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390화 (390/1,270)

프랜차이즈 갓 390화

197장 불길한 날씨 (2)

[부활의 이순신]

타이틀이 안개에 지워지듯이 서서히 사라지며, 자욱한 안개로 덮인 수평선이 나타난다.

희끄무레하게 동이 터오는 풍경 사이로, 안개를 비집고 나무로 만들어진 배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두둥! 두둥!

묵직하게 울리는 북소리에 밀려나듯이, 안개가 걷히며 왜국 군용함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면 위를 가득 덮은 수백여 척의 배들이 줄을 맞춰 달려오는 모습은, 오싹 소름이 돋을 만큼 웅장했다.

-쿠궁! 쿠구궁!

그때 우렁찬 포성이 울려 퍼지며, 포탄이 쉴 새 없이 하늘과 수면을 뒤덮었다.

흐트러진 안개를 뚫고 수많은 포탄들이 왜군 선단을 향해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왜군 선단을 수평으로 향한 카메라 시점이 위로 올라가며, 프레임에 담는 시야가 넓어진다.

왜군 선단에 포탄을 퍼붓는 조선군 선단을 높은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던 카메라 시점은, 이윽고 반전하며 왜군의 기함 지휘관의 겁에 질린 눈동자로 빨려 들어간다.

왜군 지휘관의 눈에 비친, 저 멀리 조선군 기함의 장수가 부릅뜬 눈으로 외친다.

-모조리 때려 부숴라!!

하늘을 가릴 듯이 새카맣게 덮은 수없이 많은 포탄들이 포물선을 그리며, 카메라를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쿠구궁! 쿠우웅!

"오, 시작하자마자 대규모 해상전 인가요?"

"네, 회장님께서 그렇게 코치를 하셨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첫방 초전부터 해전으로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입니다."

"아우, 이거 CG 갈아엎고 다시 만드느라고 정말 개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소름이 돋네요."

"이야, 그래도 정말 잘 만들지 않았어요? 안방 시청자들 지금 눈이 휘둥그레졌을 겁니다. 이게 어디 주말 드라마에서 나올 수 있는 퀄리티인가요."

눈과 귀를 사로잡는 해전에서 조선 군단이 우수한 승리를 거두며, 그렇게 드라마는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근데 방금 그 전투는 어느 해전이죠?"

"그게 중요해요? 그냥 멋있으면 중요한 거지."

"아니, 그래도 역사적 고증이라는 것이……."

"드라마에는 원래 각색이 들어가는 법입니다. 이순신 장군님하고 조선수군만 멋있게 나오면 그만이에요. 안 그래요?"

"맞습니다. 우리가 수천억 들여서 다큐멘터리 찍을 만큼 돈이 남아도는 것도 아니고, 그냥 멋있기만 하면 됐죠."

"멋있네요. 멋있어요. 그럼 됐습니다."

"시청자 게시판에서 근데 이게 무슨 해전을 연출한 거냐고 물어보는데요?"

"그런 건 무시해, 무시해. 어차피 작가님도 평행세계의 임진왜란이라 생각하고 대본 쓰신다고 하셨어."

"무조건 이순신 장군님만 멋있게 나오면 됩니다. 네, 그거면 됩니다."

"그래도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님이 퇴장은 하셔야겠지?"

"그럼요, 고증을 아예 무시할 수는 없잖아요. 아예 말이 안 되는 이야기는 진행 안 할 테니, 다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드라마는 방영 내내 화끈한 볼거리로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첫 해전에 이어 나타나는 수군 주둔지의 광경은, 촬영 세트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은 실제감이 가득했다.

마치 정말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서 수군 주둔지를 촬영한 것만 같았다.

즉, 영화 촬영에 돈을 무지막지하게 퍼부었다는 이야기다.

어느 스태프 한 명이 소곤거리며 동료에게 말했다.

"이거 1화 촬영하는 데만 300억원 썼대요."

"300억 원이나요?"

"네, 심지어 배우 출연료는 빼고 300억 원이래요."

"세상에."

"우리나라 최초 천억대 드라마라고 하지만, 실제로 들어간 총제작비는 이천억이 넘으니까요."

눈과 귀를 사로잡는 대규모 해전으로 끊은 스타트, 이어서 웅장한 시대적 배경을 낱낱이 보여주며, 왜란을 어찌 막아낼지 이순신의 깊은 번뇌가 드문드문 등장한다.

마지막에는 소규모 함대 국지전.

이순신을 존경하고 따르는 어린 장교가 함대를 지휘하던 중 조종에 맞아 중상을 입고 기함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1화 엔딩.

쉴 틈을 주지 않고 밀어붙이는 발빠른 전개가 끝나고, 스태프들은 비로소 숨을 쉬었다.

"우와, 쩔었다."

"역시 자본주의의 힘은 대단하구나. 웬만한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보다 더 나은데?"

"설마 앞으로 24화 내내 이런 CG 사이즈로 전개되나? 촬영할 땐 몰랐는데 완성 버전 보고 나니 입이 안다물어져."

"어디 보자, 시청률이……."

그제야 시청률에 눈에 미친 스태프들은 서둘러 문자 내역을 체크했다.

그들은 스마트폰을 부여잡고 경악했다.

"6, 62%!"

"세상에! 말도 안 돼! 이게 가능한 수치야?"

"아니, 어떻게 62%가 나올 수 있어? 이거 뭔가 잘못된 거 아니야?"

시청률 62%,

케이블 종편 채널이 난무하는 지금 시대에서는 절대로 불가능한 수치였다.

그저 하수영이 기분 좋게 회식비로 10억을 쏘기 위해서 극단적으로 높여 부른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62%가 나올 줄이야.

"워낙 1화부터 인상적인 드라마이니 시청률이 잘 나올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62%라니……."

"솔직히 1화 타이틀 올라가는 장면에서 채널 돌릴 수 있는 사람 없죠. 그게 무슨 드라마입니까, 그냥 헐리우드 영화지."

"혹시 비바람 때문에 다른 방송 채널들 송출에 뭔가 문제가 생겼나?"

"우리 드라마 막 시작할 때 TVT 송출국에 서버 정전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는 들은 거 같아요."

어느 정도 진정된 직원들은 62%라는 경이적인 시청률에 관해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아날로그 시대에서나 가능했을 수치가 현재에 다시 한번 구현된 것이다.

이미 인터넷에는 62%라는 시청률, 드라마의 압도적인 스케일과 천문학적인 제작비, 블록버스터 영화 CG 등을 놓고 칭찬하는 기사들이 일색이었다.

"근데 효주 씨는 1화에 왜 안 나와요?"

"편집했어요. 저는 내일부터 나와요. 시청자들한테 기대감을 준다. 뭐 그런 거죠. 그나저나 비 진짜 많이 오네요."

하수영은 흘끗 창밖을 바라봤다.

쏟아지는 빗줄기는 어느새 장대처럼 굵어져서, 불과 수십 미터 밖의 불빛도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아무래도 오늘 스튜디오에서 자고 가야 할 각인데요? 비가 너무 많이 오는데."

"워워, 이런 날에는 그냥 밖에 나가지 말고 얌전히 있는 게 안 다치고 오래 사는 길이야. 어우, 저 비좀 봐. 잘못 나갔다가는 어디 물살에 휩쓸려서 실종될 수도 있겠다."

하수영은 팔짱을 끼고 지그시 비오는 밤 풍경을 노려보다가 중얼거렸다.

"이거 올해 농사는 다 망치겠는데."

"아, 맞다. 곧 있으면 수확철이죠? 근데 비가 이렇게 많이 와서 어떡해요?"

"저야 상관없지만 다른 농부들이 걱정이네요. 특히 벼농사하시는 분들, 제대로 대비는 하셨으려나 모르겠어요."

드라마는 이미 사전 제작이 다 끝난 상태라, 당장은 폭우가 쏟아지는 말든 스태프들은 크게 상관이 없었다.

드라마는 여러 분야에서 경이적인기록들을 세우며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수천억대 제작비가 투입된 드라마를 통해 자본주의의 좋은 참맛을 알게 된 시청자들은 엉엉 울면서 시청자 게시판에 감동글을 남겼다.

-지금껏 이런 드라마는 없었다. 이것은 드라마인가, 블록버스터 영화인가.

-충무공에 자본을 끼얹으니 이런 대작 드라마가 만들어지는구나. 아니, 이건 드라마를 넘어선 그 이상이라고 본다.

-부활의 이순신을 일본으로 수출해야 한다! 일본놈들에게 우리 충무공의 진면목을 보여주자고!!

-근데 1화 도입부 첫 해전은 대체 역사 기록에서 어떤 전투였던 거냐? 실제 있었던 해전은 맞음?

-아 몰라. 그냥 재밌고 멋있으면 됐지, 드라마에서 뭘 그렇게 전부 고증을 따지려고 함?

-PD : 그냥 충무공의 멋짐을 즐기시면 됩니다. 그게 시청 포인트입니다. 라고 하는데?

-비 너무 많이 와서 집에서 뒹굴고만 있었는데 이런 좋은 드라마를 방영해 주셔서 매우 감사합니다.

광고는 당연히 비싼 값에 완판되었고, 흥행은 계속 기세를 몰아갔다.

1, 2화만 방영한 부활의 이순신은 단 한 순간도 시청률이 55%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었다.

T서비스의 1인자 넷플렉스에 방영권을 선점하기 위한 접촉도 들어왔다.

해외의 방송사에서도 앞을 다투어 수입 제안이 들어왔다.

그러나 이즈음, 하수영은 자신의 손을 떠난 드라마보다는 다른 곳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비가 하루가 멀다고 오네. 바람도 너무 거세고, 느낌이 좋지 않아."

[인도양에서 형성된 대규모 비구름기류가 지속적으로 유입되고 있습니다. 중국은 이미 홍수 때문에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기 직전입니다.]

"비도 문제인데 바람도 문제네. 이번 겨울처럼 우박만큼은 내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전 국가적 재난을 불러일으켰던 겨울 태풍이 기억났다.

당시 대규모 우박까지 동반하는 사람에 전국적으로 물적 피해가 무지막지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프리덤이 존재감을 크게 발휘하여, 실비아컴퍼니가 매달 수조원의 프리덤 구독료 매출을 올리는 계기가 되었지만,

"아버지, 혹시 저한테 하실 말씀없으세요?"

-비바람 때문에 그러느냐? 태풍도 아닌데 뭘 그렇게 걱정을 하고 그러냐.

"혹시 저번처럼 아버지가 또 저한데 시련을 주신답시고 마련한 이벤트가 아닌가 해서요."

-떽, 저번에도 나는 아무런 손도 쓰지 않았다고 분명히 말하지 않았느냐? 나는 어디 삿된 신처럼 불필요한 시련을 내리거나 하지는 않는단다.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는지 지켜보고 그에 걸맞은 보상을 내리기는 해도 말이다.

"알겠습니다. 그래도 뭐 해주실 말씀은 없으세요? 이러다가 자식이 한해 농사를 망치게 생겼어요."

-콘크리트와 강화유리로 지은 공장에서 농사짓는 놈이 무슨…… 좋아, 알겠다. 내가 보기에 이번 비바람은 동아시아에 꽤 타격을 줄 거 같구나.

"어느 정도로요?"

-그거야 닥쳐봐야 알지. 알겠지만 지금 내 본신은 우주 멀리 있단다. 지금 여기 있는 은하신목은 나의 자아를 잠시 복제해서 이식한 아바타에 지나지 않잖느냐.

"프랜차이즈 갓의 위대한 능력이라면 아무리 먼 우주에 있어도 이런 작은 소행성에서 일어나는 기후현상 쯤은 한눈에 꿰뚫어 볼 수 있는 기아닌가요?"

-너는 아파트 탑층에서 단지 정원구석에 있는 작은 개미집이 잘 보일거라 생각하니? 그래도 내가 원인은 뭔지 알려줄 수 있단다. 궁금하지?

"그건 저도 알아요. 괜찮아요."

-아니,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조금만 관심 있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건데요?"

***

"결국 온실효과 때문입니다."

행정안전부 차관 주재 긴급회의에 호출된, 기상청 소속 직원은 덤덤히 말했다.

"지구가 뜨거워지면서 이전에 없었던 이상기후현상이 자꾸만 일어나는 거죠. 아무 조짐이 없었던 이번 겨울 태풍도 그 일환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국제 기상학자들도 그렇게 분석하고 있습니다."

"지금 근본적인 원인을 묻는 게 아니잖나. 예상되는 피해 규모를 묻는 거지."

행안부 기철원 차관은 답답하다는듯이 가슴을 쳤다.

기상청 직원은 덤덤히 대답했다.

"그거야 저희도 모르죠."

"모른다고?"

"네, 현재로써는 비바람이 얼마나 거세어질지, 또 어느 기간이나 유지 될지 예측이 안 됩니다. 기존의 기상예측모델과는 전혀 동떨어진 데이터다 보니 우리 기상청 컴퓨터가 제대로 분석을 못 하고 있습니다."

"허어."

"그래도 아직 겨울은 아니니 저번처럼 주먹만 한 우박이 쏟아지고 그러지는 않을 겁니다. 다만 바람이 좀 더 센 편이니 날아가는 구조물에 피해가 없도록 조치하고, 또 물이 범람하지 않도록 미리미리 대비하는 게 좋겠습니다."

기철원 차관은 한숨과 함께 창밖을 내다보았다.

평소에는 잘 보였던, 대로 건너편의 큰 빌딩의 모습이 장대비에 가려져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실비아컴퍼니에 연락을 해야겠어."

유례없는 대규모 우박 태풍을 인명피해 없이 막아낸 프리덤의 능력을 다시 한번 빌릴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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