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416화
105장 술 팔아주는 새 건물주(2)
도로 좌우에는 백여 대가 가뿐히 넘는 슈퍼카들이 전시회라도 하듯 즐비해 있었다.
그 사이를 뚫고, 커다란 덩치의 흰색 캠핑카가 당당히 거리를 좁힌다.
마침내 캠핑카가 정차하고, 운전석 문이 열리며 한 젊은 남자가 안에서 내렸다.
스물? 스물하나?
아무리 뜯어봐도 이십 대 중반 이상은 되어 보이지 않는 얼굴이다.
하지만 앳된 느낌은 전혀 없이, 묘한 연륜을 풍기는 표정이 자리 잡고 있다.
하수영이 가까이 다가오자 아이리스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지하층 세입자분이시죠?"
"아, 네. 성진주라고 해요."
아이리스는 예명 대신 본명을 댔다.
밖으로 나온 직원들과 가드들은 어 찌할 바를 모른 채 갈팡질팡 방황하는 어린 양들이었다.
"상견례 하는 김에 친구들하고 술 한 잔 하려고 왔습니다. 그래도 임대인과 임차인 간에 첫 상견례인데, 뭐라도 팔아드려야 인지상정 아니겠어요?"
"치, 친구들이라고요?"
저 돈 많아 보이는 할아버지들이 어딜 봐서 친구야?
"원래 남자들 간의 우정은 나이를 초월하는 법입니다. 제가 존경하는 어르신들이지만 동시에 제 친구이기도 하죠. 자, 어르신들! 안으로 들어 가죠."
"그래그래, 들어가자고."
"이 친구는 덩치가 아주 좋아. 왕년에 격투기라도 좀 했나 봐?"
"가, 감사합니다. 어르신……."
"혹시 나중에 개인 경호원 같은 거 할 생각 있으면 여기로 연락하게나."
명함을 받아 챙긴 가드 한 명은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공손히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도로 양 사이드를 차지한 슈퍼카들은 언뜻 보기에도 백 대는 훨씬 넘어 보인다.
아이리스는 당황해서 하수영한테 말했다.
"저, 그런데 차를 이렇게 세워두면, 안 되는데요. 주차 위반으로 신고 들어와요."
"괜찮습니다. 여기 생긴 것만 도로지, 실제로는 사유지예요."
"네?"
"제 땅이니까 괜찮다고요."
아이리스는 황당해서 클럽 건물 진입로를 바라봤다.
지금까지는 그저 평범한 4차선 도로인 줄 알았는데, 이게 사유지였다고?
어느새 하수영과 노인들은 안으로 우르르 들어갔고, 아이리스는 직원 몇몇과 남은 채 말없이 도로를 점거한 슈퍼카들을 바라봤다.
밤 9시가 조금 넘은 시각.
휘황찬란한 값비싼 차량들이 질서정연하게 진열돼 있는 광경을 보니, 가히 절경이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진 실장."
"네, 사장님."
"놀고 있는 가드 몇 명 불러다가 여기 도로 지키게 해. 술 먹은 진상 들이 차에 흠집 내지 않는지 잘 지켜봐. 알았지?"
"네, 알겠습니다."
진 실장은 아이리스의 뜻을 이해하고 얼른 스마트폰을 꺼내 연락을 돌렸다.
여자 매니저 한 명이 슈퍼카들을 둘러보며 호들갑을 떨었다.
"세상에, 이 비싼 차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으니까 진짜 장관이네요. 포르쉐, 벤츠, 아우디는 아예 끼지도 못하네. 대체 건물주와 친구들은 뭐 하는 사람들일까요?"
"강남에서 돈 좀 있다는 사람들이겠지."
"이따가 개장하면 손님들 들어오다가 깜짝 놀라겠네요. 여기 차들 보고 오늘 물 엄청 좋을 거라고 생각하겠어요."
아이리스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직원이 말한 광경이 머릿속에 저절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
"우와, 대박. 오늘 물 엄청 좋은데?"
핀익스 클럽을 찾은 세 여자는 도로 좌우에 즐비한 슈퍼카들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거 봐! 진짜 마이바흐야!"
"와, 대박 크다. 무슨 차가 이렇게 커?"
"이거 한 대가 10억이 넘는다고 들었어. 이제는 단종돼서 더 생산 안 한다고, 이게 바로 진짜 회장님 세단이라는 거래."
"대박, 여기 이 차들 주인들이 오늘 핀익스 클럽 방문한 게 맞겠지?"
"입구 쪽에 있는 거 보니까 맞는 거 같은데? 오늘 무슨 날이야?"
마이바흐를 만져 보려던 여자는 가드가 조용히 다가와서 눈치를 주자 움찔해서 손을 거둬들였다.
그러고 보니 십여 명이 넘는 가드 들이 도로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누가 차에 흠집을 내지는 않는지 감시중이었다.
"일찍 와서 다행이네. 제때 맞춰서 왔으면 아마 줄 길어서 못 들어갔을 듯."
아직 클럽이 개장하려면 1시간 정도 남아 있었다.
하지만 출입문 앞에 줄을 서자 지 키던 가드들이 안으로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어, 지금 들어가도 돼요?"
"오늘은 조금 일찍 열었어요. 들어 오세요."
"대박. 야, 빨리 들어가자."
"오늘 클럽 물 개쩔겠네. 저 차주 들이 죄다 룸에 자리 잡고 있을 거 아냐?"
"근데 차가 백 대가 넘던데 그 많 은 사람들이 들어갈 만한 룸 시설이 있어?"
재잘거리면서 계단을 내려가 복도 를 통과하자 넓은 홀이 나왔다.
그리고 세 여자는 볼 수 있었다.
홀을 가득 차지한 수많은 테이블 과 거기에 앉아서 웃고 떠드는 슈퍼카 차주들을.
충격적인 광경에 잠시 굳어 있던 세 여자 중 한 명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핀익스 물이…… 언제부터 이렇게 흐려진 거야?"
"우리 지금 노인 카바레로 잘못 찾아온 거 아니지?"
"나 소름 돋는데, 음악 지금 뭐야? 왜 뽕짝이 나오고 있어?"
"…… 나갈까?"
친구 한 명이 고개를 흔들며 말하자, 다른 두 명이 눈을 빛내며 다그쳤다.
"나가긴 뭘 나가."
"나가려면 너 혼자 나가."
"아니, 할아버지들밖에 없잖아? 여기서 뭘 하겠다고?"
"슈퍼카 끌고 다니는 할아버지들이 이렇게 많이 모였잖아. 이런 재미난 구경거리가 또 있을 줄 아니?"
"말만 잘하면 비싼 양주 얻어먹을 수 있다고, 술값 아끼고 잘됐지, 뭐."
친구 둘이 그렇게 성큼 앞으로 나아가자, 나가자고 말을 꺼냈던 여자도 어쩔 수 없이 둘을 따랐다.
"안녕하세요. 여기 앉아도 돼요?"
노인 둘만 앉아 있는 6인 테이블 앞에 선 여자가 배시시 웃으며 말을 걸었다. 그녀의 눈은 테이블 위에 놓인 로얄 샬루트를 놓치지 않았다.
'저거 먹고 싶었는데.'
"응? 앉아, 앉아."
"이래서 김씨가 다닥다닥 붙지 말고 자리 비워두라고 한 거구만, 처자들 들어오면 앉히려고."
"김씨가 새장가 들더니 아주 노는 스타일이 젊어졌어."
"자자, 한 잔들 혀."
얼른 자리를 잡은 여자 셋은 공손히 잔을 내밀어서 로얄 살루트를 받았다.
한 잔에 수십만 원이 넘는 고급술 이다.
"밖에 있는 차들 다 뭐예요? 들어오다가 깜짝 놀랐어요."
"우리 친구 하나가 여기 건물 인수 했거든. 그래서 상견례 겸해서 술 한 번 쏘겠다고 해서 다들 축하해 주러 몰려왔지."
"와, 대박. 그럼 그 친구분은 돈이 얼마나 많은 거예요?"
"아마 강남에서 젤 많은걸? 재벌 회장 안 부러운 친구여."
원래는 비싼 술이나 몇 잔 얻어먹고 일어나려고 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조금 나눠보니, 두 노인의 화술에 금방 빠져 버렸다.
노인들은 점잖았고, 아는 것도 많았으며, 의외로 젊은 세대 문화에도 해박한 편이었다.
대화의 질이나 즐거움만 보면 또래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였다.
금방 일어나려고 했던 세 여자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잘난 사람은 나이가 아무리 들어 도 여전히 잘났구나.'
'어쩜, 지금도 이렇게 잘났는데 젊 어서는 어땠을까…….'
"그런데 사장님들은 우리 같은 어린애들하고도 되게 대화를 자연스럽게 하시네요. 솔직히 놀랐어요."
"진짜 놀랐어요. 고리타분한 느낌도 전혀 없고, 꼭 몇 살 차이 오빠들하고 이야기하는 거 같아요."
개량한복을 입은 김씨 노인이 피식 웃으면서 물었다.
"그쪽은 몇 살인가?"
"저요? 27살이요."
"우리 와이프가 그쪽보다 어리다네."
"……네?"
"이 친구가 사별하고 10년 만에 새장가를 들었거든. 그래서 말하고 생각하는 게 아주 젊어요, 젊어."
"여기 우리 와이프야. 예쁘지?"
김씨 노인은 스마트폰을 꺼내서 새 처와 찍은 사진들을 주르륵 보여 주었다.
연예인 뺨치게 예쁜 외모를 보고 여자들은 놀라서 굳었다가, 식은땀을 흘리며 억지로 미소를 보였다.
"저, 저희는 그만 일어날게요."
"벌써 가려고? 한 잔씩 더 하고 일어들 나시게."
"네, 감사해요."
비싼 술을 한 잔씩 더 비운 후, 세 여자는 미련 없이 테이블에서 일어났다.
백 명이 넘는 노인들이 홀을 차지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묵직한 감각이 가슴을 짓누른다.
자신들처럼 비싼 술 한 번 얻어먹어 보려는 젊은 여자들이 군데군데 합석한 게 보인다.
여자뿐만 아니라 간간이 젊은 남자들도 합석을 해서 공손히 술 시중을 들고 있다.
한 병당 수백만 원에서 천만 원을 넘나드는 비싼 양주를 무슨 병맥주 마시듯이 아무렇지 않게 까고, 붓는다.
모르긴 몰라도, 오늘 하루 동안 몇 주 치 매출이 발생하지 않을까 싶다.
***
"……감사합니다. 정말 많이 팔아 주셔서요."
아이리스는 입이 찢어질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슬쩍 보고를 들었는데, 지금까지 나간 술값만 해도 5억을 훌쩍 넘었다고 들었다.
돈 많은 노인들이라 그런지 병당 수백만 원씩 하는 비싼 술을 물처럼 마셔댄다.
"계산은 전부 제가 할 테니 한꺼번에 저한테 청구하시면 됩니다."
"어머, 정말요?"
아이리스는 깜짝 놀랐다. 혼자서 다 술값을 지불하겠다니?
"늘 저를 도와주시는 분들인데 제대로 된 대접 한 번 못한 거 같아서 오늘 자리를 만들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가수라고 들은 거 같은데, 맞나요?"
"네, 아이리스라는 예명으로 활동 하고 있어요. 앨범도 벌써 4집이나 냈는걸요."
"제가 음악계는 잘 몰라서. 드라마는 살짝 한 다리 걸치고 있지만요."
"어머, 드라마요?"
아이리스는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자신보다 어리고 돈 많은 이 강남 부동산 큰손이 드라마에 어떻게 걸 치고 있다는 걸까?
"부활의 이순신, 아시나요?"
"알죠! 당연히 알죠! 그 드라마 모르는 사람이 어딨나요!"
아이리스는 호들갑을 떨며 기뻐했다. 가슴이 마구 설레였다.
이 젊은 부동산 큰손이 대체 부활의 이순신과는 어떤 관계라는 것일까?
"제가 그 드라마에 투자를 좀 했죠."
"어머, 세상에! 진짜 인연이네요! 저 연예계 친한 언니도 그 드라마에 준조연으로 출연했다는데! 그럼 아실지도 모르겠네요?"
"제가 출연진 중에서는 장효주 씨 하고 채민석 배우밖에 몰라요. 전 제작에만 투자한 거라서."
"와, 투자자셨구나! 그거 제작비 천억 넘게 들었다고 난리나고 그랬잖아요."
"최종적으로 삼천억 조금 안 되게 들어갔을 겁니다. 손익분기 넘기려면 갈 길이 멀어요. 뭐 돈 벌려고 투자한 건 아니지만."
아이리스는 입안이 저도 모르게 바짝바짝 말라왔다.
눈앞의 남자를 잡기만 하면 팔자를 펼 수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인생 자체가 달라지는 것이다.
"사실 여기 온 게 처음은 아닙니다."
"어머, 그런가요?"
"건물 인수하고 몇 번 손님으로 와 봤어요. 가게 분위기가 어떤가 둘러 보고 싶었죠. 재미난 해프닝도 몇 번 겪었습니다."
"원래 클럽이 그렇죠. 항상 해프닝 이 있어요. 음악과 젊음과 술이 있는 공간이다 보니까요.
"성진주 씨라고 했죠? 진주 씨도 대단하신 거 같아요. 젊은 나이에 이런 큰 가게를 인수해서 운영하는 걸 보면, 가수 활동하는 것만 해도 벅찰 텐데."
"연예인 생활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는 아무도 모르잖아요. 잘 나갈 때 미래와 노후를 대비해야죠."
하수영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 며 슬쩍 물었다.
"여기 클럽 지분 구도가 어떻게 되 나요?"
"…… 지분 구도라고요?"
기습적인 질문에 성진주는 순간 멈칫했다.
"진주 씨는 그냥 이름만 빌려준 거고, 지분은 없으시거나 얼마 안 되 실 거 같은데. 지분 사장들이 총 몇 명이죠?"
"그걸 어떻…… 아아, 이 바닥 생리를 어느 정도 아시는군요. 맞아요. 전 지분 없이 이름 빌려주고 관리하는 대신 월급을 받고 있어요. 그런 데 지분 구도는 왜 궁금하신 거예요?"
"지분이 없다고요?"
하수영은 차분히 아이리스를 응시 하다가 다리를 포며 조용히 웃음을 지었다.
"그거, 아주 잘됐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