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424화
107장 농사짓는 트롤(4)
경기도 수영농장은 완전 무인화가 되어 있어, 하수영이 상주해 있을 필요는 없다.
대대적인 업그레이드 등 명확한 목적이 있을 때만 주로 내려가는 편이다.
청담에서도 그의 손길이 필요한 곳은 많았으니, 당첨금을 찾은 임탁정이 제주도로 내려간 후, 하수영은 경기도 수영농장을 찾았다.
농장을 차분히 둘러보며 머릿속으로 구상하고 있는데, 반가운 손님이 나타났다.
서울에서 박호진이 여기까지 내려온 것이다.
"아니, 변호사님이 이 먼 곳까지는 어쩐 일로 다 오셨습니까."
"허허, 이것저것 후일담 들려드릴게 있어서요. 겸사겸사 수영농장 구경도 하고 싶었습니다."
"조만간 폐쇄해야 하는 농장입니다. 마음껏 둘러보고 올라가세요."
경기도 수영농장 지하에서 금맥이 발견된 터라, 하수영은 서락산 일대를 중심으로 토지를 매입해서 테라리움 ver2.0을 한장 짓고 있는 중이었다.
농장 안을 함께 거닐면서, 박호진은 로봇들이 질서정연하게 일하는 모습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럼 송이버섯, 황비버섯, 고추, 밀, 이렇게 네 종류만 재배하시는 겁니까?"
골든 트러플은 꼭 필요할 때만 재배하는 데다가, 양식을 한다는 발표는 하지 않았기에 쏙 빠졌다.
"네, 엘릭서 드링크 아시죠? 거기에 송이버섯 추출액이 들어갑니다. 고추는 빻아서 수영레스토랑 특제김치를 담그는 데 쓰고, 밀도 수영레스토랑에서만 사용하고 있어요."
고추와 밀은 유통을 하지 않고 자체 재료로만 사용한다.
박호진은 여기저기 구경하면서, 후 일담을 간간이 이야기하기도 했다.
"진철진 회장이 진세주를 자택에 감금한 건 아실 테고, 밤의 황제라는 곽철태와 홍윤주 말입니다."
"생각도 못 하고 있었네요. 어떻게 됐나요?"
"진 회장의 분노가 워낙 컸습니다. 딸자식이 그런 놈을 거느리고 있었단 것도 자존심 상했고, 딸자식 보필을 잘못해서 집안과 그룹에 망신을 시켰다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수영은 남의 이야기를 듣듯이 태연한 표정이었다.
"양자택일을 강요당한 모양입니다. 감옥에서 죽든지, 죽을 때까지 이 나라 땅을 밟지 않든지. 그래서 지금 국내 자산 정리하고 해외로 나갔습니다."
"피눈물 좀 흘렸겠네요."
"네, 그 친구가 강남 지하계를 주름잡으면서 쓸어 담던 돈이 엄청났는데, 그걸 전부 포기하고 떠나야 했으니까요. 하나 있던 아들도 갑자기 죽었으니 심정이 좋지는 않을 겁니다."
"아들이 갑자기 죽어요?"
"친구들과 마약 하다가 환각 상태에서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불을 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게 외부인 피해는 없었습니다."
"저런, 이래서 마약을 근절해야 한다니까요."
"지당한 말씀이십니다."
"그럼 홍윤주는요?"
"강남에서 운영하던 텐프로 술집 3개를 전부 잃고, 지금은 작은 바 하나만 간신히 남았답니다. 물론 그동안 모은 돈이 많으니 남부럽지 않게 살 겁니다만……."
준재벌급 못지않게 떵떵거리며 살다가 부유한 강남 중산층 수준으로 몰락했으니, 아마 속이 매우 쓰릴 것이다.
"아무튼 라테그룹에 단단히 찍혔으니 이제 평생 죽은 듯이 조용히 살아야 할 겁니다."
"그래도 그 여자는 해외로 쫓겨나진 않았네요. 나중에 바 한번 찾아가서 술이라도 팔아줘야 하나."
가벼운 농담에 마주 웃던 박호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참…… 임 검사가 의원님 덕분에 로또 420억 당첨금을 독식했다고 들었습니다."
"아아, 그거 때문에 여기까지 내려 오신 거군요?"
"겸사겸사 그것도 궁금했습니다."
"그냥 좋은 꿈을 꿔서 번호를 알려준 건데, 다행히도 당첨이 돼서 저도 기분이 좋네요. 제가 원래 재물운이 좀 있습니다. 너무 넘쳐나서 가끔 저를 곤혹스럽게 하지만요."
박호진은 끄덕이며 수긍했다.
서락산에서 농사 잘 지으면서 사업번창하던 중, 수조 원대에 달하는 문화재가 쏟아져 나왔다.
그래서 여기로 이전해서 또 사업이 더 번창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느닷없이 금맥이 튀어나왔다.
이런 재운에 비하면, 로또 당첨금 420억은 정말 보잘것없는 수준 아닌가.
"응? 그런데 이건 사과나무 아닙니까?"
박호진은 느닷없이 혼자 꼿꼿이 서 있는 작은 나무를 발견하고 호기심을 보였다.
"네, 사과를 한번 재배해 보려고 생각 중입니다."
"흐응, 그런데 한 그루밖에 없군요."
"다른 작물들은 다년생이 아니라서 농장 이전할 때 상관없는데, 사과나무는 그렇지 않잖아요. 그래서 일단 시험 삼아 한 그루 정도만 키우고 있어요. 어떤 효능이 맺히는지 한번 살펴도 볼 겸 말이죠."
"사과 재배가 그렇게 난이도가 높다던데, 이제 사과까지 도전하시는군요."
"양식이 불가능한 송이도 재배하는데요, 뭘"
"하하, 그건 그렇습니다."
물론 사과나무 역시 엘릭서로 키운 것이다.
엘릭서를 거름으로 삼는다고 해서, 그 작물에 신적화 효능이 남지는 않는다. 그래서 일반인들이 아무리 먹어도 엘릭서를 직접 섭취하는 효능은 전혀 없다.
다만 엘릭서를 먹고 자란 작물들은 성장이 빠르고 수확량이 풍부한 것 외에, 종마다 개별적인 특징을 가질 수도 있다.
송이버섯 같은 경우에는 신체 불균형을 잡아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무병장수의 효능.
고추 같은 경우에는 사람의 입맛을 강하게 잡아당기고 중독시키는 풍미.
밀 같은 경우는 요리로 만들었을 때 나타나는 탄력 넘치는 식감과 중독성 깊은 맛.
황비버섯은 수확량 증대에 그 특성이 전부 올인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황비버섯의 수확량은 같은 엘릭서 작물에 비해서도 무시무시한 편이다.
"건강화 효능은 송이가 이미 있으니까, 너는 기왕이면 '사과가 가진 이미지 답게 피부가 매끈해지거나 그런 거면 좋겠다. 미용식품이나 화장품으로 만들어서 팔게."
엘릭서 다년생 작물에 도전하는 것은 처음이라, 하수영도 마음이 설?다.
***
조만식 영등포농협 조합장은 농협회장 선거에 출마해서 정말 아쉬운 패배를 거두었다.
결승 투표까지 진출했건만, 겨우 열 몇 표 차로 패배를 하고 만 것이다.
조만식 조합장은 꽃목걸이를 목에건 채 기뻐하는 당선자를 바라보며 쓴 물을 삼켰다.
자신을 밀어주었던 동료들이 다가와서 저마다 위로를 건넸다.
"조 조합장, 참 안됐어."
"아까운 패배였어."
"겨우 몇 표만 더 가져왔어도 우리가 이길 수 있는 거였는데."
"이번에는 운이 없었지만, 너무 낙심하지 말게. 다음번 회장 선거에서는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거야."
하수영은 쌀 250만 톤을 팔아서 챙긴 11조 2,500억 원을 3년간 농협은행에 무상으로 예치하며, 그 이자 수익은 피해를 본 농민 구제에 베풀라고 했다.
그 극적인 계약을 끌어낸 것이 바로 조만식 조합장이며, 덕분에 농민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어냈다.
하지만 아주 조금 뭔가가 부족했던 모양이다.
겨우 열 몇 표 차이라는 아까운 차이로 패배하고 말았으니.
"자네가 부족했던 게 아니라, 상대가 너무 강적이었어."
"김산 저 친구가 워낙 강적이었어야지. 보게, 이름부터가 벌써 뫼 산 자가 들어가잖아."
하수영을 생각하면 조만식 조합장은 면목이 없었다.
그렇게 적극적으로 자신을 도와주었는데도, 이런 안타까운 패배를 당하다니.
그는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하수영에게 석패의 사실을 전했다.
11조 2,500억의 무상 예치로 도와주었는데도 이기지 못한 것에 대한 죄를 빌면서, 하수영은 담담하게 반응했다.
-그 돈이야 어차피 같은 농민으로서 다른 농민들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무상 예치한 겁니다. 너무 그렇게 마음 쓰실 것 없어요.
"회장님, 그나저나 저번에 말씀드린 조합원 가입은……."
-제 생각은 변함없습니다. 저는 농협 지원은 필요 없어요. 저한테 베풀 지원을 차라리 다른 농민들에게 베푸는 게, 이 나라 전체를 보더라도 낫습니다.
조만식은 안도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선거에서 패배한 상황에서 하수영이 조합에 가입하면, 신임 회장이 그 과실을 생길 것이다.
-석패하긴 했지만 농민 지원에 계속 관심을 보이시고 노력하세요. 그러면 다음 선거에서는 좋은 결과를 거둘 수도 있을 겁니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의원님."
***
"김산 신임 회장이라…… 이 사람은 어떤 인물일까요?"
하수영의 물음에 최우석 강남구의회 부의장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머리만 긁적였다.
"글쎄. 내가 농협 쪽은 잘 몰라서. 그래도 회장까지 됐으면 상당히 입지전적이고 출세지향적인 인물이겠지. 농협이 덩치가 워낙 좀 큰가?"
"세간 이미지와는 다르게 자산이 많긴 하죠. 우리나라 10대 재벌 기업 수준이죠?"
"그렇게나 된다고? 겨우 협동조합따위가?"
최우석은 처음 듣는다는 듯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놀랐고, 하수영은 작게 피식거렸다.
"농협이 얼마나 덩치가 큰데요. 당장 농협은행 예치금만 한번 보시죠. 어마어마합니다."
"하 의원 자네 덕분에 자산이 11조원 또 늘어났겠구먼, 부채도 자산은 자산이니. 그나저나 그 11조 2,500억, 정말 계속 3년간 무상 예치할 건가? 선거에서도 패배했는데?"
"선거 지원 목적보다는 농민들 구제 목적이 더 컸습니다. 그래서 상관없어요."
"역시,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은 딱 하 의원 자네를 위해서 만들어진 말이 아닌가 싶어."
농협이라는 거대한 조직의 수장이 바뀌었다.
그 수장의 성향에 따라서 앞으로 이 나라 농민들의 미래가 달라질 것이다.
어디 농민들의 미래뿐인가.
이 나라의 식량자급능력 자체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잘못 수립한 정책 하나가 국민들의미래 식탁 자체를 바꿔 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
이게 바로 최우석의 생각이었다.
"그런 중요한 선거인데 이상하게 국민들은 별로 관심이 없단 말이지."
"어차피 농식품부에서 큰소리치면 깨갱 할 텐데요. 농협 회장 한 명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큰 판은 못 바꿉니다."
"그래도 안 되겠어. 나도 앞으로는 우리 강남구 지역농협이 어떻게 일하는지 유심히 지켜봐야겠어."
"걔네, 정부 비과세 정책 이용해서 돈놀이하는 데에만 푹 꽂혀 있습니다. 그거나 한번 잘 지켜보시죠."
"뭐? 그게 정말이야?"
"네, 오래전부터 아주 유명했어요. 그래서 지방 농민들 사이에서는 불만이 컸죠. 쟤네가 농민을 위한 기구인지, 돈놀이를 위한 기구인지 모르겠다고."
"이거 구의회에 한 번 불러서 호통을 쳐야겠구먼."
***
신임 농협 회장 김산 측은 승리로 인해 달아오른 분위기를 빠르게 정리했다.
"우리 농협이 갈 길이 아직 구만리야. 언제까지 선거 승리의 기쁨에만 취해 있을 수 없어. 내가 권력놀음이나 하자고 회장에 도전한 게 아니라네."
"죄송합니다. 회장님."
"이번 물난리 때문에 전국적으로 농민들의 피해가 너무 컸어. 자살한 농민들을 생각하면 내가 지금도 마음이 아파. 다들 절망에 빠져 있고, 정부 구제책은 여전히 모자라."
이제 60을 넘긴 김산 회장은 선명하게 살아 있는 눈빛을 자랑했다.
"내일은 농식품부 차관을 만나서 담판을 짓기로 했으니 자네가 그거 좀 정리해 주고…… 그런데 하수영농민? 이 친구가 이번에 조만식 조합장 손을 들어줬다고?"
"네. 그런데 그것이……."
"아아, 상관없어. 조만식 조합장이 내 경쟁자였긴 하지만 이제는 같은 농협 식구일 뿐일세. 하수영 농민한테도 당연히 아무런 유감은 없네. 호기심만 좀 있지."
보고서를 읽으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김산 회장이 중얼거렸다.
"대체 벼 250만 톤을 겨울 동안 어떻게 생산한다는 거지?"
"완전 하우스 재배를 선호하는 친구입니다. 비닐하우스도 아니고 콘크리트벽과 강화 유리 천장으로 만든 하우스, 그래서 이번 물난리에도 끄떡 없었다고……."
"나도 그 하우스는 먼발치에서 봤네. 절대로 하던 거 하면서 벼 250만 톤을 생산할 면적은 아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