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408화
102장 핀익스의 비밀(5)
정서희는 황당했다.
돈에 추적 장치를 달았다니? 이게 무슨 말이야?
그 얇은 지폐 어디에 달 데가 있다고?
"지페에 그런 걸 달면 눈에 띄지 않나요? 아니, 그런 걸 달 수나 있어요?"
"아, 눈에 띄지 않는 아주 작은 소형 추적 집입니다. CIA 정도 되지 않으면 탐지할 수도 없고요, 일정시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분해돼서 없어져요. 안전하죠."
"……그런 걸 대체 어디서 구했어요?"
"그건 비밀입니다."
하수영은 더 이상은 설명을 회피했다.
전파를 발산하는 초소형 마이크로 추적집은 깨알보다 작아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른다. 어쩌다 눈에 띄어도 먼지가 붙은 것으로 오인할 것이다.
접착제에는 유효시간이 있어, 2주가 지나면 지폐에서 떨어지고 배터리도 방전돼서 자연스럽게 버려진다.
이번에 퀸 스텔리온 추가 구매를 하면서 록히드마틴으로부터 증정품으로 받은 것인데, 이렇게 유용하게 쓰일 줄이야.
-도난이 우려되는 귀중품에 붙여 두시고 상시 무선충전하시면 잃어버릴 염려가 적을 겁니다.
코즈펠트 이사는 도난방지용으로 선물한 증정품이 이런 식으로 쓰일줄은 몰랐을 것이다.
"전부는 아니고, 마약 구매할 때마다 낸 돈에서 5개를 골라서 추적칩을 붙였죠. 그 많은 지폐에 어떻게 일일이 다 붙입니까."
"아, 그렇군요."
"보니까 다른 곳에서 쓴 돈들은 지금 뭉쳐서 열심히 돌아다니고 있어요. 아마 유통책이 가지고 다녀서 그렇겠죠."
"그런데 여기서 낸 돈만 지금 이동하지 않는다는 거죠?"
"네, 그게 조금 이상하네요. 다른 클럽에서는 돈이 곧바로 빠져나가서 움직였는데."
정서희의 눈빛이 의미심장하게 변해서 핀익스 출입구를 바라보았다.
두 명의 덩치 좋은 가드가 선 출입문 사이로 쉴 새 없이 드나드는 사람들.
저 안에 과연 무슨 비밀이 있을까.
"핀익스가 본진이라는 말이 틀리진 않나 봐요?"
"글쎄요, 최종 본진은 아니고 중간 본진은 될 수 있겠죠. 애초에 화이트 스카치는 일개 클럽 영업주 따위가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엘릭서 드링크를 농축해서 섞은 거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럼 만드는 게 비교적 쉽지 않나요?"
하수영은 픽 웃고는, 화이트 스카치 1정을 꺼내서 보란 듯이 들어 보이며 설명했다.
"이거 1정을 만드는 데 엘릭서 드링크가 최소 100병 이상은 들어갔을 겁니다."
"……100병이나."
"적절한 권장 복용량은 일주일에 1병이에요. 물론 매일 먹는다고 해가 될 건 없습니다만, 너무 지출이 크니까요. 100병이면 2년 치가 조금 못 되는 양이죠."
엘릭서 드링크의 1병의 양은 400다. 작은 병맥주 1병 사이즈인 셈이다.
손톱보다 작은 저 알약 1정에 100병이나 되는 양을 때려 넣었다니.
"그냥 큰 용기에 엘릭서 드링크를 붓고 마약을 넣어서 정제한다고 그 안에 온전히 농축되지 않아요. 시간을 들여서 정성스럽게 약이 엘릭서 드링크의 건강성분을 흡수하도록 했겠죠. 일정 이상의 의약 제조 설비를 갖춰야 가능한 작업입니다."
"그 정도면 단순한 유통책이 아닌데요. 마약 제조설비까지 갖추고 있다는 말이잖아요?"
국내에서 마약을 제조한다고?
해외에서 들여온 대용량의 마약 봉지를 소분해서 정제하는 작업이라면 모를까, 하수영의 말을 들어보니 거의 제조전문가 수준이 아닌가.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 그럼 애꿎은 프라임웰빙이 피해를 보게 될까요?"
"제가 피해볼 건 없죠. 마약 부작용까지 제거하는 몸에 좋은 성분이라는 것만 입증되는 셈이니까요."
"하지만 대중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거예요. 냉정하게 분리해서 바라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요. 묶어서 엘릭서 드링크까지 위험한 게 아닌가 착각할 수 있어요."
"그럼 프라임웰빙도 언플하면 됩니다. 마케미야 대표님이 이 정도에 발목 잡히실 분은 아니죠."
"참, 아저씨께는 말씀드렸나요?"
"아직입니다. 확실해지기 전까지는 말씀드리지 않으려고요."
정서희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설마 프라임웰빙 내부에 가담자가 있을 가능성도 생각하시는 건가요?"
"염두에는 두지만, 가능성은 매우 낮을 겁니다. 이름을 바꿔가면서 대량으로 현금 구매하는 개인 구매자가 있어요. 아마 그쪽이 가능성이 높아요."
"다행이에요."
"아무튼 오늘 제가 푼 현금이 어디로 모이는지 이제 지켜보는 것만 남았습니다."
슬슬 마무리되어가는 분위기이자 정서희가 못내 서운한 듯이 말했다.
"그럼 클럽 탐방은 이제 끝인가요?"
"일단 강남 클럽은 다 돌지 않았나요?"
"그래도 뭔가 아쉬운데, 일만 하다가 하는 느낌이라서요."
하수영은 피식 웃었다.
"그럼 조금만 놀다 갈까요? 놈들 안심도 시킬 겸."
하수영은 클럽 탐방을 하는 내내 약간의 외모 변화를 준 상태를 유지했다.
눈썹을 더 크고 짙게 그리고, 화장으로 피부 톤을 평소와 다르게 만들었다. 머리 모양도 평소와 다르게 꾸몄다.
평소 교류하던 사람이라면 알아볼수 있겠지만, 사진으로만 자신을 접한 이라면 알아보기가 힘들게끔.
정서희의 경우는 진한 화장에 과감한 옷차림을 한 터라, 평소에 가까이에서 모시던 회사 부하들도 그녀가 입을 열기 전까지는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아까 방문했던 역삼동의 대형 클럽으로 돌아온 둘은 다시 룸을 잡았다.
수백만 원이 넘는 양주를 콜라 한 병 주문하듯이 대수롭지 않게 시키고는, 정서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빠, 나 좀 흔들다가 올게."
혹시라도 몰래 관찰하는 시선을 대비한 연기에, 하수영도 장단을 맞춰주었다.
"엄한 남자 따라가거나 하지 마라."
"오빠보다 돈 많은 남자면 따라갈수도?"
"아랍 왕족이 뭐 볼일 있다고 여기에 오겠냐?"
정서희는 피식 웃음을 남기고는 홀을 향해 또각또각 이동했다.
하수영은 빈 잔에 술을 따르고 홀짝이면서, 1층 홀에서 정신없이 춤을 추는 젊은 남녀들을 내려다보았다.
홀쪽 룸벽 전체가 유리로 되어 있어, 클럽 전체를 관망하기에는 좋은 위치였다. 괜히 비싼 게 아니었다.
"청춘이구나, 청춘이야."
곳곳에서 엘릭서의 기운이 희미하게 느껴진다.
화이트 스카치는 아닌 거 같고, 그것을 복용한 이들이 더러 있는 것 같다.
오늘 강남 클럽을 전부 탐방하면서 한 번도 이 기운을 느끼지 않은 적이 없었다.
화이트 스카치가 이미 강남 클럽전역에 완전히 파고들었다는 뜻이다.
"잠깐 앉아도 돼요?"
갑작스러운 여자 목소리에 하수영은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룸에 들어온 시원스러운 복장을 한 젊은 여자 둘이 배시시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왜 혼자 있어요?"
"일행 있어. 잠깐 춤추러 갔어."
"여자? 남자?"
"여자. 온 김에 한 잔씩 마시고가."
하수영은 병을 들어 흔들었고, 두 여자는 잠시 서로를 마주보다가 잽싸게 앉아서 잔을 내밀었다.
"여자면, 애인? 예뻐요?"
"마셨으면 일어나. 얼른."
"우리랑 같이 놀아요, 오빠."
하수영은 대답 대신 술잔을 입에댄 채 두 여자를 지그시 노려보았다.
무언의 압박이 쏘아지자 두 여자는 저도 모르게 홈칫해서 어깨를 가늘게 떨었다.
"특별히 막잔이다. 이거 마시고 일어나."
하수영이 다시 잔을 따라주자, 두 여자는 마실 생각도 하지 못한 채 허둥지둥 일어나서 도망치듯이 나가버렸다.
"어디서 수작질이야."
자신을 지켜보는 마약 공급책들이 슬쩍 떠보기 위해 보낸,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들이 분명했다.
아까 그놈은 10억 원어치나 팔아 놓고도 감히 VIP를 감시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손님인지, 뭐하는 사람인지, 재력은 어느 정도인지, 지금쯤 궁금해서 미치려고 할 것이다.
하수영이 철수하지 않은 것은 정서 희의 아쉬움을 달래주는 것도 있지만, 공급책한테 자신이 순수한 '소비자'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도 있었다.
"오우, 우리 정 부사장님. 인기 많으시네."
하수영은 작게 키득거렸다.
주변에서 남자들이 자꾸만 치근덕거리면서 정서희를 귀찮게 하고 있었다.
투박하게 쳐내던 그녀는 결국 짜증을 가득 품은 채 다시 2층 룸으로 돌아왔다.
"스트레스 좀 풀려고 하는데, 레스만 더 쌓이네요. 왜 이렇게 귀찮게 하는지."
"매력적이시잖아요. 여기는 클럽이고요."
"저런 사람들 보기 좋으라고 입은 옷 아닌데요."
하수영은 소리 없는 웃음만 지은 채 시선을 회피했고, 정서희는 샐쭉해서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아까 들어온 여자 둘, 누구예요?"
"술 동냥 하러 온 어린양입니다. 각 한 잔씩 줘서 보냈어요."
"아닌데. 두 번 주는 거 봤는데."
"안 가려고 해서 한 잔 더 줬는데, 막잔은 안 먹고 그냥 가더라고요. 술이 안 맞았나 봅니다."
"진짜 술 동냥이에요, 아니면 정찰병이에요?"
"본인들은 술 동냥이라고 생각하는 정찰병이겠죠. 아까 그 10억 친구, 아마 지금도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겁니다."
어느덧 새벽 4시가 넘어갔다.
정서희는 더 이상 홀에 나가지 않고, 하수영과 룸에서 술잔만 기울였다.
"이동했습니다."
"뭐가요? 돈이요?"
"네, 핀익스 말고 다른 곳에서 썼던 돈들이 모두 한곳으로 집결했네요. 어디일 것 같습니까?"
"핀익스겠죠?"
하수영은 침묵으로 끄덕이며, 마지막 남은 술을 털어버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만하면 좋은 VIP라고 충분히 어필했습니다. 이만 일어납시다."
"이제 어디로 가요?"
"당연히 호텔로 가야죠."
"어머."
"마지막까지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수도 있어서요. 유종의 미를 거둬야죠."
정서희는 피식 웃으며 일어나서 보란 듯이 팔짱을 끼었다.
프라임유통 직원이 클럽 입구로 제 네시스 EQ 리무진을 끌고 나타났고, 얼른 뒷문을 열어주었다.
두 사람을 태운 차량은 가까운 5성급 호텔로 향했고, 검은 승용차 한 대가 조용히 그 뒤를 따랐다.
물론 두 사람은 아무 일도 없었다.
호텔을 향한 것 자체가 쇼였으니.
룸을 잡고 간단히 음식을 먹으면서 밀린 사업 이야기만 하면서 아침을 맞이했을 뿐이다.
"술값으로 600만 원 좀 넘게 나왔고, 모두 현금으로 냈습니다. 현금을 정말 엄청 많이 갖고 다니는 거 같았습니다."
"나한테 낸 거 10억, 다른 데서 낸 거 다 합쳐서 1억 이상이야. 현금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많겠지. 차량이 제네시스 EQ 리무진이라고?"
"네, 운전기사도 있더군요."
"강남경찰서 서기홍 형사한테 의뢰해서 차주가 누구인지 한 번 조회해 봐. 1억 넘는 국산차 타고 다니는 사람이면 진짜 알짜배기 부자야. 잘하면 두고두고 좋은 고객으로 남을 수 있겠어."
"정치인 2세일까요?"
"그럴 가능성이 높지만, 미리 단정짓지는 말자고, 호텔로 들어간 건 확실하지?"
"네, 벨보이가 짐 챙겨서 안내하는 것까지 확인하고 돌아왔습니다. 어우, 현찰 다발 그득한 캐리어를 벨보이한테 아무렇지 않게 툭 맡기는거 보고 제가 다 심장 필렸네요."
김광수, 하수영한테 10억 원어치 화이트 스카치를 판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민했다.
처음에는 강남 클럽을 돌아다니면서 화이트 스카치를 사 모으는 놈이 있다기에 바짝 긴장했다.
광역수사대로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강남의 밤거리를 주름잡는 다른 조직에서 나온 탐사인가 싶어서 숨을 죽였던 것이다.
하지만 새벽까지 관찰한 바에 의하면, 아무래도 그냥 유흥을 즐기는 돈 많은 부잣집 2세 같아 보인다.
'그러기에는 눈빛이나 태도가 너무…….'
"아, 형님, 사장님 오셨습니다."
"연락도 안 주시고 갑자기?"
김광수는 얼른 담배를 끄고 벌떡 일어났고, 동시에 룸 출입문이 열리면서 한 여자가 들어섰다.
퇴폐적인 눈빛이 인상적인, 늘씬한 몸매의 미인.
붉은 드레스로 몸을 감싼 그는 희뿌연 담배 연기를 보고도 눈살을 찌푸리지 않은 채, 정중히 목례하는 김광수를 보고 입을 열었다.
"김 실장, 오늘 꽤 많이 팔았다며?"
"네, 큰손 하나 문 거 같습니다."
"큰손이 확실해? 광수대나 다른 조직에서 나온 건 아니고?"
"새벽까지 지켜봤는데 아닌 거 같습니다."
"아까 보고한 건 그럼 뭐야? 김실장 오른팔이 심하게 당했다면서?"
"아무래도 그 녀석이 오해해서 큰 손의 심기를 건드린 거 같습니다.
다행히 잘 수습했습니다. 진짜 큰손입니다. 오늘 하루 구매한 양만 다 합쳐서 11억 원어치가 넘습니다."
한 개인의 구매량으로는 엄청난 돈이다.
화이트 스카치 유통을 시작한 이후 단 한 번도 없었던 신기록.
하지만 여사장, 홍윤주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채 태연히 자리에 앉았다.
"오늘 거 정산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