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405화
102장 핀익스의 비밀(2)
어느덧 여자가 비틀거리며 일어나기 시작했다.
며칠 정도는 꼬박 정신없이 뻗어 있을 것 같았는데, 머리를 흔들며 정신을 차렸다. 눈빛도 조금씩 살아났다.
여자가 정신을 차리자 남자친구의 얼굴도 밝아졌고, 분위기도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옆에서 정서희가 옆구리를 쿡 찔렀다.
"수영 씨, 어서 가요."
노려보듯이 여자를 바라보던 하수영은 끄덕이고는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
농협 회장 선거 전초전은 치열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회장 후보로 출마한 조만식 영등포농협 조합장은 재난 피해를 입은 농가 복구를 위한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의 자금을 언제, 어떻게, 무엇을 위해서 집행할 것인지를 간략화해서 선거 운동의 무기로 삼았다.
"농협의 금고 바닥을 긁는 한이 있더라도 전국의 모든 농가를 살리겠습니다! 왜냐하면 농민들이야말로 농협의 진정한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농민 없이는 농협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조만식 조합장은 자신의 선거 공약을 열심히 떠벌리고 다니는 한편, 수영농장과의 친분도 여과 없이 과시했다.
"수영농장이 팔 걷고 나서준 덕분에 해외산 쌀 수입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수영농장은 쌀 대금 11조 2,500억 원을 우리 농협에 3년간 무상으로 예치하기로 했습니다! 그 운용 수익은 모두 농가 복구지원을 위해 쓰일 예정입니다!"
"이 모든 이 조만식이가 해냈습니다! 조합원 여러분들, 대의원 여러분들, 이 조만식이를 밀어주십시오! 누구보다 뜨거운 가슴으로 농민을 위한 정책을 펼치겠습니다!"
조만식은 농협회장 선거에서 꽤나 선전하고 있었다.
확실하다고까지는 말할 수 없지만, 이대로만 가면 기적을 만들어낼지도 몰랐다.
신광룡 농협은행장과 조만식 조합장은 다시 하수영을 찾아왔다.
쌀 매매 대금을 3년간 무상으로 은행에 예치하며, 그 금융수익은 농가 지원을 위해 사용한다는 계약서에 서명을 하기 위해서였다.
은행장과 하수영이 서로 나란히 마주 보고 서명을 하고, 중심에서 조만식 조합장이 활짝 웃는 자세로 사진이 촬영되었다.
선거 운동 팜플렛에 들어갈 사진이었다. 조합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는 이만한 아이템도 없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앞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저야말로 농민으로서 같은 다른 농민들 잘 부탁합니다. 요즘 여기저기서 힘든 소리밖에 들리지 않으니 저도 마음이 영 좋지가 않네요."
"그래도 사장님이 계셔서 우리나라 농가에는 아직 희망이 남아 있습니다. 만약 사장님이 안 계셨더라면 이번 재난 때문에 농민들의 마음이 완전히 무너졌을 겁니다."
조만식 조합장이 은근히 끼어들었다.
"그런데 사장님, 혹시 조합원 가입은 아직 어떻게 고려하고 계신지……?"
"저는 조합원 혜택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제가 받아야 하는 만큼 다른 영세농가에 베풀어 주십시오."
조합원이 되면 비료 등 농시설을 싸게 구매한다든가 하는 다양한 혜택이 있다.
그런 작은 혜택까지도 아쉬워서 쩔쩔매는 가난한 농가가 생각보다 많다. 물론 유한 농가도 은근히 있지만…….
"그래도 이름만이라도 올리시면 조합원들 사기 진작에도 크게 도움이 될 거 같은데요."
"저는 어느 단체든 주인 할 게 아닌 이상은 이름을 잘 안 올리거든요."
하수영이 웃으면서 말하자 조만식은 얼른 입을 다물었다.
완곡하지만 명백한 귀찮음이 느껴진 것이다.
"자, 두 분도 불금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아, 그러고 보니 벌써 금요일이군요. 바쁘실 텐데 시간 뺏어서 죄송했습니다."
신광룡은 서둘러 짐을 챙기며 일어나다가 문득 물었다.
"사장님, 괜찮으시면 제가 저녁 식사라도 대접해도 되겠습니까?"
"괜찮습니다. 선약이 있어요. 밥 먹고 계속 달려야 하거든요. 불타는 금요일이잖아요."
미팅을 끝낸 하수영은 유통 직원을 불러서 제네시스 EQ 차량을 가져오게 했다.
뒷좌석에 타서 이동하던 중, 마케미야 회장으로부터 톡 메시지가 도착했다.
[하수영 사장, 전에 요청한 엘릭서 드링크 판매 자료는 보냈습니다. 확인해 보십시오.]
요청한 자료가 드디어 도착을 한 것이다.
워낙 데이터가 방대하다 보니, 하수영이 보기 좋게 정리하는 데 시간이 꽤 걸렸을 것이다.
"직원들이 이거 감사하는 거 아니냐고 긴장 좀 했겠네."
하수영은 피식거리면서 자료를 확인했다.
어느덧 중간 경유지에 도착했고, 기다리고 있던 정서희가 차량 뒷좌석에 올랐다.
이미 그녀는 회사 경영진이 아닌, 불금을 달리기 위한 청춘 복장으로 갈아입은 채였다.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조금 민망할 수도 있는.
"뭐 보시는 거예요?"
"엘릭서 드링크 판매 자료 봅니다."
"아, 엘릭서 드링크, 마케미야 삼촌말로는 엄청 잘나가고 있다면서요? 지금 일본에서는 엘릭서 드링크가 건강식품 중에서 압도적인 1위라고 하던데요."
"잘나가고 있는 건 맞는 거 같습니다. 악용하는 사람들도 있는 걸 보면요."
"악용이요?"
"몇 가지 의심되는 구입처 루트가 보이네요."
하수영은 판매자료 중에서 어느 부분에 손가락을 짚으면서 말을 이었다.
"여기 보면 5억 원어치를 한꺼번에 구매한 곳이 있잖아요. 5억이면 5만 개입니다."
"도매점 입장에서 5억 매입이면 그렇게 큰 건 아니지 않아요?"
"그런데 개인이네요."
"개인이요?"
정서희가 그 말에 순간 멈칫했고, 하수영은 말을 이었다.
"세금계산서를 발행하지 않았고, 현금영수증 신청을 하지도 않았어요. 전액 현금으로 구매했습니다."
"혹시 밀수일까요?"
해외 밀수업자가 정부의 눈을 피해서 몰래 들여오기 위해 움직인 것인가? 정서희는 가장 먼저 그 생각부터 떠올랐다.
"그리고 이게 전부가 아니에요. 5억 이상의 개인 현금 구매 건이 20건이 넘습니다."
"구매자 이름은 전부 다 다르죠?"
"당연히 다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네요."
"밀수가 맞는 거 같아요."
정서희는 장담하듯이 말했지만, 하수영은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는듯이 고개를 저었다.
"정부 허가까지 받은 건강보조식품을 굳이 밀수까지 해가면서 해외로 가져갈 이유가 없죠. 정식으로 수입하면 그만인데요."
"자국 내에서 떳떳하게 팔지 못할만한 이유가 있어서일 수도 있잖아요. 원래 나라들은 사정이 제각각 다른 법이니까."
"그래서 이제부터 그걸 확인해 보려고 합니다."
"바쁘시겠어요. 그런데 그냥 마케미야 아저씨한테 말씀드리고 손 떼면 그만 아니에요? 어차피 프라임웰빙 경영은 마케미야 아저씨가 맡기로 했는데. 수영 씨는 농사, 임대업, 지역정치 말고 다른 건 내키지 않는 다면서요?"
하수영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잠시 빤히 바라보다가 엉뚱한 이야기를 꺼냈다.
"요즘 클럽에서 마약 구매하는 것은 쉬운가요?"
"네? 마약이라고요?"
정서희의 표정이 순간 살짝 일그러졌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주제에 당황한 것이다.
"마약 브로커들이 클럽에서도 활동한다는 거야 암암리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사실 마음만 먹으면 하수인 판매자와 접촉하는 것은 가능할 거예요."
"그 정도인가요?"
"우리나라도 더 이상 마약청정국아니거든요. 본인이 하고 싶다고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어요. 근데 갑자기 왜요? 혹시……."
정서희는 자신의 상식 안에서 최대한 합리적인 판단을 한 뒤 물었다.
"강남구의회에서 지역 내 마약 근절을 목표로 삼았나요?"
"그건 아닙니다. 개인적인 궁금증이에요. 자, 일단 갑시다."
"오늘도 핀익스 갈 거죠?"
"아뇨, 오늘은 콜로세움부터 갈 겁니다."
"콜로세움이요?"
정서희가 의아해서 반문했다.
클럽 콜로세움은 성담동이 아닌 역삼동에 위치해 있다.
강남지역에서 시설 규모로 치면 두 손가락 안에 들 만큼 알아주는 데다가, 다른 클럽과 달리 저녁 일찍부터 문을 연다는 장점이 있다.
오후 7시부터 영업을 하는데 이때에는 평범한 호프집 영업만 한다.
그러다가 11시가 되면 그때부터 진짜 클럽 영업을 시작하는 것이다.
"네, 오늘은 콜로세움부터 시작해서 강남 클럽을 계속 돌아다닐 겁니다. 각오 단단히 하시죠."
"아, 이런 거 좋아요. 정말 좋아. 이래야 불금답죠."
정서희는 손뼉까지 치며 즐거워했다.
그녀의 즐거운 기분이 박살 난 것은, 하수영이 콜로세움 클럽 매니저한테 은근한 제안을 건넸을 때였다.
"친구, 요즘 뭐 좀 좋은 거 없어?"
그렇게 말하면서 하수영은 자연스럽게 5만 원짜리 한 장을 그에게 건넸다.
매니저는 얼른 표정 관리를 하며 낮게 대답했다.
"뭘 찾으십니까?"
"몸에 좋은 게 돌아다닌다고 하더라고, 그렇게만 들었는데, 한 번 궁금해서 말이야. 구할 수 있나?"
"아주 비쌉니다."
하수영은 피식거리면서, 옆에 세워둔 캐리어를 슬쩍 열어서 안을 보여주었다.
안에 가득 담긴 현금다발을 보고 매니저의 눈이 휘둥그렇게 변했다.
적어도 경찰의 함정수사 따위의 가능성은 그의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졌다. 애초에 비중이 크지도 않았지만,
"1회분에 150만 원 정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게 비싼 거야?"
하수영이 자연스럽게 말하면서 쳐다보자, 정서희는 정신을 차리고 얼른 즉흥적으로 맞장구쳤다.
"엄청 비싸지. 내가 아는 것들은 그거 반의반도 안 돼."
"왜 그리 비싸? 그렇게 죽여줘?"
"정말 끝내줍니다."
"얼마나 끝내주는데?"
"그거 먹고 여자랑…… 아주 그냥 천국이죠."
묘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어가려던 매니저는 얼른 그렇게 말을 흘렸다. 정서희의 눈치를 본 것이다.
"무엇보다 부작용이 없습니다. 아주 깔끔합니다."
"정말 부작용이 없어?"
"네, 보통 '그런 것들'이 부작용이 있잖아요. 건강을 해친다거나, 잘못하면 골로 간다거나, 중독이 돼서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진다거나. 하지만 '화이트 스카치'는 그런 게 일절없어요."
"흠."
"한꺼번에 많은 양을 먹어도 절대 위험하지 않습니다. 효능이 다 끝나고 나면 몸도 아주 상쾌한 기분이 들고요. 머릿속이 아주 맑아진다고 하더군요."
"너도 해봤어?"
"어유, 저는 비싸서 그런 건 엄두도 못 냅니다. 1회에 150만 원이라니까요."
하수영이 5만 원짜리 2장을 더 취여 주자 매니저는 호들갑을 떨며 설명을 이었다.
"화이트 스카치, 한 번도 안 맞는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맞는 사람은 없다더군요. 효과는 끝내주는데 위험하지도 않고 뒤끝도 깔끔하니, 아주 그냥……."
"여기서도 구할 수 있나?"
"……돈만 있다면 뭔들 못 구하겠습니까."
"시험 삼아 열 개만 가져와 봐. 궁금하네. 지금 가능하지?"
"……확답은 못 드립니다. 저도 여기저기 수소문은 한 번 해보겠습니다."
하수영은 그에게 다시 10만 원을 팁으로 쥐여 주었고, 그는 희희낙락해서 물러갔다.
그제야 정서희가 숨을 몰아쉬며 낮게 물었다.
"수영 씨, 지금 대체 뭐하는 거예요?"
"누가 감히 제 귀여운 송이를 불법으로 튜닝한 거 같아서요."
"네?"
"조용히, 아마 지금쯤 우리 지켜보고 있을 수도 있어요. 연기 잘해요."
"……."
약 30분쯤 지났을까.
날씬한 원피스를 입은, 진한 화장의 미인이 다가와서 하수영의 옆에 앉았다.
그녀는 성냥갑만 한 조그마한 종이 상자를 아무렇지 않게 올려놓으며, 물었다.
"돈은 어떻게 주실 거예요?"
"지금 여기서."
"여기서? 남들 눈이 있는……."
하수영은 캐리어에서 박스로 된 와인 상자 하나를 꺼내어, 슬쩍 내용물을 보여주었다.
안에 담긴 현금 뭉치를 확인한 여자는 미소를 짓고는, 명함을 한 장 내밀었다.
"또 필요하면 여기로 연락해요."
여자는 정서희를 향해 눈을 한 번 찡긋해 보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라졌다.
못마땅한 듯이 바라보던 정서희는 하수영이 어느새 종이박스에서 꺼낸 흰색 알약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것을 확인했다.
"그거 설마…… 마약이에요?"
"이걸 마약이라고 해야 할지, 뭐라고 해야 할지."
"무슨 말이에요?"
"아무래도 엘릭서 드링크를 잔뜩 농축해서 마약에 섞은 거 같아요."
"그걸 어떻게 알…… 아니,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죠?"
"위스키처럼 되는 거죠. 목을 넘길 땐 엄청 독한데, 다음 날 숙취는 깔끔한."
"……."
"기분 좋은 환각 효과는 그대로 남기고, 몸 망가질 일은 없는 마약이 됐네요."
하수영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연신 피식거렸다.
"화이트 스카지라니. 이름 한 번 참 기가 막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