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356화
86장 가로채기 (2)
'아, 무슨 또 우리 수영병원 이야기 네.'
칭찬을 듣기 싫을 리가 있나.
하수영은 흐뭇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그래도 애써 시선 관리를 했다. 지금 소리가 난 쪽을 돌아보면 괜히 민망할 것 같다.
마침내 F-35A 2기가 차례차례 활주로를 박차고 하늘로 날아올랐고, 참관자들 사이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고무된 분위기 속에서 하수영도 열심히 박수를 쳐주었다.
시범 비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착륙한 뒤에는, 전투기 가까이 다가가서 이것저것 상세한 설명을 들으며 살피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자유로운 분위기를 틈타, 중후한 노신사 한 명이 하수영을 향해 다가와 악수를 정했다.
"이거 귀하신 분이 오셨구먼. 반가워요."
"반갑습니다. 하수영입니다."
육군 참모총장이 상대가 듣지 못하도록 하수영에게 슬쩍 말해 주었다.
"국방위원회 위원장 장흠석 의원님 이십니다."
"그렇군요."
하수영이 심드렁하게 반응하자 육군 참모총장은 속으로 '역시 그때 내가……'라며 혼자 좌절에 잠시 빠졌다.
"내가 우리 하 의원한테는 항상 신세를 지고 있어요. 언제나 고마운 마음입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게 무슨 말인가 싶을 것이다.
하지만 하수영은 의연하게 받아넘겼다.
"사모님께서 속히 쾌차해서 퇴원하시길 빕니다. 제가 병원 측에도 말은 잘 일러두었습니다."
"이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신경써주고 있었구먼."
"중요한 환자분이시니까요."
장흠석 의원의 아내는 현재 수영청담병원 VIP병동에 입원해 있었다.
병원 입장에서는 값비싼 진료비를 마음껏 지불하는 귀한 고객.
물론 하수영 입장에서는 그들이 병원비를 얼마를 내든 간에 그게 그거였지만, 면전에서 립서비스쯤 못 날려줄 것도 없다.
"그래, 닥터헬기보다 저렴한 전투기를 최신형 기종으로 굴리는 우리 국군을 보니 어떻소?"
"퀸은 미국에서도 스텔스 전투기보다 비싸다고 원래 말이 많던 기종입니다. 퀸이 비싼 거지 F-35가 못난게 아닙니다. 그래도 오늘 들어온 아이한테 너무 그러지 마시죠."
"그 비싼 헬기를 10기나, 그것도 닥터헬기용으로 수입한다는 말을 처을 때 무슨 생각을 한지 아시오?"
"환자의 목숨을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하는 병원이구나, 하고 생각하셨을 거 같은데요."
"대체 어떤 돈 많고 겁 많은 갑부가 자기 목숨을 그리 아끼나, 하고 생각했소. 당시 느낀 솔직한 감성이었지. 그런데 알고 보니 평생 병원신세 질 일 없을 거 같은, 젊고 건강한 청년이 이사장이었지 뭐요."
"저도 언젠가는 병원 신세를 질 수도 있겠죠. 지금은 건강해도 사람 일은 모르는 겁니다."
"왠지 우리 하 의원은 평생 병원문턱 한 번 넘었을 일 없을 거 같은데."
"의사한테 진료를 받아본 적은 20년 평생 한 번도 없었죠. 아버지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방접종도 한 번 안 맞았다고 하셨네요."
"예방접종을 한 번도?"
장흠석 의원은 속으로 '에이, 갓난 아기 때 맞은 걸 기억 못 하는 거겠지'하고 넘어갔다.
"오늘 국군 초청을 받아들인 걸 보면, 국방 문제에도 평소 관심이 많으셨소?"
"옛날에는 그랬지만, 요즘에는 부동산 투자와 음식 만들기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허허, 하수영 의원이 강남에서 알아주는 부동산 큰손이라는 이야기는 내 많이 들었소만, 청담동을 전부 사들이는 게 소원이라고 하셨다지?"
장흠석 입장에서는 절대로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
동네 가지가 보존되는 한, 그 많은 상가와 주택의 주인들은 파산이라도 하지 않는 한은, 자신이 쥐고 있는 자산을 내놓지 않을 테니까.
현실적으로 많이 먹어치워 봐야 청담 전체 구역의 2, 3% 정도일까?
"우리 당에서 지속적으로 러브콜을 보냈는데, 대답을 거듭 보류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아직 총선이 멀기도 했고, 저는 당장은 지역구를 위해서 봉사하고 싶습니다."
"국회의원이 돼서도 얼마든지 지역구를 위해서 봉사할 수 있어요."
"하지만 국회의원이 되면 지역구 외에도 국가를 위한 봉사도 해야 하니까요. 여러 가지 내려놔야 할 것도 많고요. 사업체 문제도 있고요."
"사업체야 잠시 다른 사람에게 맡기면 되지. 보아하니 국회 상임위원회만 잘 선정하면 업무종사 제한에도 크게 위배될 것은 없어 보이는 데, 병원 이사장도 비영리법인이니 상관없고."
"그래도 여기저기서 말은 많이 나올 겁니다. 그런 거 다 신경 쓰면서 어떻게 의원 직무에 집중하겠냐고 말이죠."
장흠석은 하수영이 지닌 의지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적어도 지금 보인 태도를 보면, 그저 자기 몸값을 올리려고 러브콜을 보류한 것은 아닌 듯했다.
'아직 기초의원 이상은 생각이 없는 건가.'
너무 젊은 나이를 생각하면, 좀 더 기초정치에서 경험을 닦은 후 큰물에 나와도 괜찮을 거 같긴 하다.
장흠석과 이야기를 나누자, 하수영과 안면을 트고 싶어 안달이 나 있던 참관인들이 주변에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듯이 서성거렸다.
그들은 서해그룹 총수보다 (공개된) 개인 자산이 많다고 알려진 하수영과 어떻게든 친분을 쌓고 싶었다.
또, 수영청담병원이 빨아들이는 고급 인적 자원과 쏟아붓는 돈을 생각하면, 장차 수영청담병원이 대한민국 최고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나중에 자신이나 지인이 아플 때 국내 최고의 병원에 손쉽게 입원하기 위해서는, 하수영과 안면을 터두는 게 유리하다.
"반갑습니다, 하수영 의원님. 저는 국방위원 조문식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하수영 의원님."
"아니, 귀하신 분이 어찌 이런 누추한 곳을 다 찾아주시고…… 오늘 참관하러 오지 않았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뻔했습니다."
그들은 막내아들뻘만도 못한 하수영 앞에서 꼬리를 살랑거리며 얼굴을 각인시키기 바빴다.
"안 와도 되는 참관식 아니었어요?"
마중을 나온 정서희의 말에 하수영은 살짝 신경질적으로 머릿결을 쓸어 올리며 대답했다.
"이미 약속을 했으니까요. 국방부에서는 어쨌든 서해식품과 다리를 놔줬습니다. 그놈들이 이미 딴 곳에 판다고 계약했다는데 어쩌겠어요."
위약금을 주고 물릴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하다못해 매수인 측이 누구인지만이라도 알았으면 좋으련만.
"서해식품이 알려주지 않으니, 나중에 등기부 변동 상황 체크해서 제가 직접 연락하는 수밖에요."
강경한 불법 수단을 쓰지 않는 한, 지금은 매수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매매 거래가 끝나면 등기부에 등재가 되므로, 그때에는 당당하게 매수인 정보를 열람할 수 있다.
"그쪽도 필요해서 샀을 텐데, 사자마자 바로 재판매하지는 않을 거 같은데요."
"천억 프리미엄 준다고 하면 되죠. 취득세와 기타 비용도 제가 전부 댄다고 하고요."
"그럼 너무 손해 아닌가요?"
"손해여도 지금 사야 합니다. 이런건 시간 지나면 사고 싶어도 못 사요. 안 그래도 지금 연예인들이 정담동 기웃거리는 거 가드 하느라고 정신없는 판인데요."
"수영 씨 하시는 거 보면 국회의원까지는 정말 못 할 거 같아요. 너무 바쁠 거 같은데요."
"에이, 하려면 할 순 있죠. 근데 여기저기서 참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게 귀찮을 뿐이죠."
하수영이 돌아간다는 소식을 들은 국방부 장관이 부리나게 달려왔다.
"오늘 자리를 빛내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아닙니다. 우리 대한민국 공군의 위용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서 저도 유익했습니다."
"저녁에 록히드마틴 측 사람들과 식사 일정이 있는데, 의원님은 참석하실 의향이 없으십니까?"
"음……. 그러죠."
국병호 장관은 속으로 내심 기했다.
오늘 하수영을 참관시킨 것은 궁극적으로 록히드마틴과의 촉매 역할을 기대한 것 때문이다.
"부사장님, 혹시 지금 바빠요?"
"일정은 있지만 변경할 순 있어요. 그런 자리라면 당연히 만사 제쳐 두고 참석해야죠."
"그럼 부사장님도 함께 갑시다."
"네, 그래요."
그렇게 해서 하수영은 소수의 인원만 참석하는 저녁 만찬에 정서희와 동반으로 참석하게 되었다.
국방부 장관, 합참의장, 공군참모총장, 그리고 별 4개가 안 되는 장군 몇 명.
록히드마틴에서는 다섯 명의 임직원 및 기술자들이 참석한 식사자리였다.
그중 중후한 백인 신사 한 명이 하수영을 향해 웃음을 머금고 악수를 청했다.
"아시아 수출담당 코즈펠트 이사입니다.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하수영 의원님."
코즈펠트는 살짝 어눌하지만 분명한 한국어로 하수영에게 인사했다.
"하수영입니다. 이번에 퀸 스텔리 온 수출 계약을 위해 발 벗고 뛰어다녀주신 분이군요. 덕분에 감사하게 잘 쓰고 있습니다."
하수영이 자연스러운 영어로 대답하자 코즈펠트는 흠칫 놀랐고, 이내 미소를 지으며 영어로 대화를 이어 나갔다.
"비싼 명품을 10기나 사주신 귀한 분이시니 당연히 최선을 다해 뛰어다녀야지요. 덕분에 저희 회사와 시콜스키도 해외 수출로가 트여서 한 시름 놓았습니다. 연구개발비도 어느 정도 건졌고요."
"상황 봐서 나중에 10, 20기 정도 또 추가 주문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분원을 더 늘려야 할까 생각 중 이거든요. 갑자기 고장 날 경우를 생각해서 예비기도 충분히 확보를 해야 하고요."
"오우, 정말이십니까? 그렇다면 저희야 감사할 따름이지요. 제 명함을 드릴 테니 언제든지 다이렉트로 저에게 필요한 게 있으면 말씀만 해주십시오."
그러면서 코즈펠트는 자기 명함을 꺼내 하수영에게 공손히 내밀었다.
만찬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이뤄졌다.
국방부 측 인사들은 록히드마틴이 평소보다 열린 마음과 태도로 대화에 임하는 것을 겪을 수 있었다. 국병호의 예상대로 하수영의 참석이 좋은 윤활유 역할이 된 것이다.
"F-35A 다음 생산량 인도는 예정보다 3달 정도 더 앞당길 수 있을 듯합니다."
"정말입니까, 미스터 코즈펠트?"
"주문량이 밀려 있기는 하지만 생산공장을 좀 더 다그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품질에 이상이 있거나 하지는 않을 테니 안심하십시오."
구두 약속이기는 하지만 예정된 물량의 조기 인도까지도 언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국병호는, 그래도 하수영이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한 것에 내심 미안해했다.
"죄송합니다. 의원님. 제가 힘이 모자라서 서해식품을 제대로 설득하지 못했습니다. 다시 한번 송구할 뿐입니다."
"괜찮습니다. 이미 계약을 했다는데 어쩌겠어요. 누구를 탓할 것도 아니고, 상황이 이렇게 된 거죠."
보통의 갑부라면 자신에게 화 한번쯤은 낼 만한데, 저렇게 쿨한 반웅이라니.
국병호는 내심 미안한 마음을 품은 채 하수영을 배웅했다.
그리고 육군 참모총장을 찾았다.
"우리 하수영 의원님, 예비군 훈련을 받을 때 차질이 없도록 신경 쓰게."
"예, 장관님."
참모총장은 군기가 바짝 들어서 대답했다.
몇 주 후, 국병호 장관은 느닷없는 하수영의 방문을 받았다.
화가 잔뜩 난 듯이 씩씩거리는 모습에, 국병호는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하, 하수영 의원님?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장관님, 서해식품이 군납하는 식자재 거래, 그거 계약 끝나는 대로 전부 저한테 넘겨줄 수 있습니까? 아, 특혜 시비는 걱정 마세요. 무조건 다른 경쟁자보다 싸게 납품하겠습니다. 군 입장에서도 저한테 납품받는 게 가장 이득일 겁니다."
"그렇다면야 입찰이 어렵지 않을 겁니다만, 왜 그러십니까? 서해식품하고 무슨 일이라도……?"
"그놈들이 거짓말했어요."
"예? 거짓말을 했다고요?"
"제가 오늘 등기부 봤습니다! 매매계약을 한 날짜가 제게 사옥 팔라고 제안을 한 날보다 한참 뒤였어요!"
하수영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
"저한테 팔기 싫어서 거짓말한 다음에, 뒤늦게 부랴부랴 매도 거래를 한 거라고요!"
설마 하수영이 매일 등기부를 열람했으리라고는, 이정훈 사장은 생각도 안 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