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386화
95장 100% 같은 15%(4)
화이주의 유벤스틱, 다이엘의 트리단.
제약계의 쌍대 기둥이 자신 있게 내놓은 신약 항암제다.
성능은 유벤스틱이 훨씬 좋지만, 가격도 그 이상으로 비싸다.
보통 1회 처방으로 끝나지만 그 대신 약값이 6억 원이나 되니까.
반면 트리단은 1년 치 복용량이 1,600만 원 정도 된다.
둘은 항암 시장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지만, 처음부터 유벤스틱이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그러나 두 라이벌사의 경쟁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한국 시장에서 운명의 분기점이 갈리기 시작했다.
다이엘 한국지사는 한국 의약품 시장을 뚫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던 중,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뭐? 유벤스틱이 급여 항목으로 지정됐다고?"
"네, 공단 심사를 통과했다고 합니다. 2기 이상은 50%, 말기는 90%까지 공단이 약값을 부담한다고 합니다. 환자부담금도 장기할부로 갚을 수 있도록 공단이 보증을 서주기로 했고요."
"한국 정부는 어째서 화이주한테만 이런 말도 안 되는 특혜를!"
다이에 한국지사장은 이를 바드득 갈았다.
국제적으로 보면 한국 의약 시장은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이곳에서 거둔 실적이 곧 자신의 승진 점수가 되기에, 지사장으로서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본사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아왔다.
[트리단, 한국내 독점생산 및 유통권 매각 완료.]
[권리자는 하수영의료재단.]
"청담병원에서 트리단 한국 사업권을 샀다고?"
"네, 앞으로 한국에서 트리단을 생산하고 팔려면 정담수영병원의 허락이 있어야 합니다. 이제 그 병원이 권리자니까요."
"본사에서 왜 이런 결정을 한 거야?"
"한국 시장에서 트리단이 별로 큰 재미를 못 볼 거라고 생각한 거 같습니다."
마르코 지사장은 끙 하고 신음 소리를 냈다.
그래도 본사에서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신약인데, 벌써부터 이렇게 밀릴 줄이야.
"아무래도 유벤스틱이 그동안 미국과 유럽에서 보인 퍼포먼스가 너무 컸습니다. 그에 비하면 우리 신약은 기존 항암제보다 성능하고 가격이 조금 더 개선된 정도니……."
천문학적인 연구개발비를 투자한 것치곤, 기존 항암제보다 좀 더 개량된 정도밖에 안 되었다.
그에 비해 유벤스틱은 6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가격에, 85% 완치라는 놀라운 퍼포먼스를 보였다.
소비자들의 눈이 어느 쪽으로 쏠릴지는 뻔하다.
"수영병원은 그럼 트리단 권리를 왜 산 거지?"
"저희도 잘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권리를 구매한 것이, 유벤스틱이 급여 약제로 지정되기보다 이전이라고 합니다."
"알다가도 모르겠군."
"오늘 하수영의료재단에서 사람이 오기로 했습니다. 트리단 유통 문제를 놓고 나눌 이야기가 있다고 합니다."
마르코 지사장이 맞이한 인물은, 바로 최윤석 병원과 젊은 수행원이었다.
최윤석 병원장과는 이미 면식이 있기에, 마르코 지사장은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본 이야기는 여기 재단에서 나온 이분이 말씀하실 겁니다."
'이렇게 젊은 사람이 협상 책임자라고?'
마르코는 상대가 재단 이사장이라는 것도 모른 채 의아한 마음을 안고 이야기에 들어갔다.
"반갑습니다. 저는 하수영의료재단 제약유통사업 책임자입니다. 앞으로 트리단 한국유통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해 볼까 합니다."
"그래서 한국 사업권을 구매하신 거군요."
"네, 그렇습니다."
"실례지만 현재 트리단이 국제제약시장에서 어떤 입지인지는 알고 계십니까?"
"전체적으로 조금씩 개선이 되긴 했지만, 뭔가 획기적이지는 않다, 이런 이미지 아닌가요?"
"제대로 보셨군요."
효능도, 부작용도, 가격도, 환자의 고통도, 모든 게 조금씩 개선이 됐지만, 그게 전부인 약.
그래도 꾸준한 매출이 나오는 덕분에 그간 쏟아부은 막대한 연구개발비는 건지고 소정의 이익도 볼 것으로 예측은 된다.
하지만 자신 있게 우리 회사의 간판이라고 내밀 만한 타이틀은 아니라는 것.
뭔가 소박하고 자잘한 캐시카우라고 보면 될까?
"괜찮습니다. 저는 오히려 이런 약이 좋습니다. 너무 파격적인 발전은 꼭 그만한 반대급부를 불러오거든요."
"트리단이 국내 사업에서 유통되려면 먼저 급여 약제로 지정이 되어야 합니다. 일 년 치 약값이 1,600만 원이다 보니 아직 한국 시장에서는 트리단을 복용하는 암 환자가 별로 없습니다."
듣고만 있던 최윤석이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그리고 유벤스틱이 급여 약제로 지정된 이상, 공단도 이제 재정적 여유가 바닥입니다. 트리단까지 지정을 해주려고 하지는 않을 겁니다."
똑같은 항암제 부류.
그중 좀 더 획기적이고 비싼 약이 간택을 받았으니, 다른 후보군은 자동으로 탈락이다.
그 때문에 마르코 지사장은 트리단의 한국에서의 운명이 끝났다고 본것이다.
"급여 약제로 지정되느냐 안 되느냐, 이건 유통사업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죠. 약값을 꼭 공단이 부담해 줘야 한다는 법은 없잖아요."
"일반 암환자들이 마음 편하게 부담하기에는 여전히 비싼 가격입니다."
"달에 약 267만 원, 이 정도면 암 치료 비용으로 치면 유벤스틱보다 저렴하죠. 거기는 최소분담금이 6,000만 원입니다."
"하하, 두 달만 약을 먹고 전부 낫는다면 누구나 트리단을 찾겠죠."
마르코는 꿈같은 일이라고 생각하며 허탈하게 웃었다.
그런데 상대의 표정이 진지한 것을 보고 웃음을 그쳤다.
"저희 재단 제약 과학자가 트리단의 성분과 효능을 면밀히 조사했습니다. 그 친구는 트리단이 우리 병원 암환자들을 위한 조커가 되어줄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제약 과학자의 판단을 믿습니다."
'재단에 이사장님 말고는 직원이 전혀 없지 않았나?'
"우리 병원에서 트리단을 적극적으로 처방할 겁니다. 지금 국내에서 트리단을 유통하는 약국은 거의 없으니, 병원에서 직접 처방을 할 겁니다."
유벤스틱이 급여 지정이 되자마자 간간이 받아주던 트리단의 물량은 싹뚝 끊겼다.
취급하는 약국이 없으니, 수영병원에서 직접 처방을 해도 무방한 상황이다.
마르코는 떨떠름하게 반응했다.
"그야, 하수영의료재단에서 한국사업권을 갖고 있으니 얼마든지 그러셔도 됩니다."
"다행이군요. 혹시 지금 국내 재고가 얼마나 있지요?"
"20,000명의 환자가 2년 동안 투약할 수 있는 물량을 갖고 있습니다."
"그럼 240,000명의 환자가 치료받을 수 있겠네요. 작년 암 발생 환자수가 22만 명 정도였으니, 뭐 충분하네요."
"……?"
***
엘릭서 드링크는 신체의 건강 불균형을 바로잡아주는 효능을 갖고 있다.
송이버섯이 지닌 원기 충만이라는 상징이, 엘릭서 비료를 만나 개화하여 그런 효능을 품게 된 것이다.
주신 후계자의 성역으로 선포된 수영병원은 자기 구역에 존재하는 환자의 생명 기운을 보전한다.
끼지려는 기운이 있으면 멱살을 쥐고 끌어당기고, 불을 피우고 싶어하는 기운이 있으면 더 잘 붙도록 북돋워 준다.
그 둘의 시너지는, 항암 치료가 수십, 수백 배 이상의 효능을 발휘할 수 있게 해준다.
말기 암 환자도 전부 완치돼서 나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덕분이다.
"쯧쯧, 유벤스틱이 혼자 잘나서 그렇게 잘 치료가 된 게 아닌데."
그 사실을 모르는 서해바이오메디컬과 건강보험공단만 중간에서 곤란한 지경에 빠진 것이다.
"유벤스틱이나 트리단이나. 우리 병원에서는 어차피 그게 그거지."
성공률 400%와 110%.
환자 입장에서는 차이를 느낄 수 없는 수치다.
굳이 환자가 체감할 수 있는 차이를 말하자면…….
"유벤스틱은 한 달, 트리단은 두달. 그런데 약값은 트리단이 훨씬 싸고."
최소 6,000만 원과 약 267만 원.
환자들이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분명하다.
***
숨이 넘어가기 직전인 최아람은 이제 24시간 산소호흡기에 의지하고 있었다. 중증 폐부전까지 왔기 때문이다.
절망과 기도만을 남겨두고 있던 가족들은 수영병원 관계자의 연락을 받았다.
"우리 병원에서 마지막 치료를 해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유벤스틱은 이미 써봤어요. 하지만 소용이 없더라고요."
"다이엘사의 신약, 트리단이라는 항암제가 있습니다. 우리 병원에서 그걸 한 번 써보시죠."
"하지만 트리단은 효능 개선이 별로라고 하던데요. 유벤스틱에 비하면 보름달과 반딧불 차이라고."
"에이,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그리고 환자마다 맞는 약이 다를 수도 있어요. 한 번 해보시죠."
"……."
"신임 이사장님이 우리 병원을 인수한 이후, 그 어떤 중환자도 병원내에서 사망한 적이 없습니다. 모두 완치되거나 적어도 크게 호전을 보이고 병원을 나섰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는다.
가족들은 어렵지 않게 전원을 결심했다.
청담수영병원 암센터동으로 옮겨진 최아람은 곧바로 다이엘사의 항암제, 트리단을 처방받았다.
"뭔가…… 벌써부터 숨이 덜 차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최아람이 가쁜 호흡으로 말하자 담당 교수가 허허 웃었다.
"약효가 넣자마자 바로 돌진 않습니다. 그래도 환자분의 느낌이 좋아 진다면 다행입니다."
"진짜예요. 병원 들어올 때부터 숨이 조금씩 덜 차는 것만 같아요."
"다른 환자분들도 우리 병원이 터가 좋아서 그런 것 같다는 말씀은 자주 하십니다."
놀랍게도 환자는 이틀 후, 폐 활동량이 정상 수준 가깝게 회복되었다.
산소마스크를 떼는 순간 환자의 친모가 울음을 터뜨렸다.
"아니, 여보, 상태 좋아져서 떼는 건데 왜 울어."
"흑, 마스크 메는 날이 우리 딸 죽는 날이라고만 생각했는데……."
"……."
"여기 오자마자 좋아져서 떼니까 너무 좋아."
식욕 역시 돌아와서 최아람은 다른 환자들과 동일한 병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이거 시판 음료수 아닌가요? 환자인데 이런 걸 먹어도 되는 건가요?"
"아, 그것은 재단에서 무상으로 공급하는 건강식품입니다. 회복에 좋은 효능을 보여서 우리 병원 의료진도 적극적으로 섭취를 추천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여전히 미심쩍은 눈으로 친모가 엘릭서 드링크를 이리저리 살폈다.
"우리 재단 이사장님이 천연유기농농법으로 정성껏 재배하신 송이버섯에서 추출한 엑기스입니다. 건강에 아주 좋습니다."
"어머, 이사장님이 직접? 아람아, 그럼 이거 먹어야겠다. 저, 혹시 따로 더 구매해서 먹을 수도 있나요?"
"그럼요. 병원에 말씀만 하시면 대신 주문을 해드립니다."
식사 때마다 1개씩 나오는 것은 무상이지만, 그 외에는 직접 돈을 주고 사먹어야 한다.
최아람은 급격하게 회복세를 보였다.
혈색도 좋아지고 식사량도 늘었으며, 털이 다 빠진 민머리에는 머리카락이 나기 시작했다.
어느덧 청담동 생활은 한 달이 넘어섰다.
그동안 최아람과 가족들은 병원 내에 떠도는 소문을 충실히 습득했다.
"모두 살아서 병원을 나섰다는 게 정말 사실이었구나."
"암 환자 카페에서는 수영병원 병실에 자리가 나기만 바라면서 기다린다고 하더라고."
"정말이요? 다발성 말기 암 환자인데 멀쩡히 회복돼서 퇴원했다고요?"
"그렇다니까요. 여기 병원에서 반년 이상 병실 차지하는 장기 환자는 없어요. 다 멀쩡히 나아져서 제 발로 나갔다우."
최아람과 가족들은 희망을 품었다.
소문도 소문이지만,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신체 컨디션, 그리고 밝아지는 의료진의 표정 덕분이었다.
이곳에 입원한 지 두 달이 가까워졌다.
본격적인 치료 이후, 첫 번째로 맞이한 경과 검사 결과를 듣는 날이었다.
교수 대신 전공의 주치의가 병실까지 찾아왔다. 환자와 가족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젊은 주치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이만 병상을 비워주셔야겠습니다."
"선생님?"
"오늘 바로 퇴원하시죠. 트리단 효능이 아주 좋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