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399화
100장 나는 농민이다(2)
농림축산식품부.
대한민국에서 농사에 관한 모든 사무를 관장하는 주무부처다.
"농식품부에서 찾아왔나 봐요."
"역시! 농식품부에서 사장님과 중요한 논의를 할 게 많나 봅니다!"
"에이, 그럴 리가요. 지금까지 통화 한 번도 한 적 없는데."
그 말에 지방에서 올라온 중년 농민들은 깜짝 놀랐다.
"네? 한 번도요?"
"네,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저는 농식품부는 근처도 가본 적이 없어요."
"아니, 우리나라 제일의 거동이신데 농식품부에서 아직까지 인사 한번도 안 왔단 말입니까?"
"이놈의 자식들, 대체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 거야?"
"진짜 이수홍 장관 취임 내내 하는거 없이 월급만 축내다가 물러날 생각인가?"
"농식품부부터 갈아치워야 돼! 농민들이 다 죽어 나가고 있는데 도대체가 하는 게 없어!"
중년 농민들은 그렇게 저마다 울분을 터뜨리며 농식품부에 대한 불신을 잔뜩 드러냈다.
하수영은 일단 프라임유통 직원한테 답문을 보냈다.
[식량정책과에서 저를 만나고 싶다는 건가요?]
[식량정책과는 저한테 연락이 온 거고요, 그쪽은 장관급 만남을 추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기본적인 절차나 개념은 충실한 것 같다.
국방부 장관하고 같이 노는 사이인데, 농식품부 한낱 하위부서장이 대뜸 만나려고 하지는 않으니.
[뭐라고 하는지 궁금하군요. 연락온 그 직원, 지금 청담동으로 올 수 있냐고 한 번 물어보세요.]
[식량정책과장 말씀이십니까? 알겠습니다.]
몇 분 후, 직원한테서 다시 연락이 왔다.
[불러만 주신다면 어디든 지금 바로 달려가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장소와 연락처를 알려드렸습니다. 지금 바로 출발해서 2시간 안에 도착한다고 합니다.]
[네, 수고했습니다.]
"농식품부 식량정책과에서 지금 바로 온다고 하네요."
"네? 아니, 국방부 장관도 설설 기는 우리 하 사장님을 한낱 정책과에서 찾아온다고 한 건가요? 이게 가당키나 합니까?"
"제가 궁금해서 그냥 오라고 했습니다. 지금 당장 장관을 보자고 할 수도 없으니까요."
"역시 우리 하 사장님, 쇠뿔도 단김에 빼려고 하시는 화끈한 추진력 이십니다."
"어쨌든 다들 먼 길 오셨으니까 약주 한 잔들 하시고 손님방에서 주무시고 내려가세요."
저택에는 손님들을 위한 사랑채가 따로 있었다.
최우석 노인의 죽은 친구인 전 주인이 마련해 둔 시설인데, 하수영취향에도 맞아서 지금처럼 요긴하게 쓰고 있었다.
주로 손님들을 재우는 용도로 쓰인다.
그때 문자 도착 알림이 울렸다.
[하수영 의원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농림축산식품부 식량정책관 식량정책과장 양명이라고 합니다.
……중략……
도착하는 대로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늘려쓰기 한 것처럼 구구절절 긴 내용은 한마디로 불러주셔서 감사하다지금 세종시에서부터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 중이다. 뭐 그런 내용이었다.
약 두 시간 정도가 지나자 양홍명과장이 직원 두 명을 데리고 도착했다.
그는 후덕한 체격을 가진 50대 남자였다.
"안녕하십니까, 하수영 의원님."
"반갑습니다. 농식품부하고의 인연은 그러고 보니까 이게 처음인 거 같네요."
"……아하하, 그렇습니까."
양홍명 과장은 진땀을 흘리며 억지로 웃어 보였다.
하수영이 불편하다기보다는 워낙 사회적 신분 격차가 크다 보니 긴장한 것이다.
동행한 두 직원들도 1,400억짜리 저택의 위엄에 짓눌려서 이리저리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래요, 어떤 일 때문에 오신 겁니까?"
이번 물난리로 올 농사는 전부 망쳤다. 아마 벼 출하량이 평소의 5%에도 이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출하량이 전무할 수도 있다.
군산에 있는 정부 양곡창고도 침수돼서 전부 못 쓰게 되었다.
다른 지역에 흩어져 있는 양곡창고 들도 비슷한 피해를 입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양흥명의 지위는 식량정책과 과장.
어느 정도는 짐작이 간다.
"저어, 사장님이 운영하시는 농장은 겨울에도 무리 없이 벼농사가 가능하지 않습니까?"
하수영은 사교적인 미소를 지으며 끄덕였다.
"가능합니다."
***
농식품부가 하수영을 바라보는 심정은 대단히 복잡했다.
작년 초까지만 해도 하수영을 주목하는 농식품부 직원은 없었다.
그들 입장에서 하수영은 대한민국의 많고 많은 농민 중 한 명이었을 뿐이다.
농식품부가 처음 그를 주목하게 된 것은, 황금비단우산버섯의 대량양식에 성공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부터였다.
"황비버섯 대량 양식이 성공했다고? 잘됐네. 그럼 이제 황비버섯 가격이 많이 떨어지게 되는 건가?"
"네, 수영농장이라는 곳에서 효율적으로 양식하는 농법을 개발한 모양입니다."
"특허 신청 같은 것은 없었고?"
"없는 걸 보니 아무래도 기술적 고유성을 인정받기는 어려운 농법인 모양입니다."
당시 식량정책과는 고급 식재료이자 국물 요리에 필수인 황비버섯이 이제 널리 보급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들어맞았다.
다만 유통 과정이 전혀 달랐을 뿐이지.
"과장님, 황비버섯라면이 지금 불티나게 팔리고 있습니다. 소비자들은 요리에 쓸 황비버섯을 구하기 위해 라면 식품을 구입하고 있어요. 다른 농가에서 나온 황비버섯은 전혀 팔리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아니, 단가 인하에 성공했으면 시중에 풀어야지, 왜 그걸 라면회사에만 전량 납품하고 있어?"
"그걸 모르겠습니다."
식량정책과에서는 나름 이리저리 알아보았으나, 프라임컴퍼니와 농장주 간의 계약이라고만 들었을 뿐이었다.
"아무래도 프라임컴퍼니에서 농장주에 버섯재배시설을 상당수 투자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당분간은 그쪽에만 물량을 공급하는 게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겠군."
황비버섯라면이 불티나게 팔리는 건 식량정책과도 알았다.
하지만 라면이란 품목은 과의 업무와 무관하다 보니, 정확히 어느 정도 규모인지까지는 몰랐다.
식량정책과가 하수영을 다시 주목하게 된 것은, 작년 한 해 동안 프라임컴퍼니에 납품한 황비버섯 매출액이 알려지면서부터였다.
"버섯 납품가격만 수백억 원이라고?"
"네, 그렇다고 합니다. 프라임컴퍼니에서 라면을 정말 어마어마하게 팔아치웠습니다. 그 모든 게 황비버섯 덕분입니다."
"버섯 납품 매출이 그 정도라면, 그럼 대체 라면 매출은 얼마나 거뒀다는 거야?"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숫자였다.
그때부터 농식품부는 미친 듯이 하수영과 접촉하기 위해서 부단히 애를 썼다.
하지만 하수영은 농민이면서, 정작 농식품부와는 거의 인연이 없었다.
보통 농민들은 농사를 위해 국가에서 여러 가지 지원을 받는다.
농지구매대금이나 농기계, 종자, 비료 등을 구매하기 위한 대출을 받기도 하고, 농사가 잘 안 되거나 망쳤을 때 정부에서 지원을 받기도 하고, 농산물 유통을 위해서 농협이나 정부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또 문제가 생겼을 때 농식품부를 찾아와서 각종 민원을 넣기도 한다.
하지만 하수영은 그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았다.
그는 충분히 받을 수 있는 정부 지원금에 조금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그가 농업에 투자한 자금 액수를 보고 납득이 되었다.
정부 지원금 따위는 그의 입장에서는 생색내기용 푼돈으로만 보였을 것이다. 괜히 받아봤자 관련 서류작성하는 게 더 귀찮기만 한 애물단지.
농산물 유통에 종사했던 전성렬 사장을 통해서 민원을 넣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혼자 알아서 농사 잘 짓는 양반, 괜히 번거롭게 하지 말고 놔둡시다. 정 할 말이 있으면 직접 찾아가서 말하던가 하세요. 나는 이 중매에서 빠지렵니다."
하수영이 직접 운영하는 프라임유통을 통해서 문의를 넣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신통치 않았다. 접점을 만들기가 어려웠다.
그러는 와중에 하수영이 참치 양식을 시작했고, 호평을 얻으면서 농식품부는 바짝 긴장했다.
"이러다가 해수부가 먼저 선수 치게 생겼어!"
그렇게 눈을 부릅뜨고 긴장하고 있는데, 정작 하수영과 먼저 접촉한 부서는 국방부였다.
"아니, 농민이면 우리 관할인데 왜 국방부가 먼저 선수를 치는 거야? 이런 법도가 어디 있나?"
***
돌고 돌아 정말 어렵게 성사한 면담 자리.
양홍명 과장은 마른침을 삼키며 말을 이었다.
"겨울 농사가 가능하다니 다행입니다. 아무래도 우리나라 비닐하우스 벼 재배는 거의 없다시피 하니…… 지금부터 벼 재배를 시작하면 내년초에는 출하도 가능하겠군요."
"음, 올 연말 출하도 가능할 겁니다. 생각보다 벼가 빨리 자랄 거거든요."
"연말 출하가 가능하다고요?"
양홍명 과장과 두 직원이 깜짝 놀라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아무리 그래도 벼의 생육 기간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리고 실내 재배라고는 해도 겨울에는 일조량이 부족할 텐데, 오히려 출하 시기가 앞당겨진다고?
"그런데 왜 그걸 물으시는 거죠? 아무래도 올해 벼농사 망한 것 때문만은 아닌 거 같네요."
정부가 비축한 벼의 양은 엄청나다. 적어도 몇 년 정도는 농사를 안지어도 끄떡없다.
한 해 벼농사가 망하더라도 걱정할 일이 없는 것이다.
단지 올해에는 맛좋은 햅쌀을 먹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뿐이지.
그러나 양흥명 과장은 어두운 얼굴로 흔들었다.
"이번 강풍강우 때문에 전국의 양곡창고들이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군산 양곡창고가 큰 피해를 입었다는 말은 들어서 짐작하고 있지만, 그래도 양곡창고 개수가 천 개는 넘지 않나요?"
"전혀 피해를 입지 않은 창고는 단 한 곳도 없습니다. 비만 많이 내린게 아니라 강풍 때문에 지붕 같은 곳에 피해를 크게 입었으니까요."
하수영의 안색도 조금씩 굳어졌다.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죠?"
"당장 한 달 안에 이 나라에서 모는 쌀이 바닥을 드러낼 겁니다."
"……헐. 그 정도인가요?"
"지금 부랴부랴 미국산 쌀 수입을 추진하고 있지만, 쌀이 태평양을 건너오기도 전에 고갈될 겁니다."
"이거 보통 일이 아니군요."
"중국산 쌀 수입 추진도 고려하고 있습니다만, 지금 중국으로부터 무역 공격을 받는 상황에서 쌀을 팔아 달라고 손을 내밀 수도 없는 상황이라서요. 이건 국가의 자존심 문제입니다."
"게다가 중국산 쌀이라고 하면 세간 이미지도 바닥이고요."
"네, 맞습니다."
현재 중국은 다방면에서 한류문화상륙을 공격하며 압박을 취하고 있다.
한중간의 갈등 촉발에 한국도 끌려들어 가서 이리저리 눈치를 보는 상황에서 선수를 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국민들의 혼란입니다."
"이해합니다. 나라에 쌀이 전혀 없다는 걸 알면 꽤 충격이 클 테니까요. 현 농식품부 장관님이 탄핵을 당할 수도 있는 문제네요."
"아, 거기까지 내다보시는군요. 맞습니다. 자칫 농식품부의 존폐까지 거론될 수 있는 문제입니다."
나라 전체에 쌀이 없다는 걸 알게 되면, 사재기 등 엄청난 혼란이 일어난다. 거의 전쟁 상황을 방불케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
-도대체 쌀 관리를 어떻게 했기에 그 많은 쌀을 전부 못 쓰게 만든 것이냐?
-그럼 이제 우리는 앞으로 쌀밥을 전혀 못 먹는 거냐?
당연히 이런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누군가는 그 책임을 져야만 한다.
"지금 우리 농식품부는 초상집 분위기입니다. 해서 우리나라 제일의 거농이신 하수영 의원님을 모시고 거국적인 대책을 논의하고 싶습니다. 정중하게 부탁드립니다."
"아……쌀은 골목상권 품목이라서 처음부터 건드릴 마음이 없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