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365화
87장 애들 싸움 어른 싸움(6)
"솔직히 감동이었어. 우리 하 의원 멘트 말이야."
"암, 많이 벌었으니 세금 내는 건 당연한 거다. 이 당연한 말이 왜 그렇게 심금을 울리는지."
"크, 이런 게 바로 꼼수를 정수로 받는다는 거 아니겠나?"
"법이 개정 되든 말든 우리 하 의원은 눈도 하나 꿈쩍 안 하는구먼."
"그게 바로 큰 정치할 사람의 자질이라는 거지."
"하지만 서해그룹 놈들을 가만히 놔두면 안 돼. 어쨌든 한 번 칼을 들이댄 놈들 아닌가?"
"손을 봐주긴 해야 할 텐데…… 서해그룹을 직접 건드리는 것은 벅차단 말이지."
"그럼 우리끼리 불매운동이나 할까? 서해생명 보험상품만 틀어막으면 그룹 전체가 휘청거릴걸."
"일단 단톡방에 공지 한 바퀴 올려 야겠네."
노인들은 이미 문제가 다 해결된 듯한 분위기였다.
박호진과 조성만은 조용히 일어나서 자리를 떴고, 하수영이 함께 나왔다.
"두 분, 같이 식사나 하시죠."
"네, 의원님."
"여기 빌딩에 좋은 레스토랑 있습니다. 거기서 한 잔 해요."
하수영은 휴민트타워 꼭대기층 레스토랑으로 둘을 안내했다.
장효주와 제작사 측 인물들과도 몇 번 식사를 했던 장소다.
빌딩주의 방문에 레스토랑 지배인 이 얼른 달려 나와서 하나부터 끝까지 에스코트했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하수영은 먼저 술 한잔하면서 이야기를 꺼냈다.
"어르신들이 가볍게 웃고 떠들긴해도, 뒤에서는 진지하게 저를 밀어 주실 겁니다. 지금까지 그래왔거든요."
"저희가 괜한 걱정을 했습니다."
"아닙니다. 두 분 나름대로 수고하셨어요. 서해그룹이 뒤에 있다는 걸 밝혀내신 것도 두 분의 활약 아닙니까."
공격해야 할 표적을 선정하는 것.
전쟁에서 반드시 선결되어야 할 문제다.
적이 누군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칼을 빼낼 수는 없는 법이니.
"아시겠지만 제가 실비아컴퍼니 박덕준 회장님과 친분이 있습니다."
"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분이 그러시더라고요. 서해전자가 아직도 겔드폰에 프리덤을 기본 앱으로 탑재할 욕심을 못 버려서 생각날 때마다 찔러본다고요. 그게 보통 스트레스가 아닌 모양입니다."
박호진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받았다.
"대재벌의 욕심이 어디 가겠습니까. 잠시 억누를 수는 있어도 떨쳐 내지는 못할 겁니다. 태생이 그런 기업입니다."
"제가 평화를 사랑하지만, 또 걸어오는 시비는 사양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낮은 목소리지만 박호진과 조성만은 저도 모르게 긴장감이 들었다.
지금 하수영이 속으로 뭔가를 결정한 것만큼은 확실해 보였다.
"박 변호사님, 기업 인수합병을 추진해줄 수 있습니까? 아니면 주변에서 적당한 사람을 추천해 주셔도 됩니다. 박 변호사님 추천이라면 믿을 수 있어요."
"기업 인수합병이라고 하셨습니까?"
대답은 박호진이 했지만, 조성만이 오히려 속으로 더 놀라고 있었다.
"설마 서해그룹 계열사를 직접 인수하시려는 겁니까? 아무리 많은 돈이 있어도 불가능합니다. 연금공단 등 많은 백기사들이 지켜주고 있어요. 경영권에는 미치지도 못하는 지분 조금 매입하는 것으로 끝입니다."
"인수는 못 해도, 주가는 흔들 수 있겠죠. 돈을 많이 붓는다면 말이죠."
"그거야……."
"저쪽에서 제 신경을 긁었으니, 저는 심장이라도 좀 철렁하게 만들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가만히 있으면 실비아검퍼니한테 하는 것처럼 지속적으로 집적거릴 겁니다."
박호진은 하수영의 말뜻을 이해했다.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당하고만 있으면 우습게 본다.
이런 식으로나마 되갚아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지분을 최대한 많이 긁어 모으면 어쨌든 주주가 됩니다. 3%이상이 되면 더 좋지요. 그럼 서해 그룹도 지분이 신경 쓰여서 앞으로 함부로 나대기도 힘들 테고요."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제가 적당한 사람을 한 번 찾아보겠습니
"그러다가 정말 덜컥 계열사 몇 개를 인수해도 좋고요, 하하."
"그럼 이상적이겠지요."
***
서해전자 부회장실.
이석두는 형인 이현덕 부회장 앞에서 여당 당대표와 통화 중이었다.
"의원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제 와서 조세특례 개정안을 없던 걸로 하겠다니요."
-논의를 해봤는데 법적 타당성이 없어요. 그래서 본회의에는 상정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이런 식으로 계류되는 법안이 한두 개가 아닙니다.
"타당성이 없다는 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소득이 있으면 세금이 붙는다. 이거야말로 당연한 조세원칙 아닙니까?"
-그래서 조세특례 아닙니까. 그런 식이면 진작 우리나라 농부들은 죄다 세금 내야 했습니다.
"의원님."
-애초에 농업 진흥 격려해서 식량자급률 올리자고 만든 혜택입니다. 농사짓는 사람들도 그거 바라보고 이 업종으로 뛰어든 거고요. 이제와서 손바닥 뒤집듯이 없앨 수는 없습니다.
"수천억이 넘는 소득을 올리는데 법인세 한 푼 안 낸다는 게 말이 됩니까!"
-애초에 조세특례에서 면세 상한선을 정하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습니다.
"그때야 이렇게 큰 소득을 올리는 농장이 나올 거라고는 예상을 못 했기 때문 아닙니까?"
-반대로 이렇게 큰 소득을 올리는 농장들이 많이 나오면 좋겠다고 격려하자는 취지도 있었지요.
이석두는 얼굴색이 점점 안 좋아지는 큰형, 이현덕 부회장의 눈치를 살피며 통화를 계속했다.
"좋습니다, 좋아요, 하지만 버섯을 식량작물에서 제외할 수는 있는 거 아닙니까?"
-이제 와서 식량작물에서 제외한다고요? 누가 봐도 수영농장 하나를 콕 집어서 공격하는 거라고 생각이 될 겁니다.
"하아, 의원님……."
- 면세 상한선을 설정할 수도, 버섯을 식량작물에서 제외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전부 2030년 이후부터나 가능한 일입니다.
조세특례 효력이 2030년까지 유지되기 때문이다.
-특례법이라는 게 이렇게 손바닥뒤집듯이 없애거나 변경하면 국민들 누구도 신뢰를 안 해요. 농가에서도 반발할 겁니다. 수영농장 같은 대동장을 대놓고 수술하는 걸 보면, 자기들 목숨도 간당간당하겠구나 싶을 테니까요.
"의원님, 저희는 이번 일에 정말 많은 지원을 쏟았습니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조세원칙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압니다, 알아요. 하지만 야당에서 물고 늘어지면 어차피 무효로 돌아 갑니다.
"혹시 하수영 의원 영입 때문에 망설이시는 겁니까?"
이른바 제 식구(가 될 예정인 사람) 감싸기냐고 지적하는 것이다.
여당 당대표는 태연히 응수했다.
-법 제도의 일관성 유지를 위해서입니다.
"……."
-특례 효력 시한이 종료하면 그때 가서 이야기합시다. 어차피 그때쯤되면 작물재배소득을 무한정 면세해줄 순 없다는 여론이 형성돼 있을 겁니다.
앞으로 10년을 기다리라고?
결국 통화는 맥없이 끝났고, 이석두는 조심스럽게 이현덕의 눈치를 살폈다.
"가봐."
"네, 부회장님."
혼자가 된 이현덕은 가만히 앉은 채로 손가락을 까딱거리다가, 내선 전화기를 들어서 있는 힘껏 벽을 향해 던졌다.
요란한 소리가 울리고, 놀란 비서들이 서둘러 들어와서 전화기 파편을 치웠다.
이현덕은 그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숨을 거칠게 뱉었다.
***
그는 꿈을 꾸었다.
천연색 칼라가 만연한 넓은 대지의 풍경이 한눈에 가득 들어온다.
그는 이것이 꿈이라는 것을 자각했다. 이미 여러 번 겪어본 감각 덕분이다.
'일어나면 꽤나 피곤하겠는데.'
흑백 꿈이 아닌 컬러풀 꿈을 꾸고 나면 평소보다 몸이 찌뿌드드하고 피곤하다.
"이게 뭐지?"
그는 자신의 복장을 확인하고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중세 판타지 영화에서나 볼 법한 철갑옷과 칼, 방패를 착용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안장 높이가 3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검은색 군마에 올라타 있었다.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중무장한 기병들의 모습이 끝없이 보인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완벽하게 갑옷으로 가린 기병들은 얼굴은커녕 손가락 하나 보이지 않는다.
뒤쪽 들판을 가득 메운 군세 덕분에, 풀 한 포기조차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기병뿐만이 아니었다.
키가 10미터는 훨씬 넘어 보이는 거대한 고릴라 같은 괴수들이 곳곳에 보인다.
괴수들은 재갈이 물린 채 병사들의 통제를 받고 있었는데, 흉포한 공격성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군말 없이 통제에 따르고 있었다.
그리고 잿빛 비늘을 자랑하는, 드래곤을 닮은 비행 괴수들이 진을 짜고 날아다니고 있다. 비행 괴수들의 등에는 마산가지로 중무장한 병사들이 두 명씩 타고 있었다.
지름이 5미터가 넘는 거대한 공성주도 수백 개 이상 진열에 섞여 전진하고 있었다.
이 엄청난 군대의 선두에, 그는 서 있었다.
"마왕님! 마왕님의 자랑스러운 군대는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공격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공격 명령?"
그는 멍청하게 반문하다가, 홀린듯이 몸을 돌려 전방을 주시했다.
들판 위 언덕에 서 있는 거대한 성의 모습이 그제야 보인다.
호화로운 황금빛 성은, 이 세상 모는 부와 재물을 모아 놓은 듯한 찬란함을 과시하고 있었다.
"보십시오! 저것이 용사의 성입니다!"
"요, 용사의 성이라고?"
가만? 지금 나한테 마왕이라고 했지?
그리고 우리가 용사의 성을 공략해야 한다고?
"네, 마왕님! 용사의 성 '게이트 오브 청담궁'에는 이 세상 모든 재화와 보물들의 기원이 끝없이 모여 있다고 합니다! 그 안에 있는 보물이라면 마왕님의 군대가 세상을 지배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을 겁니다!"
"공격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공격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그는 얼떨떨해하다가 저도 모르게 공격 명령을 내렸다.
들판을 가득 메운, 셀 수도 없는 마족 군병과 괴수들이 황금빛 성을 향해 침공해 들어갔다.
그리고 깔끔하게 털렸다.
용사로 추정되는 단 한 명 앞에서.
모든 병사가 한 명 남김없이 쓰러진 상황에서, 마왕은 멍하니 용사를 올려다보기만 했다.
'하…… 수영?'
놀랍게도 용사의 얼굴은 하수영과 똑같았던 것이다.
"마왕 이현덕."
전혀 용사 같지 않은 음산한 음성이 마왕을 불렀고, 마왕은 스산한 감각이 몸을 휘감는 느낌에 부르르떨었다.
"왜 나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나?"
"네?"
"나는 그저 밭이나 갈고 괭이질이나 하면서 한가로운 은퇴 생활을 즐기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런 나를! 어째서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나!"
"그게 무슨……."
이게 대체 무슨 개꿈이야?
왜 마왕이 군대를 이끌고 용사의 성을 공격하고 있고, 용사의 성에는 또 보물이 가득 있다는 건데? 반대 아닌가?
그리고 왜 하필 내가 마왕이고 쟤는 용사라는 건데?
용사가 얼굴을 바짝 들이대며 으르렁댔다.
"왜! 나를! 가만히 두지! 않았나!"
"으, 으아아아아아악!""
비명과 함께 꿈에서 깨어난 이현덕은 한참 동안이나 가쁜 호흡을 달래야 했다.
이런 개꿈은 참으로 간만이었다.
***
정서희는 하수영의 전화를 받았다.
-부사장님.
"수영 씨, 목소리가 왜 그러세요? 너무 가라앉아 있으신데. 혹시 서해 그룹 태클 걸어온 게 잘 안 풀렸나요?"
-아뇨, 그건 잘 해결됐습니다. 다행히 제 후원회 회원 중에서 여당당대표와 친한 분이 있어서 잘 전달했어요.
"잘 됐어요. 애초에 개정안 자체가 억지라서 힘들 거라고는 생각했어요. 한시적 시효의 특례를 중간에 뜬금없이 칼질한다는 건 말이 안 되죠."
-그건 그거고, 아무래도 칼의 봉인을 풀어야겠어요.
"칼의 봉인이요?"
-네, 한 번 뽑아서 휘둘러준 다음에 다시 집어넣으려고요.
뭔지 모르지만 하수영이 무언가 심각한 결심을 굳혔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부사장님 친오빠, 정서진 씨를 제가 한 번 만나볼 수 있을까요?
"저희 오빠는 왜요?"
-그분 식품업 계승 그만두고 반도체 하신다고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