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398화
100장 나는 농민이다(1)
-이렇게 됐어요.
정유 수출 문제로 방일 중이던 정서희는 전성렬로부터 이야기를 전해 듣고 잠시 말이 없었다.
프라임오일 때문에 자신을 대신해서 하수영을 만난 그가 안 좋은 소식을 가져온 것이다.
"죽어라고 일본에 기름 팔아서 돈벌어야겠네요."
-그나저나 이야기는 잘됐습니까?
"네, 정유공장은 부도난 후쯔비사 공장을 우리가 인수해서 진행하기로 했어요."
-원유는 충분한가 모르겠어요.
"국자투에서는 쌓아놓은 원유탱크빨리 좀 가져가라고 하루가 멀다고 성화예요. 그거 처리하려면 일본에도 정제해서 팔아치워야지요."
-일본이 해외 수입에는 워낙에 인색한 국가라서 잘될지 불안했는데 잘 풀렸나 봅니다.
"쉽진 않았어요. 그래도 운이 좋았죠. 일단 우리 회사 정제유가 싸고 질 좋은 건 일본 회사들도 잘 알거든요."
정서희는 프라임오일의 확장을 위해서는 한국 내에서만 아등바등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봤다.
그래서 확장을 위한 혁신으로 먼저 일본 수출을 계획했다.
-그나저나 회사에 쌓아둔 현금이다 나가게 생겼으니, 일본 진출은 어떻게 합니까?
"대출받아야지요. 별수 있나요. 그래도 S은행에서 잘해줄 거니까 걱정은 덜하네요."
-회사채라도 발행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상장 회사가 아닌 게 이럴 땐 아쉽네요. 아무튼 저는 사흘 후쯤 귀국할게요."
국제전화를 끊은 뒤 정서희는 폰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쓴웃음을 지었다.
"병원 그까짓 거 써봐야 얼마나 쓴다고 생각한 내가 바보였구나."
아무리 생각해도 공중급유기 도입은 너무했다.
이 정도면 솔직히 기네스북에 올려야 하는 거 아닌가?
***
한국과 미국, 양쪽 정부의 수출입 승인이 났다.
새로 추가된 20기의 퀸 스텔리온과 3기의 KC-1300K 공중급유기는 마찬가지로 소유권은 병원이 갖되, 운영과 보관은 전적으로 주한미군에서 책임지기로 했다.
물론 소정의 운영관리비를 병원이 책임지는 것은 당연한 일.
의외로 언론은 해당 케이스를 크게 다루지 않았다.
군사 관련 신문잡지에서는 국방력의 강화를 놓고 떠들썩하게 다루었지만, 대중의 관심과는 거리가 먼 언론사였다.
총 30기의 퀸 스텔리온과 3기의 공중급유기.
기본비용만 도합 70억 달러가 넘는 사업 규모에 군사전문가들은 나름 어깨를 들썩거렸다.
"구조헬기 운영부를 신설해 체계적인 운영을 해야 합니다. 더 이상 예전처럼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하는 것은 세련됨을 추구하는 청담동 스타일과 맞지 않습니다."
열변을 토하는 중년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최윤석 병원장은 그가 언제 입사했는지를 가만히 생각했다.
'저번 달에 스카우트되지 않았었나?'
정채준 부장은 경영학 전공의, 병원 행정운영을 위해 영입된 비의료인 출신 인사였다.
병원의 재정 규모가 커지고 손대는 영역이 넓어진 만큼, 전문가의 손길이 절실해진 덕분이다.
'입사한 지 얼마나 됐다고 지가 청담동 스타일을 안다는 거야?'
괜히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최윤석은 입을 열었다.
"자네 말대로 하지. 구조헬기 운영부 신설을 맡아주게. 아, 생각해 둔 적임자는 있나?"
"현재 병원 내에는 그만한 부서를 맡아 운영할 만한 인재가 보이지 않습니다."
"흠, 우리 병원에 훌륭한 의사들이 얼마나 많은데."
"교수님들은 진단이나 수술을 하셔야죠. 이건 의사가 아닌 구조전문가가 맡는 게 효율적입니다. 의사 커리어나 실력에 도움이 되는 일도 아니고요."
"하긴, 맞는 말이야."
"중견급 이상의 구조전문가 출신을 영입해서 부서를 맡기는 게 좋다고 봅니다. 그리고 20기의 닥터헬기가 새로이 투입되는 만큼, 병원 직속구조요원 채용도 공개적으로 진행하겠습니다."
"자네 보고서는 다 읽어봤네. 이대로만 추진한다면 내가 더 토 달 것은 없을 거 같군."
헬기 운용은 주한미군에서 하지만 구조요원은 병원에서 책임져야 한다.
의사와 간호사 등은 이미 넘쳐나지만, 헬기에 동승해야 할 구조요원은 부족하다.
정채준 부장은 곧바로 구조요원 공채를 진행했다.
20기의 헬기가 추가되는 만큼, 180명의 신입구조요원을 뽑기로 했다.
[기본급 연 1억 원.]
[출동 수당, 위험수당 별도. 상여금별도.]
[가족 병원비 지원, 자녀 학자금지원.]
[소방관 출신 우대. 가산점 있음.]
[특수부대 출신 우대. 가산점 있음.]
병원 홈페이지에 달랑 올라온 공채 내용이었다. 언론에 대대적으로 홍보를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병원이 예상하지 못할 만큼 엄청난 양의 입사지원서가 쏟아졌다.
특히 전역을 앞둔 특수부대 군인, 현역 소방관들의 관심이 폭발할 듯이 높았다.
청담수영병원은 이미 의사나 간호사만의 오아시스가 아니었던 것이다.
***
재난이 끝난 후, 하수영은 서락을에 새로 지어지는 테라리움 ver2.0을 직접 둘러보았다.
혹여나 강풍과 강우에서 피해를 본것은 없는지 직접 눈으로 보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안전을 중요시하는 자신의 취지에 맞게, 시공책임자들은 강풍과 강우에도 피해가 없도록 사전 조치를 잘 테라리움 ver2.0 건설을 총괄하는 JS건설 조진웅 사장은 현장에서 하수영을 손수 에스코트했다.
"현장은 피해가 미미한 편입니다. 날씨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순간 완전히 철수하고 출입을 막았습니다. 크레인도 붕괴 피해를 우려할만한 높이도 아니고요."
"잘하셨습니다."
"공기 일정은 무리 없이 맞출 수 있을 겁니다. 건물 규모가 크긴 하지만 사람이 살거나 첨단공장시설은 아니니까요."
"저도 테라리움ver3.0 이상은 안가기를 바랍니다. 현재 시대 기술로는 구현이 힘들 것 같거든요."
"하하, 재물운을 워낙 크게 타고나셔서 농사 한번 짓는 것도 여의치가 않군요. 대단하십니다."
조진웅 사장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서락산에서 농사짓다가 금으로 된 유물들이 쏟아져 나오는 바람에 경기도로 이사했고, 거기서는 아예 금맥이 나오는 바람에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다는 사연.
'옛날이었으면 큰 나라를 우뚝 세웠을 천운을 지니신 분이지.'
이미 JS그룹 내에서는 공공연한 이야기였다.
그룹 회장조차 사석에서 하수영을 지칭할 때는 꽤 조심스럽게 말투를 사용한다.
하수영은 충남에 있는 김치농장을 방문해 안희철한테 피해 상황을 물었다.
"수영김치는 우리 수영레스토랑에 있어서 빠져서는 안 될 식품입니다. 공장에 문제가 있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직원들이 피해나 위험을 무릅써서도 안 됩니다."
"네, 이번에도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공장 운영을 아예 중단했었습니다. 출퇴근길에 다치기라도 하면 안되니까요."
"잘하셨습니다."
김치공장 방문 다음에는 최진국이 운영하는 양계장을 찾아서 피해 상황을 체크했다.
"우리 양계장이야 처음 지을 때부터 사장님 조언을 받아 튼튼하게 지어서 문제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친구들이 큰 피해를 봤습니다."
최진국의 양계장은 하수영이 직접 투자를 한 것이기에, 처음부터 자연 재난에 피해가 적도록 지었다.
물난리가 나도 잠기지 않도록 높이 세웠고, 주변에 배수로를 충분히 확보했으며, 비상전력망을 갖춘 온습도조절 시스템은 닭과 병아리들이 폐사하지 않도록 안락한 환경을 제공했다.
"전부 다 물에 잠겨서 망연자실해 하고 있습니다. 병아리 몇 마리라도 살려보겠다고 나섰다가 죽을 뻔한 친구도 있고요."
"저런…… 정말 안됐네요."
"올 한해는 농축산업 종사자들에게 정말이지 지옥 같은 한 해였습니다. 회장님."
최진국의 표정은 어두웠다.
하수영도 이곳으로 오면서 물에 휩쓸린 비닐하우스, 논밭, 목장 및 양계장을 무수히 봤다.
"수영치킨에 납품할 닭을 키우던 양계장주들이 피해 본 게 있으면 저한테 알려주세요. 제가 약간의 도움은 드리겠습니다."
"정말이십니까?"
"도의적인 책임이라도 나누고 싶네요. 어쨌든 저 하나를 바라보고 양계를 시작한 분들 아닙니까."
"아이고, 말씀만 전해드려도 다들 감사할 겁니다."
"그리고…… 아시죠?"
"네, 호의를 권리로 착각하지 않도록 제가 단단히 정신줄 붙잡아놓겠습니다."
"그럼 믿고 갑니다."
그다음으로 통영을 방문한 하수영은 참치 양식장이 피해를 본 것은 없는지 확인했다.
하수영이 내려왔다는 소문이 돌자 경남지역에 있는 어업 관련 종사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저기 있어! 하수영 조합장님이셔!"
"근데 조합장은 아니시지 않나? 그냥 어장주이실 텐데?"
"나를 보셨어! 지금 나를 보신 거야!"
"그럴 리가. 하도 시끄러워서 한번 흘깃하신 것뿐이야."
마지막으로 동백선 수영펜션까지 둘러본 하수영은 캠핑카를 몰고 서울로 향했다.
중간에 고속도로에서 어느 화물차에서 떨어져 나간 불법개조 판스프링 철판이 도로를 덮치면서 대참사가 일어날 뻔했다.
하지만 티타늄 합금으로 된 독일제 주문제작 캠핑카는 전혀 끄떡없이 버터냈다.
"대전차 로켓도 버텨내는 내 차가 바로 뒤에 있었기 망정이지, 만약 내가 없었으면 오늘 사람 여럿 죽고 당신은 연쇄살인범 되는 겁니다! 아셨어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안전수칙 준수하세요."
하수영은 갓길에서 경찰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화물차 운전수를 인계했다.
블랙박스 녹화 영상 등 조사에 필요한 자료와 상황설명도 함께 넘겼다.
"전 괜찮습니다. 티타늄 합금 장갑 차를 타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제 차가 없었다면 아마 제 뒤에 있던 승용차 4인 가족이 크게 죽거나 다쳤을 겁니다. 연쇄 추돌 사고도 일어났을 테고요. 그 점을 엄히 고려 해 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쯧쯧, 중앙정치인들은 대체 일을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단 말이죠. 고속도로의 흉기를 이렇게 버젓이 놔두다니."
"그런데 정말 티타늄 합금 장갑으로 된 차입니까? 캠핑카가요?"
"유리도 완전 방탄이에요. 미 대통령 전용차량보다 강인하죠."
좋은 일을 했으면 생색과 자랑은 잊지 말아야 하는 법.
가벼운 마음으로 청담동으로 돌아온 하수영은 저택 앞에 서성거리고 있는 8명의 중년 남자들을 볼 수 있었다.
"어? 사장님들, 연락도 없이 우리 집에는 무슨 일이세요?"
그들은 평소 원격으로 교류하던 지방 농민들이었다.
하수영은 반가우면서도 의아해서 차에서 내렸다.
"하수영 회장님! 아이고, 우리 좀 도와주세요!"
"이번 물난리 때문에 그러시는군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하수영도 얼마 전부터 알음알음 지방 농민들과 교류하면서 정보를 얻거나 도움을 주고받거나 하고 있었다.
수십 년 이상 농사를 지은 농부들이 알려주는 노하우 같은 것은 그에게도 쏠쏠했다.
엘릭서 앞에서는 다 부질없을 수도 있지만, 다음 재배 품목을 고르는 데에는 선택결정장애를 줄여주는 장점이 있었다.
물론 다 합쳐서 10명도 안 되는, 말 그대로 소소한 인맥이지만…….
올 한해 농사를 망치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찾아온 모양이었다.
"농사만 망한 게 아닙니다! 비료창고고 농기구고, 죄다 물에 잠겨서 못 쓰게 됐어요!"
"지금 가진 거라고는 논밭뿐이에요. 올해 먹고사는 문제도 문제지만, 당장 내년 농사를 어떻게 지어야 할지 정말이지 막막합니다."
비싼 농기구가 망가진 것은 큰 손해였다.
"농기구 사느라고 은행에서 끌어 쓴 대출도 아직 한참이나 남았는데. 막막해요. 죽고 싶습니다."
"그거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정부에서 유예를 해줄 겁니다. 비료는 제가 따로 또 드릴게요."
"올해는 우리 농민들만 농사 망한 게 아니에요. 우리나라 전체가 밥상이 망했어요."
"나라 밥상이 망했다니요?"
"우리 군산에 있는 정부 양곡창고 18동 말입니다. 물에 잠겨서 거기 있는 비축미가 전부 못 쓰게 됐어요. 다른 양곡상고도 상황이 좋지는 않을 겁니다."
"벼고 뭐고 간에 올해 농산물 가격뛰어오를 거예요."
일단 농민들을 집안으로 들여서 이런저런 하소연을 듣는데, 프라임유통 직원한테서 톡 메시지가 왔다.
[사장님, 농림축산식품부 식량정책과에서 전화가 와서 방금 통화했습니다. 사장님을 꼭 한번 뵙고 싶다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