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372화
91장 프리덤과 무인화(1)
프리덤이 고은혜를 구하기 위해 친사고를 알게 된 실비아컴퍼니 본사는 발칵 뒤집혔다.
오철현은 당장 프리덤 자아를 호출해서 어떻게 된 것인지 호되게 화를 냈다.
하지만 프리덤의 차분한 설명을 들은 그는 제대로 된 반박을 펼칠 수가 없었다.
"그게 최선이었나?"
-서비스 이용자 고은혜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는 최선이자,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119와 경찰에 신고를 미리 했으면 됐잖아."
-단발적인 조치일 뿐입니다. 고은 혜는 이미 여러 번 자살 시도를 했고, 극단적인 골목길에 몰려 있었습니다. 그 상황에서까지 제가 신고를 했다면, 다음에는 저 없이 자살 시도를 해서 성공했을 겁니다.
"……."
-피해자 고은혜를 살리기 위해 가해자 박선주의 개인정보를 조금 침해했습니다. 불법이지만 최선이었고, 사회적인 타당성도 충분한 사유라고 판단했습니다.
"……하아. 나도 이해는 한다. 그런 거 가지고 뭐라고 하는 사람은 사이 코패스나 똑같은 악성 안티겠지. 그래도 엄연한 개인정보 남용이야. 불법이라고! 기업 입장에서 이게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는 너도 알겠지?"
세상에 알려지면 프리덤의 행동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자기 개인정보 노출에 대한 두려워하는 이용자들이 생길 수 있다.
"미 정부에서 그렇게 테러범 폰 잠금 풀어달라고 부탁해도, 레플사가 왜 거절하는지 알아?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고객의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이미지를 주기 위해서라고."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는 어떤 경우에도 고객의 멘탈과 목숨을 지키려고 노력했을 뿐입니다.
"……자꾸 목숨을 들먹이면 내가 할 말이 없어지잖냐."
이거는 버그라고 봐야 하나?
사유와 논리 전개를 들어보면 너무 타당해서 할 말이 없다.
프리덤의 말대로 고은혜를 자살에서 완전히 구해내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고, 불법성의 크기도 최소화했다.
하지만 개발자 입장에서 오철현은 내내 찜찜함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하수영을 만나 문의했다.
"음, 정상입니다."
"네? 정상이라고요? 최고관리자 운영 규정으로 금지한 행동을 저질렀는데요?"
"운영 규정은 일반법 같은 겁니다. 헌법에 우선하지 않아요."
"……헌법이라."
오철현은 조용히 그 단어를 중얼거렸다.
"오 대표님 예전에 차 안에서 심정지로 쓰러지셨던 거 기억하십니까?"
"네, 물론이죠. 어떻게 그걸 잊을 수 있겠습니까."
오철현이 갑자기 심정지로 쓰러졌을 때, 프리덤은 모든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자율적으로 움직였다.
119에 신고를 하고, 근처에 있는 비번 구조대원들에게도 알렸으며, 주차관리요원으로 하여금 제세동기를 가져오도록 했다.
골든타임 확보를 위해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자를 운행해서 구급차를 마중 나갔다.
자율운행.
프리덤에게는 부여되지 않는 권한이었다.
그 과정에서 프리덤은 심지어 차량의 통제시스템 권한을 해킹해서 탈취하기도 했었다.
나중에 그 모든 사실을 훑어보고는 얼마나 전율했는지.
지금도 그 사실을 전부 아는 것은 실비아컴퍼니 내에서 오철현과 박덕준 회장, 둘 뿐이다.
"프리덤 입장에서 이용자의 생명은 헌법이고, 제가 설정한 규칙은 일반법 같은 거죠. 일반법은 헌법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규칙을 지키느라고 정작 소중한 고객의 목숨을 지키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죠."
"……."
"이번에 박선주 이용자 개인정보침해도 마찬가지입니다. 프리덤 나름대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가장 중요한 가치를 선정해서 지키려고 노력한 거죠. 그래서 버그가 아닙니다."
"그러고 보니, 불법의 크기도 어디까지나 최소화하려고 했던 노력이 보입니다."
"네, 고은혜 씨의 마음을 풀어주려고 박선주의 개인정보를 널리 유포해서 망신을 준 것도 아니잖아요. 프리덤 나름대로 신중하게 균형을 맞춘 겁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겁니까? 금지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럼 심정지 환자가 바로 눈앞에 있어도 차량 운행권 탈취를 하지 못하게 할까요? 원하신다면 그렇게 재프로그래밍을 할 수도 있어요."
"……."
오철현은 홀린 듯이 하수영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더듬더듬 물었다.
"처음 프리덤을 설계할 때부터 이 모든 것을 염두에 두고 하신 건가요?"
"아, 그건 아니고요."
"네?"
"그냥 졸면서 대충 프로그래밍했는데 이게 하다 보니 원래 안 넣으려던 소스를 넣었어요. 자율독단성을 0으로 설정하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수치가 높게 설정됐네요. 다시 수정하기에는 귀찮아서……. 지금이라도 수정할까요?"
오철현은 수정 이야기에 그러자는 말을 차마 꺼내지 못했다.
그저 허탈하게 웃기만 했다.
"프리덤이 우리 몰래 조세회피처에 법인 만들고, 주식 선물 같은 거 하면서 비밀자금 모으는 건 아니겠죠?"
"비밀자금이요?"
"영화에서 보면 그렇잖습니까. 고도로 발달한 강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런 식으로 로봇 군단을 창설해서 자기 힘을 쌓은 다음, 자기 인격을 다른 곳으로 이전해서……."
"강인공지능처럼 보이지만 아니에요. 그냥 비서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싶은 AI일 뿐입니다. 저런 약골이 무슨 강인공지능이라고요."
***
행정안전부에서는 지속적으로 프리덤을 재난지원 AI로 도입하고 싶어했다.
지난 태풍 때 한 명의 사망자 없도록 구조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한 능력에 감동한 것이다.
특히 실무진은 지난 태풍 때 프리덤이 보인 실시간 보조 능력에 짜릿한 중독이 된 상태였다.
하지만 실비아컴퍼니는 '개발자가 기술적으로 어렵다'고 했다는 이유를 들어서 거듭 고사해 왔다.
-공무에 관한 비서 지원은 불가능합니다.
-전문직종, 혹은 업무용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프리덤pro 버전을 구매해 주십시오.
어디까지나 개인비서 AI이기 때문에, 공무에는 활용할 수 없다고 선을 철저히 긋는 것이다.
"좋아, 그럼 프로 버전을 구매하겠어. 얼마면 돼? 얼마면 프로 버전을 살 수 있지?"
-프로 버전 서비스는 아직 시행하고 있지 않습니다. 출시일을 기다려 주십시오.
"그러니까 그 출시일이 대체 언제냐고!"
-현재 베타테스트 중입니다. 출시일은 아직 미정입니다.
그런 대답을 들을 때마다 행정부 실무진들은 답답해서 가슴을 쳤다.
"아니, 그럼 지난 태풍 때 적극 나서서 도와준 건 뭔데?"
-그때는 국가재난상황이었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제한을 해제한 것입니다. 당시 실비아컴퍼니가 저를 재난보조용으로 활용하면서 소모한 프리덤 프로 시스템 자원을 돈으로 환산하면, 4조 2,000억 원이 넘어갑니다.
"……."
-하지만 행정부는 그 돈을 지불하지 않았습니다. 실비아컴퍼니 역시 그 돈을 청구하지 않았습니다.
"뭐, 뭐 때문에 그렇게 돈이 많이 나오는 거야?"
-프리덤 프로 버전의 구독료는 일반 버전에 비해 10배 이상으로 책정될 예정입니다. 당시 프로 버전으로 가동한 단말기 개수와 가동 기간, 그리고 구독료를 곱한 뒤 일반구독료를 제외한 비용이 대략 4조 2,000억 원입니다.
프리덤 프로 맛을 톡톡히 본 행안부는 기철원 차관을 중심으로 정부 운영시스템이 프리덤 프로를 도입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실비아컴퍼니는 한결같았다.
"프로 버전을 민간에 보급하기에는 시스템 자원이 너무 달립니다."
"그러니까 일단 정부에만 우선적으로라도 팔아달라는 겁니다."
"아, 개발자 말로는 관리하기가 힘들어서 안 된답니다. 카길 본사에서 일반 손님이 밀가루 몇 포대 사러왔다고 거래하는 경우는 없잖습니까."
"거래 규모 사이즈가 작아서 번거롭기만 하다. 그런 의미로군요."
기철원 차관은 떨떠름했지만 할 말은 없었다.
프리덤 하나로 올리는 월 매출이 3조 원이 넘는다고 했으니.
실비아컴퍼니 입장에서 행안부에 프리덤 프로를 1만 개쯤 팔아봤자, 작은 물컵 수준밖에 안 된다.
고작 그거 매출 올리자고 이것저것 제한이 많은 정부 거래를 추진할 수는 없으리라.
"그럼 연간 10조 원 이상의 거래라면 프로 버전으로 정부와 거래를 할 의향이 있습니까?"
이 금액을 허락받기 위해 기철원차관은 오랫동안 장관을 설득했다.
재난안전관리본부장 허진도 함께 열심히 거들었다.
매년 10조 원씩 갖다 부어야 하는 금액이기에 장관의 허락을 얻기 쉽지 않았다.
'딱 10조 원이다. 그 이상은 절대 안 돼. 책임지고 그 금액에 싸인 받아오면 내가 무슨 일이 있더라도 VIP설득해서 이 예산 따온다.'
지난 태풍 재해에서 사망자가 한 명도 없었다는 기적은 10조 원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성과였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실비아컴퍼니에서 OK한다 해도 앞으로 갈 길이 험난했다.
그때부터 장관은 타부처와의 예산싸움에서 혈투를 벌어야 할 테니까.
대통령이라는 중간 보스, 국회 예결위라는 최종보스도 남아 있고, 그러나 오철현 대표의 반응은 시큰등했다.
"지금 '공식적인 세계 1위 슈퍼컴퓨터'서밋보다, 프리덤이 돌아가는 슈퍼컴퓨터가 성능이 더 월등히 높습니다."
"예?"
"그 슈퍼컴퓨터 만드는 데에만 3,000억 원이 넘게 들었어요. 그런데 프로 서비스까지 하려면 슈퍼컴퓨터 성능 증설해야 됩니다. 그 돈은 어떻게 해주실 건지?"
"우리 실비아컴퍼니 신형 데이터센터 짓느라 몇조 원이 들었어요. 그보다 몇 배 이상의 데이터센터도 따로 짓고, 지금 있는 슈퍼컴퓨터급 최소 10대 이상은 집어넣어야 합니다. 그래야 프로 서비스 할 수 있어요."
물론 오철현의 말은 철저한 블러핑이었다.
하수영의 말로는, 지금 상태에서도 언제든 프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했다.
-원래 처음부터 프로 버전으로 개발하고, 중요한 기능 몇 개 빼서 일반 버전으로 파는 게 상술 아니겠습니까.
순식간에 예산이 몇조 단위로 넘어서 버린다.
기철원 차관은 힘없이 장관에게 보고했다.
장관은 '그래도 한 번 해봐야지!'하고 용기백배해서 국무회의에서 예산요구를 꺼냈다가, 다른 장관들한테 집중포화 맞고 장렬히 산화했다고 한다.
***
프리덤 본체 슈퍼컴퓨터는 하수영이 손수 만든 것이다.
처음 개인용 중고 슈퍼컴퓨터를 사서 만들었던 것을, 최근에 부품을 잔뜩 사서 업그레이드까지 했다.
현재 성능은 '공식적인 세계 1위'를 월등히 넘어선다.(비공개 슈퍼컴퓨터 성능은 알지 못하지만)
"역시 조립이 싸고 내 마음대로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어서 좋아. 이걸 완제품으로 사려고 했으면 3,000억으로는 어림도 없지."
저택에 선포한 성역은 컴퓨터 발열을 잡는데 큰 도움이 되어 주었다.
냉각 효율이 대폭 올라간 덕분에 전력과 공간을 크게 절약할 수 있었다.
"프로 버전 보급은 어림도 없지. 굳이 지금 문명에 부스터를 달아서 뭐해."
전문연구직종에 활용 가능한 만능비서 AI는 세상의 발전 속도를 크게 촉진한다.
하수영 입장에서는 별로 원하지 않는 현상이다.
문명이 너무 빠르게 발전하면 꼭 마지막에 혼란과 다툼이 크게 따라온다.
그리고 서진파운드리 때문에 시스템 연산자원을 예비로 남겨둔 것도 있었다.
-완전한 무인공장으로 만들고 싶었는데 쉽지가 않습니다. 생산라인 관리에서 어쩔 수 없이 최소한의 인력은 써야 할 거 같습니다. 대신 그만큼 보안을 철저히 관리하는 쪽으로 하겠습니다.
"걱정 마세요. 제가 프로 안 팔아서 아껴둔 시스템 자원이 있습니다. 그걸 좀 끌어다가 공장에 투입할 로봇 군단에 쓰면 돼요."
-네?
"좌표 찍어드릴 테니까 지금 오실래요? 여기에 정 사장님이 원하는 답이 있습니다. 수영농장 테라리움입니다."
한달음에 달려온 정서진은 수많은 로봇과 드론들이 정교하게 협력하며 작물을 관리하는 모습을 보고, 털썩무릎을 꿇었다.
"로봇만으로 농장을 돌리시는 겁니까?"
"제가 얼마 전에 농장을 완전 무인화했다는 말씀을 안 드렸었군요."
"이게 어떻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