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403화
101장 조합을 위하여(3)
"어차피 임대차 기간 남은 건 제가 어떻게 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때 가서 생각해 보면 되죠."
하수영은 덤덤히 말했다.
대형 클럽이 있다는 이유로 빌딩매입을 거절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지금은 매입부터 서두르는 게 우선이니까요."
"네. 아, 지금 문자가 왔습니다. 거의 다 도착한 모양입니다."
잠시 후 네 명의 중년 남녀가 불퉁한 표정을 한 채 중개사무소로 들어섰다. 법무사도 뒤를 따르고 있었다.
매도인들은 안을 휘휘 둘러보다가 우형신을 향해 물었다.
"매수인은 아직 안 왔습니까?"
"여기 이분이십니다."
우형신은 굳이 하수영의 신분을 자세히 소개하지 않았다. 매매거래만 잘 되면 그뿐,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분이라고요?"
"너무 젊으신데, 큰 부잣집 아들이 신가 보네요?"
4명의 중년 남매들은 하수영의 외모를 보고 신기하게 여기거나 놀라워하거나 하는 반응을 보였다.
하수영이 정담동에서 유명한 지역유지라는 것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반갑습니다. 거래 진행하시죠."
하수영은 시간 끌 것 없다는 듯 덤덤하게 말했고, 매도인들은 입을 다물고 자리에 앉았다.
거래조건이야 이미 다 정해진 터라, 밀고 당기고 할 것은 전혀 없었다.
"종매입비 1,300억 원, 일시불 매입 및 소유권 이전, 여기 내용 확인해 주십시오."
"음, 맞네요."
"1,300억 원짜리 빌딩을 일시불로 구매하시다니, 정말 대단하시네요."
"감사합니다."
하수영은 일부러 짧게 말해서 대화가 길게 이어질 여지를 차단했다.
5인은 필요한 서류에 모두 서명날인을 했다. 1,300억 원 중 임대차보증금 총합을 제외한 액수가 4분할 돼서 4인의 계좌에 각각 입금되었다.
법무사가 등기신고에 필요한 서류를 모두 챙겨서 일어났다.
"감사합니다. 이제 그 빌딩은 그쪽 소유입니다."
"아유, 골칫덩어리를 이제야 털어냈네. 더 이상 형, 누나 얼굴 볼 일 없으니 살 것 같아."
"뭐야? 이놈의 자식이 버르장머리 없게 말을 그딴 식으로 할래?"
"아, 귀청 떨어질 것 같으니까 그만 쏘아대시우,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면 아버지 제사에 코빼기도 안비춥니다."
"이 불효자식 같은 놈이!"
"그러는 형은 아버지 살아 계실 때 얼마나 잘했다고."
계약과 입금이 모두 끝나기가 무섭게 남매들은 자기들끼리 다투기 시작했다.
하수영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짐을 챙겨 일어났고, 우형신 중개사도 허둥지둥 일어났다.
"회장님, 빌딩에 가시려고요?"
"이제 제가 주인이 됐으니까 가서 그 사실을 알려야지요. 세입자들 얼굴도 봐야 하고요."
빌딩을 매매한 이상 하수영은 세입자들에 대한 임대인 지위를 당연히 승계했다.
"김 과장, 자네가 여기 매도인분들 좀 챙기게. 나는 매수인분 모시고 다녀올 테니까."
"네, 다녀오십시오. 사장님."
"거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여기 매수인분 모시고 다녀올 테니, 편히 앉아 있다가 가십시오."
"중개수수료 정말 조금만 더 깎아주면 안 돼요? 가만히 앉아서 서류작업 몇 번 한 거 가지고 이 많은 돈을 받는 건 너무 한 거 같은데."
"아이고, 이미 수수료는 사전에 합의하시지 않았습니까. 정 뭐 하시면 제가 250씩 해서 1,000 빼드리겠습니다. 이것도 정말 큰 결심한 겁니다."
우형신은 직원인 김 과장에게 다시 당부했다.
"김 과장, 내 말 들었지? 수수료신경 써드려."
"네, 사장님."
허둥지둥 나선 우형신은 시동이 걸린 캠핑카 조수석에 서둘러 올라탔다.
"이럴까 봐 이미 처음부터 수수료도 100원 한 장까지 확실하게 못을 박고 알았다고 대답 들었는데, 꼭일 다 끝나고 저러시는 분들이 있다니까요."
"제가 수수료로 3,000만 원 낸 거 알면 저분들 뒤집어집니다. 매일 사무소 찾아와서 떼쓸지 모르니까 보안 유의하세요."
"아이고, 그럼은요.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수영은 예전에 협의해서 건당 수수료를 3,000만 원까지만 내지만, 저들은 아니었다. 한 명 한 명이 부담한 수수료가 그보다 훨씬 많다.
"여기군요."
"이야, 이렇게 다시 보니 훨씬 멋집니다. 달라진 거라고는 소유자 이름 하나뿐인데 말입니다."
하수영은 키득거리면서 빌딩에 부속된 주차장으로 진입했다.
빌딩에는 지하 주차장이 따로 있었지만, 차량 4대 정도를 낼 수 있는 지상 주차공간도 있었다.
캠핑카가 지상 주차공간으로 들어서자 건물관리직원이 기겁해서 허둥지둥 달려 나왔다.
"이봐요! 거기에 차 대면 안 됩니다! 아니, 이렇게 큰 차를 가져오시면 어떡합니까! 여기는 버스주차공간이 아니에요!"
"여기 주차공간 아닌가요?"
"맞는데, 거기는 전용지정공간이에요. 일반 방문객들은 지하주차장을 이용하셔야 돼요."
직원은 캠핑카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안절부절못했다.
"이거 차체가 높아서 지하주차장진입은 안 되겠는데요. 아무튼 여기에 주차하시면 안 돼요! 차 빼주세요!"
우형신이 어이가 없어 하다가 혹시나 해서 물었다.
"설마 월 주차료 받고 전용 임대라도 해주는 겁니까?"
"그건 제가 설명할 바 아니잖습니까. 차 빼주세요."
"여기 이분이 새 빌딩주이신데, 왜 이분이 자기 땅에 차도 못 댄다는 겁니까?"
"네? 새 빌딩주라고요?"
순간 직원의 동공이 심하게 흔들렸다.
하수영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직원을 향해 말했다.
"관리소장님하고 통화 한 번 해보시죠."
"아, 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직원은 허둥지둥 들어가서 어딘가로 통화를 한 뒤, 후다닥 달려 나와서 캠핑카 번호판을 확인했다.
그리고 얼굴이 밝아져서는 꾸벅 머리를 숙였다.
"번호판 맞습니다. 죄송합니다. 새빌딩주이신 줄 몰라서 제가 실수를 했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런데 주차지정 차량이 정말 따로 있는 건가요?"
"네, 4대 차량한테 월 주차료로 250만 원을 받고 임대해 주고 있습니다. 주차료는 빌딩 유지보수비용에 포함되고요. 보증금이나 계약서는 따로 없고 3개월 치 주자료를 한꺼번에 받는 방식입니다."
"이런, 그럼 차를 빼야겠군요."
아무리 건물주라고 해도 엄연히 돈을 받고 남에게 빌려준 주차공간이라면 그 권리를 침해할 순 없다.
하지만 직원은 괜찮다는 듯이 손을 내저어 만류했다.
"괜찮습니다. 나중에 차량 들어오면 그때 빼면 됩니다. 아무렴, 빌딩주이신데요."
"그래도 되나요?"
"그럼요. 전 건물주분들도 그렇게 하셨고, 여태껏 아무 문제 없었습니다. 차만 바로 빼주면 되니까요. 차키를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이거 대형면허 있어야 볼 수 있는데요."
"아이고, 면허 있으니 걱정 마십시오. 왕년에 트레일러 화물차도 몰아 봤습니다."
하수영은 차 키를 맡기고 우형신과 함께 빌딩에 들어섰다.
빌딩은 성형외과, 안과, 약국, 음식 점 등 다양한 시설들이 복합적으로 있었다.
먼저 성형외과를 찾은 하수영은 데스크 직원에게 명함을 내밀며 인사했다.
[(주)하수영 대표이사 하수영]
앞에 있는 하수영은 부동산 법인 이름, 뒤에 붙은 하수영은 자연인 하수영 이름을 말한다.
"안녕하세요. 저는 하수영이라고 합니다. 이번에 이 빌딩을 새로 인수해서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어머, 잠시만요. 원장님께 지금 바로 연락드릴게요."
"바쁘신데 괜찮습니다. 말씀만 전해주세요. 임차인으로서 문의나 요구사항이 있으면 앞으로 여기 명함에 있는 연락처로 연락을 주시면 된다고요."
"이대로 가시게요? 진료 거의 다 끝나는데……."
"괜찮습니다."
그렇게 하수영은 미리 준비한 음료수와 명함만을 남기고 성형외과를 나섰다.
그런 식으로 세입자 전체를 가볍게 만난 뒤 마지막에는 1층 로비로 내려왔다.
"의외로 만실이네요. 공실이 몇 개는 있을 줄 알았는데."
"여기가 아주 잘 나갑니다. 공실이 어쩌다가 생겨도 금방금방 채워져요. 아, 농협지점은 방문 안 하십니까?"
빌딩 1층에 있는 농협은행 지점을 지나치려고 하자 우형신이 얼른 물었다.
"은행은 됐습니다. 개인 세입자도 아니니 그냥 공문 발송으로 통보하면 되겠죠. 어차피 지점장이 세입자인 것도 아니잖아요."
"아, 그렇네요.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 지하 클럽만 남았군요."
당연하겠지만, 아직 낮이다 보니 클럽은 문이 굳게 닫혀 있는 상황이었다.
"임차인은 나중에 따로 찾아보기로 하고, 오늘은 조용히 분위기 한 번 살펴보렵니다."
"암행하시려는 겁니까?"
"건물 관리하려면 유흥주점은 아무래도 신중히 봐야 합니다. 잡음이 나기 쉽거든요."
우형신은 하수영의 마음을 이해했다.
일반 호프집이라면 모르겠지만, 어쨌든 유흥시설 아닌가.
우형신이 보기에, 하수영은 기초의원이라는 신분 덕분에 더욱 그런 면에서 예민하게 구는 거 같았다.
'이거 아무래도 계약 기간 끝나는 대로 내보내실 것 같은데.'
***
정서희는 같이 저녁을 먹자는 하수영의 제안을 받고 가벼운 기분으로 나왔다.
그리고 식사 도중 하수영이 던진 제안에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같이 클럽을 가자고요?"
"네, 오늘 산 빌딩 지하에 있는 클럽인데 분위기 한 번 살펴보려고요."
"아하, 계약 기간 끝나고 내보낼까 말까 분위기 파악 하시려는 거군요?"
"맞습니다. 아무래도 한두 번 봐서는 안 될 테니 시간 나는 대로 종종 분위기 살펴보려고요."
"구의원이시니까 신경 쓰실 게 한 두 가지가 아니네요."
"구의원이 아니었어도 유흥주점 같은 것은 웬만하면 세입자로 받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도 청담동에서 상가 빌딩 운영하시려면 어느 정도는 타협을 하셔야 할 텐데. 아무튼 알았어요. 그럼 술은 당연히 수영 씨가 사시는 거죠?"
"물론입니다."
"클럽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데, 이런 식으로 첫 방문을 하게 되네요."
"첫 방문이시라니, 알겠습니다. 그렇게 믿어드리겠습니다."
"진짜거든요?"
툴툴거리던 정서희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 클럽 이름이 뭐예요?"
"핀익스라고 하던데요. 유명 여가수가 차려서 운영하는 클럽이라고 하던데."
"아! 핀익스! 거기 엄청 유명하잖아요."
"클럽은 관심 없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가본 적이 없다고 했지, 관심이 없는 건 아니거든요?"
정서희는 갑자기 허둥지둥 거렸다.
"어떡해. 핀익스 갈 줄 알았으면 옷을 좀 신경 쓰는 건데."
"지금 복장도 별 문제는 없어 보이는데요?"
막 회사에서 퇴근한 정서희는 단정하면서도 깔끔한 어두운 톤의 바지 정장 차림이었다.
그녀가 눈을 흘겼다.
"누가 이런 샌님 복장으로 클럽에가요? 아, 맞다. 차에 갈아입을 옷있으니까 그걸로 갈아입으면 되겠네. 이제 곧 출발할 거죠? 잠시만 기다려요."
자리에서 일어난 정서희는 후다닥 주차장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고 다시 가게로 돌아왔다.
다리 핏을 강조하는 블랙 스키니에 배꼽과 쇄골을 훤히 드러내는 녹색 크롭티, 그 위에는 블랙톤의 시스루을 걸쳤다 날카로운 굽을 자랑하는 킬힐까지, 이성을 유혹하기에는 괜찮은 복장이었다.
"역시, 입구밴 방지용 옷을 항상 준비해 두시는군요."
"……근데 수영 씨는 설마 그 옷으로 입밴을 안 당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정서희는 그의 평범한 단색톤의 개주얼 일상복을 이리저리 훑어보면서 어처구니없어했다.
"괜찮습니다. 저는 차가 있으니까요."
"퍼포먼스가 수십억짜리 비싼 차인건 알지만, 눈 삔 클럽 가드들이 그런 걸 알아볼까요?"
"걱정하지 마세요. 오늘을 위해서 전성렬 사장께 차를 빌려 왔습니다. 제네시스 EQ. 알짜배기 중견기업오너들이 타고 다니는 차량이죠. 완벽하지 않나요?"
"백화점 발렛 요원이 손님 차 몰래 끌고 온 거라고 생각할 거 같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