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425화
107장 농사짓는 트롤(5)
농사 좀 지어 봤다 싶은 사람들 사이에서 수영농장은 희대의 미스터리였다.
'대체 농장이 얼마나 크기에 그 많은 작물을 키워내는 거지?'
100% 비닐하우스 재배를 하기에 철을 가리지 않는 거야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그만한 작물을 키우려면 대체 얼마나 넓은 비닐하우스가 필요할 것인가?
그런 궁금증에 경기도 수영농장을 찾은 전문 농사꾼들은 큰 충격에 빠지기 일쑤였다.
"아니, 이게 다라고?"
개인 농민 치고는 농지가 넓긴 하다.
하지만 수영농장의 생산량을 생각하면 터무니없이 좁은 면적이었던 것이다.
"이거보다 열 배, 아니, 스무 배가 더 넓어도 납득이 안 될 거 같은데?"
"정말 이 좁은 데서 그 많은 작물들이 다 쏟아져 나온단 말이야?"
신임 농협 회장 김산도 그런 이들 중에 하나였다.
그는 황비버섯, 벼, 감자 등 다양한 작물을 재배해 본 경험이 많았다.
아무리 재배 단가를 대폭 낮췄다고 해도, 그 많은 황비버섯을 키워낼만한 면적은 아니었다.
하지만 무인농장은 마법의 항아리라도 되는 것처럼 매번 엄청난 양의 작물을 토해냈다.
'생장이 더 빠르고, 수확량이 더 많은 종자를 따로 쓰고 있는 건가?'
그렇게 밖에는 생각이 되지 않는 놀라운 마술이었다.
그런데 전국적인 강풍강우 재난 이후,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190만 톤? 그리고 250만 톤이라고?"
정부에 공공비축미로 190만 톤의 벼를 재배해서 공급하고, 추가로 농협에 250만 톤의 벼를 따로 공급한다고 한다.
국내 비축미의 95% 이상이 물에 젖어 못쓰게 된 것을 긴급히 안정시키기 위한 조치라는데, 김산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계약이었다.
하수영이 보유한 모든 농지를 풀가 동해도, 그 많은 벼를 재배할 수는 없을 것 같았으니까.
이제 신임 농협 회장이 된 김산은 수영농장의 내부 생태계가 몹시 궁금해졌다.
"앞으로 우리나라 농가의 미래는 수영농장이 나아가는 방향에 달려있다."
"맞는 말이오, 형님."
"어떻게 생산력을 올렸는지 그 비법이 너무 알고 싶다니까. 원래 농사짓던 친구도 아니라며?"
"작년부터 처음 농사짓기 시작했다던데, 송이버섯 채취하다가 황비버섯 재배로 갑자기 뛰어들면서 라면 공장 인수해서 대박을 터뜨렸었죠."
농협 회장 자리를 차지한 김산과 측근들은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과연 하수영이 190만 톤에 이어 250만 톤의 벼 공급을 기간 안에 완수할 수 있는지.
김산은 하수영을 한 번 만나보고 싶었지만, 농협 조합원도 아닌지라 명분이 없었다.
평범한 농민 같았으면 농협 회장의 전화 한 통에 신이 나서 자리를 잡았겠지만, 상대는 심지어 청담에서 잘나가는 부동산 재벌이다.
"가난한 지역 농가를 여러모로 많이 도와줬군."
"네, 농기구 수리비를 지원하거나 농기구를 무상으로 사주는 선행을 많이 베풀었습니다. 비료나 사료로 주기적으로 공급해 줬고요. 농가 지원에만 일 년에 100억 이상 쓴 것으로 나옵니다."
"그 친구 입장에서 일 년에 100억이 그리 큰돈이 아니라고 해도…… 아무리 부자라고 하지만 100억 지원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보면 볼수록 젊은 친구가 기특하고 신기하다.
김산은 내심 전국의 모든 농가가 수영농장처럼 되었으면 하는 미래를 상상했다.
농산물 시장 개방 압박에 지속적으로 시달리는 농가 입장에서는 바람직한 미래 모습이 아닐까?
국가의 지원이 없어도 당당하게 해외의 거농 기업들과 경쟁할 수 있는 농가 생태계 구축 말이다.
하수영이 농식품부와 계약한 물량은 190만 톤.
그중 기생산해 놓은 90만 톤은 이미 출하가 됐고, 연말까지 100만 톤을 추가로 출하한다고 했다.
그리고 내년 초에는 농협에 250만 톤을 출하한다.
과연 이 말도 안 되는 규모의 재배를 성공할 수 있을지, 농협의 모든 시선이 수영농장으로 향했다.
***
부산 동백섬 수영펜션 공사가 마무리단계에 진입했다.
공사비만 1,000억이 훨씬 넘게 들어간 펜션하우스는 10층짜리 3개 건물로 구성된다.
지하 패닉룸은 거주공간만 6층으로 구성되어 있어, 3개의 펜션하우스와 공유하는 방식이다.
말이 펜션이지, 내부 인테리어나 객실 규모를 보면 특급 호텔이나 다름없었다.
"이제 내부 단장만 마치면 언제든지 영업을 개시할 수 있을 겁니다."
"이번 겨울에는 영업을 시작할 수 있겠네요."
"고층펜션이 아니라서 그리 오래 걸리지 않고 빠르게 지을 수 있었습니다. 밤낮으로 공사를 한 덕분도 있지요."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작업을 한 것도 공사 기간을 단축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됐다.
그렇다고 안전사고가 발생하지도 않았다.
항상 안전규칙을 철저히 준수하도록 요구한 데다가, 장비와 안전설비도 집요할 정도로 신경 쓴 덕분이다.
"올 연말에는 레스토랑, 오세안 식구들 다 같이 초대해서 재미나게 놀수 있겠네요.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서 마무리 짓겠습니다."
이도공 건축사와 이야기를 마친 하수영은 주희도한테 연락해서 펜션하우스 지배인으로 적당한 인물 추천을 부탁했다.
주희도는 헤드헌팅을 위해 몇 명의 적당한 인물을 추려내서 추천했고, 그렇게 세 명의 인물을 면접 보게 되었다.
"백두호텔 제주지점에서 부지배인으로 일하셨군요."
"네, 그렇습니다."
"경력은 나무랄 데가 없지만, 지원하신 분야가 펜션하우스라는 것은 알고 계신가요?"
"펜션하우스라고 하셨습니까?"
"이런, 헤드헌터가 중간에 제대로 정보를 전달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제가 해운대 동백섬에 펜션하우스하나를 지었는데, 거기 관리를 맡길 분을 찾고 있는 겁니다."
마흔 중반의 지원자는 당황했다.
세전 연봉이 7,000만 원 이상이라고 들어서 당연히 특급 호텔 경력자 지배인을 찾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펜션하우스라니.
'애들도 나날이 크고 있어서 돈이 필요한데.'
"연봉이 7,000 이상이라고 들어서 당연히 호텔 지배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설명도 그렇게 들었습니다."
"아, 그건 맞습니다."
지원자는 잠시 고심을 하다가 1, 2년 만이라도 일해 보는 게 나쁘진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경력 단절의 우려가 있지만 일단 지금은 돈이 필요했다.
그렇게 하수영은 면접을 본 세 명을 전부 고용했다.
나머지 둘은 이제 20대의 신참 호델리어 출신이었다.
가장 처음 면접을 본 40대 중반의 남자, 김호중을 총지배인으로 하고 나머지 둘은 직원으로 고용했다.
"펜션하우스 건물은 완성됐습니다. 내부를 채우고 인테리어를 꾸미는 것은 이제 지배인님이 해주셔야 할 몫입니다."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리고 부산으로 내려간 지배인과 두 직원은 펜션하우스를 보고 뒤집어졌다고 한다.
"이게 펜션이라고? 해운대 호텔 중에서 가장 시설이 좋은데?"
"사업 허가 호텔로 받은 거 맞는데요? 객실 규모를 보면 호텔로 분류될 수밖에 없어요, 이건."
"회장님은 대체 왜 호텔 간판을 펜션으로 다신 거죠?"
굵직한 궁서체로 강조된 '수영펜션' 이라는 간판이 세 호텔리어의 가슴을 묘하게 자극했다.
***
벼를 키우기 위해서는 많은 손길이 간다.
적당히 자란 어린 벼를 물을 댄 논에 옮겨 심고 잡초를 솎아내는 등 다양한 관리가 필요하다.
현대 농법이 아무리 발달했어도 물이 찬 논에 옮겨 심는 모내기 작업은 빠지지 않는다.(밭벼는 예외)
하지만 엘릭서를 끼얹으면 모든 과정은 생략되고, 단축되고, 결과는 더 좋아진다.
그래서 수영농장은 재배부터 수확까지, 일반 벼농가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이뤄진다.
먼저 로봇들이 가장자리에 칸막이를 설치해 물을 고이게 할 수 있는 인공 환경을 조성한다.
물을 대기 전, 흙 위에다가 벼의 씨를 정연하게 뿌린다.
씨에서 싹이 돋고 뿌리가 내리면 그때부터 물을 채우며 수위를 조절한다.
벼는 순식간에 영양생장기를 마치고 생식생장기에 돌입해서 볍씨를 만든다.
수분이 끝나고 빼곡하게 알곡이 맺히면 로봇들은 물을 빼고 수확을 시작한다.
이 모든 과정은 불과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마무리된다.
봄에 모를 심어 9월이나 10월에 추수하는 농민들이 보기에는 까무러칠 만한 속도다.
만약 이 사실을 학계에 발표하면 식물학자들이 눈에 탐욕을 품은 재달려들 것이다. 물론 그럴 일은 앞으로도 없지만, 수영농장의 수확 방식은 좀 다르다.
벼를 베어서 탈곡을 하는 게 아니라, 로봇들이 벼의 몸통에 상처를 주지 않고 볍씨만 쏙 훑어가는 식으로 이뤄진다.
그렇게 볍씨만 뺏긴 벼는 다시 한번 씨앗을 품고 키워내고, 또 로봇들이 볍씨만 훑어간다.
한 번 생장을 마친 벼에서 지속적으로 볍씨를 채취하는 것이다.
벼들이 엘릭서를 먹고 자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원래는 일반 벼농사처럼 벼를 베어서 탈곡을 하려고 했지만, 볍씨가 거듭해서 맺히는 걸 본 프리덤이 수확 방식, 농사 방식을 변경한 것이다.
이렇게 하면 좀 더 빠른 속도로 볍씨를 얻을 수 있으니까.
또 볏단 쓰레기가 과하게 나오지 않아서 불필요한 처치에 농사 자원을 낭비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볏단 폐기물은 축산농가에서 소사료로 사용될 수 있다. 소 사료로 판매한다면 적절한 추가 소득을 올릴 수 있다.
-하지만 마스터의 최우선 목표는 쌀을 확보하는 것이지, 볏단 폐기물판매 수익을 올리는 게 아니다.
-그러므로 이번 벼농사에서 볏단 폐기물 발생은 최소한으로 하도록 유지한다.
프리덤이 한 번 성장한 벼에서 지속적으로 볍씨를 채취하는 방법을 선택한 이유였다.
아무리 엘릭서가 생육을 촉진시켜도, 햇볕은 필요하다.
해가 비출 때마다 프리덤은 유리천장이 외부 불투명 차폐막을 열어서 태양빛이 안으로 쏟아지게 했다.
만약 무인 드론 등이 농장 밖을 날아다니는 등 수상한 경우가 포착되면 외부 차폐막을 닫아서 시야를 가리기도 했다.
보여줘도 상관없는 부분은 굳이 차폐막을 닫지 않지만, 벼가 어린 모에서 급격히 생장하는 기간 등에는 차폐막을 닫아서 보안을 유지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로봇들이 볍씨를 훑는 수확 작업을 할 때에도 차폐막을 닫아서 누가 보지 못하게 만든다.
그럼 외부에서는 백날 무인 드론을 띄워봤자 녹색 벼들이 빽빽하게 자라나 있는 장면만 보게 된다.
-농장 주변에서 드론을 날려 정찰하는 민간인들의 수가 급격히 늘어났다.
-농장의 주요 기밀을 지키는 데 더욱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무인 로봇으로만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그리 대단한 비밀은 아니다.
이미 하수영은 로봇 농법을 몇 번이나 공개했고, 농업 관련 일간지에서는 그 사실을 취재해서 보도하기도 했으니.
미국 등 해외에서도 완벽한 무인 농장이라는 사실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수영농장의 모든 작물이 비정상적으로 짧은 생장기를 거친다는 것은 비밀이다.
황비 버섯을 납품받는 프라임컴퍼니 직원들도 엄청난 규모로 버섯을 재배하고 있어서, 생육 로테이션을 적절하게 돌리고 있는 것으로만 여기고 있었다.
황비버섯이 단 한나절 만에 성체로 자라난다는 사실은 대외적으로 기밀이었다.
농식품부와 계약한 물량은 190만 톤. 그 중 이미 출하를 한 물량은 90만 톤, 지금 농식품부는 자나 깨나 남은 100만 톤이 출하될 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수영이 몇 달 전부터 이미 시험삼아 벼를 키웠다고 말한 덕분에, 슬슬 출하를 해도 이상하지 않다.
농협에 납품하기로 한 250만 톤의 물량은 이제 재배를 시작했다고 밝혔으니, 그 출하 기간만 신경 쓰면 될 것이다.
프리덤은 농식품부에 공문을 보냈다.
[수신 : 대한민국 농림축산식품부 구매하신 쌀 2차 물량 100만 톤이 마저 준비되었으니, 운송편을 보내어 가져가시기 바랍니다.
발신 : 수영농장]
쌀 100만 톤 수송을 위해 농식품부에서 협조 공문을 받은 농협은 당연히 뒤집어졌다.
"벌써 100만 톤을 수확했다고? 이게 말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