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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401화 (401/1,270)

프랜차이즈 갓 401화

101장 조합을 위하여(1)

하수영은 어깨를 가볍게 으쓱했다.

"글쎄요. 190만 톤이나 되는 쌀을 농식품부가 전부 컨트롤할 순 없을테니, 아마 농협이 중간에서 품을 팔지 않을까요?"

"그럴 거면 농식품부가 먼저 말을 해야 하는데. 아, 농협이 자네한테 먼저 약을 칠 셈이군. 그놈들 지금까지 해온 짓거리 보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어."

전성렬이 인상을 가볍게 찌푸리자 하수영은 작게 키득거렸다.

"안 좋은 기억이 상당하신가 봅니다?"

"내가 농산물 유통할 때 농협 거들먹거리는 것 때문에 얼마나 개고생했었는데. 갑질이 장난 아니야."

"그렇습니까? 저는 몰랐네요."

"하 사장이야 농협하고 엮인 적이 한 번도 없잖아. 특히 지역농협 조합장들이…… 어이구, 생각만 해도 치가 떨려."

"그래도 이제 얽히실 일은 없으셔서 마음은 편하시겠어요."

"성렬유통 자네한테 팔자마자 농협쪽 팔로워도 다 끊었어."

하수영은 일단 농식품부 식품정책과 양홍명 과장에게 전화해서 확인을 했다.

하지만 양흥명 과장은 잘 모르는 눈치였다.

-아직 농협하고는 이야기가 된 게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그렇습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전성렬이 확신한다는 듯이 말했다.

"역시 사탕발림으로 자네부터 구슬린 다음에 유통 건을 따낼 셈인 거지."

"거절하면 그만이죠. 정부부처도 아닌데 굳이 만나볼 필요도 없고요."

"음, 내가 만나보면 안 될까?"

"사장님이 직접 만난다고요?"

"내가 농수산물 유통 수십 년 하면서 당한 게 오죽 많나? 지역농협조합장들한테 쌓인 게 좀 있거든."

"그러시다면야 동업자로서 기꺼이 한풀이 도와드려야지요. 갑자기 저도 구경하고 싶어졌습니다. 자리 만들 테니 함께 가시죠."

"고맙네."

"프리덤, 답장 보내서 일정 잡아."

-네, 마스터.

***

이틀 뒤로 약속을 잡고, 하수영과 전성렬은 미팅을 위해 각자 차를 끌고 출발했다.

약속장소인 서해호텔에 먼저 도착한 하수영은 로비에서 기다리다가 전성렬의 차가 로비 입구에 정지하는 것을 봤다.

발렛 요원이 부리나케 와서 문을 열어주었고, 뒷좌석에서 내린 전성렬이 로비에 들어섰다.

"웬일로 롤스로이스를 다 끌고 오셨습니까? 관상용으로 사신 거 아니었어요?"

"농협 친구들한테 보여주고 싶어서 말이지. 그리고 관상용은 아니야. 한번씩 타긴 한단 말일세."

"이따가 헤어질 때 꼭 보여줘야겠네요."

"당연하지. 그러려고 끌고 온 건데."

하수영과 전성렬은 이제 단골이 된 서해호텔 프렌치 레스토랑에 들어섰다.

지배인이 직접 나와서 둘을 룸으로 안내했다.

안에는 먼저 도착한 중장년의 두 남자가 살짝 긴장한 듯이 앉아 있었다.

"왼쪽이 영등포 조합장 조만식이야. 나하고도 오래 얼굴 봐온 사이야."

전성렬은 그들이 듣지 못하게 작게 속삭였다.

말투를 보면 크게 나빴던 사이는 아닌 듯하다.

"같이 온 사람은 누군지 모르겠어. 처음 보는 얼굴인데."

"이제 알게 되겠죠."

룸에 들어서자 조만식 조합장과 동행자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가볍게 목례했다.

조만식은 허허로운 웃음을 지으며 전성렬을 향해 기분 좋게 손을 뻗었다.

"아이고, 우리 전 사장님. 프라임컴퍼니 소식은 제가 빠뜨리지 않고 듣고 있습니다. 정말 대성하셨더군요. 축하드립니다."

"조합장님도 안색이 여전히 좋으십니다."

전성렬은 하수영을 소개하기 전, 눈짓으로 조만식 조합장을 가리켰다.

눈치를 알아들은 조만식이 얼른 동행인을 소개했다.

"여기 이 분은 농협금융지주, 그러니까 NH농협금융 신광룡 은행장님 이십니다."

생각보다 거물이다. 전성렬은 속으로 살짝 놀라서 다시 한번 신광룡을 살폈다.

그는 절제된 미소를 머금은 채 명함을 내밀었다.

"신광룡입니다. 두 분,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전성렬입니다."

"하수영입니다."

명함을 받아 챙기고, 악수를 나눈 뒤 넷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전성렬과 하수영은 그들이 보지 못하게 조용히 톡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이번에 새로 취임한 신임 행장인가 봐.]

[근데 쌀 유통 일에 왜 은행장이 왔죠?]

[그러게 말이야.]

NH은행은 농협의 자회사이긴 하지만, 말 그대로 은행.

조합으로서 농업 관련 업무는 은행과는 무관하다.

[제가 농민 대출 같은 것을 끌어다 썼다면 모를까, 농협은행하고 얽힐 일이 없는데.]

[짐작 가는 게 없나?]

[혹시 NH은행 계좌로 받아서 그런가? 그거 말고는 딱히 짚이는 게 없네요.]

[오, 그거라면 가능성이 좀 있지.]

하수영은 슬쩍 미끼를 던져보기로 했다.

"쌀 공급 때문에 농협에서 절 찾으신 것으로 아는데, 은행장님이 오신 이유가 짐작이 되지 않네요."

"쌀 공급 문제와도 연관이 없지는 않습니다."

신광룡 은행장은 시원스러운 표정을 머금은 채 말을 이었다.

"하수영 회장님, 이번에 정부에서 쌀 매매 대금으로 5조 7,000억 원을 받으셨지 않습니까?"

"네, 맞습니다."

"우리 NH은행 계좌로 받으셨고요."

"예전에 만들어준 계좌가 있어서요. 나라에 쌀 판 돈이니 기왕이면 그걸로 받자 해서 받았습니다."

"실례지만 혹시 타은행으로 인출하실 예정이 있으십니까?"

"사실 입금만 확인하고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나름 이것저것 바쁜 몸이라서요."

"허어, 5조 7,000억 원이면 정말 큰돈인데, 역시 농업 재벌다운 배포이십니다."

"쌀 팔아서 번 돈이니 이왕이면 농사일에 재투자하자고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들었습니다. 이번에 서락산을 재매입하셨더라고요. 거기에 초고층 무인농장을 새로 지으신다고요."

"네, 아마 거기에 투입될 겁니다."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쌀 공급은 언급되지 않는다.

애초에 지역농협 조합장은 정부 쌀공급 계약을 거론할 만한 급이 못되고, 은행장은 쌀과는 업무 연관성이 없다.

"사실 하수영 회장님이야말로 우리 나라 농가의 희망이자 빛이 아니겠습니까."

"과찬이십니다."

"허허, 제가 없는 말을 지어낸 게 아니라 사실입니다. 요즘 우리 농협직원들치고 하수영 회장님의 존함석 자를 모르는 이가 없습니다. 금융지주고 경제지주고 다 마찬가지입니다."

"민망하네요. 정작 저는 조합원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래서 의아했습니다. 당연히 조합원이실 줄 알았는데, 여기 조만식 조합장님 말을 들어보면 아직 조합원 자격이 없으시다고 해서요."

잠자코 듣고 있던 전성렬이 살짝 끼어들었다.

"우리 하수영 사장이 어디 소속되는 걸 원체 안 좋아합니다. 원래 호랑이는 혼자 다니는 법이죠. 안 그렇습니까?"

"그래도 조합원이 되시면 이런저런 혜택이 많으실 텐데. 무엇보다 손발이 편해집니다."

"조합원 가입을 권유하려고 이 자리를 만드신 겁니까?"

전성렬이 살짝 강경함을 담아서 묻자 신광룡 은행장은 여유로운 웃음을 지으며 슬쩍 뺐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어디까지나 이번에 공급하신다는 쌀 문제 때문입니다."

"그거라면 우리 하 사장이 농식품부와 이야기를 해야 할 문제인 거 같습니다만."

"그 많은 쌀을 보관하거나 유통하는 문제에서 우리 농협이 빠지기는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190만 톤이라고 해봤자 우리나라 몇 개월치 소비량입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습니다."

"몇 개월이면 충분하겠죠. 해외에서 쌀 화물선이 들어오기에는 충분한 시간입니다."

"쌀 수입은 아마 무산될 겁니다."

전성렬은 눈을 살짝 크게 떴고, 하수영은 입을 다문 채 조용히 지켜만 볼 뿐이었다.

"쌀 수입이 농협은행장 영역은 아닐 텐데요."

"아주 무관하지는 않습니다. 금융업무를 파긴 하지만 엄연히 우리 은행은 농협 자회사니까요."

"……."

"전국 농민의 99% 이상이 우리 은행 고객입니다. 동시에 주인이기도 하고요."

농협은행은 농협의 자회사이고, 농협은 수많은 농민 조합원들로 이뤄진 협동조합이다. 서로 물고 물리는 관계다.

"적어도 2, 300만 톤 이상의 쌀을 수입한다? 우리 농가에는 큰 타격입니다.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순 없죠."

"아니, 당장 먹을 쌀이 없어서 수입하는 건데도 문제가 된다는 겁니까? 그럼 쌀을 먹지 말고 밀가루만 먹고 있어야 합니까?"

"선례가 남는 게 중요한 거죠. 수입쌀이 국민 식탁 전체를 차지하는 일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있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그럼 없는 쌀을 어디서 조달하란 말입니까?"

"하수영 회장님께서 올해 연말까지 100만 톤을 새로이 출하하실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비닐하우스에서 그만한 양을 재배하실 수 있다고요."

하수영은 말없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입가에 떠오른 희미한 미소는, 그 다음에 이어질 말을 궁금해 하는 듯이 보였다.

"그만한 생산 능력이라면 내년 추수기 전에 한 번 더 출하가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어떠신가요?"

"능력은 됩니다."

하수영은 짧게 대답했고, 신광룡은행장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으며 말을 이었다.

"그럼 쌀 수입 없이도 얼추 쌀 공급은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수영 회장님, 벼농사에 좀 더 투자를 해보실 의향은 없으십니까?"

"글쎄요. 벼농사로 먹고사는 영세농가가 많은데 제가 쌀까지 건드리기에는 조금 체면이 안 서네요."

"지금 나라가 위기 상황 아닙니까? 수입쌀이 국가 식탁을 완전히 차지하는 것만큼은 어떻게든 막아야 합니다. 우리나라 농가의 생존이 걸린 문제입니다."

"쌀 생산량을 더 늘리는 것이 어렵진 않습니다만."

"농식품부와 킬로당 3,000원에 재배 계약을 맺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안드리겠습니다. 킬로당 4,500원에 쌀 재배 계약을 맺고 싶습니다. 물론 전액 선금입니다."

"당장 결정을 할 건 아닙니다만, 다른 조건들은 어떻게 되죠?"

"내년 6월까지 250만 톤을 맞춰주시는 것, 이거 하나만 들어주시면 됩니다. 아, 기왕이면 우리 NH은행을 주거래은행으로 삼아주시면 감사히 받아들이겠습니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조건이 아니라 정중히 요청드리는 겁니다."

"킬로당 4,500원에 250만 톤이라……."

하수영은 조용히 혼잣말을 하다가 전성렬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는 대화 흐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인상을 쓰다가, 하수영에게 톡을 보냈다.

[애초에 이건 NH은행 업무하고는 크게 관련이 없어.]

[그러게요.]

[아무래도 은행장의 야심이 제법 큰 거 같은데.]

[야심이요?]

[일단 조만식 조합장은 은행장 사람이겠지?]

[그러니까 같이 왔겠죠?]

[내 생각에는 조만식 조합장을 다음 농협회장으로 밀어주려고 그러는거 같아. 자기가 농협회장에 직접 출마할 수는 없으니까 자기 사람을 그 자리에 심겠다는 거겠지.]

[아, 그거 타당성이 있네요.]

[수입쌀이 무더기로 들어와서 식탁을 점령하는 것을 막았다, 그걸 공적으로 내세우면 230만 조합원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 테니까.]

하수영과 전성렬이 입을 다물고 톡을 주고받고 있지만, 두 사람은 언짢은 기색 없이 차분히 기다렸다.

[내가 주도해도 되겠지?]

[얼마든지요. 저는 어떻게 되든 크게 상관없습니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입니다.]

[고맙네, 내가 술 한 번 거하게 사지.]

전성렬은 조합장과 은행장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기습적으로 물었다.

"조만식 조합장님, 혹시 다음 농협회장 선거에 출마합니까?"

"쿨럭! 쿨럭!"

"크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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