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358화
86장 가로채기(4)
가족과 식사를 하고 있던 전성렬은 스마트폰을 보고는 껄껄 웃었다.
아내와 두 딸이 옆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아빠, 뭐가 그렇게 재미있어요?"
"아빠, 뭐 때문에 그렇게 웃어?"
"응, 우리 하 사장이 공지를 올렸구나."
"수영 오빠가? 뭔데뭔데?"
"아빠! 나도 알려줘!"
"어허, 이건 대주주의 어명이라서 함부로 외부에 발설할 수 없어요. 가족이라 해도 안 돼."
"칫."
"근데 너희 말이야, 서해식품을 골탕 먹이려면 무슨 방법이 좋을지 혹시 생각나는 거 있니?"
"아, 수영 오빠가 그거 물어봤구나."
"여보, 가족한테도 말하면 안 된다면서 그걸 말하면 어떡해요."
"아니, 내 머리로는 좋은 생각이 안 나서, 그리고 하 사장도 이런 거 가지고 뭐라고는 안 해."
"그럼 어명이니 발설 금지니 하는 건 아빠가 지어낸 거짓말이라는 거네."
***
정서희도 거래처 임원들과 미팅하던 도중 공지 내용을 확인하고 쿡 웃었다.
"정 부사장님, 무슨 좋은 연락이라도 받으셨나 봅니다.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세요."
"별거 아니에요. 누구 하나 곯려주고 싶은데 재미있는 방법을 찾는다는 연락이에요."
"지인분이 싫어하는 사람이 생기셨나 보군요."
"싫어하는 사람…… 네, 맞네요. 법인도 일단 사람은 사람이니까요."
"법인이요?"
***
실! 톡!
메시지 알림이 크게 울리자마자 수영청담병원장 최윤석은 벌떡 일어나서 폰을 쥐었다.
"내가 가장 먼저 봤어! 다행이다!"
그는 얼마 전, 이사장님이 개설한 단톡방에 초대를 받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원래는 전성렬, 정서희 그룹 창립멤버들끼리만 있던 단톡방이었는데, 영광스럽게 자신도 초대를 받은 것이다.
단톡방에는 하수영, 전성렬, 정서희, 주희도(프랜차이즈 총괄관리자), 그리고 자신. 이렇게 총 다섯 명뿐이었다.
주희도를 제외하면 세 명의 창립멤버들이 있는 방이기에, 최윤석은 항상 공손한 태도를 유지하려고 애썼다.
물론 처음에 바짝 긴장했을 때와는 달리, 세 분의 창립 멤버들은 매일 음식 사진만 올려대곤 했지만…….
"오, 이사장님이 드디어 공지를 올리셨군!"
[서해식품이 제 통수 친 거 갚아줄 좋은 방법 의견 모집합니다.]
공지 내용을 본 최윤석은 눈을 부릅떴다.
서해식품이 청담동 사옥을 가지고 장난을 친 것은 그도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당시 상심한 이사장님을 떠올리며 속으로 얼마나 안타까워했었는데.
그런데 이사장님이 결국 서해식품에 본때를 보여주기로 결심을 한 모양이다.
최윤석은 곧장 총무부장에 인터콜을 넣었다.
-네, 병원장님. 총무부장입니다.
"우리 병원에 들어오는 식자재 말이야. 환자 식단에 쓰는 거 하고 병원 식당, 매점, 하여튼 우리 병원에 들어오는 모든 먹거리 말인데."
-네, 병원장님, 그게 왜요?
"서해식품하고 연관된 거 있으면 싹 다 끊어. 앞으로 우리 병원에 서해식품의 것은 쌀 한 톨도 들어올 수 없게 해."
-알겠습니다. 드디어 이사장님 지시가 떨어진 모양이군요.
"그래. 일단 그거부터 조치해."
먼저 시급한 조치부터 마친 최윤석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달래며, 뇌세포를 팽팽 회전시켰다.
'서해식품, 서해식품, 서해식품……. 이놈들을 어떻게 한 방 먹이지?'
다른 사람들이 의견을 내놓기 전에, 아니 그들이 공지를 읽기 전에 자신이 먼저 의견을 내놔야 한다.
그리고 그 의견은 단번에 채택될 만큼 훌륭한 것이어야 한다.
그것만이 이사장님의 하해와 같은 은혜에 보답하는 길.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던 최윤석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과장 교수들을 전원 호출했다.
"자, 우리가 이사장님께 집단 지성의 힘을 한 번 보여드리자고, 좋은 방법이 있으면 기탄없이 말하도록!"
여기저기서 다양한 의견이 쏟아져 나왔지만, 최윤석이 생각하기에 이거다 싶은 건 없었다.
***
하수영은 장효주와 같이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황비버섯 소스에 적신 구운 송이버섯을 포크로 찍으며, 장효주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그래서 제게 잡혀 줄 준비는 되셨나요?"
"아씨. 밥 먹을 땐 좀 평화롭게 먹읍시다. 피스, 몰라요?"
"얼굴에 근심이 있는 거 같아서 좀 웃겨주려고 했죠."
"웃음이 나오려다가도 싹 가실 거 같은데요. 근데 제 얼굴이 그래 보입니까?"
"네, 아까부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시는 거 같은데. 혹시 드라마 때문에 걱정되시나요?"
장효주는 현재 KI스튜디오가 제작중인, 충무공 이순신을 주연으로 하는 블록버스터 드라마 촬영 중이었다.
본래 제작비 600억 정도로 예정되었던 드라마는 하수영이 참가하면서 예상 총제작비가 2,000억 원을 넘길것으로 보이는 초대형 블록버스터드라마가 되었다.
대한민국 드라마 역사상 전무후무할 스케일 덕분에, 지금 영화 업계나 드라마 업계나 가릴 것 없이 KI 스튜디오만 목 놓아 바라보는 중이었다.
"드라마 때문은 아닙니다. 1편은 아무래도 일부분 재촬영해야 할 거 같지만요. 사전제작이라 그나마 다행이죠."
"재촬영이요?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어요?"
드라마 때문이 아니라니 뭔지 궁금했지만, 재촬영 이야기에 장효주의 관심은 다시 그쪽으로 쏠렸다.
"첫 전투가 너무 스케일이 작아요. 그렇게 초라해서야 1화에서 시청자들을 확 끌어당길 수 있겠습니까?"
"……고주환 사장님이 1화 받아보시고 자기 스튜디오에서 이런 대규모 전투씬이 나올 줄은 평생 몰랐다고 울기까지 하셨는데요."
"함대 군함 수가 너무 적어요. 적어도 200대는 되어야 보는 맛이 날 거 아닙니까. 그리고 CG가 너무 저렴해서 안 되겠습니다. 차라리 실제 선박을 제조해서 찍는 게 낫겠어요. 놀란 감독도 그렇게 많이 하던데."
"기껏 1화 촬영 다 해놨는데 그렇게 하면 제작비가 천정부지로 치솟…… 하긴, 어차피 돈은 많으시죠."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그 부분만 다시 찍자고 말하려고요. 어차피 사전 제작이라 시간 넉넉하잖아요."
"알겠어요. 제가 말해볼게요. 근데 드라마 때문도 아니라면 뭐 때문에 그렇게 표정이 안 좋아요?"
"그게 실은……."
하수영은 서해식품에 관한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한 방 먹이고 싶은데 뭔가 '청담동스타일'다운 방법이 생각나지 않아서 고민이라는 말에, 장효주도 피식 웃다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이윽고 그녀가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효원물산을 한 번 건드려 보시는 건 어때요?"
"효원물산이요?"
갑자기 튀어나온 이름에 하수영은 어리둥절했다.
효원물산은 국내 10위 안에 들어가는 효원그룹의 주력 계열사 중 하나다.
하지만 그가 알기로 서해식품과는 별다른 접점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효원물산이 효원식품최대주주인 건 아시죠."
"지금 알았습니다. 효원식품에는 관심이 없었거든요."
빅4에도 들지 못하는 식품제조회사다 보니 하수영은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었다.
"효원식품 딸이 조만간 서해식품그룹 며느리가 될 예정이거든요."
"어, 정말요?"
하수영은 얼른 기사를 검색했지만, 관련 기사는 단 한 줄도 나오지 않았다.
공개되지 않은 정보라는 의미다.
"검색해도 안 나와요. 둘이 어제 막 손잡았으니까. 언론에 공개되려면 시간은 좀 걸리겠죠."
"어제 막 손을 잡았다? 혹시 아는 사이입니까?"
"효원식품 딸이 연기해요. 영화도 세 편인가 찍었죠. 나름 이쪽에서는 알아주는 큰손이에요. 효원그룹 회장님이 딸 사랑이 지대하셔서 딸이 출연하는 영화라면 가리지 않고 돈을 많이 퍼부었거든요."
"오호."
하수영은 관심을 보이며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이 결혼에 매달리는 건 예비 며느리도, 예비 사위도 아니에요. 바로 예비 시아버지죠. 바로 태양심 이정훈 사장님, 서해식품그룹 회장님의 아들 되시는 분."
"예비 시아버지가 예비 며느리가 들고 올 지참금에 군침을 흘리고 있나 보네요."
"엄청 흘리고 있죠."
"그 지참금이 뭡니까?"
"효원식품이 우리나라에서는 빅4에 미치지 못하지만, 그건 해외 시장에 주력해서 그렇대요. 동남아와 중국에서는 오래전에 자리를 잡았고, 국내 식품회사가 그쪽에 진출하려면 효원식품의 도움을 얻는 게 편하다나. 저도 효정 언니 입으로 직접 들은 거라서 확인은 필요하지만요."
"아니, 그건 사실입니다."
하수영 입장에서는 효원식품의 지원 같은 것은 필요 없었기에 관심을 두지 않았을 뿐.
"서해식품그룹 아들과 효원그룹 딸이 사귀는 걸 몰랐다면 절대 연결할 수 없는 접점이네요. 고맙습니다. 제가 바로 이런 걸 원했어요."
효원식품의 해외 진출 지원을 받지 못하면, 서해식품은 과연 얼마나 빡칠 것인가.
상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하수영이 원한 게 바로 이런 것이다.
무슨 상대를 처절하게 박살 내서 큰 원한 관계를 만드는 게 아니라, 교묘하게 약이 오를 만한 부분을 살살 긁어서 분통이 터지게 만드는것.
압도적인 차이로 대패시켜 버리면 상대가 깔끔하게 현실을 순응해 버리고 말 테니, 그것은 재미없다.
"에이, 둘이 사귀는 것도 아니에요. 그냥 서해식품 아들이 하도 들이대서 두어 번 만나고, 손 한 번 잡은 게 전부라고 언니가 그랬어요."
"그래요? 근데 왜 예비 며느리라고 하셨죠?"
"효정 언니는 남자가 별로 마음에는 안 들지만 재벌가 결합 상대로는 적절하다고 생각하니까요. 원래 그 바닥은 다 그런 식으로 맺어지잖아요."
"제가 효정 언니라는 그분을 만날수 있겠습니까?"
"저 만나준다고 약속하면요."
"……."
"농담이에요. 왜 그렇게 굳어지고 그래요, 사람 서운하게. 지금 연락할까요?"
"……부탁합니다."
장효주는 그 자리에서 폰을 꺼내서 주효정한테 연락했고, 통화 도중에 손으로 오케이 모양을 만들어 보았다.
"지금 여기로 온다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지금요?"
"수영 씨 이름 말하니까 바로 오겠대요. 수영 씨가 충무공 드라마에 1차로 천억 넣었다는 거 때문 이 언니도 방방 뛰고 그랬거든요."
"저야 상관없습니다."
"그럼 여기로 오라고 할게요."
약 30분이 채 지나지 않아 주효정은 장효주의 청담동 강변 아파트에 도착했다.
주효정은 키가 크고 탄탄한 몸매를 가진 미인이었다.
아무래 재벌가 딸이라고 해도 배우를 하려면 저 정도 미모는 지니는 게 당연, 이정훈 사장의 아들도 그런 점 때문에 더욱 목을 맸을 것이다.
배우급 미모와 몸매를 가진 재벌가 딸을 만나기가 어디 쉬운가.
"주효정이에요. 말씀 많이 들었어요."
"하수영입니다."
간단히 통성명과 몇 가지 예의 바른 안부를 주고받은 뒤, 주효정이 곧바로 말을 꺼냈다.
"근데 절 보자고 하신 이유가 뭐죠?"
"실례가 될지 모르지만, 서해식품그룹 일 때문입니다. 태양심 사장님 아드님을 요즘 만나신다고요."
"바로 정리할게요. 수영 씨가 저랑 오붓하게 식사 한 번 해주신다면요."
"……"
"농담이에요. 아, 왜 정색을 하고 그래요. 저도 남의 남자 뺏으려고 들 만큼 염치가 없는 여자는 맞아요."
"맞아요? 언니? 지금 말실수 한 거지?"
"아, 미안. 나도 모르게 본심이 나와 버렸네."
"가, 가. 얼른 가."
"안 가. 오늘 죽어도 수영 씨랑 밥먹고 죽을 거야."
"……."
두 여자, 티격태격하는 것이 한두해를 본 사이가 아닌 거 같다.
하마터면 프리덤한테 두 여자의 자세한 관계를 물어보고 싶었으나, 필사적으로 참았다.
최고관리자로서 서비스 윤리 강령을 위반할 수는 없지, 암.
"주효정 씨, 효원식품 해외유통사업 배타적 독점권을 제가 가질 수 있을까요? 실은 그거 때문에 만나 뵙자고 했습니다."
"제가 회사 일을 하는 건 아니라서 장담은 못 해요. 제 남편이 되면 당연히 가질 수 있고요."
"언니, 선 그만 넘고 제자리 돌아가."
"사실이라서 그렇게 말한 건데? 이 태훈 상무보도 그것 때문에 나한테 들이대는 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