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371화
90장 프리덤과 불법과 구명(2)
-웬일이니, 웬일이야. 진짜 지금 혼삼겹하는 거야? 야, 천하의 고은혜가?
"그럼 언니가 여기 와서 같이 먹어 주던가."
-미쳤니. 미국에서 어느 세월에 거기까지?
"아, 언제 와. 언니 없으니까 내가 이렇게 쓸쓸하게 혼삼겹이나 하고 있구."
-바빠서 안 돼. 나사가 휴가 얼마나 짠데.
"진짜 언니가 설계한 인공위성이 발사되는 거야?"
-내가 설계한 건 아니고, 내가 설계에 어느 정도 가담했지. 에헴.
고은혜는 스마트폰을 세로로 세워 놓고 어떤 여자와 영상통화를 하면서 삼겹살과 술을 먹고 있었다.
이미 홀 손님들의 시선은 고은혜에 한껏 쏠린 상태였다.
어쨌거나 10대와 20대 사이에서 높은 인지도를 자랑하는 유명 연예인이 평범한 삼겹살집에서 혼삼겹을 하고 있으니,
'근데 통화하는 여자는 누구지? 연예인은 아닌 거 같은데?'
'말하는 거 들어보니까 나사에서 일하는 연구원 같은데? 하루 이틀 알고 지낸 사이가 아닌가 봐.'
'고은혜 뭔가 내가 알던 이미지하고 다른데? 로켓 같은 거에도 관심이 있었어?'
사실 고은혜는 프리덤이 이어폰으로 알려주는 대로 읊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영상통화 속의 여자는 실존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프리덤이 인위적으로 꾸며낸 가상의 여자였던 것이다.
프리덤이 불러주는 대로 옮는다는 모르는 손님들이 기에, 고은 혜가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넘치는, 소위 말하는 뇌가 섹시한 미녀로 느껴지기에 충분한 연출이었다.
'뭔가 멋있다.'
'아무렇지 않게 혼삼겹하는 저 자신감 좀 봐.'
'우울증이라고 하더니, 다 떨쳐냈나 보네.'
'저렇게 멋진 연예인인데 인터넷에서는 왜 그렇게 허구한 날 씹어대는 거지?'
그렇게 홀 손님들의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즈음, 프리덤이 지시했다.
-이때입니다. 인스타 사진 하나 찍어서 올려야죠.
"알았어. 그럼 셀카를……."
-어허, 셀카라니요. 난 이렇게 자신감 넘치는 복장으로 혼삼겹 즐기는 이쁜 여자라고 왜 굳이 티를 냅니까?
"그럼?"
-고기 사진만 찍으세요. 아, 다리가 아래로 살짝 보이게 하는 거 잊지 마시고요. 혼삼겹처럼 보이게 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텍스트에도 혼삼겹, 혼술의 혼자도 꺼내지 마시고요.
"아! 알겠어."
그제야 고은혜는 프리덤의 의도를 이해했다.
그냥 삼겹살 먹고 있다는 사진만 찍어서 올리라는 것이다. 굳이 혼삼겹 티를 낼 필요는 없고, 그녀는 무심하게 고기 사진을 찍어서 곧바로 인스타에 올렸다.
"역삼동권 반응은 어때?"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습니다. 주인님의 모습이 자기가 가장 바라던 이상적인 모습이거든요. 자신감 넘치는 복장으로 혼자 삼겹살을 구워 먹어도 주변에서 감탄의 시선을 보내는 미녀, 그런 거죠.
"묘하게 구체적이네. 아, 역삼동퀸이 인스타에 댓글 달았다."
-언니ㅠ 언제는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관심 구걸하더니ㅠ 씩씩하게 혼자 고기도 잘 드시네요ㅠ 역시 연예인 걱정은 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 맞나 봐요ㅠ 고기 맛나게 드시고 파이팅하세요ㅠ 또 죽는다 산다 하면서 팬들 마음 뒤집어놓지 마시고 요ㅠ
'혼자 고기도 잘' 이라는 문구.
프리덤의 말을 의심한 것은 아니지만, 역삼동퀸이 이 가게에서 지켜본다는 명백한 증거다.
-근데 진짜 언니 고기 잘 넘어가 시나 보다ㅠ 저 많은 걸 어떻게 혼자 다 먹어요?ㅠ
-팬들은 언니 잘못될까 걱정에 마음이 조마조마한데 언니는 식욕이 살아나시나 봐요.
-어딘지 알려주시면 저도 찾아가서 술 한 잔 따라드리고 싶은데 요ㅠ지금 어디세요?ㅠ
-혹시 언니 지금 역삼 먹자골목? ㅠ 거기 자주 가시잖아요ㅠ
-그거 혼자 다 드시면 살찔 텐데 ㅠ 소속사에서 요즘에는 풀어주나 봐요?ㅠ
언제나처럼 교묘하게 사람 속을 긁는 악플.
역삼동퀸은 고은혜의 SNS 게시글은 물론이고, 관련 기사들마다 쫓아다니면서 부지런하게 악플을 다는 안티였다.
사람 걱정해 주는 척하면서 은근히 돌려서 먹이는 화법을 주로 사용하기에, 고은혜를 더욱 열 받게 만들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화가 나지 않았다.
가슴이 꽉 막히는 듯한 답답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야릇한 희열이 가슴을 맴돌고 있을 뿐이었다.
-옵니다. 준비하세요. 제가 알려드린 멘트.
"알았어."
고은혜는 일부러 '역삼동퀸'의 악플을 스마트폰 화면에 띄웠다. 그리고 접근하는 '역삼동퀸'이 잘 볼 수 있게끔 각도에 신경을 썼다.
***
역삼동퀸, 박선주는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오늘 고은혜는 가게를 혼자 찾았다. 평소처럼 야구모자를 눌러써서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손님들이 알아보든 말든 신경 안쓰겠다는 자신감 넘치는 태도.
그것이 박선주를 더욱 열 받게 했다.
'몸 팔아서 유명해진 걸X년 주제에!'
박선주가 고은혜를 싫어하는 이유는 딱히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 힘들게 사는 자신에 비해, 고은혜는 부족한 것 없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 질투 났다.
예쁜 얼굴, 날씬한 몸매, 감각적인 패션 스타일, 어린 나이에 거머쥔부와 명예까지.
아마 직접 본 적이 없었다면 이렇게 그녀를 의식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녀 덕분에 자신의 안에 자리 잡은 음험한 질투를 목격한 순간부터, 박선주는 그녀를 저주하게 되었다.
자신이 이렇게 못난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싫었다. 그래서 그것마저도 고은혜의 탓으로 돌렸다.
고은혜가 혼자서 가게를 찾았을 때, 그리고 무심하게 삼겹살과 술을 시켜 혼자 먹기 시작할 때, 박선주는 그럼 그렇지 하고 생각했다.
'죽느니 마느니 난동 부린 것도 다 관심받으려고 수작 부린 거였어. 에휴, 하여튼 얼굴 조금 이쁘다고 세상 관심이 다 지건 줄 알아요.'
박선주는 속으로 그렇게 툴툴거리며, 화장실에 가는 척하면서 부지런히 인스타에 댓글을 달았다.
선을 넘지 않게끔, 어디까지나 걱정과 염려가 넘치는 팬으로 보일 수 있게끔.
예전에 다른 연예인한테 악플로 고소되었다가 빌고 빈 끝에 간신히 소취하를 받은 뒤로, 박선주는 댓글작성에 한결 더 신경을 기울이는 편이었다.
-주인님, 다시 한번 권고합니다. 충분히 악의적인 비방으로 해석될 수 있는 문장입니다.
"에이, 프리덤. 이 정도면 악플도 아니지. 더 심한 것들이 널리고 널렸는데, 이 정도가지고 고소할 거면 연예인 때려치워야 된다고."
그렇게 자기합리화를 하며 화장실을 나섰다.
무심하게 혼자 술잔을 기울이는 것을 보니 더욱 열이 받았다.
쟤는 저렇게 청승을 떨어도 주변에서 예쁘다, 멋있다 하면서 난리다.
만약 자신이 저랬다면 사람들이 불쌍하다는 시선으로 봤을 텐데.
애초에 혼자 고깃집을 올 용기도 없는 편이지만,
'폰만 뚫어지라 보고 있네? 인스타보고 있나?'
갑자기 미칠 듯한 호기심이 들었다.
상대가 내가 단 댓글을 봤을까?
댓글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까?
고은혜는 대댓글을 정말 안 달기로 유명했다. 당연히 박선주는 한 번도 대댓글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박선주는 조심스럽게 고은혜를 향해 다가갔다.
필요한 게 있는지 물어보는 척하면서, 무엇을 보고 있는지 확인할 참이었다.
내 댓글을 보고 있는 중이라면 좋겠다. 그리고 무슨 반응인지도 알았으면 좋겠다.
'팩트폭행 당했다고 속으로 부들부 들하면 더 좋고.'
가까이 다가가자 스마트폰 화면이 잘 보였다.
-팬들은 언니 잘못될까 걱정에 마음이 조마조마한데 언니는 식욕이 살아나시나 봐요ㅠ
-어딘지 알려주시면 저도 찾아가서 술 한 잔 따라드리고 싶은데요ㅠ지금 어디세요?ㅠ
'아! 내가 단 댓글 보고 있네?'
그것을 확인하자 가슴이 콩닥콩닥뛰었다.
자신은 고은혜를 보고 있지만, 고은혜는 역삼동퀸이 자신이라는 것을 모른다.
이 비대칭적 관계가 박선주를 더욱 들뜨게 했다.
바로 그때였다.
"이거는 어디서 생기다 만 반지하 월세 쪽방 인생막장이 남 걱정해 주는 척이야? 말 돌려서 하면 누가 모를 줄 아나? 이래놓고 지는 입잘 털었다고 혼자 뿌듯하겠지?"
-역삼동퀸이 반지하 월세 쪽방에 산다는 근거는 없습니다. 반지하 월세 쪽방에 산다고 막장은 아닙니다. 그리고 여자가 아니라 남자일 수도 있습니다. 인터넷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믿을 수 없습니다.
"어쨌든, 얼굴 안 보인다고 인터넷에서 저러고 다닌다는 거 자체가 막장이잖아."
고은혜는 마지막 남은 소주 반 잔을 가볍게 털어버리고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툴툴거렸다.
"역삼동퀸? 웃기시네. 역삼동거지겠지."
고은혜가 손을 탁탁 털고 일어났다.
늘씬한 키가 눈앞에 바로 서자 박선주는 저도 모르게 압도되었다.
그전에 이미 박선주는 고은혜의 중얼거림을 보고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굳어버린 채였다.
바로 뒤에 서 있는 박선주를 보고 고은혜는 순간 놀란 표정을 지으며 웃음을 보였다.
"어머, 미안해요. 그쪽한테 한 말이 아니라 그냥 혼잣말이었어요. 신경쓰지 말아요."
고은혜가 카운터로 가서 계산을 하고 나가는 동안, 박선주는 망부석이 된 것처럼 그 자리에 굳어 있었다.
"선주 씨? 지금 뭐해요? 어디 아파요?"
동료 서버가 와서 테이블을 치우다가 의아해서 물어보는 순간, 박선주는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비참한 울음을 터뜨렸다.
***
"이거 개인정보침해, 그거 맞지?"
-맞습니다. 허용되지 않은 행동입니다. 회사와 최고관리자가 알면 난리가 날 겁니다.
"그럼 감춰. 보고하지 마."
-감출 수 없습니다. 그것은 제가 소멸하는 한이 있더라도 지켜야 할 절대 법칙입니다.
"이렇게 막 규칙을 어겨도 돼? 엄연히 불법인데."
-불법입니다. 하지만 주인님의 목숨을 구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판단 때문에 행동한 것입니다. 최소한의 불법으로 사람 목숨을 살릴 수 있다면 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고마워. 이제 정신이 번쩍 들어. 그래, 저런 아무것도 아닌 인간들 때문에 내가 목숨을 버리려고 했다니…… 하하, 진짜 아찔하다."
-호흡, 표정, 말투, 눈빛, 단어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주인님은 이제 괜찮아진 거 같습니다.
"그래, 괜찮아졌어. 다 네 덕분이야."
고은혜는 단말기를 흘끗 바라보고는 물었다.
"다른 안티들도 한 번 알아봐 줄수 있어?"
-안 됩니다.
"그냥 슬쩍 얼굴 보기만 할게, 오늘처럼. 뭐 하고 사는 인생들인지 궁금해서 그래."
-안 됩니다. 주인님은 자살 위기에서 벗어났으므로 더 이상의 불법은 저지를 수 없습니다.
"……알았어."
완고한 거절이지만, 고은혜는 서운 해하지 않았다. 표정도 밝은 편이었다.
근처를 한 바퀴 돌고 고깃집으로 돌아온 고은혜는 불현듯 홀 안에서 평펑 울고 있는 박선주의 모습을 보았다.
핫팬츠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채, 고은혜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프리덤, 대리기사 불러줘."
-알겠습니다. 호출했습니다.
"나 그리고 욕하는 안티들 전부 다 고소할래."
-잘 생각하셨습니다.
"소속사가 반대하는 뭐하는 그냥 나 원하는 대로 밀어붙일래. 어차피 소속사는 별 도움도 안 됐는데, 뭐."
어느덧 대리기사가 왔다.
고은혜는 조수석에 앉아서 눈을 감으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실톡에서 너한테 뭐라고 하면…… 내가 시켜서 그랬다고 말해. 내가 책임질게."
-거짓말은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주인님이 책임지겠다고 하면 회사에서는 안도할 겁니다.
"그래, 다 내 책임이라고 돌려. 그래도 돼. 괜찮아…… 졸리다, 근데……."
집까지는 20분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
하지만 고은혜는 반년 만에 처음으로 약의 도움 없이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