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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359화 (359/1,270)

프랜차이즈 갓 359화

86장 가로채기 (5)

가만 보면 두 여자, 은근 성격이 비슷하다.

오래 알고 지낸 거 같은데, 아마 서로 비슷한 성향을 갖고 있다 보니 티격태격하면서 같이 지내온 모양이다.

'동족 혐오가 치명적인 수준은 아니었나 보군.'

하수영은 속으로 생각하며, 태연히 말을 이었다.

"제가 해외유통사업 배타적 독점권이 꼭 필요해서요. 국내에서 제 허락 없이는 누구도 효원식품의 해외유통라인을 이용할 수 없게 하고 싶거든요. 방법을 알려 주시죠."

"제 남편이 되는 거 말고 실질적인 방법을 원하시는 거 같아 보여요."

"그렇습니다."

"제가 회사 일에 지분이 없어요. 배우 하겠다고 뛰쳐나온 지도 오래고, 원래 아버지도 저한테 사업체를 줄 마음은 없으셨고, 데릴사위나 들일까 하셨거든요."

"그래도 생판 남에게 맡기기에는 불안하지 않겠습니까."

"워낙에 옛날 분이시라, 딴따라 하는 딸년보다는 손주 아비가 회사일맡는 게 낫다고 여기세요. 뭐, 방법이 아주 없지는 않아요."

"알려주십시오."

"제가 효원식품 지분을 과반 이상 삼킬 수 있게 해주세요. 그럼 제가 식품사업 오너가 되니까 당연히 수영 씨 요구를 들어드릴 수 있겠죠?"

"그럴 돈으로 차라리 제가 지분을 과반 확보하는 게 나을 거 같은데요."

"그게 안 되니까 저한테 오신 거잖아요. 저는 그래도 핏줄, 수영 씨는 생판 남, 아버지가 회사 지분을 수영 씨한테 넘길 리가 없죠."

맞는 말이다.

현재 효원식품의 지분은 100% 효원그룹 계열사들이 나눠서 쥐고 있다.

국내에서는 몰라도 해외에서 잘나가는 식품회사 지분을 외부인에게 굳이 넘길 이유가 없다.

지분을 매입하려면 오랫동안 해외유통망을 확보하는 데 들어간 비용과 노력, 가치 증대, 그리고 그 희소성과 미래 가치까지 몽땅 지불해야 한다.

그럴 돈이 없는 건 아닌데, 너무 비효율적이다.

효원식품만 좋은 일 시켜주는 꼴이다.

결정적으로 하수영은 그런 쓸모도 없는 해외유통사업망을 떠안을 마음자체가 없다.

"큰돈 쓰실 것도 없어요. 지금 수영마트에서 황비버섯을 독점으로 팔고 있잖아요?"

"독점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아무튼 말씀하시죠.."

"그거 동남아시아, 중국 유통권을 저에게 주세요. 그럼 제가 그걸 가지고 아버지와 딜을 해서 지분을 물려받고, 식품 오너 자격으로 수영씨 요구를 들어드릴게요. 간단하죠?"

"제 입장에서는 가장 저렴한 비용 이네요. 가성비는 최고 같습니다."

"비용이 저렴한 정도가 아니죠. 수영 씨도 윈, 우리 효원식품도 윈, 서로 윈윈이죠."

버섯을 공짜로 달라는 것도 아니고, 동남아시아와 중국에서 유통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니까.

"연예계에 뼈를 묻으신 줄 알았는 데, 회사 경영에 오랫동안 관심이 있으셨나 봅니다."

"없진 않았죠. 이제 와서 돌아가기엔 좀 늦었지만, 그래서 지분만 쥐고 사주로 남으려고요. 경영이야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중요한 안건만 지시하면 되고, 편하잖아요?"

주효정은 활짝 웃으며 두 손을 펴 보였다.

"그리고 식품회사 같은 거 하나 갖고 있으면 연예계 생활이 얼마나 편한데요. 앉아서 CF가 거저 굴러들어와, 여기저기 광고도 막 뿌려, 당연히 방송국과 제작사 버프 업고 출연도 쉽게 따낼 수 있죠."

"지금도 효원그룹 딸이라는 타이틀 덕분에 편하게 연기 생활 하고 있지 않아?"

"효원그룹 딸하고, 효원식품 오너이자 효원그룹 딸하고는 천지 차이거든? 어떡하실래요? 전 되게 합리적인 제안을 했다고 생각하는데."

"상당히 균형적인 제안입니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계약서 쓸까요? 일단 간이계약서라도 작성하죠."

"신난다. 효원식품이 드디어 내 게 됐네."

같이 밥 한 번 먹자고 하던 것은 까맣게 잊은 듯이 보인다.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점에서는, 장효주와 판박이였다.

***

주효정은 간이계약서를 들고 곧바로 부친을 찾아갔다.

그녀의 부친은 바로 효원그룹 회장 주필준.

재게 10위권에서 한참 밖에 있는 기업 집단이지만, 그래도 재벌은 재벌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10대 재벌방계보다도 더 낫다.

적어도 주효정은 연기 활동을 한다고 해서 집안에서 제지를 받지는 않으니. 보통 집안이 그러하듯 눈총이나 조금 받고 마는 정도다.

-대체 자기 밥벌이도 못 하면서 연예 쪽 판은 왜 그렇게 기웃거리는 거냐?

연예인으로 성공하면 집안에서 크게 떠받들어지는 것은 만국을 통틀어 진리일 것이다.

문제는 그래도 재벌가이다. 보니, 그 성공의 기준이 조금 높다는 것.

주효정은 나름 인지도 있는 여배우로서 일 년에 억대 수입을 올리고 있지만, 부친 눈으로 보기에는 제 밥벌이도 제대로 못 하는 딴따라일 뿐이다.

"아버지, 효원식품 저 주세요."

회장실을 들어오자마자 주효정이 대뜸 던진 말에 주필준 회장은 눈살을 찌푸렸다.

"효원식품 지분은 너 결혼할 때 정리해 준다고 했잖아. 안 돼. 돌아가. 바꿔줄 생각 없다."

결혼을 하면 남편에게 사업 운영을 맡기되, 지분은 당연히 딸의 명의로 돌린다. 사주는 딸, 사위는 경영자.

그렇게 역할분담을 하는 것이다.

"저는 지금 당장 받고 싶은데요."

"그럼 지금 당장 시집가던가. 그 누구냐. 서해식품그룹 이정훈 사장 아들이 요즘 너 졸졸 쫓아다닌다며??

그 친구나 한 번 잘 잡아봐."

"못생겨서 싫은데요."

"그 정도면 잘난 외모야."

"아버지도 맨날 주변에 배우들한테 둘러싸여서 지내보세요. 내 남친은 최소 이 정도로는 생겨야 한다. 그런 기준점이 높아진다구요."

"아무튼 시집 가기 전에는 회사 못준다. 그리 알아라."

"이래도요?"

주효정은 자신만만해서 계약서를 내밀었다.

황비버섯의 동남아, 중국 유통권을 '주효정'에게 준다는 내용에 주필준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계약서 마지막에는 하수영이란 이름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이게 뭐냐? 네가 언제 이런 걸다 따내고? 아니, 그전에 하수영 회장하고 친분이 있었어?"

"그분은 호칭이 참 많네요. 회장, 농부, 병원 이사장, 레스토랑 점주……."

"아! 어서 설명이나 해! 지금 허위계약서 가져와서 장난치는 거 아니지?"

"제가 이런 걸로 왜 장난을 쳐요. 분명히 확답을 받았고, 일단 간이계약서 받은 거예요. 효원식품을 일단 받아야 그쪽에서 유통권을 주든 말든 할 거 아니에요."

주필준은 묘한 기대를 품었다.

하수영보다 딸이 연상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배우다. 당연히 일반인과는 차원이 다른 미모를 지녔고, 또 어쨌든 간에 재벌가 딸 아닌가.

"혹시 둘이……."

"효주가 찍어놓은 남자예요. 그래서 친하게 지내요."

"……."

주필준이 표정이 너무 티나게 찡그러졌고, 주효정은 어이가 없어서 얼굴을 바짝 들이댔다.

"너무 티나게 실망하시는 거 아니에요? 대체 뭘 기대하셨는데요?"

"……아니다. 아무튼 효주 덕분에 네가 이 건을 따냈다. 이 말이로구나?"

"비슷해요."

주필준은 딸과 진하게 지내는 장효주를 당연히 잘 알고 있었다. 본가에도 가끔 놀러오고, 사석에서는 조카 대하듯이 한다.

"그 사람이 배포 큰 호인이라는 말은 자주 들었다. 그래도 공짜는 아닐 텐데."

"우리 동남아, 중국 유통라인은 그 사람한테 배타적 독점권을 주기로 했어요. 우리 그룹 외의 다른 한국기업은 모두 배제한다는 조건이죠. 아, 식품 종류에 한해서만요."

"그 정도면 우리가 너무 좋은데? 다른 게 뭐 숨어 있는 거 아니냐? 항상 그런 걸 눈여겨봐야 한다."

"원래 해외에 직접 진출하는 건 생각 없었대요. 미국에서 한 것처럼 대리인을 내세우고 싶었는데, 우리가 적격이었던 거죠. 잘하면 유럽과 인도 시장까지 우리가 맡게 될 수도 있어요."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거래라는 소리다.

"다른 한국 기업하고 손잡지 말라는 것은…. 남 좋은 일 시키지 말라는 뜻이죠. 아버지라도 안 그러시겠어요?"

"서해식품하고 원한이 있어서 그런건 아니고? 나도 여기에서 주워듣는 게 있다."

"상상은 아버지 자유고, 저는 더드릴 말씀은 없어요."

주필준은 진중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이런 건 잡아야지. 효원식품을 너한데 주면 되는 거지?"

"네, 저도 직접 경영할 생각은 없어요. 지분 넘겨주고 이사 자리 하나만 주세요."

"알았다."

***

거래는 만족스럽게 진행되었다.

황비버섯 중국동남아 판매를 맡겨 준 것만으로, 하수영은 서해식품의 중국동남아 진출을 좌절시킬 수 있었다.

잘 되어가던 협상이 파토가 나자, 서해식품 사장 서인모(다시 말하지만 월급쟁이다)는 분노했다.

"뭐야! 효원그룹이 왜 갑자기 이제와서 안 하겠다고 하는 거야? 이제 계약서에 도장만 찍으면 그만인데!"

"중국동남아 시장 유통은 프라임그룹만 전면적으로 서포트하기로 했답니다. 그래서 우리 회사까지 신경을 써줄 여유가 없을 거라는 게 협상결렬 이유입니다."

"그게 말이 돼? 우리가 중국동남아 시장에서 프라임그룹과 경쟁을 할만한 게 뭐가 있다고?"

"아무래도 하수영 회장이 손을 쓴 거 같습니다."

"손을 쓰다니?"

"서해식품 사옥 말입니다. S은행에서 되사면서 등기부를 확인한 모양입니다. 등기부에는 매매계약 날짜가, 하수영 의원이 팔라고 한 날보다 훨씬 뒤로 되어 있습니다."

"……."

당연히 계약일을 속일 순 없으니 그렇게 되었다.

"하수영 회장 입장에서는 화가 난 거죠. 어쨌든 우리가 작정하고 속인 거 아닙니까."

팔고 싶은 놈 마음이라는 변명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그럼 가로채고 싶은 놈도 자기 마음이라는 대답을 듣게 된다.

하수영이 효원식품과의 해외진출제휴를 차단한 게 불법도 아니고 말이다.

"끄응…… 그래서 비즈니스는 감정적으로 하면 안 되는 것인데 말이야."

서인모는 태양심 이정훈 사장을 떠올리며 속으로 혀를 찼다.

오너 아들로 오냐오냐 컸더니 자기가 세상 오너인 줄 아는 철부지.

"그때 천억 프리미엄 받고 식품 사옥 넘겼으면 오히려 사이가 좋아졌을 텐데……."

옛 원한을 잊지 못해서 기어코 호미로 막을 것을 포크레인으로도 못막게 벌려 놓다니.

"사장님, 중국동남아 시장은 이제 우리 자력으로 진출해야 합니다."

"어쩔 수 없지. 진출 자체를 안 할 수는 없으니, 효원식품하고 합작했으면 훨씬 쉽고 시행착오도 적었을 텐데."

오너 아들의 욕심 때문에 식품그룹전체가 쉬운 길을 한참 돌아가게 생겼다.

***

서해전자 이현덕 부회장은 손님의 방문을 맞이했다.

서해식품그룹 회장 이태영.

바로 서해그룹 총수인 이창영의 친동생이자, 이현덕에게는 작은아버지가 된다.

이태영은 서해식품그룹의 중국, 동남아 진출이 프라임컴퍼니 때문에 가로막혔다고 울분을 토했다.

"그 친구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사건건 우리한테 훼방만 놓았다! 태양심의 윤라면을 시작으로 라면 사업부 자제를 홀라당 가져가더니, 이번에는 식자재 군납에서도 치고 들어왔어! 뿐만 아니라! 효원식품을 살살 꼬드겨서 다 된 중국과 동남아 진출까지 재를 빠뜨렸다!"

"작은아버지, 고정하시지요."

"현덕아. 아니, 이현덕 부회장. 내 숙부가 아니라 서해그룹 방계로서 한마디 함세. 이건 놈이 서해그룹이라는 이름에 흠집을 낸 거야."

"……."

"이현덕이라는 이름을, 서해그룹을 무서워했으면 감히 이런 식으로 나올 수 있었겠나?"

이현덕은 서해식품그룹이 한낱 신생 경쟁자 하나도 이기지 못하고 쩔쩔매는 것은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도와줄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이현덕이란 이름을 무서워 했다면 감히' 라는 부분에는, 저도 모르게 마음이 기울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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