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421화 (421/1,270)

프랜차이즈 갓 421화

107장 농사짓는 트롤(1)

어느 날 저녁, 삼화제약 대표 황순양이 긴급체포되었다는 속보가 안방에 침투했다.

수갑에 채워진 채 수사관들한테 끌려가는 황순양 대표의 얼굴은 전국에 생생하게 보도되었다.

"세상에, 저렇게 큰 제약회사에서 마약을 만들어서 팔았다고?"

"말세다. 말세. 아니, 5대 제약회사면 남부럽지 않은 호사 생활을 누릴텐데, 대체 뭐가 아쉬워서 마약 따위나 만들어서 팔고 있는 거야?"

황순양의 체포는 일종의 잽이었다.

임탁정은 진짜 스트레이트를 아직 아껴두고 있었다.

그는 평소와 달리 거리낌 없이 기자회견을 열고 수사의 방향성에 관해 밝혔다.

-최근 강남 유흥가를 중심으로 고가의 마약, 화이트 스카치가 유통되고 있는 정황을 포착했습니다.

-최근 일어난 마약중독 사망사건은 모두 이 마약을 먹고 환각 상태에서 벌인 범행임이 밝혀졌습니다.

-이 마약은 복용자만 무탈한 마약입니다.

삼화제약과 라데그룹의 관계를 잘 모르는 일반인들은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법조계는 발칵 뒤집혔다.

삼화제약을 건드렸다는 것은 라테 그룹을 건드린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임 검사 그 친구가 설마 모르고 그런 건 아니겠지?"

"절대 그럴 리가 없습니다. 황 대표가 라테가 사위인 건 임 검사도 잘 알 겁니다."

"그런데도 칼을 들이댔어?"

라데그룹과 친한 대검 소속 선배검사들은 이 상황을 가볍게 보지 않았다.

"임 검사, 이놈이 완전히 미쳤구먼. 이 나라에서 재벌을 건드리려고 하다니."

***

스마트폰에는 백 자리가 넘는 부재중 전화 목록이 쌓여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쉴 새 없이 문자가 들어오고 있다.

진동음을 듣는 것도 지겨워서 무음으로 해놨지만, 스마트폰 액정은 잠시도 꺼질 줄을 모른다.

"휘유,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줄이야."

임탁정은 여유롭게 휘파람을 불었다.

속에서는 식은땀이 났지만, 그래도 표정만큼은 최대한 태연하게 꾸몄다.

"임 검, 다시 한번 생각하게.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야."

"제 결정은 확고합니다. 혐의가 있으니 조사하는 것이고, 조사해서 혐의가 없다는 게 밝혀지면 무죄가 될 겁니다."

"겨우 이 정도 스캔들로 재벌 일가가 실형을 선고받는 경우는 없네."

"그거야 제 알 바 아니죠."

"……."

"곧 영장 추가해서 넣을 테니, 잘 부탁합니다. 선배."

영장판사는 한숨을 쉬면서 끄덕였다.

"나야 어차피 승진길도 막히고 조만간 한직으로 물러날 처지라지만, 자네 같은 친구가 앞날이 막히는 게 안타까워서 그러지."

"화려하게 불태우고 제 갈 길 가렵니다."

얼마 후 임탁정 검사는 압수수색 영장을 거머쥘 수 있었다.

바로 진세주 자택 압수수색 영장이었다.

***

"요즘 세상이 많이 시끌시끌하죠?"

며칠 만에 만난 가수 아이리스의 표정은 썩 밝은 편이 아니었다.

그녀도 얼마 전 소식을 들었다.

라테그룹 회장 딸의 자택이 수색당했고, 거기에서 화이트 스카치가 나왔으며, 딸은 그 자리에서 바로 체포되었다고.

재벌가 이름까지 나온 이상, 최대한 빠르게 털고 세상의 시선에서 벗어나야 했다.

'윤주 언니 새 남자가 그렇게까지 얽혀 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

그녀는 연예계 생활을 오래 하면서 눈치가 발달했다.

보통 이렇게 판이 커진 상황에서 미끼로 가장 만만한 것은 바로 연예인이다.

클럽 소유주 가수로 유명해진 자신의 인지도는, 재벌가에서 희생양으로 쓰기에 적당해 보일 것이다.

"임대차 계약해지에 합의하겠어요."

"알겠습니다. 여기에 도장 찍으시면 됩니다."

그녀는 클럽의 실제 소유주는 아니지만, 대외적인 주인으로서 해지에 서명했다.

"클럽은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하실 거예요?"

"글쎄요, 주점 사업은 원래 제 버킷리스트에는 없었지만, 청담에서 모든 술집을 몰아낼 수도 없어서요. 건전한 클럽 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운영 시도는 해보렵니다."

"잘되시길 빌게요."

아이리스는 탈옥이라도 한 것처럼 서둘러 해지를 하고 떠났다.

그녀는 검찰이는 언론이든, 앞으로 자신의 이름이 나오지 않기만을 간절히 빌고 또 빌 것이다.

"할 게 많네. 간판도 바꿔 달아야 하고, 직원들도 전부 새로 구해야 하고."

하수영은 프랜차이즈 관리를 총괄하는 주희도에게 일단 이 사실을 알렸다.

그런데 얼마 후, 정서희한테서 연락이 왔다.

-핀익스 클럽이 빌딩에서 나갔다면서요?

"네, 그렇게 됐습니다. 인테리어나 시설은 그대로 두고 간대요. 주희도 사장님한테 들으셨나요?"

-재벌가에까지 불똥 튀니까 앗뜨거라 하고 꼬리 자르는 건가요?

"비슷합니다."

-그럼 제가 그 자리에서 클럽 운영해 봐도 될까요?

"서희 씨가 세입자로 들어오시게요?"

-네, 시설은 다 있으니 간판만 바꿔 달고 직원들 새로 구해서 채워 넣으면 금방 영업할 수 있잖아요. 거기 상권 그대로 날리는 건 뭔가 아까워서.

"저야 서희 씨 능력을 믿으니 상관없긴 한데, 클럽 운영 같은 건 경험 없으시지 않아요?"

-가게 운영 맡길 친구가 있어서 괜찮아요. 제가 지금 바로 갈게요. 우리 계약해요.

"그러시죠."

라테그룹을 겨눈 한 검사의 칼.

그로 인해 세상이 시끄럽든 말든, 하수영은 정서희와 조용히 임대차계약을 체결했다.

정서희는 임대차계약을 진행하면서 곧바로 간판 교체 작업을 하고 내부 재정비를 하는 등, 영업 재개 준비를 서둘렀다.

"와트니라고 불러 주십시오."

총매니저를 맡게 될 인물은 누가 봐도 토종 한국인이지만 영어 이름을 썼다.

정서희는 일부러 하수영한테 그를 인사시켰다.

"와트니, 이분이 빌딩주시니까 앞으로 잘 보여야 해. 이분한테 소홀히 하면 우리 바로 방 빼야 하는 거야."

"염려 붙들어 매셔."

"수영 씨, 여기 와트니는 홍대 클럽에서 오래 일했던 친구예요. 자기는 화성에 혼자 떨어져도 살아남을 거라고 예명을 저렇게 지었대요."

생긴 건 돼지국밥집 사장 같은 느낌인데, 클럽에서 오래 일했다니.

"그럼 난 영업 준비하러 가볼게. 보니까 손대야 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야."

"와트니,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알지?"

"알지. 퇴폐는 모조리 근절한다. 걱정 마셔. 나도 마약 같은 것은 아주 지긋지긋하니까."

와트니가 돌아가고, 정서희와 둘만 남게 되었다.

"저래 보여도 나름 부잣집 아들이에요. 어려서부터 오락 문화에 심취해 있었거든요. 한참 오빠인데 그냥 와트니라고 불러요. 수영 씨도 그렇게 부르면 좋아할 거예요."

하수영은 유흥주점이 자기 건물에 있는 것을 거북해한다. 클럽 역시 마찬가지.

하지만 기왕이면 건전한 클럽 하나 정도는 있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정서희는 자신의 의도를 잘 알고 있을 테니, (구)핀익스 클럽은 별탈 없이 굴러갈 것이다.

"요즘 삼화제약 때문에 엄청 시끄럽네요. 화이트 스카치가 5대 재벌까지 닿아 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요?"

"파보면 더 줄줄이 나올 겁니다. 재벌 딸이 혼자서 마약을 즐기진 않았을 테니까요."

"진세주 아주머니한테 몇 번 초청받은 적 있는데, 왠지 거북했던 분위기가 그거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근데 이거 끝까지 팔 수 있을까요?"

"중간에 멈추겠죠. 어쨌든 이제 엘릭서 드링크를 더 이상 마약에 쓰지 못할 테니, 저는 만족입니다."

애초에 하수영은 감히 자신이 소중히 기른 작물로 만든 건강음료를 마약 따위에 섞었다는 것에 분노했었다.

"그게 해결된 이상, 지들끼리 지지고 볶고 다치고 죽이고 하는 건 관심 없습니다."

"냉정하셔라. 철저히 한 발짝 떨어 저서 보시는군요."

"제가 세상을 바꿀 것도 아닌데, 너무 과하게 참견하는 건 의미가 없죠. 이제 정상화됐으니 됐습니다."

"그래도 나중에 중앙정치무대에 진출하시는 것도 괜찮을 거 같아요. 한 마흔 넘어서쯤 어때요?"

"어휴, 제가 국회의원 같은 거 하게 되면 그때부터 이 나라, 아니, 전 지구는 뒤 없이 앞으로만 달려야 합니다. 제가 안 하면 안 했지, 한번 손대면 중단이라는 게 없거든요."

하수영은 웃으면서 말했지만, 정서희는 그 말에서 묘하게 소름이 돋았다.

***

삼화제약 대표 황순양과 대주주 진세주의 구속.

기습적인 선공은 성공했지만, 가시밭길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임탁정은 검찰에 출근할 때마다 벌레 보듯 자신을 바라보는 선배, 동료 검사들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모난 돌이 정 맞는 거야 당연하지.'

하지만 임탁정은 그런 시선에 전혀 개의치 않은 채 어깨를 펴고 다녔다.

"증기가 없잖아, 증거가! 진세주씨가 누구인지 알아?"

"잘 압니다."

"그걸 잘 알면서 증거도 없이 잡아들이는 게 말이 돼?"

"그럼 자택에서 나온 화이트 스카치가 증거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진세주 본인 게 아니라잖아! 집이 그렇게 넓은데 아랫것들이 자기 집에 뭘 숨겨놨는지 집주인이 어떻게 일일이 파악할 수가 있겠어!"

시원하게 갈굼 받는 것도 이제는 익숙해졌다.

결국 진세주는 일주일을 넘기지 못한 채 증거불충분, 도주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구속이 중지되었다.

대신 황순양은 여전히 구속이 유지 되었는데, 아무래도 대중의 시선을 고려한 연막 장치임이 분명했다.

임탁정은 라테그룹 쪽에서 나온 사람들로부터 은밀한 회유와 압박을 번갈아 받기도 했다.

"진 이사장님께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즉시 50억을 꽂아드리겠습니다."

"나중에 옷 벗고 이혼 전문 변호사나 하지 않으려면 지금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할 겁니다."

임탁정은 온갖 회유와 압력에도 굴복하지 않고 꿋꿋하게 수사를 이어 나갔다.

그는 특히 언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라테 일가를 압박했다.

메이저 언론은 전부 재벌에 호의적이지만, 그들을 움직이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진세주와 함께 마약을 즐긴 이들 중에는 그 언론사의 자제, 혹은 재벌 광고주의 자제들도 섞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언론사들 입장에서는 진세주 하나를 버림으로써 다른 이들을 보호해야 했고, 임탁정은 그것을 노려서 적극 언론 플레이를 펼친 것이다.

'이 정도면 일개 검사 개인으로서 정말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다했다.'

물론 그렇다고 5대 재벌가를 이길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재판은 아주 빠르게 진행되었고, 진세주는 결국 증거불충분으로 무죄, 황순양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2년 2월을 선고받았다.

그밖에도 삼화제약 임원 여럿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삼화제약에서 화이트 스카치가 제조된 상황 자체는 감출 수가 없었기에, 그런 식으로 아랫것들이 총대를 맨 것이다.

임탁정은 항소를 준비했지만, 조직은 더 이상 그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사건은 다른 검사에게 넘어갔고, 그는 제주도로 발령받았다.

***

"다 끝났습니다, 회장님."

진철진 회장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그는 공손히 고개를 조아리는 비서실장을 보고 끓는 분노를 삭여야만 했다.

비서실장의 잘못도 아니고, 오히려 그는 최대한 사건을 수습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가 치미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석현이도 그렇고, 세주도 그렇고, 요즘 내 핏줄이라는 것들이 왜 이렇게 속을 썩여? 손자 하나는 음주운전으로 평생 병신으로 살 팔자 됐고, 딸년이라는 것은 마약 따위나 만들어 팔다가 온 세상에 집안 망신을 시켜?"

"죄송합니다. 회장님. 제대로 보필하지 못한 저희의 잘못입니다."

"다 끝나? 뭐가 다 끝나? 딸년하고 사위 감옥 안 가고, 그 검사놈은 제주도로 멀리 보냈으니 이제 다 끝난 거야? 이걸 다 끝났다고 할 수 있어?"

임탁정이 적극적으로 언론 플레이를 펼친 덕분에, 온 세상이 진세주의 마약 제조유통 사실을 알게 되었다.

덕분에 라테계열 백화점과 마트를 향한 일반 고객들의 방문이 대폭 감소했고, 그룹 전체 주가도 꽤 많이 빠졌다.

그 무형적 손실을 다 합치면 아마…….

"그 검사놈이 벌인 소송전 때문에 앉은 자리에서 족히 이천억은 넘게 손해를 봤어, 이천억!"

빠악!

결국 참지 못한 진철진 회장은 재떨이를 들어 비서실장의 정수를 향해 던졌고, 산산이 조각난 파편 사이로 피가 뚝뚝 흘렀다.

"세주 고년한테 전자발찌든 뭐든 달아서 어디서 뭐하는지 24시간 감시하고 보고해! 그게 불만이면 내가 준 거 다 토해내고 어디 시골 텃밭에서 농사나 지어서 빌어먹고 살라고 해!"

"예, 회장님."

"그리고 임탁정이라고 했지? 그놈이 검사 직함 달고 있는 동안에는 평생 서울에 발도 못 붙이게 해! 알았어?"

"예, 회장님."

임탁정은 제주도로 쫓겨났다.

하지만 진세주가 더 이상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하게 개망신을 주었고, 또 라데그룹에 이천 억 이상의 손실을 남기는 쾌거를 남겼다.

덕분에 그는 그래도 약간의 홀가분함을 안은 채 서울을 벗어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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