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414화
104장 이런 중환자실은 처음이지?(3)
교통사고를 낸 중년배우 이무진이 호송되었을 때, 청담수영병원은 발칵 뒤집혔다.
이건 말이 중상자지, 그냥 살아 있는 시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스틱스강이라 일컬어지는 병원 출입 라인,
지금까지 그 선을 넘어온 이들은 아무리 위중한 상태에서도 죽지 않았다. 끝내 이겨내고 회복돼서 퇴원했다.
하지만 이무진의 상태를 본 순간, 응급실 의료진은 처음으로 그 징크스가 깨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품었다.
그만큼 이무진의 상태는 위중했다.
"이사장님이 우리 병원을 인수하고 나서, 우리 병원에서 사망자는 단 한 명도 안 나왔다. 모두 알지?"
응급실 교수가 굳은 목소리로 모두를 돌아보며 말했고, 다들 경직된 채 끄덕였다.
"무조건 살려내자. 반드시 살려내서 우리 이사장님의 바이블을 지켜 내자고."
"알겠습니다!"
"혈액맥이고 약제고 필요한 건 싸그리 다 챙겨!"
몇 번의 위기가 있었다.
심정지 상황이 세 번이나 닥쳤고, 그때마다 필사적인 심폐소생술로 위기를 벗어났다.
아예 이무진 한 명만을 상시 지켜 보는 전담 의사와 간호사를 교대로 유지하며, 단 1초도 놓치지 않고 살폈다.
물 반, 의사 반이라고 농담처럼 일컬어지는 수영병원 인력풀 덕분에 가능했다.
주 40시간 근무제로 돌려도 의사, 간호사, 직원이 남아도는 환경이었으니.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
"이게 살아?"
의사로서 해서는 안 될 말인 것을 안다.
하지만 강기문 교수는 저도 모르게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말았다.
다른 의사와 간호사들도 그를 탓하지 않았다. 겉으로만이 아니라 속으로도 그의 심정에 동조했다.
정말 살아날 줄은 몰랐으니까.
"산 시체로 실려 왔는데, 이제는 산 중환자가 됐네요. 정말 다행입니다."
수술, 수술, 그리고 수술.
생사의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긴 끝에 이무진 환자는 가까스로 바이탈 안정 흐름으로 접어들었다.
여전히 중환자실에 있어야 하지만, 그래도 이제는 살 수 있겠다고 한시름을 놓아도 된다.
"모두 수고했습니다. 우리가 이사장님의 명예를 지켰어요."
병원장 최윤석도 모처럼 중환자실 까지 내려와서 밝은 표정으로 의료진들을 치하했다.
***
"살았다고?"
조성만 검사는 청담수영병원에서 들려온 소식에 펄쩍 뛸 듯이 놀랐다.
이무진 배우의 상태가 어떤지는 자신도 정확히 보고받았다.
의료에 문외한인 자신이 보기에도 그는 절대로 살아날 수 없는 상태였다.
주변에 친한 의사들에게 자문을 구해도 하나같이 고개를 흔들기만 했다.
살아날 가능성이 없으니 참고인 조사는 미리 포기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유일하게 한 명만 다른 의견을 냈다.
-그럼 무사히 깨어나겠네요.
당시에는 그저 잘될 거라고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말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하수영의 말은 현실이 되었다. 정말로 이무진 배우가 살아난 것이다.
"기적적으로 살아나더라도 최소 식물인간 신세는 피할 수 없을 거라고 봤는데, 이제는 의식까지 돌아왔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호전세를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말도 안 돼. 물론 중요한 참고인 이 살아난 것은 기뻐해야 할 일이지만……."
"검사님, 그거 아십니까? 하수영 이사장이 병원을 인수하고 나서부터, 병원 안에서 죽은 사람은 여태까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합니다."
"뭐? 그게 정말인가?"
"네, 일단 청담수영병원 안으로 들어오기만 하면 아무린 위중한 환자라도 어떻게든 살아서 회복돼서 퇴원했다고 합니다."
"……."
"아무튼 이무진 씨가 깨어났으니 이제 감시를 더욱 강화해야 할 거 같습니다. 마약 공급책들이 접촉을 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야겠지."
최현영이 잠적한 이후, 마약 수사는 답보 상태였다.
조성만은 선배인 임탁정 검사가 크게 상심한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결국 영장까지 발부받아 핀익스 클럽을 단속했지만, 마약 관련 증거는 이미 깔끔하게 정리된 후였다.
아무리 뒤져도 티끌 하나 보이지 않았다.
'강남경찰서 놈들이 클럽 사장들한테 이미 알려준 게 틀림없어. 우리가 너무 늦었다.'
다른 것도 아닌, 같은 편이라고 여긴 고위 경찰들의 배신에 임탁정은 치를 떨며 분노했다.
지금까지 나온 이름은 최현영, 홍윤주, 가수 아이리스, 이렇게 셋뿐이다.
홍윤주와 아이리스는 대놓고 쑤실 만한 혐의 자체가 없고, 최현영은 어디에 잠적했는지 알 수 없는 상황.
이 답답한 상황에서 이무진이 깨어 났다는 것은 수사에 활기를 불어넣어줄 유일한 구원줄이었다.
***
임탁정 검사는 이무진이 중환자실을 벗어났다는 말을 듣기가 무섭게 청담수영병원으로 달려갔다.
"이무진 씨, 수사에 협조해 주십시오. 화이트 스카치, 어디서 났습니까? 아는 대로 모두 말해요."
그러나 이무진은 입을 다문 채 완강하게 진술을 거부했다.
그는 자신이 낸 사고 때문에 사람 여럿이 죽었다는 사실에 크게 겁을 먹고 있었다.
임탁정은 위협도 하고, 회유도 하면서 구슬려도 보았으나 결국 아무런 답을 듣지 못했다.
"이대로 끝날 거라고 생각하지 마 십시오. 당신은 어쨌든 마약 복용자입니다. 내가 끝까지 물고 늘어질 겁니다."
임탁정은 분명한 경고를 남긴 채, 일단 첫날은 그렇게 병실을 나섰다.
복도 밖 로비에서 기다리던 조성만이 급히 다가와서 물었다.
"뭐라고 합니까?"
"아무 말도 안 해. 지도 자기가 X 된 거 아는 거지."
"시간이 좀 걸리겠군요."
"그동안 이무진이 주변 뒤져서 뭐 좀 나온 거 있어?"
"클린합니다. 놈들이 벌써 정리를 다 한 거 같은데요."
"보통 놈들이 아니야. 대체 얼마나 잘난 양반이 얽혀 있는 건지 모르겠네."
"강남경찰서장이 경찰청장하고 정말 친한 선후배 사이라죠?"
조성만이 의미심장한 음색으로로 말하자 임탁정은 안색을 찡그리며 머리를 흔들었다.
"우리나라에서 마약 수사 제대로 하려면 다 필요 없고, 강남 지역 부패한 고위 경찰들부터 잡아넣어야 돼. 이미 병사가 오염돼 있는데 백날 전투하러 나가면 뭐하나."
임탁정은 이를 가볍게 갈다가, 불현듯 반가운 얼굴을 발견했다.
"어? 저기 회장님이 계시는데? 조 검사, 어서 가보자고."
"네, 선배님."
얼굴을 보지 않았으면 하수영인지도 몰랐을 것이다.
그는 평상복을 입은 채 로비에서 간호사들과 한가하게 잡담을 하고 있었다. 누가 저런 모습을 보고 병원 이사장이라고 생각하겠는가.
"회장님, 저 임탁정입니다."
"조성만입니다."
"아, 두 분이 여기는 웬일로? 아하, 이무진 씨 조사하러 오셨나 봐요?"
"네,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했습니다만."
"회장님 말씀대로 이무진 씨가 정말로 살아났군요. 전 그대로 죽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조성만의 말에 하수영은 웃으면서 손사래를 쳤다.
"우리 병원이 터가 아주 좋습니다. 그래서 웬만한 걸로는 죽어 나가기 힘들어요. 연쇄살인범들도 우리 병원 터에 들어오면 살의가 완전히 누그러져서 누구 해칠 맘이 안 들거든요."
"아하, 그렇군요. 병원을 세우기에는 정말 나무랄 데가 없는 터 같습니다."
임탁정은 그렇게 맞장구를 쳤다.
"일단 자리를 옮기시죠. 여기 이분들도 일하느라 바쁘시니."
"네, 회장님."
하수영은 두 검사와 함께 로비 구석으로 향했다.
캔커피를 뽑아서 각자 나눠 들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조 검사님께 대충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수사가 진척이 없다면서요?"
"네, 송구하게 됐습니다. 회장님께서 마약 거래 현장까지 보여주셨는 데도 이렇게 됐네요."
"이해합니다. 현장을 맡은 경찰서에서 배신을 때렸으니 어쩔 수 없었겠죠."
"그래서 수사 방향을 전환하기로 했습니다. 강남경찰서부터 먼저 조사할 참입니다."
"큰일을 하려면 원래 내부 단속부터 해야 하는 법이죠. 근데 자신 있으세요?"
"……."
임탁정은 하수영이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입을 다물었다.
비리 고위 경찰들이 형성한 카르텔은 예상 이상으로 크고 촘촘할 것이다.
조사 과정에서 상상도 못 했던 거물들이 튀어나올 수도 있다. 이미 경찰청장 연루 여부까지도 의심하는 상황이니, 마약수사부에 몸을 담은 미약한 검사 한 명의 힘으로는 감당하기 벅찬 상황을 맞닥뜨릴 수도 있다.
"이곳을 한번 뒤져보세요."
하수영은 접힌 쪽지 한 장을 내밀었다.
슬쩍 내용을 확인해 보니, 주소 하나가 적혀 있었다.
주소만 봐서는 짐작이 가지 않는지라, 임탁정과 조성만은 의아해서 바라봤다.
"신중히 움직이세요. 거기에 제법 참고가 될 만한 게 있을 겁니다."
"어떤……?"
"검사님이 눈으로 직접 보고 느낄 즐거움을 뺏고 싶지는 않네요. 단, 시간이 없으니 가급적 서두르셔야 합니다. 언제 놈들이 증거를 옮길지 몰라요."
임탁정은 그 말에 마음이 다급해졌다.
하수영은 캔커피를 홀짝이면서 대수롭지 않은 어조로 덧붙였다.
"1층 로비 출입문에서 5미터 떨어 진 곳. 검은 바지에 녹색 스웨터를 입은 남자."
"……!"
"아, 돌아보지 마세요. 자연스럽게 슬쩍 확인하세요."
본능적으로 몸을 돌릴 뻔했던 두 검사는 인내심을 유지하며 들키지 않게 천천히 확인했다.
과연 그곳에 하수영이 말한 인상착의의 남자가 있었다.
"임 검사님이 병원 들어올 때 비슷하게 맞춰서 병원에 들어왔습니다. 병원 방문 자체가 처음이고, 환자를 찾는다거나 접수를 하지도 않고 계속 로비를 배회하고만 있네요."
"그건 어떻게……?"
"여기는 제 병원입니다. 모든 외부인들의 동향은 한순간도 빼놓지 않고 상시적으로 체크하고 있죠. 어느 날 갑자기 테러범이 폭탄 조끼 입고 들어와서 돈 내놓으라고 협박할 수도 있잖아요."
"……."
장난으로 둘러댄 이유인줄 알았는 데, 진지한 눈빛을 보니 아무래도 진심인 것 같다.
"그럼 건승을 빕니다."
***
하수영과 헤어진 조성만은 곧바로 동행한 형사들에게 거동수상자를 체포하라고 지시했다. 강남경찰서 소속이 아닌, 광역수사대 소속 형사들이었다.
"조 검사, 지금 바로 여기 친다."
임탁정은 하수영이 준 쪽지에 적힌 주소를 보여주면서 말했다.
"영장은요?"
"핀익스 클럽 덮칠 때도 영장 일부러 지연돼서 나온 거 기억하지? 놈들 라인이 법원에까지 닿아 있어. 영장 청구하는 순간 놈들에게 우리가 여기 덮친다고 알려주는 꼴이야."
"하지만 영장 없이는……."
"현장 확보해서 빼도 박도 못하게 한 다음에 영장 청구해도 늦지 않아."
조성만은 잠시 생각한 뒤 납득했다.
"현장은 내가 덮칠 테니, 너는 법원에서 대기 타고 있다가 곧바로 영장 청구 넣어야 된다. 늦으면 나 옷벗어야 할지도 몰라. 실수하지 마라."
"네, 선배님. 그런데 회장님이 주신 정보를 그 정도로 믿으십니까?"
"빼도 박도 못할 확실한 증거니까 회장님이 저렇게 자신만만하게 말씀 해 주신 거겠지."
조성만은 병원에서 체포한 거동수사자를 끌고 검찰청으로 돌아갔고, 임탁정은 광역수사대 형사들을 데리고 쪽지에 적힌 주소를 곧바로 덮쳤다.
"검찰이다! 문 열어! 열지 않으면 부수고 들어간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하쇼! 여기는 사유지요!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영장 있소? 영장 있냐고!"
"좋아. 이렇게 나온단 말이지."
철문 너머 상대의 반응에서 임탁정은 확신했다.
그가 뒤로 물러나자 광역수사대 형사들이 장비를 들고 나서서 문을 거칠게 부수었다.
"손들어! 모두 꼼짝 마!"
문이 열리자마자 형사들이 우르르 들어가서 권총을 겨누며 위협했고, 수십 명의 남자들은 쇠파이프와 각목 등 여러 무기를 든 채 주춤거리 다가 결국 내려놓았다.
주위를 둘러본 임탁정은 화색이 돼서 휘파람을 불었다.
"회장님 말씀대로 보물이 한 가득 이네. 아주 보물창고야."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산더 미처럼 수북하게 쌓인 현금다발이었다.
흙과 바위 대신 지폐 다발로 쌓은, 스위스의 가을 절경보다 아름다운 산이었다.
"검사님, 마약 대금입니다! 수백억 은 되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