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396화
99장 위대한 자본주의 (2)
지금 SCH-Q4기에서 유일하게 한가한 것은 바로 병원 소속 한승철 구조요원이었다.
의료진은 구조자들을 응급처치하느라 바빴고, 파일럿들은 헬기를 조종하느라 바빴으니.
한승철은 원래 특수부대 출신의 소방관이었지만, 질 나쁜 민원에 휘말리면서 본의 아니게 그만두게 되었다.
소방활동을 하면서 불법주차 된 차량에 손상을 주었는데, 차주가 줄기 차게 민원을 넣고 고발을 하고 소송을 하는 등 1년 넘게 괴롭혔던 것이다.
절대 불법을 건드리지 않는 범위에서 합법적으로 괴롭힘을 행사하니, 소방서의 다른 동료들도 힘들어했다.
결국 그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회의감을 느껴 그만두게 되었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하지 막막할 때, 한 줄기 빛이 내려왔다.
-우리 병원은 귀하 같은 인재가 필요합니다.
닥터헬기를 직속으로 10기나 운영하는 병원이라니.
그런 병원은 일찌감치 들어보지도 못했다. 적어도 수익을 생각한다면 절대로 그런 운영 방침을 취하지 않을 것이다.
-기본 연봉 1억, 출동, 위험, 구조수당, 상여금은 별도.
한낱 구조요원인 자신에게 제시한 조건을 보고 확실하게 깨달았다.
'이 병원, 돈 벌 생각이 전혀 없구나.'
그리고 자신이 타게 될 헬기 기종을 보고 또 깨달았다.
대당 1,400억짜리 군용 대형 헬기라니.
'진짜 정말 돈 벌 생각이 없구나.'
'혹시 이 병원, 의료사업은 위장막이고 사실은 국정원 같은 곳에서 운영하는 곳 아니야? 주변국 눈을 피해서 전략무기 같은 것을 몰래 들여 오려고?'
말도 안 되는 공상이라며, 술자리에서 옛 동료 소방관들과 함께 웃어 넘겼던 이야기.
옛 동료들은 처우 조건을 듣고 정말 잘 되었다고 축하하며, 혹시 빈 자리가 생기면 연락을 달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지금, 한승철 구조요원은 망상이나 마찬가지인 그런 의심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다.
바로 눈앞의 풍경.
미 7함대에서 발진한 공중급유기의 뒤를 따라붙으며 공중급유 작전 중인 광경을 보면서 말이다.
"동체 전면에 뾰족하게 살짝 튀어 나와 있기에 기관총인 줄 알았더니, 그게 급유 파이프였어."
"네?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이제 처치를 다 끝낸 간호사 한 명이 숨을 돌리다가 한승철의 중얼거림을 듣고 물었다.
"우리 헬기 동체 전면에 살짝 뾰족하게 튀어나온 부분 있잖아요."
"아, 그거 기관총 아니에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까 급유 파이프였네요."
"그런데 요즘 헬기는 공중에서 주유도 되고 막 그런 기능도 기본으로 갖춰서 나오는 거예요?"
"군용 헬기, 그것도 하이엔드 신형에만 갖춘 기능이죠. 아마 우리나라 육군항공부대에도 공중급유되는 헬기는 별로 없을 겁니다."
급유를 마친 SCH-Q4기는 급유파이프를 내부로 수납하며 서서히 거리를 벌렸다.
-우리 여왕님은 이제 배불리 드셨나?
-물론이다. 아까까지만 해도 횡포했었는데 이제 아주 얌전해지셨다.
-원래 여자들을 배고프게 놔두면 안 된다. 해병대라면 더더욱 그래야 한다.
-이제 복귀하나?
-아니, 당분간은 한반도를 비행하면서 우리 여왕님들을 위해서 서비스나 해주려고, 주한미군과 미 7함대 협력 작전이다.
-훈련 같은 실전이군. 건투를 빈다.
-귀하야말로 건투를 빈다.
공중급유기는 방향을 왼쪽으로 돌리면서 동해안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기장과 부기장은 멀어지는 공중급유기를 향해 말없이 경례를 보냈다.
의료진들은 그제야 참았던 호기심을 터뜨렸다.
"기장님, 지금 우리가 저 비행기에서 기름을 받은 건가요?"
"저 비행기는 어디서 출발한 건가요? 방향을 보면 우리나라는 아닌 거 같은데."
"그럼 이제 기름 만땅 채운 겁니까?"
"청구서에 기름값은 얼마나 찍힐까요? 우리 강릉분원, 이번에 지출이 대체 얼마나 뜨는 거죠?"
미7함대에서 직접 출격한 공중급유기에서 퀸 스텔리온의 빈 연료탱크를 꽉 채울 만큼 기름을 공급받았다.
급유기 출격 비용 등을 모두 산정하면, 이 기름값은 대체 얼마나 될까?
심지어 지나가는 김에 기름 좀 주고 간 게 아니라, 오로지 SCH-Q4 한 기를 위해 공중급유기가 손수 출동한 것이니.
어느덧 환자들의 바이털이 전부 안정되었다.
19명이나 되는 환자들을 수용하려다 보니 동체 안이 너무 비좁았다.
"접이식 5층 병상을 마련한 게 정말 신의 한 수였어요. 19명이나 되는 환자들을 어떻게 꾸역꾸역 수용 가능하네요."
"그것도 이사장님이 직접 고르셨지, 역시 이사장님은 언제나 옳으시단 말이야."
"닥터헬기가 비상 상황에서 많은 환자를 수용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물품이라고 하셨죠. 이사장님은 진짜 옳으세요."
"정말 우리 퀸이 없었다면 오늘 이 환자들은 어떻게 됐을까요?"
불붙은 선박에서 탈출한 채로 적당히 표류하다가 해양경찰정이 오기 전에 익사했을 것이다.
물론, 구명조끼를 입은 몇 명은 제외하고 말이다.
구명조끼를 입은 채 표류하던 이들은 별다른 처치를 할 필요 없이, 한쪽에 얌전하게 앉아 있는 중이었다.
그들은 급박한 분위기 속에서는 내내 한 마디도 못하다가, 분위기가 밝아지자 눈치를 보면서 드디어 입을 열었다.
"저기, 선생님. 저 사람들은 그럼 모두 무사한 건가요?"
"네, 무사합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4명은 우리가 도착했을 때에 처음부터 이미 없었습니다."
"……그렇군요. 그래도 다행입니다. 정말 꼼짝없이 다 죽는 줄 알았는데……."
"선생님, 그런데 선생님들은 대체 누구십니까? 아무리 봐도 군용 헬기 같은데, 혹시 미군 소속 의무헬기인가요? 오늘 동해에서 림팩 훈련이라도 있었나요?"
"아뇨, 우리는 청담수영병원 소속입니다. 민간 닥터헬기예요."
"제가 육군항공부대 나왔거든요? 척 보기에도 이 헬기는 군용인데요? 게다가 엄청 최신형으로 보이는데, 이걸 닥터헬기로 쓴다고요?"
"네, 원래 군용 헬기 맞습니다. 미국에서도 수출하지 않는 전략품목이죠."
"말이 안 되잖아요. 그걸 어떻게 민간병원에서 닥터헬기로 씁니까?"
"그러니까 정말 자본주의 만세인 거죠."
"……."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한 대답에 질문자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교수는 의기양양해서 팔짱을 낀 채 다시 말했다.
"나중에 돌아가시면 병원 홈페이지에 가셔서 이사장님한테 감사글이라도 한 마디 적어주십시오."
"이 헬기가 1,400억짜리예요. 이사장님이 큰마음 먹고 구입해서 강릉에 배치하신 덕분에 여러분들이 지금 살아난 거라고요. 그러니 이사장님께 꼭 감사한다는 글 적으셔야 해요."
"저도 부탁합니다. 꼭 이사장님께 감사한다는 말 전해주세요. 아, 저희가 권했다는 말은 절대로 하시면 안됩니다."
의료진들이 몰려와서 얼굴을 들이 대며 강요에 가깝게 요구하자, 구조자들은 살짝 질린 채 정신없이 끄덕였다.
그때였다.
-속초에서 교통사고 발생. 상당한 중상입니다. 본 헬기가 가장 빠르게 도착할 수 있습니다.
"좋아, 기장님. 그쪽으로 갑시다."
"오케이. 저분들은 이제 안정됐으니 현장에서 내려서 응급차에 실어 보내면 되겠군요."
"하하, 기장님도 이제 척하면 척이 시네요."
"제가 닥터헬기만 벌써 몇 달을 몰았습니다. 그 정도 계산이야 저절로 서죠."
기장은 즐거운 웃음을 흘리며 조종간을 틀었다.
로터가 더욱 힘차게 회전하고, 동체 좌우에 부착된 제트엔진이 추진력을 뿜기 시작했다.
"환자들이 있어서 퀸젯 모드는 무리고, 그럼 500km/h로 한 번 밟아볼까요?"
***
SCH-Q4가 사고현장에 도착했다.
바이탈이 안정된 구조자들을 현장에서 전부 내리게 한 뒤, 곧바로 중상자들을 동체에 수용해서 응급수술을 시작했다.
내린 구조자들은 현장에서 구급차들을 기다렸다가 인근 병원으로 이송되게 될 것이다.
가까운 권역병원을 찾아 비행하면서 하늘 위의 응급수술을 실행했다.
심지어 병원에 착륙한 이후에도 헬기 안에서의 수술은 계속되었다.
수술 설비만 보면 웬만한 대형병원보다 더 낫기에, 하던 수술은 헬기 안에서 마저 이어가는 게 나았다.
수술 종료 후에는 병원에 환자들을 전원하고, 헬기는 강릉 분원으로 돌아왔다.
중간중간 구조를 필요로 하는 환자들이 발생했지만, 미칠 듯이 심각한 상태의 환자는 없었다.
"동해 한복판에서 그 난리를 겪고 보니, 다른 상황은 이제 전혀 어렵지 않은 거 같아요."
"의대 동기 단톡방에 올렸는데 아무도 안 믿어요."
"뭐? 설마 있는 그대로 다 올린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요. 당연히 해안에서 80km 떨어진 동해 바다에서 닥터헬기 타고 익수자 19명을 구조했다. 이렇게만 올렸죠. 그러니까 아무도 안믿네요. 그게 말이 되냐고요."
퀸젯 모드, 공중급유 이야기는 아무도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의료진과 한승태는 얌전히 보안 서약에 서명을 했다.
퀸의 진짜 모습을 목격한 대가이지만, 아무도 그에 대한 불만을 품진 않았다.
***
강우와 강풍이 완전히 멎음에 따라서, 나라 분위기도 점차 안정되었다.
정부에서는 산사태로 막힌 고속도로, 철도 복구 작업을 빠르게 진행했다.
청담수영병원 홈페이지에는 닥터헬기의 구조를 받은 환자들의 감사글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전국적으로 구급이송 시스템이 거의 마비된 상황에서, 10기의 닥터헬기가 보인 활약은 실로 놀라웠다.
구급차를 부를 수 없었던 산모들은 안전하게 출산했고, 심근경색 환자는 헬기 안에서 스탠트 시술을 받았으며, 뇌출혈 환자는 응급수술을 받고 살아났다.
청와대에서는 감사패를 수여한다는 연락이 도착했고, 연줄을 만들기 위한 정치인들의 연락이 이곳저곳에서 쏟아졌다.
당연히 그 관심은 최윤석 병원장이 오롯이 감내해야 할 몫이었다.
하수영은 병원 관련 연락이 올 때마다 단호하게 흘려넘기기 때문이었다.
바로 다음과 같이.
"병원 운영은 모두 병원장님에게 맡겼습니다. 저에게 말씀을 하셔도 아무 소용 없습니다."
다만 그런 하수영도 환자들의 감사글에만큼은 깊은 관심을 보였다.
병원 센터장, 과장급 교수들을 호출해놓고도 고객센터 새로고침을 계속 실행하는 걸 보니 말이다.
"아, 미안합니다. 모두 많이 기다리셨죠?"
"하하, 아닙니다. 이사장님."
"얼마든지 하던 거 하셔도 됩니다. 어차피 저희 지금 당장 할 일도 없습니다. 이제 병원이 좀 한가해져서요."
"비 그치고 바람 그치니 그나마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저도 사람인가 봅니다. 칭찬하는 글은 저도 모르게 계속 읽게 되네요. 역시 병원에 투자를 한 보람이 있습니다."
하수영은 밝은 웃음을 지으며 노트북을 일단 덮었다.
"이번 재난,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닥친 역대급 자연재해였습니다. 나라 전체가 일시적이지만 마비될 뻔했죠. 하지만 우리 청담수영병원에 근무하시는 모든 분께서 한마음 한 뜻으로 나서주신 덕분에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병원 평판이 올라서 기분이 참 좋습니다."
"이제 전국에서 우리 청담수영병원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이게 전부 퀸 스텔리온 덕분입니다."
"퀸 스텔리온이 이번에 병원 이미지 상승과 홍보를 정말이지 제대로 해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퀸 스텔리온을 좀 더 보급하기로 했습니다. 아무래도 10기로는 부족한 거 같아서요."
"네?"
"그리고 이번에 보니까 역시 닥터헬기가 원활하게 작전, 아니, 구급 활동을 수행하려면 공중급유기도 있어야 할 거 같네요. 다들 어떻게 생각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