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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382화 (382/1,270)

프랜차이즈 갓 382화

94장 이사장의 설레임 (3)

술맛이 확 달아났다.

황제우는 거친 손짓으로 여자들을 물린 후, 곧바로 매니저 약사한테 전화를 걸었다. 자신을 대신해서 약국 운영을 전담하는, 월급사장 같은 직원이다.

"어, 민석아. 난데, 우리 약국 오늘 매출이 왜 이 모양이냐? 혹시 오늘 파리 날렸냐?"

-네? 아니요, 오늘도 정신없이 하루 보냈는데요. 환자 수가 특별히 줄었다거나 그런 건 없었습니다.

"근데 매출이 왜 이래? 너 지금 매출 확인해보고 하는 말이야?"

-저야 아직 매출 확인 안 해봤죠.

-잠시만요, 지금 한 번 볼게요. 어? 정말이네요? 매출이 왜 이거밖에 안…… 아하, 알겠습니다.

"뭐야? 뭐냐?"

-생각해 보니까 오늘따라 고가 약품 처방이 거의 안 나갔어요. 전액본인 부담 고가 항암제 같은 것들 있잖아요.

"그래?"

-네, 아마 그래서 일시적으로 매출이 좀 안 나왔나 보네요. 비싼 처방전 갖고 오는 환자들이 머릿수는 얼마 안 돼도 매출은 다른 환자들하고 비교가 안 되잖아요.

한 달에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까지도 하는 약을 사먹는 환자들.

감기약이나 변비약 수십인 몫을 팔아봤자, 그런 환자 한 명한테는 견줄 바가 못 된다.

-오늘 안 왔으면 뭐 몰아서 나중에 오겠죠. 그래도 그런 환자가 한 명도 안 온 것은 좀 특이하네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사장님.

"휴, 난 또 뭐라고, 알았다. 수고해."

-지금 궁 텐프로에 있으신 거죠?

저도 이따가 넘어가도 될까요?

"마감 다 하면 넘어와."

황제우의 표정이 풀리자 조금 긴장했던 아가씨들이 애교를 부리면서 달려들었다.

'휴, 괜히 걱정했네.'

수영병원으로 바뀌면서 고가약제처방이 엄청 늘었고, 그에 따라 약국 매출도 폭증했다. 환자들이 약값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보니 의사들도 팍팍 처방을 내린 덕분이다.

약국을 운영하다 보면 하루 정도는 그런 처방이 없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얼마 후 매니저 약사 김민석이 넘어왔고, 황제우는 안심하며 음주가 무를 즐겼다.

그러나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매출은 회복되지 않았다.

윤병원 시절의 평균 매출로 거의 고정이 된 것이다.

오히려 그 시절보다 매출과 수익이 더 아래로 나오는 날도 이어졌다.

5일 이상 그런 날이 이어지자 황제우는 이게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는 연줄을 총동원해서 상황 파악에 나섰고, 마침내 수영병원 내부 지침이 바뀌었음을 깨달았다.

"병원 사회복지부에서 우리 약국을 블랙리스트에 올렸다고?"

"블랙리스트라고까지 말하긴 좀 그렇지만, 우리 약국 영수증에 대한 약값 지원은 철회했습니다. 그래서 환자들도 처방전 들고 멀리 다른 병원까지 가고 있습니다."

동네 중소형 병원에 고가약제가 있을 리 만무하니, 환자들은 가까운 대학병원 근처 약국으로 향하고 있었다.

남 좋은 일만 실컷 시켜주고 있었던 셈이다.

황제우는 어이가 없다 못해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대체 뭐가 문제야? 교수 녀석들, 우리 덕분에 돈은 돈대로 받아처먹고,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친다고?"

"저, 사장님. 제가 황철이하고 이야기해 봤는데요, 지금 철이 병원에 입원했답니다."

"뭐? 입원?"

"네, 사장님께는 그동안 숨긴 모양인데, 조영태 교수한테 리베이트 이야기 꺼내고 자기 망가뜨릴 일 있냐고 한 대 심하게 얻어맞은 모양입니다."

"……."

그제아 황제우의 안색이 까맣게 죽어가기 시작했다.

말을 들어보니 리베이트 거래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모양이다.

일 처리 하나는 똑바로 하는 조카라서 믿고 있었는데, 이렇게 틀어졌다니.

"안 되겠다. 내가 직접 병원장님을 만나봐야겠어. 나, 지금 병원에 다녀오마."

"네, 사장님."

그러나 황제우는 최윤석 병원장을 만날 수 없었다.

데스크에 문의를 했지만 따로 예약이 없는 한 병원장을 만날 수 없다는 기계적인 거절만 돌아왔을 뿐이다.

그래서 예약을 잡으려고 했지만, 무슨 병원장 일정이 풀로 꽉 차 있었다.

자신을 만날 생각이 없다는 게 분명해 보였다.

'최윤석, 네놈이 어떻게 나한테 이렇게!'

부병원장 시절, 자신이 얼마나 그렇게 살뜰하게 챙겨줬는데.

황제우는 눈앞이 노래졌다.

지금 자신은 끈 떨어지기 직전의 연 상태, 이 사실을 제약회사들이 안다면 큰일이다.

그들은 제우약국을 우회적인 로비통로라 생각하고 공을 들였다.

하지만 수영병원에서 내쳐진 사실이 알려지게 되면, 제약회사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안면을 바꿀 것이다.

킵해 둔 리베이트 금액에 대해서도 당연히 회수 조치가 들어올 것이고, 어쩌면 형사고발을 당할지도 모른다.

큰돈이 얽힐 만큼 그런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으니.

'안 돼! 그럴 순 없어!'

망연자실해 있던 황제우는 안색을 굳히고 일어섰다.

이대로 몰락할 순 없다.

그는 하수영의료재단으로 향했다.

***

"황제우 사장이 수영재단에서 문전박대당하고 나온 모양입니다."

해외 기사를 읽고 있던 서해바이오메디컬 사장, 주중원이 멈칫해서 고개를 들었다. 참고로 그는 이현덕부회장의 매부였다.

"그래?"

"네, 아무래도 제우약국은 우리가 생각한 것만큼 수영병원과 끈끈한 사이는 아닌 거 같습니다."

"제우약국이 수영병원 덕분에 떼돈을 벌어서 긴밀한 사이인가 싶었는 데, 아니었다고?"

"재단 입장에서는 환자지원사업으로 제우약국이 얼마의 반사이익을 챙기든 간에, 그냥 신경을 쓰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제우약국이 환자지원사업으로 매달 10억, 20억 넘게 추가 이익을 챙겼는데, 신경을 전혀 안 썼다고?"

추중원 입장에서는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그 정도 반사이익이 발생한다면 당연히 재단 차원에서 관리가 들어가야 한다.

일 년으로 치면 백억 대 수익이 새고 있다는 뜻이니까.

"병원은 그저 환자의 약값 부담을 덜어주는 것만 생각하면서 운영했던 거 같습니다. 제우약국은 반사이익을 누렸고, 우리 같은 제약회사들은 그래서 오해를 했고요."

"그럼 제우약국 통해서 유벤스틱항암제를 수영병원에 넣어보는 것은 어렵게 됐군."

"처음부터 잘못 짚었습니다."

"우리가 제우약국에 집어넣은 돈이 꽤 되지?"

"아직 예비로만 남겨두었습니다. 황제우 사장이 실제로 전달할 때 출납하기로 되어 있었으니까요. 아무 래도 너무 큰돈이라 황제우 사장한데 전부 맡기기에는 부담이었죠."

"다른 제약회사들도 그렇게 했나?"

"우리처럼 넘기지 않은 측도 있고, 황제우 사장한테 전적으로 맡긴 회사도 있고, 그렇습니다. 지금 황제우사장이 킵하고 있는 돈을 다 합치면 100억은 될 겁니다."

교수들한테 전달해야 할 리베이트중 황제우 사장이 점유하고 있는 금액, 100억 원.

로비에 나선 제약회사가 여럿이다.

보니, 그중 일부만 킵해도 100억 원이나 되었던 것이다.

"그럼 뭐 우리가 제우약국을 더 어떻게 할 필요도 없겠군. 조용히 정리해. 꼬리 안 남기게 조심하고."

"이미 처리를 끝냈습니다."

"잘했어. 내가 이래서 김 전무를 믿는다니까."

김원약 전무는 추중원 사장의 칭찬에 살짝 미소를 보였다.

"유벤스틱 국내 실제 완치 사례를 만들어야 건보공단을 설득할 여지가 있을 텐데 말이야. 제우약국 통해서 찔러보는 건 물 건너갔고, 어떡하면 좋을까?"

"차라리 정공법으로 나가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효능 하나만큼은 확실한 약이니 한 번 써봐달라고요."

"교수들 접촉이 어려워서 지금까지 손 놓고 있었던 거 아니었나? 이제와서 정공법이라고?"

서해바이오메디컬에서는 이미 몇 번이나 병원장을 비롯한 교수들한테 접촉을 시도했다.

하지만 연락을 할 때마다 교수들은 질겁하면서 거절하곤 했다.

-우리가 이런 연락받은 거 재단이 알면 큰일납니다!!

-제약회사하고는 겸상도 하면 안됩니다! 병원 방침이에요!

-좋은 약이 있는 게 확인되면 우리가 알아서 처방합니다! 병원 상대로 영업하려고 하지 마세요!

죄다 이런 식으로 방방 날뛰기만 하니, 파고들 틈새조차 없었던 것이다.

국내에서 청담수영병원만큼 훌륭한 직장을 다시 구할 순 없을 테니, 의사들이 그렇게 겁을 내는 것도 이해는 갔다.

병원을 그만둘 각오를 하고 한몫 단단히 챙긴다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 경우 재단은 형사고발이나 소송을 통해 바닥까지 긁어낼 테니까.

"병원이 아니라, 재단에 접촉을 해보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재단에 접촉을 한다고?"

"네, 이런 좋은 약이 있는데 병원을 상대로 홍보하는 게 원천적으로 막혀 있다, 병원에 설명회를 하고 싶으니 재단 측에서 허락을 해달라, 모든 걸 투명하게 진행하겠다. 이렇게 한 번 타전을 해보는 게 어떨까요."

"말 그대로 정공법이군."

"우회전진이 안 될 때는 과감하게 부딪쳐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습니다만."

"좋아, 그럼 그렇게 해."

추중원 사장은 순순히 허락했고, 김원약 전무는 곧바로 정식 미팅을 진행했다.

***

하수영의료재단과의 접촉은 의외로 빠르고 합리적으로 진행되었다.

정식 제안서를 넣고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김원약 전무는 재단 측의 연락을 받았다.

-하수영의료재단 운영총괄팀장입니다.

"반갑습니다. 서해바이오메디컬 전 무이사 김원약이라고 합니다."

생각보다 젊은 목소리에, 김원약은 역시 젊은 재단은 다르구나 하고 생각했다.

-신약 항암제를 우리 병원에서 사용해 보고 싶으시다고요?

"네, 국내에는 아직 사례가 전혀 없어서 공단을 설득하기가 힘듭니다. 재정 문제가 가장 커서요. 효능이 확인되면 공단의 결심을 끌어내기 쉬울 것이고, 많은 환자들을 살릴 수 있을 거라고 자신합니다."

-해외 사례를 찾아봤는데 정말 좋은 약이긴 하더군요. 그런데 왜 우리 병원 의사들이 이 약을 한 번도 안 썼을까요? 설마 우리 병원 의사들은 이 약의 존재를 모릅니까??

"모를 리가 없습니다. 화이주 제품이고 아주 유명하니까요. 다만 가격이 문제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우리 병원은 사회복지환원 차원에서, 고가의 약은 병원 예산으로 부담합니다. 환자의 부담은 없어요.

"바로 그겁니다. 의사들 입장에서 병원에 너무 큰 부담을 주는 것은 꺼려질 수 있습니다. 어쨌든 간에 자기들이 몸담은 직장이니까요."

-그런가요.

"효능이 확인돼서 처방 사례가 증가하면, 이 약 하나로 병원 사회복지부가 부담하게 되는 적자가 천문학적으로 증가할 겁니다. 교수들은 자기 손으로 그 방아쇠를 당기는 게 부담스러운 거 같습니다."

-흐음, 알겠습니다. 우리 병원에서 이 약을 써볼 수 있도록, 재단의 주재하에 경영진과 면담을 하고 싶다는 거죠?

"네, 그렇습니다."

-승인하겠습니다. 조금 있다가 행사추진 담당자가 전화를 드릴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생각보다 잘 처리되었다.

산뜻한 마음으로 기다리는데, 잠시 후 재단에서 전화가 왔다. 끝자리 하나만 다른 번호, 재단 사무실의 다른 회선으로 온 전화가 틀림없었다.

"네, 김원약 전무입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수영의료재단 대외행사 책임담당자입니다. 설명회 행사추진 때문에 전화드렸는데요.

"……어디서 들어본 목소리인데?"

김원약 전무는 방금 통화를 마친, 운영총괄팀장의 목소리와 놀랄 만큼 닮았다는 것을 떠올렸다.

***

운영총괄팀장, 대외행사책임담당자, 재정담당자, 그리고 이사장으로서 통화를 전부 마친 하수영은 스마트폰을 내려다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제 산 중턱을 조금 지나쳤나? 아니면 아직 산 중턱도 한참 멀었나?"

-유벤스틱 항암제의 효능은 미국내에서 이미 확인되었습니다. 단점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역시 가격, 그것뿐입니다.

"좋은 약이라면 가격은 문제가 되지 않지. 근데 항암제 급여항목 선정 따위가 진짜 스노우볼의 끝인가, 그게 미심쩍은 거지."

하수영은 조용히 가슴에 손을 얹었다. 쿵쾅거리는 심장의 박동이 느껴진다.

"겨우 그 정도 스노우볼링에, 내 심장이 이렇게 설레서 흥분하고 있을 리가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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