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388화 (388/1,270)

프랜차이즈 갓 388화

96장 나비가 일으킨 바람에 날려간(2)

서해그룹은 오랫동안 건강산업 장악을 추진해 왔다.

건강은 곧 돈이 된다는 것을 일찌감치 인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투자 수익을 한 푼도 가져갈 수 없지만 의료재단을 설립해서 병원을 만들었고, 많은 돈을 쏟아부었다.

제약과 의료기기 산업에도 투자했고, 건강 관련된 보험 상품들도 잇따라 내놓았다.

의학대학과도 꾸준히 협력 관계를 유지했고, 항암연구 등 각종 생명연구에도 힘을 쏟았다.

건강보험공단에도 오랫동안 공을 들여 눈과 귀, 손발이 되어줄 사람들을 심었다. 언제든 전화 한 통화만 하면 그들이 힘을 다해 그룹을 도와준다.

모든 조각은 갖춰졌다.

이제는 그것을 하나로 엮어낼 마스터피스만 갖춰지면 된다.

"의료산업의 완전한 자유화…… 이번에 매부가 일으킨 날갯짓이 꼭 이 뤄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비가 될 준비를 갖춘 애벌레는 이제 날개를 펴고 날아가기만 하면 되는데, 하필이면 하수영이 끼어드는 바람에, 바로 앞까지 다가왔던 꿈이 다시금 멀어지고 말았다.

"생각해 보니 부회장님 말씀대로 우리 그룹 입장에서는 조금 안타까운 일이군요. 추중원 사장의 시도가 먹혔다면, 이번에야말로 의료계의 완전한 민영화를 이끌어낼 수 있었을 겁니다."

"민영화라고 부르지 말게. 자유화라고 불러야지."

"네, 자유화. 죄송합니다."

"지금 이 나라 의료계에는 자유가 없어, 자유가. 당연지정제니 건강복지니 하는 망상에 모두가 묶여서 허우적거리고 있네."

이현덕을 눈을 들어 먼 하늘을 응시했다.

그는 지금 저 멀리 미국을 그리고 있었다.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의료계가 자유로운 환경을 갖춰야 하는데."

뒤늦게 등장한 트리단만 아니었어도, 유벤스틱은 거침없이 질주했을 것이다.

유벤스틱을 내세운 서해보험 민영보험으로 고소득자들을 대거 끌어들일 수 있었을 테고, 그럼 건강보험의 재정과 존립 자체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었을 것이다.

계속 그렇게 쉴 새 없이 흔들어대면, 늦어도 10년 안에는 건강보험공단을 무력화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서해보험이 건강보험공단의 역할을 대신 수행하고, 무력화된 공단은 결국 서해보험의 자회사로 흡수된다.

그리하여 이 나라 건강산업의 최고 리더가 되어 국가의 미래를 견인할 수 있었을 텐데, 그 꿈이 이렇게 다시 한번 무산되고 말았다.

"다시 이어나가면 되지. 혹여라도 내 대에서 이루지 못하면, 내 다음 대에서라도……."

하지만 이현덕은 좌절하지 않았다.

이미 수십 년 동안 꾸준히 공을 들인 일이다.

온갖 세력들이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의료계의 자유화를 막아냈지만, 서해그룹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많은 돈과 노력, 인내심을 쏟아 부어가며 차근차근 전진해 왔다.

또 한 번 실패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다시 나아가면 된다.

***

"서해그룹의 궁극적인 목적은 바로 생명 권력 쟁취입니다."

전성렬과 정서희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성렬이 물었다.

"결국 우리나라 의료시장을 장악하겠다. 그런 뜻 아닌가?"

"전혀 다릅니다."

"잘 이해가 안 가는데,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주게."

"말 그대로, 이 나라의 모든 국민의 생명 그 자체를 완전히 움켜쥐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생명 권력이라고 한 겁니다."

"생명 권력……."

"자본권력, 정치권력, 산업권력, 그것과는 다른 형태의 신종 권력이죠. 아직 이 세상에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조금씩 싹이 트고는 있죠."

"잘 이해가 되지는 않아."

"재벌 회장 정도 되면 몇몇 사람의 생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죠. 하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서해그룹은 아마 그 한계를 완전히 돌파해서, 이 나라 전체 국민의 생명을 좌지우지하고 싶었을 겁니다. 그게 인세 권력의 궁극적인 종착점이니까요."

"생명 그 자체를 좌지우지한다라……."

"아마 서해그룹 오너 일가도 구체적으로 이런 생각을 품진 않았을 겁니다. 그저 막연히 건강산업 자체를 쥐고 싶다. 지금은 이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나중에는 깨닫게 된다?"

"네, 자기가 붙잡고 있던 욕망의 끄트머리가 이어진 본체의 모습을 인지하게 되는 거죠. 그때쯤 가면 이미 모든 게 끝나 있을 겁니다."

"어떻게 되지?"

"작게는 감기약과 항생제에서부터, 크게는 대수술과 중병 치료제, 그리고 말년의 요양시설까지. 건강과 관련된 모든 것들이 일개 그룹에 완전히 장악당한 상황이 되어 있겠죠."

"대다수 국민들은 당연히 그걸 인지하지 못하겠네요."

정서희가 차분하게 끼어들자 하수영은 가볍게 끄덕였다.

"네, 그런 의미에서 영리병원 따위는 스타트 지점이라고 말한 겁니다. 골인 지점은 아직 누구도 겪어보지 않았죠."

"그래서 촉이 이상하다고 느끼자마자 트리단 항암제 사업권을 산 건가?"

"네, 단순히 교수가 전공의를 폭행했다는 걸로 끝나지 않을 거 같았습니다."

"……무슨 감이 저렇게 말도 안 되는 거죠."

정서희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럼 서해그룹의 욕심이 무너진 거로군."

"원래 빌드업이라는 게 남몰래 차분하게 쌓아야 성공하는 건데, 초장부터 들켜 버렸으니까요. 덕분에 다시 처음부터 공들여 쌓아야 할 겁니다."

항암제 급여 지정으로 출발해서 영리병원 보편화를 거쳐, 의료산업을 장악하고 궁극적으로는 국민 전체의 생명 그 자체를 쥐어 권력화하는것.

대재벌의 그런 끝 모를 야심을 상상하던 전성렬은 불현듯 오한이 들었다.

'돈 많은 사람들이란, 대체…….'

재벌들이 정말 다 그런 존재들이라면, 잠시 겸상하는 것조차 두려울 것만 같다.

"욕심, 욕망이라는 게 그래요. 그저 쫓기만 하다가 정신 차려보면 어느새 자기가 생각지도 않던 곳에 도착해 있죠. 거기서 만족하지 못하고 더 깊고, 더 높은 곳으로 계속 뛰려고 하는 게 특징이죠."

"……."

"이번에 적절하게 한 번 끊어줬으니 당분간은 괜찮을 겁니다."

"서해그룹 오너는 자기도 몰랐던 욕심의 끝을 간파당해서 중간에 넘어지게 된 거로군. 뭔가 우스운데."

"그나저나 수영 씨는 그걸 어떻게 잘 알아요?"

"권력은 결국 사람의 생명 통제를 향하거든요. 산업화 시대에서는 죽음으로써 통제를 했지만, 이제는 삶으로써 통제를 하려는 권력자들이 활기를 칠 때죠."

하수영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 흐름은 이미 만들어져 있어요.

의료 산업, 식량 산업, 문화 컨텐츠산업, 연애 산업, 글램이나 듀오 같은 거요."

"의료와 식량은 알겠어요. 약과 식량이 있어야 사람이 살 수 있을 테니까요. 근데 문화 컨텐츠는 뭐예요?"

"재미있는 게 없으면 사람이 지루해서 죽잖아요. 대충 그런 뜻입니다."

"……."

"그런 것들을 어떻게 잘 조합하고 독점하느냐에 따라서 차세대 생명권력이 만들어지는지가 갈리는 거죠."

정서희가 불현듯 탄성을 냈다.

"그러고 보니 수영 씨는 농사에 열심히 집중하잖아요? 혹시 수영 씨도 그런 권력을 노리는 건가요?"

"그랬으면 제가 쌀이고 뭐고 닥치는 대로 농사지어서 우리나라 다른 농가들 다 망하게 하고 저 혼자만 한국 유일의 농부 행세를 했겠죠."

"……아, 그러네요."

"어쨌든 유벤스틱 지정 취소로 크게 당했으니 당분간은 몸 사리고 있을 겁니다."

"서해서울병원 암센터동이 요즘 파리만 날린대요. 올해 들어서 처음으로 적자가 날 거라고 분위기 엄청 살벌해요."

그래도 한 해에 수천억 원 이상의 흑자를 내다가 갑자기 적자로 전환하면, 오너 일가의 분노를 감당할 방법이 없다.

적어도 지금 병원장은 사표를 쓰고 강제 은퇴해서 죽은 듯이 지내야 할 것이다.

전성렬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 왜 우리 하 사장을 함부로 이용하려다가 이 꼴을 당했을까. 참 어리석은 친구들이란 말이야. 이게 벌써 몇 번째지?"

"서해식품부터 서해바이오메디컬까지 전부 합치면 대여섯 번은 되지 않아요?"

"하 사장, 자네는 아무래도 이번 생은 서해그룹과는 악연인가 봐."

"제가 만든 악연이 아니라 저쪽에서 시작한 악연이죠."

***

병원은 조영태 교수의 폭행에 대해 감봉 및 간단한 징계 조치를 내리는 것으로 끝냈다.

교수가 전공의를 폭행한 것은 엄연한 잘못이다. 원래라면 더욱 중한 징계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정상을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었다.

전공의 황철이 자기 삼촌이 운영하는 대형약국의 힘을 믿고, 멋대로 조영태 이름을 대고 리베이트 돈을 킵해놨으니.

그런 사정을 감안해서, 병원은 '이후부터는 둘이 알아서 해결해라'라는 선에서 물러났다.

황철은 해고되었다.

조영태를 비롯해서 많은 교수들을 리베이트에 엮어 넣으려고 한 짓은, 어떤 이유에서든 용서받을 수 없었다.

향후 그는 수영병원과 연루된 어떤 사업에도 발을 들이지 못할 것이다.

분개한 교수들은 황철을 고발하자고 주장했으나, 최윤석은 고심 끝에 고발만큼은 봐주기로 했다.

그 대신 최윤석은 제우약국을 리베이트 혐의로 고발했다.

국세청과 검찰이 들이닥쳤고, 제우약국을 샅샅이 털어대기 시작했다.

이번 건에 한해서만 수백억 원 규모의 리베이트가 발각되었고, 그간 누적된 금액을 다 합치면 천문학적인 금액이었다.

제우약국은 그간 꾸준히 리베이트브로커 역할을 하면서 중간에서 엄청난 수수료를 챙겨왔던 것이다.

제약계를 발칵 뒤집어놓을 리베이 트 게이트 사건으로 번질 뻔하자, 검찰은 오히려 고심했다.

"이거 잘못 건드리면 여의도, 청와대까지 번진다. 적당히 처리하고 덮자."

리베이트에 연루된 거대 제약사들을 뒤지면서 올라가다 보면 그들의 뒤를 봐준 현역 고위 공직자, 거물정치인과 기업가들까지 칼을 겨누게 되고 만다.

그런 부담이 싫었던 검찰은 중견급 제약회사 2, 3개와 제우약국을 희생양으로 삼는 선으로 수사의 상한선을 그었다.

***

"제우약국이 망했네요."

"그러게요. 영원히 망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망하기도 하네요."

"그럼 앞으로 우리 병원 방문한 환자들은 어떻게 되는 거죠?"

"제우약국 정도면 여기저기서 인수하겠다고 달려드는 약사들 많을 걸요. 입지가 워낙 좋잖아요. 일단 인수만 성공하면 정직하게 영업해도 돈을 쓸어 담으니까."

"황제우 약사, 리베이트 받은 것하고 과징금까지 다 물어내려면 건물 다 팔아야 할 거라는 말이 있던데."

"근데 수십 년 동안 워낙 번 게 많아서요. 아마 그거 다 물어내도 그래도 백억은 남을 거예요."

"그래서 우리 과장님이 의대 교수 괜히 됐다고, 약학을 병행해야 했다고 그렇게 투덜거리신 거구나."

"그나저나 요즘 약사들이 우리 병원 홈페이지를 그렇게 눈팅한다던데."

"우리 병원 홈페이지는 왜요?"

"제우약국 인수하는 게 눈치 보여서래요. 아무래도 우리 병원에 종속돼서 장사하는 약국이니까, 이사장님 눈치를 보는 거겠죠. 이사장님이 그럴 분은 아니지만, 작정하면 약국 엿 먹이는 길은 무궁무진하잖아요."

약국사장 황제우가 구속 조사를 받고 있는 와중에도 제우약국은 페이 약사들 덕분에 일단은 굴러갔다.

그리고 쥐도 새도 모르게 조용히 약국 사장이 바뀌었다는 이야기가 병원 내부에 퍼졌다.

"김예진? 이름은 이쁘네. 근데 누구 이 약사 이름 들어본 적 있어요?"

"얼굴 한 번 봤는데 굉장히 젊더라고요. 이쁘장하던데."

"뭐하는 친구인데 그 젊은 나이에 저런 큰 약국을 인수할 만한 재력이 있는 거죠?"

새로운 약국 주인의 정체를 놓고 병원에서는 조용한 호기심이 퍼지고 있었다.

"아, 저 약사분!"

"김 선생, 누군지 알아요?"

"수영레스토랑 본점 있는 빌딩 1층에서 페이약사 하시던 분이잖아요. 예쁘고 친절해서 그 빌딩 방문객들 사이에서 인기 많았는데. 괜히 소화제나 가스활명수 한 번 산다고 약국 어슬렁거리기도 하고."

"아, 그럼 혹시 이사장님 중개로 약국 인수한 건가?"

"설마 혹시?"

"그럴 리가 없어요. 우리 이사장님이 여자 보기를 얼마나 돌같이 하시는 분인데……."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