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411화
103장 음지에서 피어난 (3)
화이트 스카치.
그러고 보니 그 비슷한 이름의 신종 마약이 유통된다는 이야기를 언뜻 들어본 것 같다.
말 그대로 수사하면서 언뜻 들어본 터라, 임탁정 검사의 뇌리에 깊이 박혀 있지는 않았었다.
그는 매서운 눈으로 흰 알약을 노려보다가 입을 열었다.
"어떤 마약인지 아시는 대로 설명 해주실 수 있습니까?"
"이거 1정에 150만 원이라고 하네요. 조금 비싸죠?"
조금 비싼 정도가 아니라, 웬만큼 돈 많은 사람이 아니면 엄두도 못 낼 가격이었다.
'이러니 내가 몰랐지.'
마약의 가격이 비싸다는 것은 그만큼 소비가 제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수사대에서 충분한 인지를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일단 유통이 많이 되고 문제를 많이 일으키는 마약 위주로 관심이 쏟아지게 되니까.
"환각 같은 효과는 그대로인데 중독이나 몸을 해치는 부작용이 없다고 하더군요."
"네?"
"급성 중독사나 마약 장기 복용으로 인해 건강을 해칠 일이 없는 마약이라고 합니다. 먹고 나서 다음 날 되면 안 먹은 것처럼 깔끔해진다는 거죠."
"그럼 마약이 아니지 않습니까?"
"기분 좋아지는 환각 작용 같은 것은 여전하니, 글쎄요, 이걸 어떻게 분류할지는 식약처 일이겠죠. 물론 주성분은 어디까지나 불법 마약입니다."
임탁정 검사가 고심에 찬 눈치이자 하수영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설명했다.
"비싼 마약입니다. 환각은 그대로 인데, 몸을 해하지 않아요. 그럼 누가 이 마약을 먹겠습니까? 그리고, 얼마나 자주 먹겠습니까?"
"……!"
그제야 임탁정의 눈빛에 흠칫하는 기색이 스쳤다.
"마약은 복용자의 몸을 해치는 것도 있지만 환각 상태에서 주변에 끼치는 피해가 더 큰 법입니다."
"내 몸이 망가질 우려가 없으니 더 열심히 먹을 수 있고요. 그렇지요?"
임탁정 검사는 마음이 다급해졌다.
지금 이렇게 한가하게 앉아서 술이나 먹을 때가 아니었다.
"저는 이만 일어나야겠습니다."
"이런, 아직 술도 제대로 안 마셨 는데 좀 더 계시지 않고요?"
"아닙니다. 이럴 시간이 없습니다. 좋은 제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임탁정 검사는 더 이상 말릴 새도 없이 일어났다.
황망해서 급히 배웅을 나간 조성만 검사가 잠시 후 다시 룸으로 돌아왔다.
"선배님이 저렇게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처럼 구는 것은 오랜만에 봅니다."
"지금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신종 마약이니까요."
하수영은 스테이크를 덩어리째 포크로 찍어서 뜯으면서 말을 이었다.
"알려지지 않았을 뿐, 아마 파보면 타락한 부잣집 자제들 사이에서 꽤나 사건·사고들이 있었을 겁니다."
조성만도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했다.
마약으로 자기가 다칠 일이 없으니, 당연히 복용량이 늘었을 테고 그로 인해 주변에서 피해를 보게 될 가능성이 높다.
환각 상태에서 운전대를 잡아 도로에 피해를 끼치거나, 다른 사람에게 상해를 입히거나, 기존의 마약들보다 주변에 야기하는 피해가 훨씬 커지는 것이다.
"그래도 가격이 높은 게 그나마 다 행입니다만, 만약 마약 가격이 떨어 지기라도 한다면 정말 큰일이군요. 화이트 스카치라고 했나요? 기존의 국내 마약들을 전부 이 마약이 대체 라도 하게 된다면……."
그런 미래를 상상하자 조성만은 오싹해졌다.
하지만 하수영이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보다 가격이 떨어질 일은 없습니다. 오히려 가격이 오르면 더 오를 겁니다."
"어떻게 그걸 장담하십니까? 혹시 더 아시는 게 있으십니까?"
"아직 말할 단계는 아니고, 아무튼 그렇습니다."
마약 1정을 만드는 데에는 최소 100병 이상의 엘릭서 드링크가 소요되는 것을 확인했다.
마약의 해로운 효과를 정화하기 위한 최솟값이었을 테니, 제조자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화이트 스카치의 가격은 엘릭서의 가격 변동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음식은 좀 드시고 가시지."
하수영은 테이블 위에 빼빼하게 자리 잡은 음식들을 보고 안타까워하면서 포크를 들었다.
"그런데 임 검사님이 이 사건을 끝 까지 파고들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마약 범죄에 대한 증오와 열의 하나만큼은 대단하신 분입니다."
"압니다. 다만 힘에 부칠 것 같아 서 하는 말입니다. 이거 공급책…… 아마 임 검사님의 상상 이상일 거거든요."
***
한바탕 아들 훈육을 마친 곽철태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렇게 입이 닳도록 말했는데, 기어이 마약에 손을 대다니.
'못난 놈.'
마약 공급은 곽철태가 운영하는 여러 가지 어둠의 사업 중 하나다.
유통을 운영하기에 오히려 누구보다 마약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다. 곽철태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마약에 손을 대본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화이트 스카치까지 손을 대다니.'
애초에 일탈을 즐기는 부유층을 목 표로 한 마약이니, 이미 마약에 손을 댄 아들로서는 당연히 그쪽으로도 닿았을 것이다.
찬 맥주를 마시면서 열기를 식히는데, 비서 정택양이 지친 안색으로 들어왔다.
"어떻게 됐냐?"
"죽은 여자애는 이태원 대형 클럽 근처 호텔에서 발견되게끔 해놓았습 니다."
"알리바이는 확실하지?"
"그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데, CCTV로 확인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겁니다. 다양한 외국인 손님도 많고요. 준용이가 엮일 가능성은 없습니다."
이태원 클럽에서 놀다가 누가 준 마약을 먹고 급성 중독사를 해서 사망한 것으로 보일 것이다.
"호텔 CCTV는?"
"죽은 여자애 옷을 입고 남녀 두 명이 체크인하게 했습니다. 여자애는 캐리어에 넣어서 운반했고요. 체크아웃 시에는 변장한 여자가 캐리어에 들어갔습니다."
CCTV를 아무리 돌려봐도, 남녀 둘이 입실했다가 남자 혼자만 퇴실 한 상황이다.
경찰은 남자를 수사하겠지만, 어디에서도 그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
곽철태는 그제야 만족했다.
"좋아, 택양이, 역시 깔끔하게 잘 처리했군."
"처리반이 워낙 실력이 좋아서요. 경찰은 어떻습니까?"
"내가 청장 만나서 술 한 잔 했다. 수사가 더 커질 일은 없을 거야. 어차피 흔한 마약 중독자 한 명이 죽은 것뿐이잖아."
"준용이는……."
"앞으로 집에서 한 발자국도 못 나가게 해. 한 발자국이라도 나갔다가는 택양이 자네부터 내가 족칠 거야. 알았어?"
"네, 회장님."
곽철태는 아들의 방이 있는 2층을 노려보면서 혀를 찼다.
"어디서 못된 것만 배워 가지고 말 이야. 하여튼 핏줄은 어쩔 수 없다니까."
***
임탁정 검사는 하수영으로부터 받은 마약의 성분 조사부터 의뢰했다.
성분 조사 결과는 곧 나왔다.
"R2D3 마약입니다. 2년 전부터 클 럽 중심으로 유통되던 흔한 마약입 니다."
"이게 R2D3 마약이라고? 그게 말 이 되나?"
임탁정은 어이가 없었다.
R2D3 마약이라면 자신도 잘 아는 마약이었다. 공급책 여럿을 줄줄이 잡아넣기도 했으니까.
애초에 R2D3는 이렇게 생기지 않았다.
"그건 빨간색이잖아? 하지만 이건 하얗다고."
"하지만 이건 R2D3 마약이 맞습니다. 색이 왜 이런지는 모르겠습니다."
"따로 색소를 입힌 건가?"
"그런 거면 색소 성분이 검출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건 순수한 R2D3 마약입니다."
"색소 성분이 검출이 안 됐단 말이지?"
"그리고 흰 색소를 입혀서 붉은색 을 지운다는 것은 엄연히 한계가 있습니다. 이렇게 깨끗한 흰색은 절대로 못 만듭니다."
"……."
임탁정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기존에 널리 유통되던 클럽 마약과 동일한 성분, 하지만 다른 색과 다른 효능을 가진 마약.
이런 게 비싼 가격에 은밀히 유통 되고 있었다니.
뭔가 심상치 않은 냄새가 난다.
'R2D3는 1정에 5만 원도 채 안 하는 싸구려 마약이다. 그런데 이건 150만 원.'
가격 차이가 이미 30배가 넘는다.
부유층 자제들 위주로 유통해도 짭짤하게 이익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그때 다른 수사관이 들어와서 보고 했다.
"검사님, 이태원 호텔에서 변사자 한 명이 나왔습니다. 만 19세 여성 이고 마약 급성 중독사로 추정됩니다. 호주머니에서 R2D3 몇 정이 나왔습니다."
"부검 신청 진행하고, CCTV하고 동선 자료 전부 확보해, 주변인들 알리바이도 모두 확인해서 진술받고."
"룸메이트와 통화를 했는데 왜 이태원 호텔에서 죽었는지 의문이랍니다."
"R2D3 소지한 거 보면 클럽에서 얻은 거 빨다가 심장 발작이라도 왔나 보지."
"룸메이트 말로는 평소 이태원 클럽은 물이 안 좋다며 얼씬도 안 하던 친구랍니다. 강남 클럽에서 주로 놀았답니다. 웬만해서는 강남 지역 을 벗어나려고 하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임탁정의 안색이 살짝 굳어졌다.
"이건 뭔가 냄새가 나는데? 강남경 찰서와 협조해서 한 번 제대로 파 봐."
"예, 검사님."
***
"프리덤."
-예, 마스터.
"넌 뭐 알고 있는 거 없냐?"
프리덤은 이용하기에 따라서 전 국민 감시제제수단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하수영은 최고관리자로서 법률에 위배되는 지시는 절대로 내리지 않는다.
물론 지금 같은 경우는 다르다.
프리덤이 획득한 개인정보는 최고 관리자라도 함부로 열람할 수 없지만, 마약범죄를 조사하기 위함이 아닌가.
-없습니다.
"하나도? 전혀 없어?"
-네, 전혀 없습니다.
"이놈들, 보통 아니게 철저하네."
-최종소비자를 접촉하는 말단 판매책들은 추적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수집된 정보가 없습니다.
"마약제조유통을 다룰 때는 철저히 폰을 끈다는 건가?"
성인 스마트폰 유저 중에서 프리덤을 쓰지 않는 이는 0.01%도 채 되지 않는다.
-잦은 전원 차단은 의심하기 좋은 패턴입니다. 하지만 그런 패턴은 감지되지 않았습니다.
"그럼 마약 쪽 업무 할 때는 자연스럽게 폰을 적당히 집에 둔다거나 하는 식이겠네. 충전 꽂아두고 방치 하면 네가 보기에도 자연스럽지."
-네, 24시간 추적될 가능성을 열어둔다는 전제하에서 나올 수 있는 대응 매뉴얼입니다.
"꽤 영리한데."
화이트 스카치 책임자는 프리덤의 개인 정보 수집 기능을 경계해서 이런 매뉴얼을 만들고, 아래 사람들에게 철저히 강요하고 있을 것이다.
"저번에 최원후 여당 대표가 비서관한테 살해당했을 때, 네가 당시 상황을 텍스트로 자세히 공개한 일 때문에 그렇겠지."
오직 텍스트이긴 하지만, 범인과 피해자가 주고받은 대화 기록을 통해 경찰은 살해 과정을 생생히 파악할 수 있었다.
마약 공급자는 아마 그 사건 때문에 프리덤을 경계하고 있음이 틀림 없다.
하지만 단순히 폰 전원을 끄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폰을 방치하는 방식을 선호할 줄이야.
"꽤 신중하네. 반인륜적이긴 해도, 돈 버는 거 하나는 잘하는 놈이군."
***
"검사님, 피해자 핸드폰이 발견되지 않는다고 보고했잖습니까?"
"그랬지. 최종 확인 지역이 이태원 클럽이라고 한 것 같은데, 거기서 끊겼다고."
피해자가 죽은 이태원 호텔 근처 대형 클럽.
피해자 폰의 행적은 거기에서 끊겼다. 아마 배터리가 방전된 이후 누군가가 주워갔거나 클럽에서 버렸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GPS 정보를 보면 피해자가 클럽 방문 직전에 삼성동의 드미온뷰 오피스텔에 있었던 것으로 나옵니다."
"거기 뭐 있나?"
"주거용 고급 오피스텔입니다. 룸 메이트 말로는 피해자가 그 오피스 텔을 자주 찾았답니다."
"뭐야, 거기 불법성매매 업소라도 있나? 거기에서 일했어?"
"대형평수 오피스텔이라서 그럴 가능성은 낮습니다. 입주자 대부분이 자가, 혹은 전세입자입니다."
임탁정은 눈살을 찌푸렸다.
단순한 마약 중독사가 아니라는 정 황이 점점 나오고 있다. 안 그래도 화이트 스카치 때문에 골치 아픈데.
"드미온뷰 CCTV를 밤새도록 뒤져서 사망자를 발견했습니다. 사망 전 날, 2701호에 들어간 것을 확인했습니다. GPS 정보와 일치합니다."
"……설마 나온 기록은 없었나?"
"네, 없습니다. 그리고 해당 오피스텔 소유주는 어떤 부동산 법인이었 습니다."
"법인 소유주 빨리 찾아봐."
"이미 찾았습니다. 최현영이라는 20대 여자입니다."
"뭐야, 부잣집 딸내미인가?"
"양친은 가난합니다. 그리고 최현 영은 청담동 핀익스라는 클럽 상급 관리자입니다."
임탁정은 저도 모르게 상큼한 미소 를 지었다.
"그러니까 그 비싼 집이 차명 부동 산이라는 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