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375화
92장 위기의 테라리움 (2)
하수영은 경기도 농장으로 다시 내려갔다.
테라리움 4호기가 들어설 터전은 한창 땅을 고르는 작업을 하던 중이었다.
모든 장비는 멈춰 있었고, 인부들은 신기하다는 듯이 한쪽에 몰려서 구경하는 중이었다.
공사업체 사장 유인태가 하수영을 발견하고 얼른 달려왔다.
"오셨습니까, 사장님."
"저기입니까?"
"네, 이쪽으로 오십시오."
하수영은 안색이 잔뜩 굳은 채 따라갔다.
몇 미터 깊이로 파헤쳐진 구덩이 속에서 군데군데 누런색으로 반짝이는 광물이 보인다.
유인태 사장이 주먹보다 조금 큰 광물 덩이를 하수영에게 내밀었다.
"이겁니다. 처음에는 정말 황철석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금이 맞네요."
하수영은 보자마자 단정짓듯이 말했고, 유인태는 어떻게 그리 자신하는지 의아했다.
"제가 소싯적에 금 장사도 좀 했었습니다. 채굴도 많이 했죠. 그래서 척 보면 압니다."
"아, 그러셨군요. 소싯적에……."
스무 살부터 농사지어서 자수성가한 것으로 아는데, 금 채굴은 또 언제 했대?
하수영은 파헤쳐진 구덩이를 훑어보았다.
구덩이 벽에는 노란 광물이 섞인 암반이 군데군데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광물 품질은 좋은 편입니다."
"그렇습니까? 제가 그런 것은 잘볼 줄 몰라서."
"채산성은 높아 보입니다. 지표면 위주에 몰려 있어서 이 정도면 노천채굴이 가능할 거 같아요. 매장량은…… 600톤 정도 되겠네요."
유인태의 눈빛에 놀라운 감정이 스쳤다.
"그럼 대체 얼마입니까? 아니, 근데 한 번 보고 그걸 알 수 있습니까?"
"그램당 5만 원으로 잡으면 30조원 정도 되겠네요. 소싯적에 채굴좀 했었다니까요.. 척 보면 압니다."
"축하드립니다, 사장님! 정말 대박이네요!"
유인태는 그제야 호들갑을 떨며 축하한답시고 난리였지만, 하수영은 낙담한 표정을 풀지 않았다.
"전혀 축하받을 일 아니에요. 제 땅에 금 묻혀 있다고 그거 제 거 아닙니다. 나라 거예요."
"그래도 채굴을 하려다 보면 사장님도 이득을…… 아."
"할 수만 있다면 나라에 돈 주고 여기 아래 광물을 제가 사고 싶은 심정인데요. 그럼 이거 다 뒤엎지 않아도 되잖습니까."
유인태는 그제야 자신이 잠시 깜빡했던 사실을 떠올렸다.
금광맥이 나온 이상, 이곳에서 농사를 짓는 게 어려워질 수도 있다.
"다른 광물이면 그냥 뭉개면 그만인데, 왜 하필 금이야."
***
-거기가 원래 평지가 아니고 야트막한 언덕이 있었어요.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쭉 그랬다던데. 근데 625때 포탄 맞고 그 후로 홍수 크게 몇 번 겪으면서 언덕이 점점 평지가 됐다고 들은 거 같습니다.
"그랬군요."
-그런데 무슨 일이세요?
"별거 아닙니다. 땅에서 쓸모없는 게 나와서요. 그래서 한 번 여쭤봤습니다."
농장을 판 매도인과 통화를 끊은하수영은 쓸쓸한 눈빛으로 테라리움을 돌아봤다.
"너는 왜 하필이면 금맥이 있는 곳에 자리를 잡아서, 이다지도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거니."
유인태가 나름 위로랍시고 말을 건냈다.
"그래도 참 신기합니다. 우리나라 금맥은 일제시대 때 죄다 수탈당했다고 들었는데, 경기도에 이런 알짜배기 금맥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니요."
심지어 금맥이 땅 깊숙이 묻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런 걸 가리켜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하는 걸까?
"그런데 어떻게 600톤이라고 딱 알아보신 겁니까?"
"광물 패턴 보면 대충 매장량이 눈에 보입니다. 이건 직관적인 거라서 설명하기는 난해하네요."
"그렇군요. 대단하십니다."
유인태는 새삼 눈앞의 인물이 달리 보였다.
과연 자수성가로 재벌급 재력가가 된 인물은 시야부터 다른 것일까?
"채굴업자하고 정부만 좋은 일 시켜주게 됐네요."
추정 매장량은 자그마치 600톤.
금이라면 일단 헐레벌떡부터 하는 정부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금광 개발을 하고 싶을 것이다.
위에 아파트단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콘크리트 하우스 농장건물들뿐이니까.
"일단 테라리움 공사는 중지하시고, 장비도 철수하세요."
"네, 사장님."
하수영은 우울한 눈으로 농장을 훈어보았다.
"터가 너무 안 좋았어…… 아니, 진짜 안 좋은 것은 내 운이려나."
***
정부에 신고를 했고, 곧바로 황규진 계장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그는 이미 문화재 발굴로 인해 하수영과 안면이 있었다.
"아니, 왜 문화재청에서 나온 겁니까?"
"당연히 저희가 와야지요! 금이 나왔다면서요! 아닙니까?"
하수영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 사람들, 저번 서락산처럼 금으로 된 문화재가 나온 줄 잘못 오해한 건가?
"금이 나온 건 맞는데, 문화재 같은 건 아니고 그냥 금맥이에요."
"네?"
황규진 계장은 부끄러운 마음이 치밀었다.
그는 어색함을 감추기 위해 아무 말이나 대충 끄집어냈다.
"그나저나 의원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무슨 금운이 따라 붙어 다니는 거 아닌가요? 처음 농장으로 쓰려고 샀던 산에서도 금으로 된 문화재가 잔뜩 쏟아지더니…"
"네, 덕분에 얼마 농사짓지도 못하고 쫓겨나듯이 짐 싸서 나와야 했죠."
"그, 그렇지만 그 이상으로 보상을 받으셨잖습니까. 남들이 얼마나 부러워하는데요."
"전 그저 제가 산 땅에 생뚱맞은 게 묻혀 있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
"이것 보세요. 땅 산 지 일 년도 안 됐는데 또 이사하게 생겼어요."
"그 이상으로 정부에서 보상을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번에 중국에서 발주 받은 라면 물량이 월 30조 원짜리예요. 그거 식재료 감당하려면 농장을 더 늘려도 부족할 판에, 지금 이사 가게 생겼는데요?"
"30조 원이요?"
조금 과장해서, 황규진 계장의 턱이 발아래까지 떨어질 듯한 기세였다.
"여기 묻힌 금 다 캐봐야 30조 원될까 말까인데, 그거 때문에 지금 제가 이사 가게 생겼다고요. 당연히 기가 차죠."
문화재청 직원들은 그저 금맥이 나왔다는 사실에 대단하다고만 생각했다.
근데 하수영의 말을 들어보니 억울할 만도 했다.
이제는 부럽다는 마음조차 들지 않는다.
'대체 사람이 재물운을 어떻게 타고 나면 저렇게 하는 것보다 초대박이 되지?'
'농사지으려고 사는 땅마다 족족안에서 금이 나오다니…….'
'저러다가 3번째 농장 부지에서는 석유라도 펑펑 솟는 거 아니야?'
아무튼 뒤늦게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사람이 나왔다.
그들은 구덩이에 붙어 있는 금 광물을 보고 자기들끼리 웃고 떠들며 희희낙락했다.
하수영을 잘 모르는 직원들은 웃는 얼굴로 다가왔다.
"사장님, 축하드립니다."
축하는 개뿔.
***
-큰일이네. 이거 중국 수출 물량 맞춰야 하는데, 전성렬은 금맥이 나왔다는 말에 기뻐하기는커녕 당장 중국 수출 물량부터 걱정했다.
정서희도 마찬가지였다.
-예상 매장량이 600톤이라고요? 그거 중국 수출금액 한 달치 밖에 안 되는 거잖아요?
-그냥 차라리 국가에 30조 원 주고 그 금광을 통째로 하 사장이 샀다 치면 안 되나? 대충 묻어두고 나중에 천천히 이사한 다음에 채굴하면 되잖아.
-갈 길이 바쁜데 금광 따위가 발목을 잡네요. 광물이 국가 소유가 아니라 땅 주인 소유였으면 이런 일도 없는데, 그냥 채굴 안 하면 그만 이잖아요.
-광산업자들이 채굴권 설정해서 협상 들어오면 하 사장 입장이 난처해지는 거지? 그럼 결국 농장 이사는 해야 하나?
-JS그룹에 광산업 계열사가 있을 거예요. 우리가 거기에 투자해서 채굴권을 따게 진행해야겠어요. 잠시 만요. 지금 전화 한 통만 할게요.
이왕이면 비즈니스 파트너가 채굴권을 얻는 게 하수영 입장에서는 유리하다.
-통화했어요. 바로 테스크포스 꾸려서 채굴권 따겠대요.
-우리가 채굴권 따내면 다행이지. 채굴 자체야 그냥 뭉개면 되니까.
"그냥 이사 갈 겁니다. 채굴은 채굴대로 진행하죠."
-네?
-아니, 그럼 중국 수출 물량은 어쩌고?
"테라리움 풀로 가동하면서 그동안 새 농장 부지를 알아봐야죠. 이미 부정 탔어요. 여기 더 있어 봤자 좋은 꼴 못 봅니다. 재수 없으면 석유가 튀어나올 수도 있어요."
-수영 씨가 예전에 그런 말 했을 때는 그저 농담이라고만 생각했는 데, 이젠 저도 심각해요.
-정말이지 자네 재물운은 제대로 타고났구먼, 농사지으려고 사는 땅마다 금이 쏟아져 나오니…….
-설마 청담동 아래도 뭐 하나 묻혀 있는 건 아니겠죠?
하수영은 이사를 결심했다.
정이 든 2번째 농장이지만, 이미 제대로 부정을 탔다.
혹자가 들으면 금 600톤이 튀어나온 게 무슨 부정이냐고 할 수 있겠지만, 사람 입장이라는 게 어디 다 똑같은가.
"이번에는 풍수지리를 제대로 따져 봐야겠어."
하수영은 전문 풍수지리꾼까지 불러서 지도를 펼쳐 놓고 농장을 지을만한 땅을 찾았다.
동시에 테라리움 가동률을 100%까지 끌어올리라고 프리덤한테 지시했다.
"이왕 이렇게 된 이상, 타워형 무인농장으로 간다!"
풍수지리꾼이 좋은 부지를 찾는 동안, 하수영은 JS건설 조진웅 사장과 미팅을 가졌다.
JS그룹은 프라임오일로부터 질 좋은 원유를 다른 정유회사보다 저렴하게 공급받고 있기에, '갑'의 호출에 만사를 제쳐 두고 달려갔다.
"건물형 농장을 지을 겁니다."
"건물형 농장이요?"
조진웅 사장은 처음에는 이해가 안갔다.
하지만 하수영이 보여준 3D 조감도를 보고 동공이 찢어질 듯이 커지며 놀랐다.
"이게 농장이란 말입니까?"
"네, 테라리움 ver2.0입니다. 보다시피 원통형 건물 형태입니다. 총 높이는 300미터고요."
조진웅 사장은 믿어지지 않았다.
이런 거대한 건물 농장을 짓겠다니.
"지금 건축기술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정말 농장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겁니까? 탑층 외 다른 층 채광은 어떻게 하시려고요?"
"뼈대만 지어주시면 내부 세팅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설계도대로만 지어주세요."
주거지역이 아니고, 크기에 비해 내부 구조도 간단한 편이었다.
전원 공급라인과 물펌프 라인, 환기 라인, 로봇들이 이용할 경사로, 그리고 하수영이 드나들 엘리베이터정도만 있으면 된다.
건물 자체는 크지만 난이도는 매우 낮은 편이다.
'채광은 대체 어떻게 하려고?'
탑층을 제외한 다른 층의 채광 문제가 마음에 걸린다.
특히 원통 건물의 북쪽 부분 작물은 햇볕을 받기 힘들어 보인다.
조진웅 사장이 보기에는 비효율의 극치였다.
"설계도대로만 지어주세요."
"알겠습니다."
사실 하수영은 끝까지 고민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ver2.0이 아니라 ver3.0 이상으로 확 가버릴까 하는 고민, 하지만 당장 시공에 착수해야 했기에, 건설 난이도가 낮은 ver2.0으로 결정한 것이다.
부정을 탄 땅에서 한시라도 빨리 이사하고 싶었다.
***
풍수지리꾼이 적당한 땅을 골랐고, 하수영은 일단 곧바로 매매를 진행했다.
그리고 유인태 사장을 먼저 내려 보내서 땅을 파보라고 시켰다.
"뭐 이상한 게 나오지 않는지 꼭 확인해 주세요. 적어도 20미터 이상, 10구 이상 파보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이게 사장님과 저의 마지막 연이 되겠네요.."
유인태는 아쉬웠다.
작은 건설업체를 운영하는 그로서는 테라리움 ver2.0 공사에 참여할 수 없었으니.
"원하신다면 제가 JS건설에 말해서 하청업체로 참가할 수 있게끔 하겠습니다. 제 얼굴이 있으니 JS건설도 유인태 사장님한테 후려치기는 못할 겁니다."
"그래주신다면 정말 감사하죠. 최선을 다해서 뭐 부정한 게 없는지 찾아보겠습니다!"
뜻밖의 희소식에 유인태는 좋아라하며, 사기를 잔뜩 품고 내려갔다.
[사장님, 첫 삽 뜨자마자 이상한 게 나왔습니다. 이거 아무래도 석기 시대 유물 같은데요?]
[문화재청 감정받았습니다. 신석기 시대 유물이랍니다. 공사 전면 중지 했습니다.]
[일단 여기서 철수해야겠습니다. 문화재청에서 조만간 사장님 찾아뵙는다고 합니다.]
[문화재청에서 다음 농장부지 결정하면 매입 전에 자기들한테 먼저 알려줄 수 있냐고 묻는데요?]
[이 친구들, 선 넘네요. 제가 허튼 소리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