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373화 (373/1,270)

프랜차이즈 갓 373화

91장 프리덤과 무인화(2)

수영농장의 무인농장, 일명 테라리 그곳에서 정서진이 본 것은 바로 꿈에도 그리던 이상향이었다.

바라마지 않던 미래 그 자체였다.

무수한 로봇들이 한 치의 어긋남없는 움직임으로, 파종부터 포장까지 일사불란하게 농작물을 관리하는 광경,

"이 로봇들은 전부 어디에서 구매하신 겁니까?"

"거의 대부분 부품이나 모듈만 사서 조립한 겁니다."

"회장님이 직접 하신 건가요?"

"네, 제가 직접 했습니다. 원래 조립이 제일 싸고 내 입맛대로 할 수 있어서 좋아요."

"로봇 제어는 어떤 식으로 합니까?"

"청담동에 중앙컴퓨터가 따로 있습니다. 거기서 원격으로 로봇들을 제어하고 있죠. 원래는 로봇 개체마다 개별 AI로 제어했는데, 일괄중앙통제를 하니까 생산성이 늘더군요."

들으면 들을수록 정서진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컴퓨터, 로봇해서 부품값만 9,000억 조금 넘게 들었어요. 완제품으로 샀다면 훨씬 비쌌겠죠. 성능도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았을 테고요."

"이런 완벽한 무인농장을 갖추기에는 로봇공학 기술이 많이 부족한 것으로 압니다."

"그래서 발품 좀 팔았습니다."

정서진은 정신없이 캐물었고, 하수영은 친절히 대답해 주었다.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정서진은 청담동 지하실에 관한 의문이 커져만 갔다.

'진짜 외계인 과학자들이 갇혀 있을지도 몰라.'

"아무튼 사람을 투입해야 하는 라인에는 전자노예들을 투입하기로 하죠. 지금 메일 보냈으니, 회삿돈으로 거기 적힌 부품들 구매해서 제 집으로 배송하세요."

"네, 회장님."

"반도체 공정설비 조립과 설치도 전자노예들한테 시키면 되니, 이것부터 우선적으로 하세요."

"알겠습니다. 어차피 공정설비 부품들은 아직 받아보려면 한참 멀었습니다."

이제 공장 외벽을 겨우 만들고 있는 중이었으니, 정서진은 한시름 놓았다.

'보안 문제는 해결됐군.'

차세대 파운드리 공장이 완공되면, 온갖 스파이들로 바글거릴 것이다.

하지만 아예 무인농장으로 해버리면 정보를 빼낼 구멍이 없어져 버린다.

공정라인 세팅을 하나부터 열까지 로봇 군단을 이용한다면 속도도 더 빨라질 테고,

"그럼 저는 해외 고객들을 슬슬 접촉해 보겠습니다."

"서해전자에 정보가 새면 안 됩니다. 걔네, 반도체 공장 증설에 가진 돈 다 때려 박아야 돼요."

"걱정 마십시오. 일단은 낮은 생산단가 정도만 무기로 활용해서 접근할 생각입니다. 나중에 본격적으로 협상할 것을 대비해서, 미리 안면만 터놓으려는 거죠."

"역시 우리 정서진 사장님. 이름부터가 반도체 사업 잘할 것 같았다니까요."

***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정서진은 하수영이 보낸 주문견적서를 확인했다.

각종 부품 값만 1조 원이 넘어간다는 프리덤의 설명에 그는 기겁했다.

"아니, 뭐가 그렇게 비싸?"

-메일 첨부 파일에는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발주를 넣을까요?

"그래야지. 일단 발주해, 으, 1조원짜리 발주라니……."

-알겠습니다. 지금 총 132개 업체에 부품 발주를 넣었습니다.

"네가 있으니 확실히 편하구나."

정서진의 프리덤 구독권은 쥐도 새도 모르는 사이에 프로 버전으로 업그레이드되어 있었다. 정작 당사자는 몰랐지만, 주희도와 함께 프리덤 프로 버전을 이용하는 극소수 VIP 이용자인 셈이다.

"네가 도와주니까 따로 사람을 고용할 필요도 못 느끼고 말이야."

서진파운드리를 설립하면서, 정서 진은 따로 사람을 고용할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업무에 필요한 것은 프리덤이 전부 알아서 해주기 때문이다.

법인 설립에 필요한 서류도 프리덤이 동기화된 프린터로 알아서 전부 출력해 놨다.

정서진은 프리덤이 알려주는 대로 빈칸을 자필과 도장으로 채워서 제출했을 뿐이다.

온라인으로 처리 가능한 부분 역시 프리덤이 하나부터 열까지 알아서 했다.

이렇다 보니 사람을 고용할 필요를 전혀 못 느꼈다.

'이러다가 진짜 나 혼자서 자본금 10조 원짜리 회사 운영하는 거 아니야?'

재무, 회계, 총무 등 모든 분야를 프리덤이 알아서 해주는 판이니.

여기에 전자노예들까지 회사에 들어오면, 정말 사람을 고용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사람이 꼭 나서야 하는 일은 자신이 직접 움직이면 될 테고,

'회사 업무를 전부 완전히 전산화한다면 사옥도 필요 없을 거 같은데, 공장에 그냥 사장 사무실 하나 차려놓고, 청담동에 대외용 출장사무소 하나 더 놓으면 될 테고.'

서진파운드리는 공정방식의 월등함 때문에, 바이어들이 먼저 찾아오는 영업 형식이 될 것이다.

협상에 필요한 정보 분석과 거래조건 설정도 프리덤이 지금처럼 도와주면 될 테니, 정말 사람이 필요 없을 거 같다.

***

"좋은 결과, 꼭 부탁드리겠습니다."

헤슬라 자동차 동아시아본부장 니콜 카이로는 공손한 어조로 부탁했다.

박덕준 회장은 서글서글한, 하지만 안타까움을 담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만, 프리덤개발자가 자동차 산업 진출에 회의적이다 보니 확답은 못 드립니다."

"그러니 미팅이라도 한 번 중개해 달라고 저희가 부탁드리는 것 아니겠습니다. 꼭 좀 부탁드립니다."

"노력하겠습니다."

헤슬라 자동차는 자사의 자율주행시스템으로 프리덤 도입을 줄곧 추진해왔다.

하지만 잘될 것 같았던 B2B 서비스는 프리덤 개발자의 반대로 계속 막혀 있는 중이다.

-프리덤은 자율주행에 도입하기에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

-개인비서 AI와는 달리, 자동차에서의 오류는 큰 인명사고로 발전할 수 있다.

-시스템이 좀 더 발전하면 그때 고려해 보겠다.

이유는 그럴듯했지만, 헤슬라 자동차 입장에서는 미치고 펄쩍 뛸 노릇이었다.

프리덤을 출시부터 눈여겨보고 있던 헤슬라 자동차는 오철현의 심정지 사고 때, 프리덤이 보인 퍼포먼스에 기겁했다.

강제로 자동차 운행시스템에 접속해서 통제권을 탈취한 뒤, 스스로 구급차를 마중 나가다니!!

헤슬라 자동차 입장에서는 꿈에나 그릴 법한 성능이었다.

실비아컴퍼니도 자율주행도입에 긍정적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손바닥 뒤집듯이 말을 바꿔 버렸다.

-개발자가 안 된답니다.

헤슬라 자동차 입장에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처음에는 다른 자동차 회사에서 좋은 조건으로 협상이 들어왔나 싶었다. 프리덤을 노리는 경쟁자들은 한 둘이 아니었으니.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 알았다.

프리덤은 실톡의 개인비서 AI 위주로 활용되고 있음을.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프리덤개발자는 프리덤의 진출 영역을 확장하지 않으려고 했다.

'먼저 잡는 놈이 임자다. 절대 놓쳐서는 안 돼.'

니콜 카이로는 회장실을 나섰다.

대기실에 줄을 지어 앉아 기다리는 다양한 인종의 방문객들이 보였다.

쿠글, 래플, 헤드북, 마스크북, GE 자동차 등등.

하나같이 프리덤을 자사 제품에 도입하고 싶어 하는 글로벌 기업에서 나온 바이어들이었다.

'나노소프트…….'

유일하게 나노소프트 측 사람만 보이지 않는다.

나노소프트는 이미 수영레스토랑 결재시스템으로 프리덤을 도입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덕분에 쿠글과 래플 등 IT 경쟁업체에서 더욱 큰 위기감을 느낀다고 들었다.

니콜 카이로는 주먹을 꽉 쥐었다.

다른 건 몰라도, 프리덤 자율주행자동차만큼은 헤슬라 자동차에서 가장 먼저 내놓을 것이다.

***

"드디어 끝났군."

박덕준 회장은 기지개를 켰다.

일주일에 두 번씩, 해외 바이어들을 상대로 웃으며 거절을 해야 하는 마음도 편하지만은 않았다.

바이어들은 이제 프리덤 개발자를 만나게 해달라고 읍소하고 있지만, 그건 더 안 될 일이다. 하수영을 귀찮게 하지 않는 것 자체가 프리덤계약 조항에 있었으니까.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저녁에 백두자동차 백동원 사장과 식사가 예정돼 있습니다.

"중간 보스가 아직 남아 있었군."

오늘 만났던 바이어들이 일반 병력이라면, 백동원 사장은 중간 보스다.(최종보스는 서해전자)

두말할 것 없이 국내 자동차기업 1위인 백두자동차는 프리덤 도입을 위해 박덕준 회장을 달달 볶고 있었다.

박덕준은 가게 출근 준비를 하고 있을 애인에게 전화했다.

"오늘은 가게 못 갈지도 몰라. 백두자동차 사람하고 식사 약속 있거든."

-알았어요. 미팅 잘해요. 너무 체하지 말고요.

애인은 그 한 마디에 바로 상황을 알아들었다.

박덕준 입장에서 그리 달가운 식사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한 것이다.

퇴근한 박덕준은 곧바로 약속장소로 향했다.

약속장소는 청담의 어느 고급 한정식집이었다.

'여기 가게는 땅값이 얼마나 하려나. 가게 사장이 팔라고 하면 팔려나.'

엉뚱하게도 박덕준은 그런 생각부터 했다. 하수영 때문에 생긴 버릇이다.

"어서 와요, 박 회장."

백동원 사장이 사람 좋은 미소를 머금고 맞이했다.

박덕준은 그 웃음 안에 담긴 계급 의식을 알고 있다.

재벌가의 장손인 백동원 입장에서, 자신은 개천에서 힘겹게 올라온 용일 뿐이다.

성골 왕족의 눈에 육두품 관리 따위가 어디 들어오기나 하겠는가.

"여기 음식이 제법 먹을 만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포식하겠군요, 허허."

곧바로 장지문이 열리며 전통 한복을 입은 젊은 여자들이 음식을 안으로 날랐다.

백동원은 술까지 권했고, 박덕준은 비즈니스 스마일을 장착한 채 음식을 들었다.

"우리 제안은 생각을 좀 해보셨습니까?"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아직 개인 비서 이외의 분야 진출은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인명의 안전과 연관된 자율자동차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는 게 저희 입장입니다."

"당장 상용화를 하자는 것도 아니고, 미리 테스트를 하며 데이터 축적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데이터와 실적이 있어야 나중에 정부 정식 허가를 받아낼 수 있지요."

"알고 있습니다만, 그게……."

"우리 백두자동차 국내 점유율이 무려 85%입니다. 작년에만 750만 대를 팔았어요. 그 모든 자동차에 프리덤이 들어간다고 생각해 보세요."

물론 차량 교체 주기는 빠진 가정이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우리 회사에 독점으로 자율주행시스템을 준다면 대당 로열티로 200만 원을 드리겠습니다. 실비아컴퍼니는 앉은 자리에서 한해에 15조원이라는 추가 매출을 올릴 수 있는 겁니다."

소프트웨어 제공이니 별도의 비용은 들지 않는다. 매출이 곧 이익이 되는 셈.

하지만 독점제공을 한다면, 백두자 동차는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점유율을 폭발적으로 올릴 수 있다. 대당 200만 원을 줘도 전혀 아깝지 않은 투자인 것이다.

"대체 왜 안 된다는 겁니까? 개발자가 그렇게 막강한 권한을 가진 겁니까? 그런 식으로 비즈니스를 하면 안 됩니다. 지적재산권은 회사가 꽉쥐고 있어야지요."

백동원은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다그치듯이, 강약을 적절하게 조절해가며 박덕준을 압박했다.

이미 서해그룹과도 사이가 벌어진 박덕준 입장에서는 또 다른 국내 재벌의 재촉이 부담스러웠다.

의미 없는 지연작전을 종료하고, 박덕준은 기가 빨린 채로 애인이 운영하는 바로 향했다.

-내일은 서해전자 모바일사업부 성종식 사장과 미팅이 잡혀 있습니다.

"내가 오기가 나서라도 안 판다. 안 팔아. 아주 그냥 국내고 국외고 나발이고 사람을 못 살게 달달 볶아요. 볶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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