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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423화 (423/1,270)

프랜차이즈 갓 423화

107장 농사짓는 트롤(3)

새벽 비행기 때까지, 공항에서 몇 시간은 꼼짝없이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루하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저 복권 수령에 관해서 같은 내용을 반복적으로 검색하는 것만 해도, 임탁정에게는 어마어마한 행복이었다.

아내도 지금 밤새 잠을 자지 않을 작정인 모양이었다.

부부 톡방에는 쉴 새 없이 당첨금수령 절차, 수령 이후, 그리고 앞으로의 재정 계획에 대한 장밋빛 환상이 가득했다.

부유한 검사나 변호사 개업 후 전관예우로 수십억씩 쓸어 담는 이들에게야 당첨금이 별것 아닐 것이다.

하지만 평범한 집안 출신의 공무원 검사인 임탁정은 재정적으로는 보통 사람과 다를 바 없었다.

대기업의 스폰 같은 것을 받아본적이 없었으니.

정보 구글링 중에 임탁정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뭐야? 1등 당첨자 나온 지점 조회도 가능하잖아? 헐. 몇 게임 나왔는지도 볼 수 있네?"

그 순간부터 그는 심각하게 심장이 벌렁거리며 온갖 갈등에 시달려야 했다.

아내가 만약 이것을 조회한다면?

김포공항에서 수동으로 10 게임이 나온 것은 누구나 조회할 수 있다.

만약 아내가 조회하면 당연히 의심할 것이다.

-당신, 혹시 10게임 당첨된 거 아니야?

그때부터 임탁정은 아내의 사소한 말 한 마디에도 가슴을 졸이며 번뇌해야 했다.

이제라도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털어놔야 하나?

아니면 만일을 대비한 비상금으로서 지켜야 하나?

그가 앞으로 두고두고 짊어질 대나무숲 갈등의 시발점이었다.

임탁정은 하수영한테 연락을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물론 하수영의 번호를 모르는 터라, 먼저 조성만을 통해 연락을 했다.

밤 11시가 다 된 늦은 시간이라 미안했지만, 자초지종을 들으면 기뻐해 줄 것이다.

-어, 선배님? 진짜로 전화를 하셨네요?

"응, 하수영 의원님 연락처를 좀 알 수 있을까 해서…… 근데 지금 뭐라고 했어?"

뭔가 이상했다.

마치 자신이 지금 전화를 할 것을 미리 예상이라도 한 듯한 반응 아닌가?

-저 지금 청담동입니다. 불토이기도 해서 의원님하고 클럽에 와 있어요. 아, 의원님이 지금 오시는 거냐고 물어보시는데요?

"새벽 비행기라서 지금 당장은 못가는…… 아니, 근데 의원님하고 같이 있다고? 그리고 그렇게 물어보셨다고?"

-지금 서울행 티켓 끊으신 거 아닌가요? 의원님이 그리 말씀하시더라고요.

그 사람, 귀신이라도 되는 건가?

임탁정은 순간적으로 등줄기가 오싹해져서 마른침을 삼켰다.

"맞아. 서울행 항공편 끊었어. 나 지금 새벽 서울행 티켓 끊은 건 어떻게 아시고?"

-실은 아까 배응하자마자 의원님 모시고 청담동으로 바로 넘어왔습니다. 근데 오는 길에 선배님이 제주도 도착하자마자 다시 올라올 거라고 하셨었는데, 전 좀 어리둥절했거든요.

"그때 나 비행기에서 제주도 인생 구상하고 있었을 때인데."

-정말 전화가 와서 저도 놀랐습니다. 진짜 새벽에 서울 올라오시는 겁니까?

"응, 월요일에 서울에서 볼 일이 있어서."

-아하, 까먹고 있다가 제주도 밟자마자 생각나신 거군요.

"그게 아니라 원래 없었는데 제주도 밟자마자 생겼지."

-네?

하수영이 찍어준 번호를 조회했다면 당첨 사실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말을 들어보면, 공항에서 나서면서 자신이 서울로 올 거라고 말한 것 같다.

그때는 아직 추첨을 실시하기 전이었을 텐데?

'꼭 추첨하기 전부터 당첨될 거라고 확신을 한 것처럼…… 아니, 번호를 찍어주면서부터 이미 당첨될 거라고 확신이라도 한 것처럼…….'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치자 오싹소름이 돋았다.

-아, 선배님, 티켓은 취소하시라는데요?

"티켓을 취소?"

-네, 의원님이 지금 티켓 보내셨다고 이미 구매하신 것은 취소하라십니다.

"티켓을 보내셨다고?"

살짝 어리둥절했지만, 티켓을 대신 사주고 싶으신가 보구나 하고 생각했다.

-곧 도착할 거랍니다.

바로 그때, 공항관계자로 보이는 이들이 임탁정 검사를 향해 다가왔다.

"혹시 서울에서 오신 임탁정 씨 되십니까?"

"네, 그렇습니다만."

"아, 그렇군요."

50대의 공항관계자는 얼른 안내했다.

"하수영 사장님이 이렇게 전해달라하셨습니다. 티켓이 도착했으니 타시면 된다고요."

"네?"

"이쪽으로 오십시오."

공항관계자 일행은 임탁정을 재촉해서 안내했고, 그는 어안이 벙벙해서 따라갔다.

안내받은 곳은 공항 헬기 이착륙장이었다.

흰색 바탕에 커다란 붉은 십자가가 그려진, 거대한 동체를 자랑하는 헬기가 당당하게 서 있었다.

"이, 이건?"

"수영병원 가까운 분원에서 출발한 닥터헬기입니다. 이걸 타고 바로 서울로 가시면 될 겁니다."

"이게 무슨……."

"어서 타시지요. 시간이 없습니다."

임탁정은 눈을 비비며 연신 놀라워 하다가 헬기에 탔다.

그러고 보니 헬기를 타는 것은 태어나서 아예 처음이었다.

'내가 1,400억짜리 헬기에 타게 될 줄이야.'

하수영이 보냈다는 티켓의 정체를 확인한 임탁정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검사님, 초음속의 짜릿함을 느낄준비는 됐습니까?"

"네?"

"꽉 잡으시죠. 산소마스크 단단히 끼시고요."

어느새 천장에서 산소마스크가 떨어졌고, 임탁정은 엉겁결에 그것을 꼈다.

헬기 승무원이 안전장치를 다시 한번 확인했고, 곧이어 헬기가 하늘로 떠올랐다.

동체의 비행속도가 점차적으로 빨라지기 시작하며, 어느새 몸을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강한 중압감이 덮졌다. 왜 산소마스크를 쓰게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자, 도착했습니다."

"벌써요?"

30분도 채 안 지난 거 같은데, 450m의 거리를 그새 돌파했단 말인가?

거짓말이 아니었다.

'청담수영병원'이라는 선명한 네온 간판이 점차적으로 커지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임무는 여기까지입니다."

헬기는 올 때와 마찬가지로 쿨하게 날아가 버렸고, 혼자 멍하니 서 있던 임탁정은 얼른 정신을 차렸다.

그는 서둘러 (구) 핀익스 클럽으로 향했다.

핀익스 클럽은 간판을 바꿔 달고 새롭게 영업하고 있었다.

듣기로는 주인이 바뀌었다는 말을 언뜻 들은 것 같지만, 임탁정도 클럽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오셨습니까."

하수영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반겼다.

로또 당첨 사실을 아는 것은 분명했다.

"추첨 전에 아셨습니까, 추첨 후에 아셨습니까?"

"좋은 번호라고는 생각했어요. 그래서 검사님께 선물로 드린 겁니다. 제가 재물운이 좀 있거든요."

"……."

임탁정도 하수영이 맨손에서 시작해서 얼마나 많은 자산을 일궜는지는 대강 알고 있었다.

보유부동산의 가치가 1조 원이 훌쩍 넘고, 프라임컴퍼니의 지분 가치도 13조 원이 넘는다고 했던가.

그밖에도 수영레스토랑, 수영참치, 수영치킨 등 다양한 사업체를 보유하고 있으니, 그 모든 것을 2년도 안 되는 사이에 일궈냈다는 점을 보면, 하늘이 내린 재신일 것이다.

그런 이에게 로또 1등 따위는 소소한 일상의 오락에 지나지 않으리라.

재운의 크기로 비추어 보면, 이 나라 최고의 재벌이라는 서해그룹 오너 일가도 부족하지 않을까.

"하루아침에 280억이 생긴 기분이 어떻습니까?"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280억이라고요?"

조성만 검사는 화들짝 놀라서 둘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 순간 그의 머릿속에 든 생각은…….

'의원님이 선배님을 고용하신 건가? 280억이나 주시면서?'

선배 인생이 잘 풀린 건 축하할 일이지만, 아니 언제고 하수영이 케어해 줄 거라 은근히 기대했지만, 하루아침에 280억이라니!!

이번에 라테그룹에서 고용했던 검사장 출신 전관예우 변호사도 기껏 해야 수십억 정도 받았을 텐데.

"자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야. 어제 공항에서 의원님이 로또꿈을 팔았거든. 그래서 로또를 샀는네……."

"아니, 로또 기껏해 봐야 10, 20억이잖아요?"

"42억짜리 10게임이 수동으로 당첨됐거든."

"……그럼 세금 떼고 280억?"

"그렇지. 정말 운이 좋았어."

조성만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입을 떡 벌린 채 하수영과 임탁정만 번갈아 바라봤다.

"기왕이면 저도 같이 찍어주시지……."

"하하, 그게 당첨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그낭 좋은 기운 나눠 가지시라고 번호 찍어드린 건데, 나중에 추첨 확인해보니 당첨이 됐더라고요. 그래서 오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월요일에 당첨금 찾으셔야 하잖아요."

과연 추첨 후에 알았을까?

추첨 전에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번호를 태연스럽게 찍어주며, 기왕이면 10게임을 구매하라고 하던 그의 태도가 생각났다.

마치 미래라도 미리 엿보고 온 듯한 당당함이 지금도 못내 의심스럽다.

하지만 임탁정은 불필요한 호기심은 더 이상 품지 않기로 했다.

하수영이 로또를 조작한다는 것은 어차피 불가능하다.

'그래, 미래를 보고 온 거면 어떻고, 재신이 붙어서 찍는 번호가 곧 당첨 번호가 되는 거면 어때.'

"고맙습니다, 의원님. 의원님 덕분에 앞으로 평생 돈 걱정은 안 하게 생겼습니다."

"고마우시면 오늘 술은 검사님이사세요."

"아, 당연히 그래야죠. 제가 얼마든지 마음껏 사겠습니다."

"그리고 혹시 부동산 구매 의향이 있으시면 청담동에는 눈길을 주지 마세요. 아셨죠?"

"물론입니다. 청담에는 얼씬도 하지 않겠습니다."

임탁정은 그날 조성만의 부러움을 한껏 받으며 아침까지 술을 마셨다.

수백만 원이 넘는 술값이 나왔지만 너무 적게 나온 게 아닌가 하는 죄스러운 마음마저 들었다.

그리고 아침에 집에 왔을 때…….

"당신, 미쳤어! 어디서 술값으로 500만 원 넘게 긁은 거야! 이게 말이 되냐고! 룸싸롱이라도 간 거야, 어?"

"그런 데 갔으면 미쳤다고 당신한데 들통나게 내 카드로 긁겠냐. 그냥 술값으로만 그렇게 나온 거야. 무슨 술이 한 병에 200만 원이 넘는 것도 있고, 어유 신세계더라."

"아니, 로또 당첨됐다고 돈 받기도 전부터 쓸 궁리부터 하면 어떡해!"

"자기 좋은 꿈 꿨다고 번호 6개 찍어주신 분한테 술 산 거야. 그분 아니었으면 당첨 못 됐어. 애초에 로또도 그분이 사라고 권하셨고."

"……그럼 할 수 없네. 근데 이제 더는 안 돼. 이렇게 펑펑 쓰고 다녀도 안 되고, 사람들한테 떠벌리고 다녀도 안 돼. 알았지?"

"당신한테도?"

"어, 나한테도 이제 더 이상 떠벌이지 마. 부정 타면 돈 날아간단 말이야."

임탁정은 술에 잔뜩 취한 와중에도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끄덕였다.

"알았어, 이제 입 꾹 다물게, 입 꾹."

월요일 아침.

임탁정은 농협은행 본점을 찾아갔다.

"로또 1등 당첨금 수령하러 왔습니다."

그런데 자신을 대하는 직원들의 반응이 조금 색달랐다.

매주 1등 당첨자들을 여럿 봐와서 덤덤할 텐데, 마치 처음 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영광입니다, 고객님. 제가 당첨금수령을 도와드리겠습니다."

은행장까지 나와서 굽실거리면서 임탁정을 맞이했다.

당첨금을 수령하면서 임탁정은 1등 당첨자가 자신 혼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 당첨금 총액이 오랜만에 터진 잭팟이라는 것도.

'그래서 날 보는 직원들 표정이 그랬군.'

직원들은 이번 주 1등 당첨자가 한 명이고, 혼자서 420억을 쓸어 담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저런 투자 및 재정관리 권유를 뿌리치고, 임탁정은 1게임분 당첨금을 아내에게 줄 통장에 넣어 달라 요구했다.

집에 돌아와서 아내에게 통장을 내밀자 아내는 잔액을 확인하면서 뛸듯이 좋아했다.

"이제 대출금 갚을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 살았어!"

"당신이 기뻐하니 다행이네."

"근데 이거 나한테 맡기는 거야?"

"그럼, 원래 돈 관리는 당신이 했잖아. 지금까지 해준 것도 없는데 이런 거라도 맡겨야지."

"알았어, 고마워. 잘 쓸게."

흐뭇해져서 옷을 벗고 욕실에 들어간 임탁정은 거울을 보다가 갑자기 묘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잘 쓸게라니?'

28억이나 되는 돈을 금방 탕진할 성격은 아니다. 돈에 꼼꼼하기로는 자신도 혀를 내두르는 사람이니.

'설마 내가 10게임 당첨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어서…… 에이, 그럴 리가 없지. 그랬으면 벌써 난리 났지.'

씻고 나온 임탁정은 그대로 쓰러져 잠들었다.

일어나자마자 저녁 비행기로 다시 제주도로 내려갈 것이다.

내일부터 제주지검에 출근을 해야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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