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394화
198장 닥터헬기의 기준(3)
한국의 모든 공항은 운영이 중단되었다.
평창의 산사태 이후로는 모든 열차의 운행도 중단되었다.
언제 어디에서 산사태가 일어나 열차가 휩쓸릴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전국에는 통행금지령이 내렸으며, 시내 도로에서는 차량들이 자취를 감추었다.
애초에 도로와 인도 가릴 것 없이 물바다가 된 상황에서, 차량을 끌고 나을 수도 없었다.
국민들은 지난번 우박 태풍 때를 상기했다.
"그때도 이렇게 밖에도 못 나가고 몇 날 며칠 동안 꼼짝없이 집에 있어야만 했던 기억이 나."
"자기는 먹을 게 다 떨어져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잖아."
"맞아. 오빠가 먹을 거 갖다 줘서 살았잖아. 그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부부가 됐구."
"우박 태풍이 맺어준 아주 소중한 인연이지. 하하, 빌어먹을 우박 태풍"
"오빠, 지금 뭐라고 했어?"
"아냐, 지금 저 비바람 욕한 거야. 어이구, 비 한번 참 더럽게 많이 온다."
공항, 철도, 도로, 고속도로 등이 마비되자 바빠진 것은 군부대였다.
대민지원에 나선 군부대는 생필품을 운반하고, 응급환자를 치료하거나 병원으로 호송하는 작업을 벌였다.
저번 우박 태풍 이후로 군부대에 이런 규모의 재난 상황을 가정한 매뉴얼이 생겼다. 덕분에 군부대는 크게 우왕좌왕하지 않고 대민지원을 벌일 수 있었다.
"소대장님! 저기 헬기 지나갑니다!"
"지금 우리 육군 항공대도 헬기는 못 띄우지 않습니까? 비바람이 너무 심하잖습니까."
"저거 아마 민간 헬기일 거다. 청담수영병원에서 도입한 닥터헬기 알지?"
"아! 미 해병대에서 쓴다는 그 대형수송헬기 말씀이십니까?"
"그래, 대당 1,400억 원이나 하는 그놈, 아마 그놈일 거다."
소대장은 순식간에 작아진 헬기의 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거놈 참, 이런 강풍 속에서도 용케 잘 날아다니네."
사망자가 어느덧 두 자릿수가 되었다.
사망자가 전혀 없던 지난 우박 대풍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재난이라는 증거다. 심지어 이번에는 5,000만 개 이상의 프리덤이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는데도.
하지만 재난본부의 분위기는 어둡지 않았다.
이런 국가적 대재난 속에서 이만큼의 희생으로 억눌렀다는 것 자체가 큰 성공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지난번 우박 태풍의 경험, 그리고 프리덤의 지원이 없었다면 사망자는 적어도 열 배 이상이 되었을 겁니다."
"수영병원에서 퀸 스텔리온을 도입한 덕분에 피해를 줄일 수 있었습니다. 닥터헬기들 하나하나가 대형병원 응급실 역할을 충실히 해줬습니다."
"수영병원에서 운영하는 지방 분원들은 또 어떻고요."
구급차, 닥터헬기가 다닐 수 없는 상황에서 10기의 퀸 스텔리온은 쉴 틈 없이 부지런히 움직이며 환자들을 도왔다.
이번 재난에서 유일하게 마비되지 않은 것은 의료시스템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물론 수영병원에서 혼자 다 한 것이지만,
"비가 완전히 그쳤습니다."
"……정말, 영원히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았는데 비가 그치기도 하는군요. 하……."
"기상청 예측으로는 비는 이제 더 이상 오지 않고, 바람도 내일이면 정상으로 돌아올 거랍니다."
"이번에는 부디 구라청이 아니기를 빌어야겠죠."
이제는 재난 이후의 복구 작업을 생각할 때였다.
최중헌 장관은 전국의 굵직한 피해내역부터 살폈다.
평창을 비롯하여 총 4곳의 설로가 산사태로 사용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주요 고속도로도 5곳이 산사태 토사에 점령당한 상태라 복구 작업 전에는 이용이 불가했다.
한강에서는 물이 넘쳐서 주변 시설들이 완전히 침수되어 뻘투성이가 되었으며, 지방에서는 상당수의 농장이 물바다가 되어 한해 농사를 망쳤다.
소, 돼지, 닭 등의 식용 가축들도 떼죽음을 당한 터라, 육류의 가격이 오르는 것은 피할 수 없어 보였다.
그 모든 피해를 돈으로 환산하면 수십조 원 이상은 거뜬히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물류가 마비돼서 얻은 간접적인 피해는 아예 산정하지도 않은, 직접적인 피해만 따진 것이다.
"특히 농가 쪽 피해가 엄청납니다. 벼농사 같은 경우는 아직 수확 전인 탓이라 그냥 전부 망했다고 보시면 될 거 같습니다."
"그럼 올해에는 소비자들이 햅쌀을 먹을 수 없겠군."
"마트에서 팔리는 햅쌀은 사기거나 외국산이거나, 둘 중 하나가 되겠죠."
적어도 지난 100년간 이런 규모의 물난리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현재 살아 있는 사람들은 전대미문의 물난리를 겪은 셈이다.
"수영병원이 그래도 정말 큰 역할을 해줬습니다."
"이 기회에 재난 상황을 대비한 국가적 의료인프라 체질 개선도 이뤄야 할 것 같습니다. 다시 이런 재난이 온다면, 수영병원 없이는 극복할 수 없습니다."
"하수영 의원님 소유의 빌딩들은 하나같이 전혀 침수 피해를 겪지 않았다고 합니다. 평소에 이미 보수공사를 해서 대비가 철저하게 이뤄져 있었다고 합니다."
"강남구와 청담동도 물난리를 적지 않게 겪었는데, 과연……."
"참, 해운대에 짓고 있다는 수영호텔은 어떻게 됐나요? 부산도 피해가 컸을 텐데."
실은 호텔이 아니라 펜션이지만, 건물의 규모 때문에 호텔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미리 공사도 중지하고 크레인도 다 철거해서 거기도 피해가 거의 없다고 하네요. 기껏해야 자재와 시설들이 물에 젖거나 떠내려간 정도가 전부라고 합니다."
"오, 역시."
"진짜 하수영 의원님이 이런 재난 대비는 철저하시네요. 하긴, 그런 분이니 그 비싼 헬기를 10기나 들여 오셨겠죠."
***
강풍과 강우가 완전히 멎고, 청명한 하늘이 모습을 드러냈다.
물이 불어났던 강도 점점 흙탕물이 빠지면서 본래의 모습을 되찾기 시작했다.
흙투성이가 된 도로는 청소 차량이 돌아다니면서 깨끗하게 치웠고, 사람들은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갔다.
수영병원 분원을 가득 채우고 있던 환자들도 정상 운영을 시작한 근처 병원으로 조금씩 전원되거나, 퇴원했다.
물론 수영병원의 환자 의료비 지원정책 덕분에 계속 눌러앉아 있으려는 환자들도 있었다.
"퇴원하셔야 합니다."
하지만 건장한 미군 병사들을 보디가드처럼 데리고 다니는 의사의 통보 앞에서는, 모두가 순한 양이 되었다.
"그런데 무슨 시골 병원에 미군들이 저리 죽치고 앉아서 경비를 선대? 살다 살다 희한한 꼴을 다 보네."
"여기 닥터헬기인지 뭔지가 엄청 비싼 거라서 저렇게 24시간 상주하면서 경비하는 거라던데?"
"아니, 닥터헬기는 지금 보이지도 않구먼 무슨."
"그야 지금은 출동 나갔으니까 안보이는 거지."
***
콜사인 SCH-Q4 기체는 수영병원 강릉분원을 거점으로 운영하는 헬기였다.
원래라면 비상대기 역할을 주로 맡는 부헬기이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대기라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거의 하루에 16시간 이상씩 쉴 틈없이 운영하다 보니, 헬기에 탑승한 의료진과도 상당히 친해졌다.
이번 의료진은 분원에 내려온 지얼마 안 되었다 보니 아직 안면을 틀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2주만 근무하는 분원의 숙명이기도 했다.
"휘유, 다들 고생이 많으십니다. 우리 병원 소속도 아니신데 이렇게 고생하시고."
"뭘요, 생명을 구하기 위한 노력은 숭고한 것입니다."
"그런데 미군이신데 우리나라 말씀을 참 잘하시네요."
"저는 한국계 미국인입니다. 퀸 스텔리온 파일럿은 전부 한국계, 혹은 한국어가 가능한 미군으로만 편성되었거든요."
"아, 역시."
환자를 싣고 권역병원 응급실로 이동하는 와중에, 파일럿과 의료진은 격벽을 열고 농담을 나누기도 했다.
"이제 비바람도 그쳤고, 슬슬 우리 역할도 줄어들고 있군요."
"이번에 이사장님이 병원 근무자 전원에 특별수당을 돌리신다는 말이 있던데."
"아, 정말요?"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수영병원이 정말 큰일을 해줬다고 병원 홈페이지에 칭찬글이 자자하잖아. 지금까지 올라온 칭찬글만 이천 개가 넘어. 그래서 병원 분위기 장난 아니게 좋아."
"이 사장님 흐뭇하시겠다."
"퀸 스텔리온에서 출산한 산모 가족들이 올린 글 봤어? 나는 그거 보고 눈물 찔끔했다니까? 조회 수도 지금 90만 넘게 찍었던데, 나중에 꼭 한번 봐."
"그래야겠어요."
"파일럿분들도 꼭 보시죠. 파일럿분들에 대한 감사도 들어 있더라고요."
"아, 정말입니까? 저희도 꼭 보겠습니다."
환자를 권역병원으로 호송한 후, 퀸 스텔리온은 강릉분원으로 돌아왔다.
연료를 보급하고 잠시 대기하고 있는데, 또다시 프리덤으로부터 연락이 들어왔다.
-해경에 들어온 구조신호입니다!!
조난 위치는 동해! 울릉도발 강릉착민간 배편입니다!
"응급환자야?"
교수가 날카롭게 질문했다.
지금까지 프리덤은 현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정확하게 분석해서 전달을 했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확인 불능입니다.
"뭐? 그게 무슨 말이야?"
-울릉도발 민간 배편에서 발신한 구조신호를 해경에 접수한 것이 현재로써는 확인된 전부입니다. 그 이상은 파악이 불가능합니다.
"젠장, 어째서? 사고현장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지금까지 늘 정확하게 파악했었잖아? 그 배에는 프리덤 사용자가 단 한 명도 없는 거야?"
-대형유람선도 아니고, 와이파이가 안 되는 바다 한복판입니다. 따라서 울릉도를 벗어난 이후, 그 배에서 무슨 일이 생겼는지는 저로서는 알수가 없습니다.
의료진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일어났다.
프리덤의 설명은 모두 알아들었다.
통신이탈권이 되어 프리덤의 눈과 귀를 벗어난 상황에서, 배에서 발신한 구조신호를 해경이 접수한 상황이다.
-현재 SCH-Q4호가 사고가 일어난 배에 누구보다 가장 빠르게 도착할 수 있는 구조편입니다.
해경이 순찰 중인 고속정을 보내봐야, 헬기에 비해서 얼마나 빠르겠는가.
응급환자들은 보통 1, 2분에서 생사가 갈린다. 의료진은 생각할 것도 없이 벌떡 일어났다.
"출동이다! 파일럿분들, 부탁합니다!"
"걱정 마십시오! 연료도 지금 가득 채웠습니다!"
의료진과 파일럿은 서둘러 헬기에 탑승했다.
닥터헬기는 맹렬히 로터를 회전시키더니 순식간에 떠올라서 동해바다를 향했다.
"작전지역 좌표 확인, 직선으로 120km로군."
"너무 먼데, 연료에는 문제가 없겠습니까?"
"걱정 마시지요. 우리 헬기의 항속거리는 1,000km가 넘습니다. 물론 연료를 절약하는 순항비행이라는 가정하에서이지만요."
"오, 그렇군요."
의료진은 살짝 안심했지만, 여전히 안색은 어두웠다.
프리덤은 냉정한 목소리로 상황을 진단했다.
-현재 요구조 배편에서 무슨 사고가 발생했는지 전혀 파악이 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순항속력으로 비행할 경우 24분이 걸립니다. 너무 깁니다.
"기장님! 퀸 스텔리온 한계 속력이 시속 500km이 넘지 않습니까? 한계속력으로 부탁드립니다!"
그러자 기장과 부기장이 의료진을 돌아보고는 의미심장하게 씩 웃음을 지어 보였다.
"겨우 500가지고 되겠습니까?"
"네?"
"다들 마음 단단히 부여잡으세요. 오늘 연료 낭비 한 번 제대로 해보렵니다."
뭔가 음산하기까지 한 웃음에, 의료진의 안색이 흙빛으로 변했다.
저 표정 저거, 큰 사고를 치고 싶어 하는 악동 아닌가?
"우리 퀸의 폭주한 진짜 모습을 보여드리죠. 퀸젯 모드, 가동 준비."
"라져."
"뭐라고요?"
그 순간 의료진은 착석한 의자가 회전하는 것을 느꼈다.
원래 의료진들은 동체의 좌우벽에 등을 대고 앉아서 서로를 마주 보는 구조였다.
그런데 의자가 좌우로 90도 회전하면서, 전방을 주시하는 각도가 된 것이다.
동시에 천장이 열리면서 산소마스크 줄이 내려와서 대롱대롱 매달렸다.
"승무원 전원 마스크를 착용해 주십시오."
의료진은 얼떨떨해하면서도 일단 산소마스크를 착용했다. 불길한 느낌이 점점 몸을 옥죄어 왔다.
"연료 소모가 매우 심하긴 하지만, 여러분들이 원하는 시간을 벌 수 있다면야. 여러분들은 한국인 최초로 퀸의 진짜 모습을 보게 되시는 겁니다."
"진짜 모습이라고요?"
"우리 퀸, 대형헬기치고는 지나치게 뾰족한 유선형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셨나요?"
"그건……."
바로 그 순간 상당한 중력이 의료진의 몸을 덮쳤다.
엄청난 급가속의 힘이 쌓이면서, 의료진은 강제로 의자에 등을 바짝 붙여야 했다.
만약 의자의 방향을 돌리지 않았더라면 견뎌내기 힘든 급가속이었다.
교수는 가슴을 누르는 압박감으로 숨이 가쁜 와중에도, 옆에 조그맣게 난 외창을 통해 밖을 내다봤다.
그리고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로터가 전혀 돌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회전을 멈춘 로터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SCH-Q4의 메인로터가 전부 하나로 가지런히 접혀서 뒤로 늘어지며, 동체 상부에 최대한 내려앉았다.
테일로터도 전부 접은 채, 꼬리날개에 완전히 밀착시켰다.
로터로 인한 공기 저항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서다.
온갖 소음감소 기술이 축적된 첨단 저소음 수송헬기.
동체의 좌우에 장착된 제트엔진 흡기구는 맹렬히 바람을 빨아들여 압축과 연소 과정을 거쳐 뒤로 내뱉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의 정숙함은 마치 내숭이었던 것처럼, SCH-Q4은 무시무시한 굉음을 사정없이 뿜으며 가속했다.
날카로운 소닉붐이 해수면을 강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