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383화 (383/1,270)

프랜차이즈 갓 383화

95장 100% 같은 15%(1)

김원약 전무의 말은 일정 부분 사실이었다.

수영병원 의사들은 신약 항암제 유벤스틱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선뜻 처방을 내리기에는 꺼려졌다.

6억 원이나 하는 약값의 대부분을 하수영이 부담하는 상황이 될 테니까.

전액 본인 부담 항암제니 당연히 환자가 돈을 다 내야 하는데, 병원사회복지부에서 환자의 가처분 생활비 19%를 초과하는 금액은 전액을 지원하고 있으니.

환자가 부유하다 가정하고 가처분생활비를 500만 원으로 잡아도, 19%인 95만 원을 초과하는 5억 9,905만 원의 약값은 결국 하수영이 부담하게 된다.

병원 재단 하수영의 공식이 성립하므로, 직장과 이사장을 소중히 여기는 교수들 입장에서는 꺼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 번 처방해서 효능이 확인되면 거듭 처방을 하게 될 테고, 그럼 적자는 산더미처럼 불어날 테니까.

때문에 갑작스레 열린 서해바이오메디컬 주최 설명회는 병원 의사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서해바이오메디컬에서 설명회를 연다고요? 우리 병원에서?"

"네, 암 전공 의사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출석하라고 하던데요."

"유벤스틱 항암제가 서해바이오메디컬 거였나?"

"화이주에서 국내 라이선스 생산권 땄으니까요. 국내 독점권은 서해에 있는 거죠."

"상황 보니까 화이주도 우리나라 시장은 거의 버린 거 같던데, 우리 나라에서 그게 팔릴 거라고 기대도안 하는 거 같아."

"팔릴 리가 없죠. 1회 투약에 6억원이나 하는 건데, 아무리 효능이 좋아도 누가 그걸 맞을 수 있겠어요?"

"일단 전 재산을 다 긁어모아서 6억 원이 되어야 하니까 생각이라도 해볼 수 있는 거지."

"85%에 한 번 걸어보고 거지 될 생각이 아니라면 엄두도 못 낼 겁니다. 가족들 거리에 내몰릴 거 뻔히 아는데 집 팔아서 약 맞겠다고 생각하기도 쉽지 않아요."

"서해바이오메디컬에서 지금 생산들어갔나?"

"아직 생산은 안 들어갔고, 화이주에서 들여온 재고만 있는 걸로 알아요. 한 20인분 재고 들여왔다던데."

"20인분 재고면 120억 원이네. 서해에서도 부담이 있겠는데."

"원래 서해 서울병원에서 진행하려다가 너무 비싸서 계속 킵만 해뒀다고 들었는데."

교수들은 기대 반, 불안감 반을 품은 채 세미나에 참석했다.

서해 측의 설명이 시작되기 전까지도, 의사들은 자기들끼리 불안함을 나누었다.

"이거만큼은 절대 안 돼요. 아무리 우리 재단이 풍족하고 1,400억짜리 닥터헬기도 10기나 굴린다지만, 이건 정말 안 되는 겁니다. 우리 병원망해요."

"닥터헬기는 나중에 중고로 팔 수라도 있지, 이건 한 번 맞을 때마다 없어지는 돈이잖아요."

"병원 사회복지부의 환자 개인당 부담상한액을 설정하거나, 아니면 공단에서 부분적인 지원을 해줘야 돼요. 그도 아니면 약값을 낮추든가 환자가 좀 부담을 하든가."

"한 방 놓을 때마다 5억 9,900만 원 넘는 적자가 쌓이는데, 일 년에 만 명씩 10년만 처방한다고 생각하면……."

"누적 적자 59조 9,000억 달성하겠네요. 항암제 하나로만 만든 적자.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적당한 긴장감 속에서 설명회를 준비하고 있던 서해바이오메디컬 김원약 전무는, 반가운 얼굴을 발견했다.

바로 병원 이사장 하수영이었다.

실제로 만나본 적은 없지만 사진이나 영상 등을 통해서 얼굴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반가운 마음에 얼른 달려가서 꾸벅 허리를 숙였다.

"영광입니다, 이사장님, 서해바이오메디컬 김원약 전무입니다."

병원 군기 잡는답시고 충격적인 황금갑옷 패션으로 나타났다는 전설적인 일화를 들었기에, 오늘 내심 기대했었다.

하지만 지금 하수영은 평범한 정장차림이었다.

"아, 반갑습니다. 지금 제가 준비할게 많으니 인사는 나중에 다시 제대로 나눕시다."

"네? 재단 직원들한테 시키시지 않고요?"

"제가 곧 재단이니까요."

"……?"

"우리 하수영의료재단 직원은 저 혼자입니다. 제가 운영, 대외행사, 재정회계 관리까지 전부 다 해요."

순간 김원약의 표정이 보기 좋게 찌그러졌다.

그럼 운영총괄팀장, 대외행사책임담당자, 재정담당자의 목소리가 모두 비슷했던 것은?

"자, 비켜주세요. 준비해야 합니다."

"아이고, 이사장님! 저희 직원에게 맡겨주십시오! 저희가 알아서 준비하겠습니다!"

"이건 우리 재단에서 준비해야 하는 거라 남의 손에 못 맡깁니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비켜주세요."

그렇게 손을 놓고 있어도 더 불편한 준비 시간이 지나가고, 마침내 암 전공 의사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김원약 전무는 설명회를 시작했다.

이미 의사들도 익히 알고 있는 유명 항암제이기에 구구절절한 설명은 필요 없었다.

40대의 암센터 교수 한 명이 먼저 발언을 신청했다.

"발표 잘 들었습니다. 요약하자면, 서해바이오메디컬의 궁극적인 목표는 결국 심평원의 급여 항목으로 채 택되는 거군요?"

"네, 그렇습니다. 이런 고가의 약을 병원이나 환자의 부담으로 돌릴 수는 없는 법이죠. 완치율 85% 이상이면 정말 놀라운 신약입니다. 이런 좋은 약에 집중 투자하는 것이야말로 사회적으로도 유익한 비용 지출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수들은 자기들끼리 마주보고 작게 수군거리며 의견을 교환했다.

"지금 국내에 들어온 재고가 20인 분이라고요?"

"정확히는 20인분을 상대로 제조가능한 약재료가 들어와 있습니다. 환자 맞춤형 신약이다 보니 처방을 하려는 환자를 대상으로 적합한 즉석 제조를 거쳐야 합니다."

"보관료만 해도 상당하겠습니다."

"영하 수십 도 이하의 온도를 유지 해야 성분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재료가 상당수이긴 합니다. 온도를 벗어나면 성분이 변해서 못 쓰게 되어버립니다."

교수들은 다시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번에는 어느 50대 암센터 교수가 마이크를 잡았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우리 병원에는 귀사의 유벤스틱을 체방할 만한 마땅한 환자가 없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이사장님께서 병원을 인수한 이후, 우리 병원에서는 암으로 사망하신 환자가 단 한 분도 안 계십니다. 모두 쾌유 판정을 받고 추적 관찰하며 5년 무재발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김원약 전무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무너졌다.

좋은 약이 있는데, 그 약의 퍼포먼스를 확인시켜 줄 환자가 단 한 명도 없다니.

공단을 설득하기 위한 실적을 만들어야 하는데,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친 것이다.

교수들은 다시금 자기들끼리 떠들었다.

"응? 저번에 전원돼서 온 소아암환자 한 명 있지 않아? 오늘 내일 한다고 해서 서해병원에서도 포기하고 우리 병원에 전원시켰잖아."

"그 아이 완치돼서 퇴원한 지가 언제인데."

"뭐? 완치됐다고?"

"자네 잠시 미국 출장 갔다 온 사이에 완치돼서 퇴원했어. 전혀 몰랐었나 보군."

"난 치료 포기하고 퇴원해서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줄 알았지. 일부러 안 물어봤던 건데."

"다 나았어. 멀쩡히 건강해진 애한데 항암제를 뭐하러 놔."

"그럼 누구한테 써봐야 하나?"

"지금 암환자들 다들 호전세 보이고 있어서 굳이 6억 원이나 되는 약을 써볼 필요는 없을 거 같은데? 서해바이오메디컬에서 무상으로 제공한다면 모를까."

서해바이오메디컬이 필요한 것은 임상이 아니다.(이미 판매허가까지 다 끝난 약이므로) 어디까지나 공단이 지원을 할 마음이 들게끔 국내에서 실적을 내는 것이다.

'야, 그거 너무 비싼데 굳이 우리 재정을 털어야겠니?'

라는 게 지금 공단의 방어 스탠스였으니까.

최윤석 병원장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서해바이오메디컬이 품은 수가 눈에 뻔히 보였다.

그들 입장에선 서해서울병원에서 추진하는 게 가장 빠르고 쉬운 길이다.

'친족 경쟁자보다는 차라리 남이 낫다는 거겠지.'

서해병원에서 실적을 내려면 약값등 일체의 비용은 서해바이오메디컬이 부담해야 한다. 그리고 이득은 서해병원이 취할 가능성이 높다.

거기는 바이오산업을 놓고 한창 그룹 내 파벌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니까.

울타리 내부의 경쟁자 좋은 일 시켜줄 수 없다는 생각에, 제우약국을 통해서 청담수영병원을 찔러 본 것 이리라.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이상 어림없다. 재단의 돈, 이사장님의 돈은, 병원장인 이 최윤석이가 수호한다!'

"서해바이오메디컬이 약제 값을 부담한다면 우리 수영병원에서 기꺼이……!"

"좋습니다. 하지요."

야심 차게 말을 꺼내려던 최윤석은 이사장 하수영이 싹둑 자리듯이 가로재자 순간 멍해졌다.

모두의 시선이 하수영을 향했다.

특히 김원약 전무는 기뻐서 날뛰고 싶은 마음을 억지로 참는 표정이었다.

"성능은 확실한 약이지만 너무 고가라서 쓸 수가 없다……. 제가 딱 원하는 그런 품목이네요. 전 그런 부분에 지원해 주는 걸 좋아합니다."

"이 사장님, 결단에 감사드립니다."

"병원 이사장 입장에서 환자가 살아날 수만 있다면, 그래서 좋은 약이 널리 쓰일 수만 있다면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하지만 이사장님, 우리 병원에서는 굳이 그 비싼 약을 쓸 정도로 상태가 안 좋은 암 환자는 없습니다. 전부 암이 감소하고 있고 회복세에 있습니다."

"그럼 외부에서 데려오면 되죠. 그 병원에서도 포기한 환자들을 우리 병원으로 옮겨서 약을 써봅시다."

'어? 안 되는데? 이거 서해바이오, 메디컬만 좋은 일 시켜주는 셈인데?'

최윤석은 발을 동동 굴렀지만, 다 함께 있는 이 자리에서는 꺼낼 수 없는 말이었다.

***

"이 사장님. 서해바이오메디컬은 서해병원과 한창 기싸움 중입니다. 우리 병원 돈으로 유벤스틱 실적을 내 봤자 남 좋은 일만 시켜주는 겁니다."

"환자들 좋은 일 시켜주는 게 뭐가 어때서요. 영세한 제약회사 하나가 중간에 어부지리를 좀 취하더라도, 더 많은 환자들을 구할 수 있으면 됐습니다."

하수영의 태연한 대답에 최윤석은 창피한 마음이 들었다.

서해그룹 내의 파벌 경쟁을 몰랐던게 아니라, 그보다 더 중요한 환자의 안위를 생각해서라니.

"그리고 서해바이오메디컬은 이거 결과 감당 못 할 걸요?"

"네? 무슨 말씀이신지……."

"보면 알아요. 서해바이오메디컬은 물론이고, 화이주도 화들짝 놀랄 테니까요. 쯧쯧, 욕심을 낼 거면 자기들 힘으로 감당할 수 있을 정도만 부려야 하는데…… 아무튼 환자들 수급은 차질 없이 빠르게 진행해 주세요."

이때까지만 해도, 최윤석은 무슨 결과를 뜻하는지 몰랐다.

***

수영병원은 외부 병원에서 말기 암환자만 20명을 골라서 데려왔다.

"초기, 중기, 말기를 각각 1/3씩 골고루 분할해야 의미 있는 수치를 달성할 수 있습니다! 전부 말기 환자로만 구성하다니요!"

"임상도 아니고 이미 시판하는 약인데 그게 말이 됩니까. 억울하면 약값을 분담하시던가."

"……."

그렇게 서해바이오메디컬은 한 방 얻어맞은 채 물러서서 결과를 지켜 봐야만 했다.

제발 85%의 완치율이 더 아래로 떨어지지 않기를.

그래야 공단을 설득하기 쉬워질 테니까.

그리고 한 달이 지났다.

"20명 전원 모두 완치되었습니다. 암세포가 깨끗이 사라졌습니다."

"……전부 오늘내일하는 말기 암환자들 아니었나요?"

"그랬는데요, 지금은 암세포가 하나도 없네요. 이제 쇠약해진 체력을 보완하면 퇴원하고 통원하면 될 거 같습니다."

그 많은 임상 시험, 그리고 시판 후 실사용 사례에서 단 한 번도 보인 적 없는 놀라운 퍼포먼스였다.

서해바이오메디컬은 예상을 아득히 넘어선 약의 효능에 놀라면서도 기뻐했고, 소식을 들은 화이주 한국지사장도 경악해서 한걸음에 달려왔다.

그들은 병원 내에서만 은밀히 도는 소문을 전혀 알지 못했다.

"신약 항암제가 엘릭서드링크 뽕까지 맞으니 암세포만 골라서 스틱스 너머로 보내 버린 거 아니야?"

"아무리 봐도 항암제는 그저 거들 뿐, 이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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