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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389화 (389/1,270)

프랜차이즈 갓 389화

97장 불길한 날씨(1)

김예진은 원래 3호기 빌딩 1층, 수영레스토랑 본점 옆의 약국에서 페이약사로 일했었다.

3호기 빌딩에는 병원들이 대거 입주해 있어, 약국은 장사가 잘되는 편이었다.

그녀는 특히 예쁘다고 소문이 나서, 근처에 거주하는 노인들이 일반의약품이나 건강식품 등을 사러 일부러 방문하곤 했었다.

"이거 이번에 나온 엘릭서드링크인데요, 한 번 드셔 보세요. 효과 정말 좋아요. 가격도 싸요."

"처자 약사, 이게 뭐신가?"

"건강보조식품인데 노인분들에게 특히 더 좋더라구요. 우리 할머니도 이거 드시고 귀가 밝아지셨어요. 한번 드셔보세요."

엘릭서드링크의 효능을 직접 체감한 김예진은 노인들을 상대로 특히 열심히 영업을 했다.

그거 더 판다고 자신에게 돈이 더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노쇠한 친할머니가 기력이 돌아온 것을 직접 눈으로 봤기 때문이다.

다른 건 몰라도 자양강장제로서는 효과가 탁월한 건강보조식품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의 제의를 받게 되었다.

"김예진 약사님, 잠깐 시간 좀 내 줄래요?"

"저요?"

"네, 지금 괜찮으실까요? 식사라도 하시면서."

점심때 느닷없이 건물주가 찾아와서 이야기 좀 하자고 했을 땐, 얼마나 당황했었는지.

잠시 준비를 하는데 사장 약사는 물론이고 약국 동료들이 질리도록 놀려댔다.

"아이구, 우리 예진이 그럼 이제 청담동 사모님 되는 거야?"

"건물주 부동산 자산만 2조 원은 된다고 하던데, 이제 예진이 팔자 폈네."

"시댁살이도 없이 남편만 바라보면 되니까 아유 편해. 부럽다, 부러워."

"아니에요, 그런 거. 오늘 처음 이야기해 본 거란 말이에요."

민망해서 그렇게 반박을 하긴 했지만, 내심 속으로는 '혹시?'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물론 하수영이 식사 중에 꺼낸 말에 그런 기대감은 살짝 박살 났지만.

"약국 운영 한 번 안 해볼래요?"

"약국이요?"

"네, 약국을 맡아서 운영해 줄 사람이 필요해서요. 돈은 제가 대겠습니다."

이성적인 호감이 있다는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던 김예진은 살짝 실망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이야기는 그런 실망감을 싸그리 날려 버릴 정도로 강렬했다.

"제우약국이요? 청담수영병원 앞에 있는 그 대형 약국?! 저, 저는 그런 큰 약국은 운영 못 해요!"

"괜찮아요. 규모만 조금 커질 뿐, 그냥 여기 약국하고 별다를 것은 없습니다. 취급하는 약제만 좀 더 다양해지고, 많아질 뿐이죠."

"제가 어떻게 그런……!"

"제 주변에 맡길 만한 약사분이 김예진 씨밖에 없습니다. 꼭 좀 부탁드립니다."

결국 김예진은 하수영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지금 일하는 약국은 그만 두게 되었다.

동료들은 더욱 호들갑을 떨었다.

"어머나, 너한테 진짜 마음이 있나보다."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지금 빌드업하는 거라고, 밑밥, 밑밥! 생각해 봐. 네가 그 약국 맡은 다음에 고백하면 너 그거 거절할 수 있어?"

그 말에 김예진은 귀가 솔깃해졌다.

"그, 그런가?"

"아예 고백 자체를 거절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만들어버린 다음에 실행하겠다. 이거 아니야."

"어쩜, 연애도 사업처럼 실패할 상황 자체를 전혀 안 만들고 개시하네. 대단하다. 그 사람."

"그러니까 젊은 나이에 저렇게 크게 성공한 기겠지?"

그렇게 김예진은 20대 중후반이라는 젊은 나이에 국내 최고의 종합병원 앞 대형 약국을 맡아서 운영하게 되었다.

약국의 주인은 김예진이지만, 그 비용은 하수영이 댔으며, 약국이 입주한 빌딩주는 하수영이 되었다.

인수비용은 하수영이 김예진에게 빌려주는 것으로 처리했다.

대신 비공개 계약서가 있었다.

[10년 안에 일반인의 약국 운영이 가능해질 시, 약국을 넘기는 것으로 채권을 갈음한다.]

김예진 입장에서는 전혀 손해 볼게 없는 내용이었다.

막말로 당장 일반인의 약국 운영이 가능해져서 넘기더라도, 대표약사는 계속 그녀가 맡게 될 테니까.

"그런데 이런 날이 오긴 할까요? 지금 약사법 작은 개정안 하나 가지고도 저렇게 갈등이 심한데."

"금방 통과될 거라고 봅니다. 모재벌그룹의 메디컬 욕심이 워낙 대단하거든요."

서해그룹이 영리병원법인에 이어, 영리약국법인을 열심히 준비하고 있으니, 외상외과 강기문 교수는 몇 달간의 긴 분원 생활을 마치고 청담병원으로 돌아왔다.

"아, 벌써부터 강릉이 그립구나."

황태수 교수의 뒤를 이어 강릉 분원으로 내려간 강기문 교수는 몇 달동안 그곳에 머물렀다.

원래는 2주만 분원 생활을 하고, 6주 동안 청담동에서 근무를 해야 하지만, 분원 생활에 흠뻑 빠진 나머지 순환을 계속 거부한 것이다.

하지만 당장 올라오라는 이사장님의 하늘 같은 호출은 버틸 재간이 없었다.

-앞으로 반년은 청담을 벗어날 생각도 하지 마십시오.

"내가 과연 청담 본동에서 할 일이 있을까? 거짓말 좀 보태서 환자보다 의료진 수가 더 많은 이곳에서?"

퀸 스텔리온에서 내린 강기문 교수는 병원 로비 분위기가 이전보다 더욱 차분해진 것을 확인했다.

"병원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어. 다들 눈빛과 움직임에 제대로 각이 잡혔는데."

"이사장님이 이번에 제대로 한바탕하셨으니까요. 알음알음 명맥을 이어가던 태움, 군기 문화도 이번에 완전히 증발했다고 합니다."

"그나저나 요즘 서울에 영리병원법인 허용 문제로 많이 시끄럽던데. 이런저런 말도 엄청 나오고."

"의협에서도 우리 병원 의사들한테 이런저런 협조 요청을 줄기차게 하는데, 전부 신경 끄고 있습니다. 제우약국 스캔들이 얼마 전에 있었던지라, 다들 몸 사리고 병원 일하고 연구에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재단 눈밖에 벗어나는 일은 하지 말아야지. 이런 이상적인 병원이 어디에 있다고."

의료계에 어떤 갈등이 생기는 간에, 수영병원은 언제나 그 밖으로 물러나 있었다.

주변에 무슨 일이 터지는 간에, 자기 갈 길만 묵묵히 걷는다.

그 덕분에 동료 의사들한테서 이런 저런 원망도 많이 듣는 편이다.

너희만 잘 먹고 잘살면 다냐, 우리도 도와야지, 라는 식으로,

"황제우 사장은 어떻게 됐대?"

"이사장님한테 약국하고 청담동 건물 가진 거 넘기는 조건으로 추가 소송은 피했습니다. 이사장님도 적정 시세로 매입해 주셨고요, 추징금으로 수백억 나온 모양입니다."

"한순간에 개털이 됐군. 그러게 왜 리베이트 중개 같은 것을 멋대로 추진해서."

"이 사장님이 청담동 수집가라는 이야기는 어디서 들었는지, 그거 갖다 바칠 테니 한 번만 용서해 달라고 빌었답니다. 그래서 이사장님이 거기서 봐주신 거랍니다. 어차피 돈 물어주려면 빌딩 다 팔아야 하는 상황이었거든요."

"그래도 벌어놓은 게 있으니 남은 인생 편하게 살겠네."

"이거저거 다 물어줘도 백억 넘게 남을 거라던데요?"

"……나도 외상외과 교수 말고 약사를 했어야 했을까?"

***

오랜만에 만나는 장효주는, 블록비스터 사극 드라마 촬영 덕분인지 살이 더 빠진 상태였다.

"서해그룹하고 그런 일이 있었는 줄은 몰랐네요. 안 그래도 이번에 겔드폰 CF 들어왔었는데, 거절할까요?"

"왜 거절해요? 그냥 받으세요. 돈벌면 좋죠."

"그래도 썸남하고 몇 트러블 있는 회사하고 비즈니스로 얽힌다는 것은……."

"아, 여기 주문 왜 이렇게 안 받지?"

장효주는 눈을 가볍게 흘기고는 그의 빈 잔에 물을 따랐다.

"지금 서해병원하고 정확히 어떤 상태인 거죠?"

"전 링에 오를 생각도 없는데, 혼자 링에 올라가서 허공에 잽 휘두르면서 도발을 하길래 제가 의자를 집어 던졌더니, 깨갱하고 링 밖으로 튕겨 나온 상태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런 구체적인 설명 좋아요. 확 와닿네요."

"어차피 내년 되면 복싱, 그러니까 의료 장사질에 신경 쓸 겨를이 없을 겁니다. 본가에 화재가 날 예정이거든요."

"궁금해라. 그게 뭐죠?"

"서해전자 반도체 사업 사정이 급격히 나빠질 전망이라서요. 그거 수습하느라 병원 운영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겁니다."

식사를 하던 중, 문득 창문이 거세게 흔들리는 듯한 바람 소리가 들렸다.

장효주는 포크를 멈춘 채 창밖을 잠시 응시했다.

"또 비가 오려나 봐요. 바람이 거세지네요."

"요 며칠 바람이 세긴 하더군요."

"아, 지금 비 와요. 엄청 쏟아지는데요?"

과연 창밖을 보니, 하늘이 뚫린 듯한 기세로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장마철도 아닌데 비가 엄청 오네요. 갑자기 올 초 태풍이 생각나지 않아요?"

"아니, 부정 타게 왜 그 태풍 이야기를 꺼냅니까? 그때 제가 빌딩 침수 위기 수습하느라고 얼마나 힘들었는데."

"그때 제가 사는 청담 아파트도 전기 끊어져서 발만 동동 구를 때 수영 씨가 나타나서 전기 이어 줬잖아요. 밖에 못 나가니까 이거 먹으라고 인스턴트식품도 많이 놓고 가시고."

"세준 집에 전기 끊어져서 세입자가 고초를 겪으면 집주인으로서 당연히 조치를 해줘야지요."

"전 그때 수영 씨가 저한테 흑심있나 생각했어요. 태풍 정전을 핑계 삼아 온 게 아닌가 하고."

"흑심은 예나 지금이나 없습니다. 걱정 마시죠."

"그럼 왜 지금 저랑 밥 먹어요?"

"원래 주변 사람하고 밥 자주 먹습니다. 의회 직원들하고도 매일 먹는데요."

"치, 재미없어."

빗줄기는 더욱 굵어지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둘이 식사를 마칠 때 쯤에는 비가 상당히 약해진 상태였다.

하지만 도로에는 손바닥 한두 범이상의 깊이로 물이 차 있었다.

단시간에 워낙 집중호우가 내리는 바람에 물이 미처 다 빠지지 않은 것이다.

"이거 제 차는 끌면 안 되겠는데요."

장효주가 끌고 온 차는 차체가 낮은 스포츠카였다.

도로에 물이 차 있는 상황에서 끌고 나가기에는 침수가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제 차를 타시죠. 어차피 제작사로 같이 가야 되잖아요."

"그럼 신세 좀 질게요."

야외 주차장에 주차한 캠핑카 '퍼포먼스'는 도로에 물이 차 있든 말는 끄떡없는 위풍당당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차 내부를 이리저리 둘러보던 장효주가 손뼉을 치며 감탄했다.

"그동안 수영 씨가 왜 이런 캠핑카를 데일리카로 쓰는지 이해가 안 갔는데, 오늘 알겠어요. 비가 아무리와도 전혀 걱정이 없겠네요."

"마약 먹은 포르쉐 차주가 뒤에서 들이박아도 전혀 끄떡없죠. 요새 도로에는 워낙 이상한 놈들이 많아서, 자기 안전은 자기가 챙겨야 해요."

"저도 그럼 앞으로 스포츠카는 안끌래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작은 차는 아무래도 위험합니다. 차는 무조건 크고 튼튼한 게 좋아요."

도로에 워낙 물이 차 있다 보니, 돌아다니는 차량은 거의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오늘 저녁에는 장효주가 출연한 드라마 제작진이 다 같이 모여서 드라마 1화를 함께 시청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하수영과 장효주는 따로 점심을 먹고, 약속 장소로 향하는 중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하수영 회장님, 비많이 왔을 텐데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효주, 이제 왔어? 우리끼리는 이미 시청률 내기 다 끝내고 기다리고 있는데."

"비 너무 많이 와서 못 오는 줄 알았는데, 올해 들어서는 왜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 거야?"

"이게 다 이상기후 때문이잖아. 그러니까 탄소 배출을 이제부터라도 적극 규제해야 돼. 하긴, 지금까지 너무 많이 배출해서 이제는 늦었지만……."

"자자, 두 분도 시청률 내기 참석하셔야죠."

1화 방송 직전이다 보니, 시청률을 가지고 다들 이미 내기를 한 상태였다.

장효주는 수줍게 20%를 걸면서 200만 원을 내놓았고, 스태프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했다.

"회장님도 거셔야죠."

KI스튜디오 총괄실장 장기석이 넉살 좋게 웃으며 하수영의 참가를 권했다.

하수영은 수표 한 장을 꺼내서, 현금 뭉치 맨 위에 턱 하니 올려놓았다.

"62%에 10억 걸겠습니다."

"……."

"……."

순간 적막 같은 정적이 주변에 내려앉았다.

어떤 스태프는 긴장이 극에 달한 나머지 조용히 딸꾹질을 하기도 했다.

그제야 장기석 실장이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물개 박수로 환호를 보냈다.

"이야! 역시 드라마에 천억 넘게 쏟아부으신 최고투자자답게 화끈한 결정입니다! 다들 박수!"

"우와와아! 하수영 회장님, 최고!"

"사랑합니다. 회장님!"

60%라는 시청률은 케이블 방송이 등장하기 이전에나 가능한 꿈의 기록이다.

지금처럼 온갖 채널이 난무하는 상황에서는 불가능한 수치다.

스태프들은 하수영이 회식비로 10억을 쏘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역시 화끈하셔!'

회식비 10억으로 뭘 먹을지 다들 즐거운 고민을 하면서, 자리를 잡으며 첫 방송이 시작하기만을 기다렸다.

한국 드라마 역사상 최초로 제작비천억을 넘긴 블록버스터 사극 드라마.

[부활의 이순신]

웅장한 배경음과 함께 타이틀이 떠올랐고, 스태프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박수를 쳤다.

가장 창가에 가까이 서서 시청하던 스태프는 불현듯 창밖을 때리는 바람 소리에 잠시 시선을 돌렸다.

"진짜 바람 한 번 겁나게 세게 부네. 또 쏟아지려고 이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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