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412화
104장 이런 중환자실은 처음이지?(1)
장효주가 사는 청담동 월세 아파트,
하수영은 거실에서 장효주와 나란히 앉아서 방영 중인 드라마, 부활의 이순신을 보고 있었다.
아파트에는 둘만 있는 게 아니었다.
효원그룹의 딸이자 여배우이며 장효주의 친한 언니인 주효정도 함께 있었다.
화려한 해전을 보며 주효정이 연신 감탄을 터뜨렸다.
"첫 화에서도 전투씬이 정말 끝내 줬는데, 어떻게 된 게 나오는 전투 마다 더 업그레이드되는 거야?"
"촬영을 하면 할수록 피디님 연출 욕심이 더 커졌으니까."
"역시 우리나라 드라마도 돈을 많이 쏟아부으면 블록버스터 못지않게 잘 나오는구나. 최초의 천억대 드라마다워."
"언니, 실제 들어간 제작비는 이천억원이 훨씬 넘거든. 최초의 천억대 드라마라고 하지 말고 최초의 이천억대 드라마라고 해줄래?"
"어쨌든 최초의 천억대 드라마는 맞잖아. 최초로 제작비 12자리 돌파 한 드라마."
100인치 UHD TV의 넓은 화면에는 수십 척이 넘는 배들이 서로 뒤엉켜 싸우고 있었다.
수많은 배들이 이따금씩 한 컷에 다 같이 잡힐 때마다 주효정은 몸을 가볍게 떨었다.
"보통은 제작비 아낀답시고 인물이나 사물 대충 많아 보이게 착시 효과 넣어서 찍는데, 이건 그냥 아예 사람하고 배를 처음부터 많이 집어 넣었네."
"가장 많은 엑스트라 동원한 게 만 명이 넘는다고 들었어."
"만 명? 만 명이라고? 아니, 그럼 엑스트라 출연 수당으로 하루에 대체 얼마가 나간 거야?"
"그래서 엄청 적자야. 비싼 광고 아무리 주르륵 붙어서 완판돼 봤자 제작비 못 건져."
"이천억이 넘는 걸 무슨 수로 만회 해?"
주효정은 질렸다는 음색으로 말하면서 화면에 집중하고 있는 하수영을 흘끔 돌아봤다.
수천억대 제작비의 대부분을 부담한 스폰서,
황비버섯 재배 하나로 막대한 돈을 벌었다지만, 드라마에 저렇게 큰돈을 쓸 줄은 몰랐다.
"어쨌든 한국 사극은 이제 확실한 분기점을 맞았네. 앞으로는 어떤 사극이든 부활의 이순신과 비교당할 수밖에 없을 거야."
화려한 출연진, 뛰어난 각본, 그리고 타드라마와 비교를 거부하는, 돈으로 빚어낸 엄청난 연출.
특히 마지막이 가장 컸다.
지금 드라마는 물론이고 영화 제작사들도 부활의 이순신 때문에 골머리를 싸고 있는 중이다.
앞으로 어떤 드라마, 영화를 촬영 하더라도 부활의 이순신에 보인 블록버스터 규모에 두고두고 비교당할 테니까.
"모두가 폴더폰 잘 쓰고 있는데 갑자기 혼자 아이폰 들고 나타난 거지, 뭐."
한숨을 짓듯이 말하던 주효정은 은근히 목소리를 낮춰서 물었다.
"혹시 수영 씨, 다음에 영화 제작에 투자할 생각은 없대?"
"제작 투자는 지속적으로 할 생각 인가 봐. 이것저것 다양하게 하는 건 아니고 자기 마음에 드는 것만. 수익 보고 투자하는 게 아니거든, 저 사람은."
"부활의 이순신 보면 누구라도 알겠다. 이건 갑부가 자기 보고 싶은 내용의 드라마를 만든 거라고."
어느덧 드라마가 끝났고, 주효정은 여운에 젖은 채 맥주를 꺼내러 잠시 거실을 나섰다.
장효주는 팔짱을 낀 채 생각에 잠긴 하수영을 향해 물었다.
"제 연기는 괜찮았어요?"
"아주 좋네요. 효주 씨가 괜히 젊은 나이에 톱 여배우가 된 게 아니라는 걸 알겠습니다."
"그런데 드라마에 집중 못 한 얼굴 이던데, 다른 생각을 계속 하는 눈치더라고요."
"예리하시네요."
"무슨 일 있어요?"
"요즘 누가 제가 재배한 농작물로 만든 식품을 가지고 나쁜 일에 쓰고 있어서요. 그거 때문에 심란합니다."
"저런, 그런 일이 있었군요. 무슨 일인데요?"
"어디 가서 발설하면 안 됩니다."
"걱정 마세요. 저 입 무거워요."
장효주에게 굳이 숨길 필요도 없는 지라, 하수영은 간략하게 설명했다. 이미 정서희도 잘 아는 일이었고,
"아, 화이트 스카치는 저도 들어봤 어요. 연예인 중에서도 그거 은밀히 복용하는 사람 있거든요."
"역시 그쪽에도 이미 뻗졌군요."
"근데 1회분에 150만 원이면 마약 치고 정말 비싸긴 하네요. 유통자들 아주 신나서 팔아치우겠는데요?"
"복용자 건강에 해가 없다는 게 진짜 큰일입니다."
"그런데 엘릭서 드링크 농축액을 섞었다고 마약의 해로운 효과가 사라질 수 있나요?"
"아주 특별한 송이버섯을 추출해서 만든 건강음료거든요. 그걸 엄청나게 때려박았으니까요."
"신기해라. 아무튼 그럼 지금 검찰에 제보하고 마약 수사 기다리는 중 이라는 거죠?"
"저 나름대로 이것저것 알아는 보고 있는데 쉽지가 않습니다. 엘릭서 드링크 구매자 뒤를 조사해도 나오는 게 없어요. 단순 심부름책이더군요."
"철저하네요. 역시 마약 조직은 무서워."
주효정이 맥주 몇 병을 꺼내 와서 테이블에 늘어놓았고, 하수영은 쇼파 옆에 두었던 아이스박스를 열어 토막난 큼직한 참치살을 꺼냈다.
두 여자의 눈이 커지며 군침을 꼴깍 삼켰고, 하수영은 능숙하게 참치 살을 잘라서 즉석 참치회 요리를 만들었다.
술을 곁들이며 참치회를 즐기는데, 별안간 광고가 나오던 TV에 속보가 지나갔다.
[속보! 연예인 이무진, 음주운전 사고! 현재까지 사망자 4명 확인 돼.]
"어머, 저게 웬일이냐?"
"이무진 선배님이 음주운전을? 맙소사!"
"진짜 4명이나 죽은 거야?"
두 여자는 요리를 먹다 말고 호들 갑을 떨며 곧바로 스마트폰을 쥐었다.
젓가락을 내려놓고 열심히 타이핑 하는 게, 주변 여기저기에서 소식을 캐는 모양이었다.
"저는 잘 모르는 사람인데, 친하신 가 봐요?"
"A급 중년 연기자이시니까요. 우리 하고도 친해요. 그런데 음주운전이라니."
"술 자체를 거의 안 하시는 분인데 음주운전이라니. 말도 안 돼."
"진짜 어떻게 된 거야?"
그러는 동안에도 속보는 연달아 나 오고 있었다.
[속보! 음주운전 이무진, 중상으로 중환자실 입원!]
[속보! 이무진, 사경을 헤매고 있어.]
[속보! 이무진, 오늘 밤이 고비!]
[속보! 경찰, 이무진의 혈중알콜 농도 당장 공개할 수 없어.]
부활의 이순신을 보고 난 뒤 셋이서 기분 좋은 술자리를 하자는 처음의 바람은 흐지부지되었다.
주효정이 심각한 표정으로 폰을 보 면서 말했다.
"뭔가 이상한데?"
"뭐가, 언니?"
"이무진 선배님, 원래 술 자체를 전혀 안 하시는 분이래. 그래서 다들 말도 안 된다는 분위기야."
"거의가 아니고 전혀?"
"응, 맨날 마시는 척만 하고 한 잔 도 안 드시는 분이래. 음주운전은 아예 말할 것도 없고, 다들 뭔가 이상하다고, 말이 안 된다는 분위기야."
"진짜 이상하긴 하네. 그나저나 사람이 넷이나 죽었으니……."
"연예인 인생은 끝난 거지."
"……."
연예인 인생이 아니라 본인 인생 자체가 끝날 수도 있다.
***
이태원 호텔에서 마약 중독으로 사망한 19세 여성 사건 조사에 불이 크게 붙었다.
사망자가 죽기 하루 전, 삼성동 고급 오피스텔 드미온뷰 2701호를 방문한 CCTV 기록은 수사팀의 열의에 불을 붙였다.
"들어간 사람은 있는데, 나온 사람은 없다? 말이 안 되지."
사망자가 그 다음 날 이태원 호텔을 들어간 것은 CCTV 기록으로 확인된다.
"이태원 호텔 CCTV만 보면 이제 사망자인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어. 얼굴이 제대로 나오지 않으니."
"반면 드미온뷰 CCTV에는 얼굴이 또렷하게 나오죠. 휴대폰 GPS 정보도 그렇게 말하고 있고요."
"사망자가 이태원 호텔에 들어간 시간까지, 드미온뷰 2701호에서 나온 게 없단 말이야."
사망자는 오피스텔에 들어갔다가 나오지 않은 채, 다음 날 이태원 호텔에 들어갔다.
말도 안 되는 경우다.
"역시 사망자는 2701호에서 죽은 게 틀림없어."
"여기 이 장면이 의심됩니다. 사망 자가 죽은 것으로 추정되는 시각, 남자 몇 명이 캐리어를 끌고 2701 호에 들어갔다가 나왔어요."
"이태원 호텔에 남녀가 끌고 간 캐리어와 같은 캐리어인가?"
"아뇨, 전혀 다른 캐리어입니다."
"용의주도하네."
아마도 사체를 캐리어에 신고 나온 다음에 다른 캐리어에 옮겨 싣고, 이태원 호텔에 들어갔을 것이다.
"부검 결과는 나왔어?"
"정액 DNA 획득했습니다. 살인은 아니랍니다. 마약을 과다하게 먹어서 심장발작으로 죽은 거랍니다."
"DNA 조회는 해봤어?"
"해봤는데 아무것도 안 나옵니다."
"나올 리가 없겠지. 범죄자 DNA 데이터베이스에 높으신 분들 자제가 있을 리가 있나."
살인은 아니라는 말에 임탁정 검사는 조금 실망했다.
만약 살인이라면 더 무게감을 두고 엮어버릴 수 있는데, 그냥 마약복용 및 시체 유기로만 진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도 정액 DNA 획득했으니 용의자만 나오면 이제 DNA 대조해서 쉽게 집어넣을 수 있겠네. 최현영은?"
"어제도 핀익스 클럽에 정상 출근 했습니다. 잠복해서 지켜봤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입니다."
"괜히 풀숲 치면 안 돼. 놀란 뱀 도망간다."
"예, 절대 눈치채지 못하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최현영 그 여자는 아마 관계없을 거야. 그냥 부동산 법인에 명의만 빌려준 거겠지. 법인 진짜 소유주가 누구인지를 찾아야 해."
최현영의 명의를 빌린 이가 바로 수십억짜리 오피스텔 2701호의 진짜 주인이고, 피해자와 밀접한 연관이 있을 것이다.
"최현영 사진은?"
"여기 있습니다."
임탁정 검사는 잠복 수사 중에 몰 래 촬영한 수십 장의 사진을 확인했다.
"여기 최현영의 인스타그램 사진도 있습니다. 한 번 보시죠."
수사관이 보여준 모니터 화면과 인 쇄된 사진을 확인한 임탁정은 덤덤 하게 말했다.
"예쁘네. 몸매도 좋고."
"원래 텐프로 아가씨 출신입니다. 은퇴한 지는 꽤 오래된 거 같습니다."
"그런데 클럽 관리자 일을 하고 있어? 돈이 안 될 텐데?"
"가게에서 만난 손님이 주선해 준 일자리겠죠. 자기 여자가 남의 남자 한테 술 따르는 거 좋아할 남자는 없잖습니까."
"어쨌든 그놈이 바로 2701호의 주인이겠군."
"지금 최현영의 통화 기록을 조회 중입니다. 곧 결과가 나올 겁니다."
"통신 기록 따위는 별로 쓸모없어. 프라이빗 톡메신저를 쓸 테니까. 결 국 핸드폰을 확보해야 해."
임탁정 검사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마터면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미궁으로 빠질 뻔한 사건을 살려냈다.
사망자의 위치 정보 조회를 하지 않았다면.
고급 오피스텔 방문 사실에 의심을 품지 않았다면,
그래서 오피스텔 CCTV를 조회해서 들어간 기록만 있고 나온 기록이 없다는 걸 몰랐다면,
이태원 호텔 CCTV에 찍힌 남자를 용의자로 오인해서 엉뚱한 추적질만 했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 2701호에서 사망자와 함께 진짜 마약을 한 이는 아예 수사의 눈 밖에서 벗어나 있었겠지.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당장은 화이트 스카치 수사가 급선 무이지만, 사람이 죽은 이 사건도 소홀히 할 수는 없다.
"최현영을 조사해야겠어. 2701호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야겠다."
"소환해서 물어볼까요?"
"굳이 그럴 필요는 없지. 너무 시간이 걸리고, 최현영이 잠적할 수도 있어. 오늘 내가 기습적으로 찾아가서 질문을 하는 게 나을 거 같아."
"알겠습니다."
이미 최현영의 집은 알고 있다. 오늘 새벽에 클럽을 닫고 집에 들어간 것도 확인했다.
그러나 출발 직전, 임탁정 검사는 날벼락 같은 소식을 들었다.
"검사님, 최현영이 잠적했습니다. 핸드폰도 꺼져 있어 추적이 안 됩니다."
"어떻게 된 거야? 그 여자가 갑자기 왜 잠수를 타?"
"정보가 샌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