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349화 (349/1,270)

프랜차이즈 갓 349화

84장 병원과 갑옷의 공통점(5)

"병원과 갑옷의 공통점이 뭔지 아세요?"

"글쎄요. 부상을 억제한다?"

"화려하게 번쩍거릴수록 자랑하기 좋다는 겁니다."

"풉!"

정서희는 그만 실소를 터뜨렸다.

"진짜 자랑하시려고 병원 사신 거예요?"

"그 목적이 아무래도 가장 컸죠. 명색이 건물주인데, 내 건물에 병원하나 정도는 입주해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원래 병원이 종합세트로 입주한 빌딩들이 보통 잘 나가는 건 맞죠. 근데 개원의도 이미 꽤 많이 입주해 있지 않으셨나요?"

"종합병원은 하나도 없었거든요."

"보통 종합병원을 세입자로 받는 건물주는 없어요. 아, 보통 없는 게 아니라 그냥 없어요."

"이제 제가 선례를 만들었군요."

"네, 강남구 건물주의 역사를 새로이 쓰셨어요."

3차병원급 대형병원을 세입자로 부리는 유일한 건물주!!

물론 하수영이 이사장이긴 하지만, 청담수영병원은 엄연히 법인격을 부여받은 존재다.

법이 별개의 사람(법인)으로 본다는 뜻이다.

"건물주 되기 참 힘드네요. 입주 한 번 시키려고 재단 만들어서 병원인수까지 해야 되니."

"원래 건물 관리가 편히 앉아서 돈만 받는 게 아니잖아요. 자기 건물 하나 없는 사람들은 다 그런 줄 알지만, 관리대행업체한테 맡겨도 신경 쓸 건 신경 써야 해요."

정서희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서 말을 이었다.

"수영 씨가 메디컬 사업에 진출하는 줄 알고 서해그룹에서 크게 경계하고 있어요. 이번에 거기 병원에서 의사들 많이 빠져나갔거든요."

"어디서 질 좋은 의사를 그렇게 공수해 오나 했더니, 다른 병원에서 빼온 거군요."

"돈 더 주고 근무 시간은 오히려 줄여준다는데 안 올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심지어 근무지가 어디 지방도 아니고, 강남구 한복판이잖아요."

청담수영병원은 세금을 대납해 주기 때문에, 세전으로 따지면 실제 수치는 더 높다.

"이러다가 조만간 이현덕 부회장이 한 번 만나자고 연락 오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요."

"만날 용건이 있으면 만나는 거고, 아니면 마는 거죠."

"우리나라 최대 재벌인데 별로 긴장 안 되시나 봐요?"

"돈 좀 있다고 긴장할 거 같았으면 안살린 교수 앞에서 이미 혓바닥 눌어붙었을 겁니다."

"그건 그러네요. 아, 근데 3년 후에 3차병원 재승급 노리실 거죠?"

이미 3차병원 지정 탈락을 했기에, 다시 승급을 노리려면 3년을 기다려야 한다.

3차병원지정은 한 번 떨어졌다가 재승급하는 게 가장 어렵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재단에서 투자한 걸 생각하면 재승급은 따놓은 당상이다.

이건 자부심이나 오만이 아니라, 의료계에 종사하는 누가 봐도 당연한 사실이었다.

"아뇨, 3차병원 승급은 신청 안 할 겁니다."

"네? 어째서요?"

"이런저런 제약이 많잖아요. 병상, 수술실, 진료 과목도 몇 개 이상, 주요진료시설이 병원 건물의 얼마 이상, 중증질병환자 입원은 절반 이상, 간단한 환자는 또 얼마 이하.

어휴, 왜 이렇게 제약이 많아."

"……다른 건 몰라도 병원시설과 의료진만큼은 이미 기준치를 한참 초과했을 건데요?"

"남이 그런 잣대를 들이대는 거 자체가 싫은 겁니다."

정서희는 어안이 벙벙하다가 이내 납득했다.

하수영이 얼마나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사람인지를 상기한 덕분이다.

"가장 좋은 3차 병원보다 더 좋은 2차 병원, 그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왠지 멋있어 보이기도 하고요. 아, 그러고 보니 오늘 미국에서 닥터헬기 도착하는 날이었죠?"

"네, 다행히 사고 없이 잘 실어왔다고 하네요. 역시 화물선이 크니까 좋더라고요."

"근데 보통 군용 헬기는 주문 들어가면 그때부터 제작 시작하지 않나요? 인수받기까지 시간이 꽤 걸릴텐데…… 혹시 중고는 아니겠죠?"

"미군 예산이 삭감되는 바람에 이미 만들어놓은 헬기 10기가 붕 떴대요. 그걸 낚아챈 거죠. 완전 새삥입니다."

"전투용 전자장비 같은 것을 다 제거하는 조건으로 하면 매입 비용을 더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요?"

1,400억 원이라는 가격.

여기에는 미사일 같은 것은 제외하더라도, 전자전 장비나 군용 레이더같은 최신형 장비 가격들도 포함된 것이다.

"에이, 전자장비 이거저거 떼어내면 헬기 본연의 성능이 안 나와요. 레이더나 항법장치 같은 거 함부로 떼어내면 순항속도나 최고속도 같은 것도 줄여야 합니다. 위험하니까요."

"아, 그래요? 제가 군용 헬기는 잘 몰라서."

"기관총 무장은 필요 없어서 그냥 떼어내려고 했는데……."

"했는데?"

"미군에서 그냥 기관총 안 떼고 운용하면 안 되겠냐고 하더라고요. 실탄 적재는 않겠지만 빈 총 가지고 뭐 훈련 같은 거 틈틈이 하려나 보죠."

"……그거 문제 되는 거 아니에요?"

환자 발생 현장에 닥터헬기가 사뿐히 내려앉으며 기관총을 겨누고 '자, 당신을 구하러 왔소!' 라고 하는 광경이라니.

"뭐, 환자 이송 운영에만 방해 안되면 상관없으니까 미군더러 그건 알아서 하라고 했습니다."

"뉴스에 떴을지도 몰라요. 한 번 봐야겠어요."

포털에 접속해서 뉴스 등 정보를 검색하던 정서희는 하얗게 질린 채 하수영을 돌아봤다.

"세상에! 수영 씨, 우리 닥터헬기들 항공모함 타고 여기까지 왔다는데요?"

"항모에 싣는 게 가장 편하긴 하죠. 일반 화물선에 실었다가는 테러조직에 탈취당할 염려도 있으니까요."

"왜 안 놀라는 거예요?"

"이게 놀랄 만한 일입니까?"

"……"

***

전략헬기 퀸 스텔리온 10기는 주한미군 오산공군기지에 당당히 착륙했다.

주한미군사령관은 [수영청담병원구조헬기]라고 큼지막하게 도색된 몸체를 보고 심경이 매우 복잡했다.

군인을 수송하고, 적군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살생병기가 닥터헬기로 전직하게 될 줄이야.

동행해 있던 대한민국 공군사령관도 헬기를 둘러보며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바로 우리 공군 최신형 전술기 F35보다 더 비싸다는 전략헬기 로군요."

현재 한국에서 도입 진행 중인 스텔스 전투기보다 더 비싼 헬기.

심지어 미국이 아직 그 어느 나라에도(이스라엘 포함) 수출을 금지하고 있는 전략헬기.

공군사령관 입장에서는 탐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미 의회에서 정말이지 용케 승인을 했습니다."

"나노소프트의 로비가 컸고, 록히드마틴사의 욕심도 있었죠. 더군다나 군용이 아니라 닥터헬기로만 활용하고, 미군이 정비와 운용, 보관까지 맡는 조건이기 때문에 허락했던 겁니다."

헬기에 대한 기밀이 외부에 새어나갈 가능성이 전혀 없기 때문에 승인 이 난 것이다.

"사실 닥터헬기로 쓰기에 이만한 기종은 지구상에서 찾아볼 수 없을 겁니다. 헬기 중에서 가장 빠르고, 수송 능력이 뛰어나고, 매우 정숙하죠."

"문제는 가성비죠."

"맞습니다. 1,400억짜리 헬기를 닥터헬기로 쓴다는 발상을 누가 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성능, 또 성능만 봤기 때문에 가능한 결정이지요."

김하늘 공군사령관은 눈으로 핥듯한 기세로 헬기의 우아한 자태를 훑어보았다.

55명의 승객을 한 번에 실어 나를 수 있는 수송 능력.

한반도 남쪽 끝에서 서울까지 단 2, 30분 안에 돌파하는 기동력.

"무엇보다 닥터헬기로서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정숙성에 있습니다."

"아, 들었습니다. 비행 중에도 안에서 충분히 정밀수술이 가능할 만큼 안정성이 뛰어나다고요."

"그것도 있지만, 바로 무소음 비행기동력을 말하는 겁니다."

"무소음 비행?"

"한국에서는 닥터헬기 소음이 시끄럽다고 병원 주변에서 온갖 민원이 들어온다면서요? 하지만 우리 퀸 스텔리온은 헬기가 오르고 내렸는지도 알지 못할 만큼 아주 조용하지요.

헬기 가격이 비싼 것도 바로 그 점덕분입니다."

헬기를 타고 온 파일럿들은 주한미군 소속이 아니다.

그들은 다른 항공편을 통해서 미군 본대에 복귀하게 된다.

오산 공군기지 미군 파일럿들은 2인 1조로 퀸 스텔리온에 탑승해서 서울 출발 준비를 갖췄다.

"그런데 기관총 사수는 왜 타는 겁니까?"

"아, 훈련입니다. 기왕 가는 김에 군사작전훈련 한다 생각하고 편제갖추는 거지요."

아무튼 그렇게 각각 3명의 기관총사수까지 태운 채로, 그리고 인솔을 맡은 한국, 미군 공군 장교들까지 탑승한 채로 서울로 출발했다.

비행 중에 미군 장병들은 정말로 실제 작전을 펼치는 것처럼 삼엄한 훈련을 병행했다.

'닥터헬기 안에서 저래도 되는 거야?'

금세 서울이 저 멀리 보이기 시작했다.

1,400억 원짜리 닥터헬기들이 병원에 들어온다.

의사와 간호사는 물론이고 일반 직원들까지 급한 근무가 없는 이들은 구경을 하러 나왔다.

심지어 오늘 비번인 이들도 일부러 병원에 들러서 헬기들이 첫인사하는 광경을 보려고 왔다.

다들 얼굴에 기대 반, 우려 반이 섞여 있었다.

"근데 이거 괜찮은 거야? 헬기 소음 때문에 또 민원 들어오는 거 아니야?"

"그러게. 10기가 한꺼번에 들어오면 소음 장난 아닐 텐데."

"헬기 내릴 공간도 마땅치가 않네. 이착륙장이 우리 병원에 3개뿐이라."

3기는 헬기 이착륙장에, 그리고 7기는 주차장 등 빈 공간에 내릴 예정이었다.

병원 의료진과 처음으로 상견례를 가지는 자리이기에 10기가 한자리에 모일 뿐이다.

앞으로 헬기들은 2기씩 5개 조로 여기저기 뿔뿔이 흩어져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게 될 것이다.

"응? 갑자기 웬 바람이지?"

"그러게. 이게 무슨…… 허억! 저, 저기를 봐!"

간호사 한 명이 놀라서 하늘을 향해 손가락질을 했고, 병원 소속인들은 일제히 고개를 쳐들었다가 놀라서 넘어질 뻔했다.

10기의 헬기가 편대를 이룬 채, 불과 수백 미터 상공에서 호버링 중이었던 것이다.

로터가 일으키는 거센 바람이 눈을 따갑게 하고 있지만, 놀랍게도 소음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소, 소리가 전혀 안 들린다!"

"천천히 내려오고 있어!"

"아, 이제 조금씩 소리가 들리는거 같아!"

병원장 등 교수들은 눈을 부릅뜬채, 주먹을 꽉 쥐고 헬기들이 각자 할당된 자리에 착륙하는 광경을 지켜봤다.

붉은 십자마크와 [수영청담병원 구조헬기]라고 도색된 헬기 몸체가 조용히 내려앉는 광경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벅찬 감동을 주었다.

"……정말 크네요."

"진짜 큽니다. 저러니 내부에 수술실도 만들 수 있다고 하는 거군요……."

"근데 소음이 거의 들리지 않네요?"

소음이 아예 들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거리가 약 50미터 안으로 일정 이상 가까워지자 헬기 소리가 어느 정도 귀에 잡히긴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다른 헬기들에 비하면 무음인 거나 마찬가지였다.

병원장은 팔짱을 끼고 바라보는 하수영을 향해 공손히 질문을 던졌다.

"이 사장님, 헬기 소리가 거의 없는 게 신기합니다. 이 정도면 민원 때문에 골치 아플 일은 없을 거 같습니다."

"제가 퀸 스텔리온을 고른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저소음 기술 덕분입니다."

"아아, 역시 그렇군요."

교수들은 한 마디라도 놓칠세라 귀를 쫑긋 세우고 정신을 집중했다.

"능동적 블레이드 피치각 조정으로 인한 위상각 교란, 개별 깃 제어를 통한 피치링크 구동, 블레이드 발생와류 분리 경감 등 다양한 저소음기술이 들어갔죠. 특히 소음의 95%이상을 블레이드 수직 상공으로 날려버리는 수직분산 교란 기술이 성공적으로 적용된 모델이거든요."

"아아, 완벽하게 이해했습니다."

"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비싼 건 이유가 있군요!"

"대충 우리나라 최신 스텔스 전투 기보다 대당 가격이 비싼 헬기니까 이 정도 저소음 기술은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최윤석 병원장이 손뼉을 짝짝 쳤다.

"자, 이제 헬기 인테리어 할 시간입니다. 한 번 멋지게 개조해 봅시다."

텅 빈 헬기 내부를 하늘 위의 수술실, 중환자실로 바꿔야 할 차례.

수십 명이 넘는 업체직원들이 달라붙어서 미군의 감독과 감시하에 수술 장비 세팅을 시작했다.

어느 직원이 설비를 운반하다 말고, 기체 외부를 보고 작게 투덜거렸다.

"근데 닥터헬기에 왜 기관총이 달려 있는 거야?"

"진상 보호자 견제용이 아닐까?"

"야, 구조대원 폭행하려다가도 기관총 보고 섬뜩해서 주먹이 다시 들어가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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