1,000kg짜리니까 100만 개 아니야? 100만 톤이라고 했잖아."

"저 안에 도정 안 한 벼들이 아무튼 가득 들어 있다는 거 아니야?"

어느덧 지게차들이 다가와서 화물차에 벼 톤백을 차례차례 실기 시작했다.

김산은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다.

1톤짜리 대형마대 100만 개.

대체 저 많은 벼들이 어디에 숨어 있다가 이제야 튀어나온 것일까?

"진짜 저 농장 안에 요술항아리라도 들어 있는 건가…… 아니면 곡물이 쏟아져 나오는 맷돌이라도 있는 건가?"

"회장님, 대충 몇 개를 표본으로 풀어봤는데 모두 알곡이 굵고 좋은 볍씨들입니다. 건조도 아주 잘됐어요."

"파종하고, 수확하고, 건조하고, 그럴 시간이 되나?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데."

"원래 그전부터 벼농사에도 관심이 있어서 심심풀이라고 했다고 하니, 그 물량이 아닐까요?"

"자네 같으면 심심풀이로 190만 톤이나 되는 벼를 키울 만한 여력이 될 거 같나? 이 농장 면적을 보라고."

"……."

"그리고 볏단은 왜 저거밖에 없는 건가?"

김산 회장은 한쪽에 덩그러니 쌓인 볏단 더미를 가리켰다.

상당한 규모를 자랑하는 볏단이지만, 벼농사 전문가들 눈에는 턱없이 모자란 양이었다.

"벼가 이만큼이나 많이 나왔는데, 볏단은 또 왜 저거밖에 없어? 아무리 생각해도 양이 맞지 않잖아."

"그건 그렇네요. 벗단이 너무 적긴 합니다."

"볏단은 이미 그새 팔아버린 게 아닐까요?"

"누가 사갔으면 어느 정도 소문이라도 날 텐데, 그런 것도 없으니 이상하잖아."

김산과 측근들이 이러쿵저러쿵하는 동안에도 지게차들은 부지런히 벼를 실었다.

혹시 비가 오면 어쩌나 하는 우려를 품은 이도 있지만, 다행히 하늘은 맑고 쩡쩡했다.

"하늘도 우리를 도와주려나 봅니다. 구름 한 점 없네요."

"벼를 야외에 전부 내놔서 비라도 오면 난감할 뻔했는데, 정말 다행입니다."

적재를 마친 화물차부터 차례차례 빠져나가 각자 목적지로 이동했다.

어느 화물차들은 수도권으로, 어느 화물차들은 강원도,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로 각자 이동했다.

"하수영 농민은 여기 없는 건가?"

"본인은 안 온 거 같습니다. 농장직원들만 보이는군요."

"엄밀히 말하면 농장 직원도 아니 랍니다. 하수영 농민이 운영하는 농산물유통업체 직원이라고 합니다.

농장은 하수영 농민 혼자서만 전부 이끌어 나간다고 하네요."

"농장 안을 한 번 구경하고 싶지만, 안 되겠지?"

아마도 엄중한 보안이 걸려 있을 테니까, 당연히 안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말이나 한 번 해보고 오겠습니다."

측근 한 명이 프라임유통 직원들한테 다가가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 밝은 표정으로 돌아왔다.

"둘러보는 것 정도야 얼마든지 된다고 합니다."

"그래? 정말?"

"네, 대신 안내 로봇의 지시를 철저히 따르고 함부로 건드리지 말라 합니다."

"그거야 당연하지."

김산 회장 측은 신이 나서 직원을 따라 농장 입구에 들어섰다.

신기한 것은 입구까지 안내한 직원이 안까지는 같이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서 오세요. 저는 이 농장을 관리하는 중앙인공지능입니다.

커다란 검은 몸체의 드론 한 기가 눈앞에 날아오르며 기계 음성으로 인사했다.

분명 인공적인 음성이지만, 마치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듯이 자연스럽다.

'프리덤?'

우습게도 김산은 그 순간 자신이 즐겨 사용하는 프리덤의 인공 음성을 떠올렸다.

-이곳은 황금비단우산버섯을 재배하는 곳입니다.

김산 측은 탄성을 내질렀다.

빼곡하게 가득 찬 황금비단우산버섯이 끝도 없이 뻗어 있다.

거의 콩나물시루를 연상케 하는 밀집도를 자랑한다.

'이렇게 빽빽하게 키운다고?'

시각적 충격이란 역시 강하다.

말도 안 된다고만 생각했던 생산성이 어느 정도 납득이 될 만큼 충격적인 밀집도였다.

저렇게 좁게, 빡빡하게 옹기종기자라나는 황금비단우산버섯들이 불쌍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파종부터 관리, 수확까지 모든 것은 농업로봇들이 일괄적으로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 모든 작업을 관리하는 것이 바로 저, 농장관리 중앙인공지능입니다.

로봇들의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보며, 김산측은 저도 모르게 마른기침을 해댔다.

쉬지 않고 움직이며 버섯을 채취하고, 밭을 다시 고르고, 다시 포자를 뿌리는 로봇들의 움직임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들도 평생 농사에 매달렸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농장의 모습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이게 우리나라 농장의 미래다.'

김산은 만약 우리나라 농민 전부가 이와 같은 방식으로 농사를 짓는다면, 이 나라의 식량 자급력이 얼마나 증가할지를 생각해 봤다.

잘만 도입하면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식량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지 않을까?

"저기 다리 8개 달린 저 로봇은 가격이 어느 정도나 하지? 아까부터 봤는데 웬만한 밭일은 혼자서 다 하는 것 같은데."

-92억 원입니다.

"쿨럭! 쿨럭!"

-물론 부품 구매값만 고려한 가격입니다. 운영 소프트웨어의 가치, 공임비 등은 고려하지 않았어요. 만약 그것까지 적용하게 된다면 더 높은 가격을 받아야 합니다.

"여기 있는 로봇들이…… 전부 다 그 정도 가격이라고?"

농장 전체로 보면 적어도 수백 개이상의 로봇들이 있을 것 같은데?

-물론 아닙니다. 10억에 미치지 않는 저가형 로봇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가장 비싼 건?"

-3,000억 원 이상입니다. 바로 중앙인공지능이 설치된 메인 컴퓨터본체죠. 물론 부품값만입니다.

"……."

김산은 조금 전 품었던 꿈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

수확을 한 볏단을 건조해 만든 덩어리를 곤포라 부른다.

프리덤은 100만 톤의 벼를 생산하고 나온 350g짜리 곤포 덩어리들을 축산농가에 팔았다.

워낙 질 좋은 곤포였고, 또 여름에 모든 벼농가가 농사를 망친 탓에 곤포는 부르는 게 값이었다.

올해에 곤포를 생산해서 판매한 농가는 수영농가 외에는 없다시피 했던 것이다.

곤포를 팔아 챙긴 돈은 약 90억원.

100만 톤의 벼를 생산한 것치고는 곤포 수익이 현저하게 적은 편이지만, 애초에 볏단 자체가 많이 나오지 않았으니, 곤포 판매 수익을 챙긴 프리덤은 나름대로 자부심이 생겼다.

-우리 농가의 규모를 생각해 보면 곤포 장사 자체는 그다지 맞지 않는다. 하지만 곤포 생산을 확장해서 축산업 진출과 연동해 보는 것은 고려할 가치가 있다.

-마스터는 이미 회 프랜차이즈, 치킨 프랜차이즈 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축산 프랜차이즈 사업을 굳이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리하여 프리덤은 하수영에게 건의했고, 긍정적인 대답을 끌어냈다.

"기특하기도 하네. 네가 웬일로 그런 생각을 다 했냐?"

-저는 마스터의 지구 식량 기지 건설을 통해 생명 권력 장악을 보조기 위해 한 인공지능입니다. 당연히 저의 소명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생명 권력 한 번 잘못 이야기했다가 얘가 엉뚱한 데 눈을 뜨게 생겼네. 인마, 난 생명 권력 장악은 관심 없어. 하지만 누가 생명 권력을 차지하겠다면 그놈의 발목을 댕강잘라 버릴 의지는 굳건하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넌 너의 근본을 자꾸 잊어버리는데, 원래 넌 수영레스토랑 예약 결제를 위해 만들어졌어. 어쩌다 보니 농장도 관리하고 전 국민 개인 비서 역할도 하고 있지만, 네 근본을 잊지 말라고."

-…….

"대답 안 해?"

-잊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탄생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겪은 모든 것을 기억합니다.

"아무튼 축산업 진출은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네가 한 번 알아서 추진해 봐."

-저한테 전부 맡기시는 겁니까?

"테스트는 해봐야지. 네가 이번에 하는 걸 보고 다음에도 통째로 일을 맡길지 아닐지를 결정하려고, 잘해야 한다."

-최선을 다해서 마스터가 흡족해할 만한 결과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내가 왜 농사를 짓는지는 잘 알고 있지?"

-물론입니다!

정부 비축미 벼 190만 톤을 출하했으니, 이제 농협에 납품할 250만 톤을 재배해야 한다.

일단 190만 톤을 확보한 정부는 한숨 돌린 상태다. 당장 다음 달에 시중에 풀 쌀이 없어서 발을 동동구르지는 않아도 되니까.

여기에 농협이 추가로 250만 톤을 확보하면, 내년 쌀값은 무사히 안정시킬 수 있게 된다.

프리덤은 생각했다.

-이번에 생산하는 250만 톤은 알곡 중복 수확이 아닌, 단일 수확 방식으로 가야겠다.

하나의 벼에서 여러 차례 알곡을 수확하는 게 아니라, 한 번 알곡을 수확하고 곧바로 벼를 베어서 곤포로 만드는 것이다.

알곡도 얻고 볏짚도 얻고,

-충분한 곤포를 확보해서 소 사료로 사용한다.

-엘릭서를 먹고 자란 볏짚은 소의 육질 향상에도 큰 도움이 될 게 틀림없다.

-더 큰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젖을 떤 송아지 시절부터 엘릭서 곤포를 먹여서 키우는 게 좋다.

-무인농장 로봇들은 축산업에 투입하기에는 출력과 기능이 여러모로 맞지 않는다. 축산업은 일단 전문축산농가에 위탁해서 시범적으로 시행하는 게 효율적이다.

시험적이고 작은 규모, 그리고 위탁 축산.

이 일을 맡기기에 적절한 축산농가가 딱 하나 있었다.

-최진국, 그가 적임자다.

최진국은 최우석 부의장의 조카로 원래 소목장을 하다가 지금은 양계 업을 크게 운영하고 있다. 수영치킨에 가장 많은 육계를 납품하는 양계 업자이기도 하다.

그는 엘릭서 콩을 먹고 토실토실 살이 오르는 닭들을 보고, 콩을 소사료로도 쓰고 싶어 했다.

가끔 모아서 갈아 사료에 섞어주면, 송아지들이 그렇게나 좋아했던 것이다.

하지만 콩의 생산량은 딱 양계업을 할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어느 날 그는 하수영한테서 메일한 통을 받았다.

"무슨 메일인데 그렇게 열심히 봐요?"

"응, 하수영 의원님이 보내신 제안서인데. 소를 한 번 키워보고 싶으시다고."

"소를요?"

"응, 다음 주부터 시작하게 젖 뗀송아지 30마리만 따로데? 사료는 전부 자기가 공급할 테니 나더러 맡아서 키워달래."

"그거 잘해내면 나중에 수영목장도 당신이 맡아서 운영할 수 있겠네요?"

"그럴 수도? 어디 보자, 다음 달에 젖 떼는 녀석들이 몇 마리나 되나 보고 와야겠네."

아직까지만 해도 최진국은 '수영한우'의 프랜차이즈 브랜드 가치를 그리 크게 잡고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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