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410화
103장 음지에서 피어난(2)
"아드님이 사고 쳤어요?"
홍윤주가 걱정스럽게 묻자 곽철태는 언제 얼굴을 찌푸렸냐는 듯 밝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드님은 무슨 아드님. 준용이라고 불러."
"그래도요."
"아무튼 그놈이 사고 쳐서 빨리 가봐야 할 거 같아."
"지금 바로 가시게요?"
"일단 전화 좀 돌려야겠어."
곽철태가 내내 전화기를 귀에서 떼지 않았기 때문이다.
"네, 청장님. 잘 부탁드립니다. 이런 일로 누를 끼쳐 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준용이는 아직도 헤롱헤롱하지?
집에 던져놓고 내가 가기 전까지 절대 나오지 못하게 해. 현관문 밖, 아니 방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게 해."
"약 흔적 싹 없애고, 기집애는…… 야, 미쳤냐? 요즘 세상에 어디 잘못 묻었다가 찍히기라도 하면 답 없다. 적당히 클럽 근처 길거리에라도 던져 나. 이태원 쪽이 좋겠네."
"준용이하고 연관된 흔적만 지우면 돼. 헤픈 어린 기집애 하나가 어디서 마약 주워 먹고 죽든 말든 무슨 상관이냐."
홍윤주는 통화 내용을 통해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혀 듣지 않은 듯이 모른 척했다.
통화가 끝나자마자 곽철태는 곧바로 일어나서 돌아갔다.
창문을 통해 떠나는 차량을 배웅한 홍윤주는 팔짱을 낀 채 피식거렸다.
"그러게 무자식이 상팔자라니까. 자식 하나 있는 게 아주 웬수네, 웬수."
어느덧 점심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홍윤주는 화장을 하며 외출 준비를 했다.
산뜻한 복장을 갖춘 그녀는 직접 차를 운전해서 의왕시에 있는 서울 구치소로 향했다.
면회 접수 신청을 하고 면회실에서 기다리자 잠시 후 백호열이 나타났다.
"잘 있었어요?"
"요즘에 왜 이렇게 뜸해?"
"클럽 운영 때문에 바빴어요."
"이제는 클럽까지 손댄 거야?"
"네, 하던 것만으로는 장사가 잘 안 되더라고요. 원래 있던 클럽 하나 지분 인수해서 참여했어요."
"클럽은 룸하고 좀 달라. 룸 마인드로 하다가는 이것저것 뒤통수 맞는 게 있을 거야."
"도와주는 사람도 있고, 여럿이서 하는 거니까 괜찮아요."
"도와주는 사람? 남자?"
"네, 독립한 애 스폰서예요. 그 친구가 소개해 줬어요."
"흐음……."
백호열이 팔짱을 끼며 의미심장한 눈으로 훌자, 홍윤주는 피식거렸다.
"걔 질투심과 독점욕이 얼마나 큰데, 잘못 건드렸다가는 나 칼 맞아요."
"그래도 남자 새끼들이라는 것은 믿을 게 못 돼. 자나 깨나 조심해."
"그건 내가 더 잘 알죠. 걱정 말아요."
면회 일정을 마치고 홍윤주는 집으로 복귀했다.
백호열은 이제 단물 쓴 물 다 빠진 사람이다. 출소하더라도 원스타엔터테인먼트에 그가 돌아올 자리는 없다.
그에게 남은 것은 경영권을 위협할 수도 없는, 알량한 지분 조금뿐.
이미 다른 남자를 찾은 홍윤주가 꼬박꼬박 그를 면회 오는 것은 옛정때문이 아니다.
혹시나 그가 숨겨둔 재산 중에서 더 얻어먹을 게 없나 싶어서 현모양처 노릇을 하는 것이다.
본처도 면회를 거의 오지 않는다고 했으니, 지극정성인 모습을 보여주면 뭐가 나오지 않겠는가?
***
-오늘 제가 술 한 잔 사겠습니다. 일 끝나고 건너오시죠.
조성만 검사는 하수영의 연락을 받고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업무가 손에 잡히지 않은 채 둥둥 뜬 하루를 보낸 그는 퇴근하자마자 부리나케 청담동으로 달려갔다.
'클럽?'
핀익스가 뭔가 했더니, 클럽 이름이었다.
입장을 위해 길게 서 있는 줄을 보니, 조성만은 괜히 주눅이 들었다.
한껏 화려하고 시원한 복장을 한 청춘남녀들이 뿜어내는 에너지 앞에서, 책상물림만 한 샌님은 기가 빨린다.
'바로 들어오면 된다고 하셨지.'
그 말을 생각해낸 조성만은 줄을 피해서 출입문을 통과하려 했다.
출입문 좌우를 지키던 가드가 그를 제지했다.
"아직 입장 시간 아닙니다. 가서 줄 서세요."
"일행이 안에서 먼저 기다린다고 했는데."
"아, 그럼 들어가시죠."
돌연 가드들은 태도를 바꿔서 통과 시켜 주었다.
계단을 다 내려가기도 전에 웨이터 한 명이 나타나서 황급히 따라붙었다.
"반갑습니다, 형님.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아부에 가까운 공손한 태도에 조성만은 기분이 좋아졌다.
하수영은 홀이 잘 내려다보이는 2층 넓은 룸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술은 기본 세팅이 되어 있지만, 안주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식사는 하셨나요?"
"아직입니다. 퇴근하자마자 바로 왔습니다."
"바쁘신가 보네요. 시간이 몇 시인데 이제야 퇴근하시다니."
"하하, 강력계 일이 다 그렇죠. 배고픕니다."
"뭐 땡기는 종류가 있으신가요?"
"글쎄요, 고기나 한식이면 다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요?"
하수영은 스마트폰을 들고 어딘가로 연락을 한 뒤 폰을 내려놓았다.
"적당히 배달시켰습니다. 시간은 좀 걸릴 겁니다."
"배달이요? 여기 외부 음식이 반입됩니까?"
"이런 거는 돈만 주면 됩니다. 맷값 주고 때리겠다는 것도 아니고 자릿값 주고 밥 먹겠다는데."
조성만은 쉽게 납득했다.
하수영 정도 되는 VIP라면 뭘 하든지 간에 프리패스가 아닐까??
VIP가 주점에서 자기 입맛에 맞는 안주가 없어서 다른 데서 배달시킬 수도 있지.
"잔은 술로 한 번 소독해서 쓰세요."
"네?"
"이런 곳은 음식 위생이 안 좋다고 하더군요. 세척도 대충하고, 밝은 데서 보면 말라붙은 음식 찌꺼기가 붙어 있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허얼!"
"그래서 따로 배달시킨 겁니다."
조성만은 얼른 빈 잔을 양주로 한번 헹군 후에 공손히 두 손으로 술을 받았다.
어느덧 입장 시간이 되었는지 음악과 조명이 작동하고, 젊은 여자들이 우르르 들어서기 시작했다.
"요즘 검사일은 어떻습니까?"
조성만은 숨을 고른 후, 자신이 최근에 맡았던 비교적 어려운 사건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물론 상대가 지루하지 않도록 최대한 간결하고 이해하기 쉽게, 그리고 흥미를 가질 만한 사건들을 골랐다.
나 이렇게 국가를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어요! 라고 열심히 어필하는 것이다.
"부지런하시네요. 보통 검사하면 권위적이고, 파벌과 줄서기, 그런 이미지가 많이 떠오르는데."
"제가 배치된 부서는 안 그렇습니다."
"혹시 마약 수사 쪽에 친한 검사가 있습니까?"
조성만은 안색을 바로 잡았다.
하수영이 그저 술이나 먹자고 만날사람은 아니지만, 자신이 생각했던 이유와는 전혀 달랐다.
마약이라니.
하지만 그는 이유는 묻지 않고 대답부터 했다.
"원하신다면 지금 당장 소개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
"혹시 지금 만나자고 하면 폐가 될까요?"
"아닙니다. 아주 좋아할 겁니다."
"정말 열렬히 마약 수사를 파고드는 검사를 원합니다."
"마음에 드실 겁니다. 어렸을 때 친누나가 마약 중독으로 사망한 불우한 가정사를 가진 친구입니다."
"저런."
"그래서 검사로 임관하자마자 마약수사 외길만 파고 온 사람입니다."
"기수는 어떻게 되나요?"
"저보다 3기수 위입니다. 6년 차입니다."
"그 정도면 짬밥과 열정의 조화가 적절하겠네요. 좋습니다. 돈 문제는 어떻습니까?"
"깔끔한 것으로 압니다. 오히려 그게 회장님께 문제가 될 수도……."
돈 문제로 깔끔하다. 눈에 불을 켜고 스폰서를 찾는 검사들과 달리, 돈 많은 부자가 부른다고 쪼르르 달려올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중요한 제보가 있다고 전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잠시 통화 좀………."
"네, 다녀오세요."
약 20분 후, 조성만은 살짝 벌게진 얼굴로 돌아왔다.
아무래도 좀처럼 설득이 되지 않아서 상대와 전화로 한바탕 열을 올린 모양이다.
"지금 바로 출발했습니다."
"그분은 어떤 음식을 좋아합니까?"
"고기면 될 거 같습니다."
"추가 주문을 할 필요는 없겠군요."
얼마 후, 조성만이 연락을 받고 마중을 나갔다.
잠시 후 40대 정도 되어 보이는 날카로운 인상의 남자가 그를 따라 들어왔다.
자리에 털썩 앉은 그는 시끄러운 음악이 거슬리는 듯 눈살을 찌푸린채 입을 열었다.
"청담에서 알아주는 부동산 재벌께서 저 같은 평검사한테 무슨 제보를 하실 게 있으신 겁니까?"
"그전에 통성명부터 하시죠. 하수영입니다."
"임탁정입니다."
하수영은 미소를 띤 채 그에게 술을 권했고, 그는 내키지 않아 하면서도 술을 받았다.
그리고 드디어 배달이 왔다.
"회장님,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늦은 시간에 고생하셨습니다."
남녀 6명이 줄을 지어서 카트를 끌고 룸에 들어서자 두 검사는 눈을 크게 뜨며 놀라워했다.
배달자들은 곧바로 테이블 위에 20여 가지가 넘는 메인디시급 요리들을 늘어놓았다. 보온 기능이 있는 카트에 담은 덕분에, 요리는 갓 만든 것처럼 모락모락 김이 피어올랐다.
서해호텔 주방장, 김효산은 세팅을 마친 후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부족하신 게 있으면 또 연락 주십시오. 오늘 레스토랑 영업은 밤새도록 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음식값과 팁은 계좌로 넣었어요."
"대단히 감사합니다."
6명의 남녀가 빠져나가자 두 검사는 반쯤 넋이 나간 채 음식들을 빤히 둘러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레스토랑에 배달을 시키신 겁니까?"
"서해호텔 한식 레스토랑에 주문했어요. 방금 말씀하신 분은 거기 총 주방장이시고요."
"이 시간이면 호텔 레스토랑은 다 문을 닫지 않습니까?"
"단골 개인 주문은 받아주더라고요."
"……."
"……"
조성만은 새삼 VIP의 세계란 어떤 것인지 실감했다.
자정이 넘은 시각에 문 닫은 호텔레스토랑에서 클럽 룸으로 요리 배달을 시킬 줄이야.
'폐점한 백화점에서 프라이빗 쇼핑을 하는 것보다 이런 게 더 플렉스 아닌가?'
"자, 드시죠."
비싼 술과 고급 음식이 입에 들어가자 임탁정 검사의 눈매도 조금씩 풀어졌다.
"그런데 마약 제보를 할 게 있으시다고요?"
"네. 아마 임 검사님도 아직 인지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되네요."
"오해입니다. 저는 국내에서 활동하는 굵직한 유통 라인을 모두 파악하고, 조사 중입니다. 다만 잔챙이는 잡아들이지 않을 뿐이죠."
"그런가요?"
"네, 몸통이나 머리를 캐치할 때까지 그물을 깔면서 천천히 기다릴 뿐입니다. 원래 마약 수사는 일망타진하지 않고 잔챙이만 잡아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까요."
"말씀하시는 걸 보면 아직 전혀 인지하지 못한 게 확실하네요."
"그게 무슨……."
"오늘 한 번도 왜 하필 여기로 불렀냐는 질문이 없으셨어요. 그런 낌새도 전혀 없었고요."
그제야 임탁정 검사의 안색이 딱딱해졌고, 조성만도 포크질을 멈췄다.
"원래 클럽은 마약이 자주 유통되는 공간이긴 합니다."
"이 클럽은 어떻습니까?"
"다른 클럽과 다를 바 없이 소매상들이나 잔챙이 브로커들이 은밀히 활동을 하고 있을 겁니다."
하수영은 피식거리며 잔을 비웠다.
임탁정 검사는 그의 빈 잔을 노려볼 듯이 주시하다가 병을 들어 두 손으로 공손히 술을 따랐다.
하수영이 손가락을 높이 들어 튕기자, 내내 주시하던 웨이터가 얼른 달려왔다.
"화이트 스카치로 세 잔만 갖다줘."
"회장님? 술은 아직 많이 남았습니다만……."
"네, 얼른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웨이터는 얼른 물러났고, 하수영은 키폴백을 열어 현금뭉치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고, 두 검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잠시 후 묘령의 여자 한 명이 나타나서 작은 종이곽을 내려놓고, 현금 뭉치를 챙겨서 나갔다.
임탁정 검사는 뚫어져라 종이곽을 노려보고 있었다.
하수영은 보란 듯이 안에 담긴 흰알약 3정을 꺼내 눈앞에 흔들어 보였다.
"제보 증거물입니다. 가져가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