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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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 368화

88장 봉인된 반도체 검(3)

하수영의 말에 정서진은 동공이 살짝 흔들렸다.

'지금 뭐라고 하신 거지?"

뭔가 좋아하는 포인트가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데?

현재 파운드리(위탁생산) 시장의 최강자는 대만의 기업 TSMC다.

50% 이상의 점유율을 갖고 있다.

미시영역 입자 집합명령 공정 기술은 TSMC를 제치고 단숨에 파운드리 시장을 먹어치울 수 있는 기술이다.

안정적인 제조 라인만 갖추면, 종합반도체 회사들도 눈을 줄 수밖에 없게 된다.

수율, 가격, 안전성, 그리고 성능면에서 (7나노 이하 공정도 얼마든지 가능하므로) 상대가 되지 않으니까.

궁극적으로는 파운드리 1위를 넘어서, 유일무이한 반도체 생산 공장으로 남을 수도 있다.

기존의 종합반도체 회사들도 울며 겨자 먹기로 공장을 폐쇄하고 설계만 하는 팹리스로 변경해야 할지도 모른다. 충분히 가능성 있는 미래다.

'설마 서해전자 공장 증설자금 그거 날려 버리자고 이걸 공개하신다는 것은 아니겠지?'

자꾸 서해전자 공장만 콕 집어가면서 킬킬 웃어대는 걸 보니, 왠지 합리적인 의심 같은데?

"이 공정 기술은 기존의 반도체 공장 라인하고는 전혀 비교 자체가 안됩니다."

"그럴 겁니다."

"전 세계 모든 반도체 파운드리 회사들은 문을 닫아야 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럴 테죠."

"팹을 가진 종합반도체 회사들도 결국에는 눈물을 머금고 공장을 없애는 수순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선진국에서 자국 산업을 보호하려고 조치를 한다 해도 한계가 명백합니다."

생산원가 차이야 국가보조금을 쏟아부어서 어찌어찌 해결한다 해도, 인체에 무해하고 친환경적이며 7나노 이하의 미세공정 구현화라는 이 점은 따라잡지 못할 테니까.

"그런데 의원님은 서해공장이 반도체 증설라인 자금을 날리는 게 더 기쁘신 거 같습니다. 이 공정 기술이 벌어들일 천문학적인 수익, 그리고 반도체 시장에 대한 영향력보다도요."

"네, 맞습니다."

"예?"

"서해전자를 어떻게 하면 잘 엿을 먹일 수 있을까 고민한 끝에 내린 결정이에요."

"……."

"고성능 반도체를 개발해 봤자 서해전자에 진짜 큰 타격은 못 줘요. 외국 기업에만 팔고 서해전자에만 안 팔 순 없으니까요."

"정치인의 숙명이겠죠."

정서진은 하수영이 강남구의원이라는 점을 떠올렸다.

하지만 하수영은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었다.

"음식점 매출 떨어져요."

"……"

"우리나라 사람들이 서해전자에 얼마나 큰 애착을 갖고 있는데요. 서해전자에만 안 판다? 서해전자만 더 받는다? SNS 한면 수영레스토랑이고 수영참치고 수영마트고 간에 불매운동이 일어날 겁니다. 서해그룹도 그걸 적극적으로 부추겨서 공략할 테고요."

"허……."

"더 안 좋은 게 뭔지 아세요? 서해전자가 자기들 공장을 아예 파운드리 라인으로 돌려 버리는 겁니다. 자기들 설계도를 가지고 우리 공장에서 생산을 하겠다고 나서겠죠. 그거 안 들어주면 또 불매운동이 일어날 수도 있고요."

듣고 보니 전혀 틀린 말이 아니었다.

초고성능 반도체 같은 것을 새로 개발해도, 서해전자만 차별하는 짓은 못 한다. 진짜 음식점 매출 떨어질 수도 있다.

"잠깐, 그 말씀은 진짜 고성능 반도체 설계도 같은 것도 이미 개발이 되었다는 뜻입니까?"

"그건 노코멘트입니다. 넘어갑시다."

"……예."

"아무튼, 신 공정 기술을 적용한 파운드리 공장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죠. 제대로 엿을 먹일 수 있습니다."

"일단 지금까지 투입한 30조 원은 확실히 날아갔고, 앞으로 추가로 투입할 70조 원도 회수가 불가능해지겠군요. 서해전자의 자금 상황에도 빨간불이 들어올 테고요."

서해전자는 증설에 쏟아부은 선문학적인 돈을 1차로 날려야 하고,

"자기들이 설계한 반도체 부품 좀 생산해 달라고 와서 무릎 꿇고 간청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생산해줄 겁니다."

그리고 서해전자는 완벽한 을로 꼼짝없이 묶일 수밖에 없다.

파운드리 회사에 애걸복걸을 하면서 제발 생산 좀 대신 해달라고 부탁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진짜 고민 많이 했습니다. 어떡하면 반도체 시장에 영향력은 최대한 적게 끼치면서 서해전자를 엿 먹일지, 그리고 국내 음식점 매출은 지켜낼지 말이죠."

"……"

정서진은 이미 생각하는 것을 포기했다.

어떻게 하수영이 이런 말도 안 되는 기술을 갖고 있는지.

'의원님은 돈이 많으니까 비밀 연구소 같은 게 따로 있을 수도 있겠지.'

"아무튼 앞으로 '서진반도체' 잘부탁합니다."

"네? 수영파운드리가 아니고요?"

정서진은 순간 찬물을 끼얹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왜 회사명에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단 말인가?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전면에 나서고 싶진 않습니다. 그냥 정서진 박사님의 천재적인 아이디어에 감명받아서 투자한 쩐주로만 남고 싶군요."

"그, 그것은……."

비밀연구소에서 열심히 갈려 나가고 있을 과학자들은?

그 사람들은 어쩌고?

"박사님은 서해전자 같은 사악한 대기업에 기술만 뺏길 것을 우려해서 청담동 부동산 큰손이자 인망이 높기로 유명한 저를 찾아와서 투자를 부탁한 겁니다."

회사를 맡아달라고 할 때만 해도 이렇게 큰 건인 줄은 몰랐기에, 정서진은 얼른 대답을 하지 못했다.

조금이라도 엇나가면 자신은 꼼짝없이 이 기술을 개발한 천재 과학자 노릇을 해야 한다.

'반도체 과학자가 된다는 내 꿈은…….'

오히려 멀어질 수도 있다.

말도 안 되는 기술을 선보인 과학자에 대한 기대감이 하늘을 찌르는 상황에서, 조악하기 그지없는 반도체 설계도를 내놓는다고?

의심의 눈초리보다는 창피해서 절대 그렇게 못 한다.

'달콤한 독이 든 성배였구나.'

회사를 맡으면 자신의 꿈을 꼼짝없이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신중하게 고민을 하는 것인데.

하지만 이미 약속을 해버렸으

"기본급 100억에 5%입니다."

"네?"

"정서진 사장님 연봉 조건이요. 100억 원에 회사 수익의 5%를 인센티브로 드리죠. 회사가 잘 될수록 인센티브도 늘어나니까 열심히 해주세요."

정서진은 조금까지 가슴 속을 맴돌던 번뇌를 깔끔하게 날려 버렸다.

인센티브가 수익의 5%라니! 이 딜은 무조건 받아야 해!

반도체 과학자라는 꿈? 최고 반도 제 CEO라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니지!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 생각을 해보니 유럽처럼 환경오염에 민감한 지역에서는 수영파운드리에서 생산한 반도세만 허용하게 될 수도 있겠네요."

"수영파운드리가 아니라 서진반도체죠."

"그럼 서진파운드리라고 하겠습니다."

"음, 전 반도체가 들어가는 게 더 어감이 좋은데, 특별한 이유라도?"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TSMC의 경영전략을 따르려고 합니다."

반도체회사 입장에서, 나중에 경쟁자가 될지도 모를 회사에 설계도를 넘겨주고 대신 생산해달라고 일거리를 주는 것은 위험하다.

하지만 TSMC는 위탁생산'만' 한다.

설계 개발 쪽으로는 절대 눈길도 주지 않는다. 절대 경쟁자가 되지 않겠다는 신뢰를 수십 년 이상 쌓아왔다.

덕분에 팹리스, 종합반도체 회사든 간에 안심하고 TSMC에 위탁생산을 의뢰한다.

다른 파운드리 회사와는 달리 '설계가 유출되면 어쩌지?', '얘들이 우리 설계도 연구해서 나중에 경쟁자가 되면 어쩌지?' 하는 우려를 전혀 사지 않는 기업이다.

"그거 괜찮네요."

설명을 듣고 난 하수영이 끄덕였다.

"신뢰를 쌓으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비교할 수 없는 강점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정서진 박사님은 반도체 설계 연구가 주전공 아니셨나요?"

"이런 위대한 회사의 CEO가 되기 위해서는 꿈의 방향을 바꿀 줄도 알아야겠죠. 그리고 저 박사가 아니라 대학원생입니다."

회사 수익의 5%라는 인센티브.

꿈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너무 큰돈이었다.

'내 꿈을 고작 돈으로 사려는 건가…….'

'얼마든지 사가십시오. 감사합니다.'

그것이 바로 정서진의 진솔한 속마음이었다.

설계하는 것보다 공정에 힘쓰는 게 더 재미있고 보람찬 일인 거 같은데?

"자, 그럼 계약서를 쓸까요?"

그리고 정서진은 처음 봤다.

'종신고용계약서' 라는 기괴한 이름이 붙은 계약서 말이다.

"그런데 정말 제가 서희 친오빠고 반도체 공부하는 유학생이라는 것만으로 저를 고른 겁니까?"

"하나 더 있어요. 사장님 이름 참 정감이 가더라고요. 딱 반도체 사업잘하실 것 같은 이름이잖아요."

"네? 제 이름이요?"

정서진은 무슨 말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했다.

***

"결국 봉인된 반도체 검을 빼 들고 말았어."

하수영은 살짝 우울한 기색을 홀리면서 턱을 괸 채 앉아서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가장 효과적으로 서해전자를 표적할 반도체 검을 꺼낸 셈이다.

얼마든지 다른 반도체 검, 혹은 검들을 꺼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최대한 고민하고 또 고민한 끝에, 이 반도체 검을 선택한 것이다.

"고성능 메모리 반도체 설계도 같은 것은 꺼내 봤자지. 효과가 적어."

그랬다가는 서해전자가 아예 TSMC처럼 반도체 파운드리로 업종을 전환할 수도 있다.

정부나 국민(수영레스토랑 고객들)들은 서해전자에 위탁생산을 맡겨야 한다고 불같이 주장을 할 수도 있다.

서해전자만 좋은 일 시키는 것은 아니지만(타격은 입을 테니), 살아날길도 있는 방향이다.

"반도체 제조에나 효과 있는 기술이니까 그래도 파급효는 '다른 것들보단' 적겠지."

세상의 변화에 끼지는 영향력을 최대한 제한되면서, 서해전자를 가장 효과적으로 엿 먹일 수 있는 방법이다.

이제 서해전자는 반도체 공장 증설에 쏟아부은 돈은 확실하게 날릴 상황이니. 더군다나 아직 그 사실을 전혀 감도 잡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서진파운드리 공장이 완성되면 서해전자의 선택은 하나뿐이다.

반도체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팹리스로 변신하고, 위탁생산을 따내야만 한다.

"음식점 매출 하락을 지켜볼 수 없으니, 내가 위탁생산은 허락해 준다. 근데 조건이 좀 가혹할 거야."

외주를 주는 원청업체이면서도 철저한 을이 된다.

서해전자로서는 상상해 보지 않은 끔찍한 악몽이리라.

"서해그룹…… 그러게 왜 나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나? 나는 그저 밭이나 갈고 괭이질이나 하면서 한가로운 은퇴 생활을 즐기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런 나를, 어째서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나."

하수영은 음산한 목소리로, 저주하듯 그 말을 반복해서 중얼거렸다.

"아, 못 참겠다. 100조 원까지는 도저히 못 기다리겠고, 한 50조 원넘어가면 공개할까? 그냥 그렇게 할까?"

서해전자가 날리는 매몰비용이 커지면 즐거움도 커지겠지만, 그만큼 지루한 기다림을 감내해야 한다는 게 아쉬울 뿐이다.

"나쁘지 않은 거 같은데? 아직 공장을 더 지어야 하는데 갑자기 서진 파운드리가 딱 하고 나오면, 공사를 계속해야 되나 중지해야 되나 전전긍긍할 테고, 그만큼 스트레스성 탈모도 오겠지. 한 번 계산을 해봐야겠어."

아직 부지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하수영의 마음은 벌써 서해전자가 그랜절을 올리며 의뢰를 애걸하는 미래를 상상하고 있었다.

-제발 우리가 설계한 메모리 반도체들을 생산해 주십시오! 메모리 라인만큼은 독점하게 해주십시오!

-그러게 왜 나를 가만히 두지 않았나아아아!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한 번 반도체 검을 뽑았으니, 너희의 공장만큼은 모조리 다 썰어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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