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391화
97장 불길한 날씨 (3)
현재 행안부는 프리덤의 공식적인 서포트 서비스를 제공받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와 회사 간 도급계약을 체결하려고 했지만, 실비아컴퍼니의 고사로 무산된 덕분이다.
회사 입장도 이해가 되긴 했다.
정부와 거래를 하면 신경 써야 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닌데, 그에 비해서 반대급부는 적은 편이었으니까.
하지만 행안부는 저번 겨울 태풍때, 프리덤이 보인 놀라운 퍼포먼스를 잊어버릴 수가 없었다.
기철원 차관은 어렵사리 실비아컴퍼니 오철현 사장과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사장님, 본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요즘 날씨가 심상치 않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안 그래도 저희 회사에서도 내부적으로 좀 위험하다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준비는 해놓았으니 정식 협조 공문을 발송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뭘요, 국가를 위한 일인데 이런 것에까지 장사꾼 잣대를 들이대지는 않습니다.
기철원 차관은 곧바로 장관의 재가를 얻어냈다.
저번 겨울 태풍을 기억하는 장관은 별다른 토를 달지 않고 얼른 재가를 내주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
행안부 최중헌 장관은 궁금증에 잔뜩 차서 물었다.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이 대신 대답했다.
"이제 곧 알게 되실 거라고만 들었습니다."
"이제 곧 알게 된다?"
그 말을 조용히 중얼거리는데, 불현듯 최 장관의 스마트폰에서 날카로운 음성이 울려 퍼졌다.
-안녕하십니까, 주식회사 실비아컴퍼니가 제공하는 AI개인비서 프리덤입니다. 대한민국 정부 행정안전부의 공식 요청에 따라, 한시적으로 통합 재난지휘시스템을 제공하게 되었음을 알립니다. 시스템의 최고지휘권자는 행정안전부 최중헌 장관님입니다.
"이봐, 프리덤?"
-현 시간부로 프리덤이 제공하는 모든 개인비서 서비스 단말기는 재난지휘 분야에 한하여, 그 시스템자원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음을 알립니다.
최중헌 장관과 재난본부장은 바로 그 말뜻을 이해했다.
대한민국에 보급된 모든 프리덤 단말기가 재난지휘 보조 목적으로 도움을 제공하며, 최 장관이 최고지휘권자가 되었다는 의미였다.
최중헌 장관은 주먹을 탁탁 소리나게 부딪치며 용기를 북돋웠다. 왠지 모르게 힘이 났다.
"좋아, 프리덤. 이번에도 우리 한번 잘 해보자. 잘해서 이 위기를 극복하고 저번처럼 인명 피해 없이 헤쳐 나가보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자, 그럼 뭐부터 하면 되냐? 뭐부터 하면 돼?"
-먼저 선조치 후보고의 자율권의 범위를 설정해 주십시오. 1단계, 지휘권 내에서 제한 없이 모든 것을 선조치하고 장관님에게 후보고한다. 2단계, 타부서의 관할권 침범 여지가 중대할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를 제외하고 선조치하고 후보고한다. 3단계…….
상황판에는 중국 대륙을 덮고 있는 드넓은 구름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점점 한반도를 향해 가까워지고 있는 그 광경에, 최중헌 장관은 가슴이 서늘해졌다.
"1단계로 한다. 지휘권 내에서 제한 없이 모든 것을 선조치, 후보고 해라."
-알겠습니다. 1단계라 해도 회사에서 설정한 지휘권의 상한선을 초과할 수는 없음을 알려드리며, 지금 이 순간부터…….
***
전국에 강풍주의보와 호우주의보가 발령되었다.
드라마 '부활의 이순신'의 매력에 듬뿍 빠져 있던 국민들은 그제야 심상치 않은 날씨의 기운을 뼛속으로 직감했다.
이미 매년 물난리를 겪는 지방에서는 한해 농사를 전부 망졌다며 손을 놓은 상태였다.
물에 잠긴 비닐하우스, 둥둥 떠다니는 농기구, 지붕 위로 피신한 소떼들의 모습이 간헐적으로 전국에 반영되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과반이 산다는 수도권에서는 그보다 중국에서 전해지는 영상에 더 사로잡혔다.
-미친, 마을 하나가 통째로 사라졌네?
-저 도시 면적이 서울의 세 배라던가? 아예 흙탕물밖에 찾아볼 수가 없는데? 저 정도면 대체 사람이 얼마나 죽은 거냐?
-그래도 제때 피난해서 도시 전체가 수몰된 건 아닐 거다. 물론 사상자가 없을 순 없겠지만.
-지금 후베이성에서는 싼샤댐이 무너지니 마니 하는 판국이라는데?
-그거 무너지면 진짜 아래쪽 지역은 난리, 아니, 지옥이 열리겠다.
-무슨 이재민이 천만 명이 넘게 발생할 수 있는 거야? 역시 대륙답게 스케일이 장난 아니네.
강풍과 호우에 줄곧 시달린 중국의 실황 사진이 널리 퍼졌고, 한국인들도 참혹한 풍경에 할 말을 잃었다.
서울의 몇 배가 되는 도시들이 사라지는 등, 그 커다란 규모에 중독된 나머지 한국 지방에서 벌어지는 물난리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정도였다.
"뭐, 수도권에서 언제부터 지방 물난리에 그리 크게 관심을 가졌다고."
"매미 정도는 되어야 방송국들이 관심 가지고 보도해 줄까 말까 하지. 비닐하우스 몇 개 수몰된 걸로는 없어."
"진짜 올해는 왜 이러냐. 저번에는 우박 태풍이더니, 이번에는 홍수에 강풍이야?"
인도양에서 출발한 기류는 중국 대륙을 지나면서 물을 잔뜩 내뿜었지만, 서해를 지나며 물을 다시 보충해서 한반도를 적시고 있었다.
기상청 수퍼컴퓨터는 제대로 된 시뮬레이션 예측을 내놓지 못했다.
번번이 틀리기만 하는 기상예보, 국민들은 물론이고 기상청 직원들조차 더 이상은 예측 결과를 믿지 않았다.
"그래도 프리덤이 있어서 다행이야."
"그래, 이번에도 프리덤 님이 우리를 지켜주실 거야."
"야, 프리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저번처럼만 해줘. 부탁한다. 알았지?"
사람들은 추운 겨울, 태풍과 우박속에서도 프리덤 덕분에 단 한 명의 사망자도 없었던 지난 일을 기억했다.
그렇게 모든 이들이 강풍과 호우속에서도 의연하게 버티는 와중, 정담동에서는 심각한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
-지구 온난화 현상과 하필 태양흑점 이상 활동이 겹치면서 동아시아에 닥친 악재로 추정됩니다.
"확실해?"
-나사에서 공개한 태양표면 관측 사진을 토대로 태양 활동을 기상 관측 정보에 연동해서 계산한 결과입니다.
"그럼 기상청은 모르겠네."
-네, 그렇습니다. 기상 변화 예측에 태양 활동까지 자세히 고려하지는 않으니까요. 그러기에는…….
"예산이 모자라겠지. 그럴 컴퓨팅자원이 어디 있어."
당연하겠지만, 태양은 지구의 기상상태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변수요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상청은 기상 예보를 할 때 정작 태양의 컨디션은 자세히 고려하지 않는다.
-지구자기장 흐름 변화까지 고려 하기에는 컴퓨팅 자원이 모자랍니다. 부디, 제 본체를 한 번 더 업그레이드해 주신다면…….
"너 본체 들이느라고 지금 지하실이 꽉 찬 건 알고 있지? 당분간은 그 상태로 만족해."
-이대로는 정확한 기후 변화 예측을 할 수 없기에 드리는 요청입니다.
하수영은 아직도 비가 쏟아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나참, 이제는 태양 흑점 활동 분석이 안 되면 농사도 제대로 짓기 힘든 세상이 되었어. 이러니까 다들 농사 때려치운다고 하는 거지."
-경농을 위해서는 지구온난화 문제 해결이 더 빠릅니다. 태양을 당장 인간의 손으로 어떻게 할 수는 없으니까요. 지구온난화는 사실 인간이 세월 동안 쌓은 업보이니만큼, 인간의 손으로 해결을 해야겠죠.
"그러게 이산화탄소 좀 작작 배출하라니까. 과학자들이 그렇게 말을 해도 정치가들이 어디 들어먹어야 말이지."
산업화 시대 이후 기하급수적으로 배출된 이산화탄소는 지구를 뜨겁게 만들었고, 그로 인한 대가는 이제야 조금씩 인간의 눈에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일단 너는 행안부에 협조 잘해서 최대한 잘 막아 봐. 너무 설치지는 말고, 권한을 벗어나면 안 된다."
-저는 설정된 권한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알지만 한 번 그냥 당부하는 거야. 그나저나 나도 공지를 돌려야겠네."
[안녕하십니까. 건물주입니다.
요즘 강풍과 호우로 인해 전국적으로 큰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세입자 여러분들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창문과 현관문 관리를 상시 주의해 주시고, 물이 차 있을 때 전봇대 주위로 다가가지 말 것을 잊지 말아주 십시오.
비상연락처를 다시 한번 알려드리니, 혹여 귀 사무소에 이상이 생길 경우에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언제든지 부담 없이 문자를 남겨주시면…….]
하수영은 빌딩 세입자들에게 한 명도 빠짐없이 연락을 돌렸다.
그중에는 실비아컴퍼니 박덕준 회장도 포함돼 있었다.
그러고 난 후 부산 해운대에 있는 이도공 건축사한테도 전화를 돌렸다.
"건축사님, 저 하수영입니다."
-아, 네. 회장님. 어쩐 일로 전화를 다 주셨습니까.
"동백섬 펜션 공사는 어떻게 돼가고 있나요?"
-강풍 주의보 때문에 일단 중지하고 상황 보고 있습니다. 혹시 몰라서 크레인도 일단 해체해서 내려놨습니다.
"잘하셨습니다. 그리고 웬만하면 바닷가에서 멀리 피해 있으세요. 아무래도 이거 심상치가 않네요."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공사 현장에 무슨 일 생겨도 절대 수습하려고 하지 마세요. 그냥 전부 지나갈 때까지 손 놓고 있으세요."
-네, 회장님.
하수영은 마지막으로 청담수영병원현황을 확인했다.
최윤석 병원장은 시원스럽게 말했다.
-지금 의사와 간호사, 일반 직원들까지 모두 예외 없이 출근해서 비상대기근무 중입니다. 청담동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간에 우리 수영병원이 굳건히 지켜내겠습니다.
"잘하셨습니다. 지방 분원은요?"
-혹시 몰라서 닥터헬기 호출해서 보충 인력을 내보냈습니다. 지금 분원은 평소보다 열 배가 넘는 인력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분원은 지금 말 그대로 터진 김밥이나 마찬가지일 거라는 말은, 굳이 덧붙이지 않았다.
전부 출근했으면 청담수영병원 본 원도 물 반, 고기 반이나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그래도 닥터헬기가 참 든든합니다. 예전 같았으면 바람 조금만 세게 불어도 위험하다고 닥터헬기 띄우는 거 엄두도 못 냈을 텐데 말입니다.
"원래 타고 다니는 것은 미제가 튼튼해요. 차든, 항공기든, 선박이든 말이죠."
-역시, 그래서 이사장님께서 미제캠핑카를 타고 다니시는 거군요.
"퍼포먼스는 독일제인데요. 물론 대주주는 GM이지만요."
당장 할 수 있는 조치를 마친 하수영은, 지구 온난화 변화 수치 분석표와 태양 흑점 관측 사진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역시 농사는 손이 많이 간다니까. 그래도 농사만큼 정직한 건 또 없으니까 말이지."
***
최중현 행정안전부 장관은 쉴 새없이 쏟아지는 프리덤의 보고 로그를 정신없이 읽고 있었다.
조치 진행 과정과 결과를 간단하게 요약해 놓은 버전의 로그이지만, 그 어떤 재미있는 영화보다도 정신없이 빠져들게 하는 흡입력이 있었다.
[충북 제천, 72세 여성 대피 완료, (자세한 내용 열람)]
[서울 강북, 32세 남성 차량 탈출 완료.(자세한 내용 열람)]
[제주 서귀포, 45세 여성 하천 고립. 3분 안에 구조대 도착 예정.]
[부산 해운대, 건설 중이던 상가빌딩 타워크레인 강풍으로 붕괴. 사망자 2명 발생.]
전국 각지에서 5,000만 개에 달하는 프리덤 단말기가 진행하는 구조조치의 실시간 요약 보고, 정신없이 쏟아지는 요약을 읽는 것만으로도, 지금 어떤 구조 활동이 펼쳐지고 있는지 한눈에 들여다볼수 있었다.
이것은 저번 우박 태풍 때는 겪어보지 못한 경험이었다.
그때는 프리덤이 정식으로 행안부와 소통을 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개별 직원들, 국민 개개인이 프리덤과 소통하면서 각자도생(인 줄 알았던) 했을 뿐이다.
하지만 이렇게 재난 최고지휘권자의 입장에서 실시간 현황을 파악하니, 프리덤이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을 돕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이건 마치, 내가 하늘 위에서 대한민국 국민들 전원을 동시에 내려다보는 것 같은 기분이군."
뭔가 지시를 할 틈도 없었다.
지시를 하기 전에 프리덤이 이미 알아서 가장 적절한 지시를 현장 실무진에 통보하고 있었으니까.
최 장관은 신이 된 듯한 기분이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품을 정도였다.
바로 그 순간, 빨갛고 굵은 글씨의 보고와 함께 날카로운 경고음이 울렸다.
-평창, 산사태 발생! 운행 중이던 열차 탈선!
"뭐야? 야! 본부장아! 큰일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