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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361화 (361/1,270)

프랜차이즈 갓 361화

87장 애들 싸움 어른 싸움(2)

태양심 사장 이정훈은 망연자실했다.

그룹의 모든 것은 먼 훗날 자신의 것이 된다. 한 번도 그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식품그룹은 본가인 서해그룹의 계열 집단으로 편입되고 말았다.

생명, 전자, 물산, 쇼핑, 서해랜드가 지닌 지분이 아버지와 자신이 지닌 것보다 월등히 많은 것이다.

연금공단 등 기관들이 쥐고 있는 지분도 앞으로 방계보다는 본가의 편을 들어줄 것이다.

막말로 사촌 형제인 이현덕은 지금 당장에라도 임시주총을 열어서 부친과 자신을 회사에서 내칠 수도 있었다.

"정훈아, 앞으로 식품 사업을 잘 부탁한다.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 내게 말하고, 믿고 지켜보마."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사촌형 앞에서, 이정훈은 온몸이 바싹오그라드는 듯한 공포를 느꼈다.

그에게 있어 자신은 사촌 형제가 아닌, 일개 사장단의 일원에 지나지 않음을 절감해야 했다.

이정훈은 회사가 넘어간 근본 원인을 알지 못했다.

바로 하수영의 서해식품 사옥 매입제안을 뒤통수로 답한 것.

만약 뒤통수를 치지 않았더라면 하수영은 효원식품과의 해외합작을 방해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연히 이창영 회장이 흡수를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며, 이현덕도 손을 뻗지 못했을 것이다.

"반도체와 스마트폰으로 전 세계를 호령하면서, 하다 하다 이제는 친척의 식품 사업 같은 골목상권까지 빼앗다니!"

사소한 것 하나도 남김없이 긁어가는 대재벌의 탐욕에 치를 떨었을 뿐이다.

***

서해그룹 식품 사업부 총괄기획실장 이진수.

하수영은 무슨 말을 하는지 일단 들어나 보자는 심정에서 미팅을 허락했다.

한달음에 달려온 이진수는 하수영을 보자마자 허리가 땅에 닿을 듯이 크게 넙죽 숙여 인사했다.

극도로 공손함을 표현하는 태도에는 불손한 기색이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자리를 허락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서해식품그룹이 서해그룹으로 흡수되었다면서요?"

"네, 그렇습니다. 앞으로는 서해식품 사업 기획부에서 식품 사업을 총괄하게 될 겁니다 회장님은 부회장직을 맡고 계시고요."

"흐음, 그럼 이태영 부회장이 나와야 하는 거 아닌가요?"

"물론 급을 생각하면 그렇습니다만, 부회장님은 우리 그룹의 실무경영 비전에 아직 익숙하지 않으십니다. 혹 불필요한 오해가 쌓일까 싶어, 그리고 괜한 시간 낭비를 원치 않아 실무책임자인 제가 온 것이니, 너그러이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급 낮은 자신이 왔지만 모욕이나 다른 의도가 없었다는 긴 변명이다.

"그럼 실장님이 결정권을 갖고 있나요?"

"네, 그렇습니다."

"좋아요. 만나자고 한 이유를 말해 보시죠."

"프라임컴퍼니와 앞으로 좋은 관계를 만들어 나가고 싶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프라임컴퍼니는 국내 식품 시장의 신흥 강자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우리 서해식품도 나름 식품시장의 전통 1인자였고, 본가인 서해그룹은 전 세계 전자시장을 호령하는 글로벌 기업입니다."

"너희가 강한 건 인정하지만 우리가 훨씬 더 체격이 크니까 그 점을 잊지 마라, 뭐 그런 의미인가요?"

"천만에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이진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다소 과장스러운 태도, 자세히 보면 당황한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산전수전 다 겪은 능구렁이 타입이다.

"좋은 관계를 만들자는 건 너무 막연한데요. 구체적인 말씀을 해보시죠."

"우리 그룹은 전 세계에 두루두루 지사를 갖고 있습니다. 발이 닿지 않는 곳이 없죠."

"수출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프라임컴퍼니는 정식 수출 파트너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재 수영레스토랑 정도만 나노소프트의 도움으로 미국에 진출하지 않았습니까."

이진수는 자신만만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국제자원투자회사와도 협력 관계이신 건 압니다만, 그 회사는 자원탐사와 채굴중심 회사죠. 해외에 유통망을 크게 구축한 회사는 아닙니다. 식재료나 식품 같은 생필품을 다뤄본 경험도 전무하고요."

틀린 말은 아니다.

국제자원투자회사는 기름이나 금, 기타 여러 자원을 채굴하면 구매자가 알아서 직접 운반한다.

태산 같은 자원을 쌓아놓고 한 번에 파는 식이다 보니, 유통망 확장에 투자를 할 필요 자체를 못 느낀다.

애초에 주로 국가, 혹은 기업 컨소시엄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회사이기도 하고, 일반 소비자들을 상대하지 않는다.

'머리 잘 썼네.'

국내 식품시장에서는 프라임컴퍼니 때문에 이런저런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하지만 해외로 눈을 돌리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프라임컴퍼니와 수영농장이 생산한 식품 상품을 갖다 팔면서 오히려 큰 마진을 챙길 수 있다.

"우리 그룹의 힘이라면 골든 트러플도 얼마든지 취급할 수 있습니다. 팟디서플라이가 아무리 글로벌 곡물기업이라 한들, 우리 그룹이 두려워할 정도는 아닙니다."

"음…… 한번 생각은 해보겠습니다."

"긍정적으로 판단해 주십시오. 시간 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이진수는 올 때와 마찬가지로 극도로 정중하게 인사하고 돌아갔다.

하수영은 미팅 내내 조용한 정서희를 돌아보며 물었다.

"부사장님은 왜 한마디도 안 했어요?"

"말을 할 필요성을 못 느꼈어요."

"어째서죠?"

"서해그룹이 좋은 의도에서 우리한테 손을 뻗을 리가 없잖아요. 뭐든지 한 번 손을 댔다 하면 자기들이다 먹어치우지 않으면 진이 풀리지 않는 회사인데요."

"뭐,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보면 그렇긴 하네요."

"제휴? 공존? 동업? 서해그룹이 중소기업, 중견기업에 손을 내밀면 최종 결과는 정해져 있어요. 모든 걸 다 빼앗기거나, 혹은 서해그룹의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하는 하정업체로 묶이게 되거나."

"부사장님은 해외 수출도 그렇다고 보시는군요."

"서해그룹의 힘을 빌리면 빠른 시간 안에 해외판로를 구축할 순 있겠죠. 당분간 돈을 쓸어 담기도 할 거예요."

정서희는 냉랭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대신 시간이 지날수록 서해그룹이 조금씩 자기들 몫을 늘려갈 테고, 판매망을 인질로 잡힌 우리로서는 목줄 잡힌 송아지처럼 이리저리 끌려다닐 수밖에 없어요."

"사실 저는 해외 수출을 안 해도 상관없습니다."

"네? 왜요? 그래도 언젠가 수출은 하긴 해야죠. 돈 정말 많이 벌 텐데, 아직도 사셔야 할 빌딩이 천지 삐까리만큼 있잖아요."

이렇게 예고 없이 치고 들어올 줄이야.

"제가 진짜 '돈만 많이 벌려고'했으면 벌써 래플이나 나노소프트 같은 전자회사 차렸겠죠."

"수영 씨 전자 쪽은 잘 모르시잖아

"……아무튼 제대로 팔 걷어붙이고 큰돈 되는 사업을 했을 겁니다. 정유사업도 지금처럼 두 분에게만 맡기고 나 몰라라 하지도 않았을 테고요."

그건 전성렬과 정서희도 인정하는 바였다.

하수영은 대기업들의 레드오션이 돼버린 시장에는 눈길을 주지 않으려고 한다.

"원래 수영레스토랑 미국 진출도 큰 관심 없었어요. 어쩌다 보니 나 노소프트 사내매점으로 입점했고, 어쩌다 보니 미국 전역까지 진출했지만, 심지어 그 돈은 아직 한국에 들여오지도 않았어요."

"와, 정말요?"

"네, 전부 미국 계좌에 고스란히 있습니다. 아, 물론 세금은 그쪽에 다 냈어요."

"미국에서 수영레스토랑이 버는 돈이 어마어마할 텐데요."

"나중에 정 필요하면 가져올 수도 있지만, 지금은 굳이 안 건드리려고요. 제가 돈 벌려고 농사짓는 게 아니니까요."

"청담동 부동산 수집에 열을 올리 시니까 자산 증식에는 관심이 지대하신 줄 알았는데."

"자산 증식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닙니다. 청담동 부동산 수집에 관심이 있는 거예요."

"근데 왜 그렇게 청담동에 집착하시는 거죠?"

"모르죠. 제가 전생에서 실수로 청담동에 폭탄이라도 떨궈서 송두리째 날려 버렸는지도. 그래서 마음의 빛이 있는 건지도 몰라요."

"에이, 그게 뭐예요. 말도 안 돼. 설득력 없는 거 알죠?"

"아무튼 지금은 돈은 있는데 매물이 없어서 청담동 부동산 수집하고 싶어도 못 합니다. 이 상황에서 굳이 돈 더 벌자고 해외 수출을 고려 할 필요는 없고요."

하수영은 살짝 냉담해져서 덧붙였다.

"서해그룹 돈 벌게 해주는 것도 마음에 안 듭니다. 실은 제가 서해전자를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어머, 그럼 서해호텔 사장님하고 거래하는 거 불편하셨을 수도 있겠네요."

"그 정도는 인내해야죠. 농사짓고 식품 사업 하려면 서해호텔을 배제할 순 없잖아요. 우리나라 최고 특급호텔인데."

그 호텔에 식자재를 납품하고 식당을 운영한다는 것만으로도 품격을 인정받는 셈이니까.

"근데 서해전자는 왜 별로 안 좋아하세요?"

"아마 전생에 악연으로 얽힌 게 이것저것 많아서 그런 거 같네요."

"가만 보면 수영 씨는 전생 이야기를 자주 하는 편이에요. 혹시 정말 전생을 믿어요?"

"전생 꿈을 자주 꾸거든요. 그냥 있었으면 좋겠다, 하고 믿는 정도죠. 독실하지는 않습니다."

서해그룹이 정말 상생을 위해서 손을 내밀었을 수도 있고, 장차 집어삼키기 위한 밑작업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쪽인지 고민할 필요는 없다.

지금은 해외 수출망 개척을 고려하지 않고 있으니까.

황비버섯라면 역시 직접 해외로 수출하는 게 아니라, 해외 유통업체들이 한국까지 와서 사간다.

"원래 판매 아이템이 제대로 된 경쟁력을 갖추면 굳이 해외까지 나가서 팔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어요.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결국 밖에서 찾아오게 되니까요."

"대비는 해야 할 거 같아요. 서해 그룹은 자기들 제안이 거절당하면 자존심이 상해서 어떻게든 기어이 보복을 하거든요."

"사업적으로 엮이는 게 별로 없으니 보복할 거리를 찾기도 힘들겠네요. 식품으로 보복하려면 결국 자기들만 큰 출혈을 감당해야 하고요."

"하지만 방법을 찾아내겠죠. 늘 그랬듯이."

"이런 난이도에서 놈들이 어떻게 보복할지 궁리하는 걸 지켜보는 것도 재미죠. 제가 그런 낙으로 삽니다. 갸륵하잖아요."

"진짜 태평하시네요. 보복을 걱정하는 저만 새가슴인 거 같아요."

"전 여친은 이런 상황에서 아마 저보다는 서해그룹을 걱정했을 거예요."

"……아."

사별했다는 전 여자친구 이야기에 정서희는 괜히 마음이 숙연해졌다.

마른 입술을 혀로 축이던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돌아가신 전 여자 친구분이 장효주 씨를 그렇게 닮았다면서요?"

"네, 정말 똑같이 생겨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럼 장효주 씨를 볼 때마다 마음이 특별하시겠어요. 안타깝게 이별하신 분하고 닮았으니."

"그렇지는 않아요. 그냥 우연히 생긴 게 똑같을 뿐, 전혀 다른 사람이니까요. 저한테는 월세 안 밀리고 잘 내는 좋은 세입자이자 광고 흡족하게 잘 찍어주는 CF모델일 뿐이죠."

정서희의 표정이 보이지 않게 살짝 밝아졌다.

***

하수영은 더 이상 협상에 나서지 않았다.

대신 정서희가 이진수를 만나서 해외 수출은 물량 부족으로 당분간 고려하지 않는다고 좋게 거절했다.

이진수는 나중을 기약하며 순순히 물러갔다.

얼마 후, 하수영은 국세청에서 체납세금을 납부하라는 통지를 받았다.

당연히 하수영은 국세정에 항의했다.

"체납세금이라니요? 제가 지금까지 얼마나 세금을 꼬박꼬박 잘 냈는데, 이게 대체 뭡니까?"

-통지서에 보면 설명이 있어요. 선생님은 체납한 부가가치세를 내셔야 합니다. 원금 920억 원에 가산금과 중가산금 145억 3,600만 원을 합쳐서 1,065억 3,600만 원을 내셔야 합니다.

"그러니까 부가세 면제 대상이니 당연히 부가세를 안 낸 건데 이게 무슨 소립니까?"

-선생님께서는 9,200억 원에 상당하는 물품들을 구매하셨으면서 부가 세를 내지 않거나 면세 대상이라는 이유로 환급을 받으셨습니다. 이번에 검토하면서 알게 된 겁니다. 내 셔야 해요.

"농기계는 부가세 면세 대상이라고요."

-예? 아니, 무슨 농기계를 9,200억원어치나 구매하셨다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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