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380화 (380/1,270)

프랜차이즈 갓 380화

94 장 이사장의 설레임(1)

종합병원 옆 대형약국은 장사가 잘된다.

스타급 교수들이 연봉 몇 억씩 받아서 챙길 때, 대형약국 사장은 그 수배에서 수십 배에 달하는 돈을 챙긴다.

페이약사를 다수 고용해서 약국 운영을 맡기고, 자신은 편안하게 골프나 치러 다닌다.

물론 종합병원에 종속된 존재이니만큼 병원 운영측의 눈치는 봐야 한다.

당연히 일정 이상은 리베이트 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최윤석 역시 윤병원 시절에는 제우약국 사장과 자주 골프를 치러 다녔다.

의료계의 관행에 적당히 타협하면서 살아왔다.

하지만 윤병원이 수영병원으로 거 듭나면서, 그는 부끄러운 과거를 모두 청산했다.

'이사장님 앞에서 추한 모습을 보여드릴 순 없다.'

어설픈 정의감이 아닌, 고용주에 대한 사명감 때문이다.

그래서 더 진솔한 마음이기도 했다.

병원장이 되면서부터는 제우약국사장 황제우의 연락이 부쩍 증가했지만, 단 한 번도 사적인 만남을 가지지 않았다.

공식 미팅 때에도 행여나 여자들 나오는 비싼 술집으로 데려갈까 싶어 장소도 항상 자신이 선정했다.

병원 근처 프랜차이즈 카페.

"병원장님도 아시잖아요. 제우약국이 우리 병원 처음에 삽 뜰 때부터 함께 해온 거."

"알지, 그걸 왜 몰라. 우리 병원덕분에 제우약국 사장이 돈 많이 벌었잖아. 내가 알기로는 청담에 건물도 몇 채 있다면서?"

"알짜배기 약국 장사를 수십 년 동안 했으니 당연하죠. 건물 가격 다 합치면 아마 1,000억은 거뜬할 겁니다."

"이거, 나도 약사나 할 걸 그랬나 싶기도 해."

"종합병원 근처 약국은 아무나 합니까. 인맥하고 입지가 정말 중요하죠."

"황제우 사장이 난 사람은 난 사람이지."

지금의 약국을 유지하기 위해 윤병원 오너 일가에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는, 최윤석 병원장도 잘 알고 있었다.

"우리 병원이 하수영의료재단에 인수되면서 가장 발을 동동 구른 사람도 황제우 사장이죠."

"병원 인수되고 나서 약국 수입은 오히려 늘었다고 들었는데? 우리 수영병원 사회복지사업부가 돈 팍팍쓰잖아."

병원 사회복지사업부는 돈 없는 환자들을 위한 여러 가지 다양한 지원을 추진한다.

그중에는 약값 지원도 있다.

전액본인부담 약제 등 여러 이유에서 비싼 경우는, 영수증을 가져오면 환자부담금을 병원에서 다시 내주는 식이다.

덕분에 의사들은 환자의 재정을 고려하지 않고 가장 효능이 좋은 약을 골라 팍팍 처방할 수 있었다.

수영병원의 예약이 미어터지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수입이야 늘었습니다. 하지만 황제우 사장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불안하죠. 아직까지 이사장님 얼굴 한번 못 봤지 않습니까."

"그건 그럴 수도 있겠군."

"비싼 약 같은 건 이사장님이 환자 들한테 대신 사주는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이사장님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제우약국이 얼마든지 배척받을 수 있죠."

병원 사회복지부에서 제우약국을 대상에서 제외해 버리면, 환자들은 병원이 의도하는 약국으로 갈 수밖에 없다.

황제우 사장도 그걸 알기에, 늘어난 수입에도 전전긍긍해하고 있는 것이다.

"황제우 사장 입장은 알겠어. 이사장님을 만나서 잘 보이고 싶은 거겠지. 인맥도 트여 놓고 싶고, 그런데, 전공의 조카는 그럼 왜 때린 거야? 그놈이 뭔 사고를 쳤는데?"

병원 이미지와 다른 교수들을 생각해서, 조영태는 자기 선에서 정리하려고 했었다.

최윤석은 그 말이 못내 가슴을 떠나지 않았다.

"리베이트입니다."

"역시. 황철이가 자기 멋대로 리베이트를 챙겼나? 요즘 젊은 것들은 겁이 없네, 겁이 없어. 우리 병원교수들도 무서워서 감히 범접도 못하는 리베이트를……."

법이 무서운 게 아니다. 이사장이 다른 무엇보다도 무섭다.

"황철이 개인 리베이트가 아니에요. 제 리베이트입니다."

"자네 리베이트라고?"

"네, 저도 모르는 제 리베이트 적립금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습니다……."

"중개 장사를 했단 말이야?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 전공의 따위가?"

"병원장님 적립금도 쌓여 있었는데요?"

그 말에 최윤석은 충격을 받아서 입을 벌린 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아니, 여기서 왜 내 리베이트가 나와? 난 그런 거 전혀 챙긴 적이 없는데?

"제가 처음 알았을 때, 딱 지금 병원장님 심정이었습니다. 얼마나 놀라고 어이가 없었는데요."

"잠깐만, 그러니까 황철이는 자기 리베이트를 챙긴 게 아니고 자네와 내 리베이트를 챙겼다. 이 말인가?"

"다른 교수들도 지금 한 주머니씩 차고 있을 겁니다. 본인만 모르는 리베이트 주머니요."

"허허……. 이렇게 간 큰 친구가다 있나."

밑그림의 크기가 이미 자신의 상상을 넘어섰다.

최윤석은 탄식만 거듭 흘리며 먼 하늘을 주시했다.

이 일을 어디부터 수습해야 할지, 눈앞이 캄캄했다.

***

이사장으로서 병원 군기 잡는 모습은 정서희 부사장도 봤다.

그녀는 하수영을 만나자마자 별렀던 질문부터 꺼냈다.

"어제 그거 진짜 황금이에요? 직원들 앞에서 입고 나갔던 거요."

"24k는 아니고 18k예요. 순금은 너무 물러서 금방 망가지더군요."

18k(순도 75%) 합금으로 만든 갑옷은 잘 긁히지 않고 색도 지나치게 과하지 않아서 의전용으로 적절하다.

"대체 왜 그런 걸 입고 나갔어요? 얼마나 중요한 자리인데."

"중요한 자리니까 그런 걸 입고 나간 겁니다. 군기 잡기에는 최고죠. 다들 등장부터 충격받아서 머릿속이 깨끗해졌을 테니까요."

"……뭔가 설득되는 거 같아서 더 억울한데요. 사실 저도 그랬으니까."

"군기 잡을 때는 파격적인 진행이 중요해요. 복장이야말로 그 파격을 극대화할 수 있죠."

하수영은 잠시 뭔가를 생각하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겸사겸사 옛날 기분도 좀 내고, 뭐 그랬습니다."

"……."

겨우 20년 살짝 넘게 살아온 사람이, 과거 이야기를 할 때면 눈빛이 기이하게 깊어진다.

"교수 폭력 관습이 생각보다 심한가 보네요. 수영 씨가 이 정도로 나선 걸 보면요."

"구타는 사소한 거였어요. 어찌 보면 교수의 정당방위로 볼 여지마저 있죠."

"그게 정당방위가 된다고요?"

"네, 교수 입장에서는 전공의가 자기를 망가뜨리려고 한 게 아닐까 생각됐을 겁니다."

"뭔가가 더 있는 거예요?"

정서희는 마른침을 삼키며 얼굴을 조금 더 가까이 가져왔다.

"입원한 전공의가 제우약국 사장 조카더군요."

"제우약국? 아! 병원 맞은편에 있는 그 대형 약국이요?"

"네, 우리 병원 덕분에 돈 많이 벌었다고 하더군요. 그 전공의도 강남에 대형 아파트 한 채 있다고 하고."

"이거, 그럼 정말로 약국 리베이트가 얽혀 있는 건가요?"

"그건 모르겠습니다."

"네? 모른다니요?"

이제 와서 모르겠다니? 정서희는 황당한 눈으로 하수영을 바라보았다.

"전공의가 약국 사장 조카인 걸 알았을 때, 저는 거기서 더 이상의 조사를 중단했습니다."

"……아니, 왜요?"

"높은 산 정상에서 스노우볼 하나가 굴러떨어지고 있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죠."

"……."

"주변의 눈을 흡수하고 덩치를 키워가면서 잘 굴러떨어지는 스노우볼을 굳이 미리 제지하고 싶지 않더군요."

"……일을 더 키우고 싶었다, 이건가요?"

"아니요. 잠시 손을 놓고, 이게 어디까지 흘러가는지 지켜보고 싶어졌습니다. 원래 상처가 곪기 시작하면 고름이 터져 나올 때까지 놔두잖아요?"

"약국이 끝이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거네요."

"트리거일 뿐이죠. 자, 과연 발포를 허락한 게 누구인지 이제 지켜보기만 하면 돼요. 짐작은 가지만."

조사란 마치 영화의 예고편과도 같다.

때로는 예고편이나 홍보 팜플렛도 보지 않고 본편만 감상하고 싶은 경우가 있는 것처럼.

***

하수영과 헤어진 뒤 정서희는 동종업계에 종사하는 지인을 통해 소식을 알아봤다.

제약회사 연구직 약사로 일하는 지인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요즘 제약회사 분위기 모르지? 다들 앞을 다투어 청담수영병원을 노리고 있어."

"왜?"

"청담수영병원에서 처방하는 약값이 다른 종합병원하고는 비교가 안돼. 거기는 비싼 약도 아무렇지 않게 처방하고, 환자가 감당 못 하면 병원 복지사업부에서 돈을 내주잖아. 하나의 독립된 자선사업단체나 마찬가지지."

"그건 그렇지만."

"수영병원에서 처방하는 약이라고 하면 소비자들한테 강하게 어필할 수 있는 거야. 자잘한 리베이트 백날 해서 매출 남기는 것보다 이 한방이 훨씬 크지."

"아, 그렇구나."

정서희는 지인 약사가 하는 말을 어렴풋하게 이해했다.

"제우약국? 아무리 커봤자 겨우 약국 하나야. 약국 사이즈에서 감당할 일이 아니지."

"그럼?"

"그 약국에 대형제약 회사 여럿이 들어가서 입김 행사하고 있을 거야. 약국은 브로커 역할을 하는 거고, 쳐맞았다는 전공의는 실행책."

지인 약사는 혀를 끌끌 차며 말을 이었다.

"조영태 교수라고 했나? 그 사람 입장에서는 식겁했겠지. 밑의 전공의가 시키지도 않은 리베이트 건을 물고 와서 자기 몫까지 떡 만들어놨으니, 얼마나 놀랐겠어?"

"폭력은 나쁜 거지만, 주먹이 나간게 이해가 되기도 해."

"그거 이사장한테 걸리면 당장 옷벗고 형사고발감인데, 나라도 주먹나간다. 그 정도 사이즈로 일을 벌였으면 병원에서 연루 안 된 교수찾기가 더 힘들 거야."

전공의 한 명이 병원 전제를 발칵뒤집어놓을 수 있다니.

정서희는 그저 놀랍기만 했다.

지인 약사는 목소리를 낮춰서 말했다.

"이건 너한테만 말해주는 건데, 우리 회사도 제우약국 통해서 수영병원에 줄 대고 있었어."

"그랬구나."

"수영병원에서는 제약회사 관계자가 의료진하고 직접 접촉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어서. 이런저런 방법을 통해 우회해서 들어가는 거지."

"오빠도 관계가 있는 거야?"

"내가 너하고 친분 있는 거 회사에서 알아서 아주 극성이다. 근데 내 성격 알잖아? 이런 정치질은 피곤하다고. 난 그냥 연구만 하는 게 속편해."

"고마워. 내가 나중에 밥 살게."

"수영병원에서 사용하거나 처방하는 약값 다 합치면, 2위 병원보다 10배가 넘어. 제약회사 입장에서는 눈독을 들일 수밖에 없지."

환자가 재정적으로 부담된다 싶으면 병원에서 짊어지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효과는 확실하지만 비싸서 못 쓰는 약을, 병원이 환자의 주머니를 위해 대신 사주는 구조니까.

땅 파서 장사하는 병원만이 보일수 있는 퍼포먼스다.

꾸준히 증가하는 누적 적자에는 인건비 외에 이런 속사정도 있었다.

"그리고 이건 확실하지는 않은데……."

"뭔데?"

"유벤스틱이라는 항암제 신약이 있어. 화이주가 개발했고 국내 메디컬회사에서 라이선스 사서 생산 계획중인 약인데, 약값이 너무 비싸서 건강보험공단에서 급여 선정을 거부하고 있나 봐."

제약회사 입장에서 비싼 약은 급여 항목이 되어야 환자들을 상대로 많은 매출을 올릴 수 있다. 고가의 전액본인부담 약제는 환자들 입장에서는 살 수가 없으니까.

"우리 수영병원을 통해서 약의 효능부터 널리 알리겠다?"

"수영병원은 효과만 확실하다면 자기 돈 써서 환자들 약 사주는 곳이니까. 효능이 일단 알려지면 제약회사 입장에서는 공단을 설득하기가 쉽겠지. 급여 항목으로 해달라고."

"근데 그 제약회사가 어디인데?"

"서해바이오메디컬. 제약회사 중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곳이지."

정서희는 머리를 짚었다.

"또 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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