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347화
84장 병원과 갑옷의 공통점(3)
다음 날, 보건복지부 장관은 코웃음을 쳤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뭐? 2,3조 원을 들여서 종합응급센터를 짓겠다고? 정부 지원금 없이? 거기 병원은 무슨 자선단체라도 된다는 거야? 그럴 돈은 있대?"
"장관님, 하수영의료재단에 1차로 들어온 출연금만 10조 원입니다만."
"……."
순간 장관은 당황해서 잠시 머뭇거렸다.
재단에 돈이 많다는 건 알았어도, 구체적으로 얼마인지는 몰랐던 모양이다.
'우리 보건부 관할인데 저렇게 몰라서야.'
권력, 자리 유지에만 몰두하고 있으니 이런 것도 제대로 파악 못 하고 있겠지.
허준혁 실장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재단 물주가 프라임오일입니다."
"아, 그 정유회사? 요즘 돈 갈퀴로 긁어모은다면서."
"네, 그 재단에서 1차로 10조 원을 출연했고 앞으로도 매년 2, 3조 원씩은 들이붓는답니다. 공익 목적으로 병원 운영하는 거라 적자가 얼마가 나든 상관하지 않겠다는 게 회사 기본 방침입니다."
"아니, 그 회사는 병원하고 무슨 관계기에 그런 말도 안 되는 돈지랄을 하는 거야?"
"병원 이사장이 프라임오일 최대 주주인데요. 지분 80%를 갖고 있습니다."
"……."
장관의 얼굴은 쪽팔림으로 일그러져서 아예 터지기 직전이었다.
허준혁 입장에서도 어이가 없었다.
공직자재산열람 코너에 들어가서 몇 번 타이핑만 하면 하수영 명의자산이 주르륵 나오는데, 장관이나 되는 양반이 저리 아는 게 없다니.
"청담수영병원 종합응급센터 지방분원에는 응급수술실과 중환자실만 갖춰서 운영한답니다. 중증응급환자만 받는다는 방침이고, 들어보니까 웬만한 서울종합병원보다 좋은 시설로 갖출 예정입니다."
"돈이 어디서 나…… 아차차."
"……들어보니까 닥터헬기도 날아다니는 응급실 겸 중환자실 수준으로 세팅한다는데요? 헬기가 워낙 정숙성이 좋아서 바람만 심하게 안 불면 안에서 수술도 가능할 정도랍니다."
장관의 얼굴은 이미 까맣게 죽어 있었다.
아마 속으로 엄청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조금만 대처를 잘했더라면 자신의 실적이 될 수도 있었는데, 그럼 국회 청문회 때 좀 더 어깨에 힘을 주고 갈 수도 있었는데.
"이미 여론은 청담수영병원 편입니다. 특히 지방에 응급센터 분원을 설치하고 닥터헬기에, 교수급 의사상주에, 이미 국민들은 두 팔 벌려 환영입니다."
"교, 교수급 의사가 뭐하러 그런 분원에서 상주하겠나? 자네라면 이 좋은 서울 놔두고 시골 분원에서 언제 올지 모르는 환자만 기다리면서 세월아 네월아 지루하게 시간 보낼 수 있겠어?"
"분원 상주 의사 연봉이 '실수령' 으로 3억이랍니다. 세전으로 치면 5억은 넘겠네요."
"……."
"그리고 출장식 순환 근무랍니다. 2주 분원 파견 나갔다가 6주 서울 근무하고, 다시 2주 파견, 이런 식이죠. 근무지 이동도 헬기편으로 하니까 편도에 30분도 안 걸립니다."
청담서울병원에서 헬기 타고 이동해서 분원에 바로 내리면 출장 이동끝.
최대 30분이라는 것도 어디까지나 남쪽 끝 해안을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강원도나 세종시 같은 곳은 한 15분이나 걸릴까?
보통 분원 근무는 좌선이다. 승진에서 밀려났다. 대체로 이런 이미지다.
하지만 이런 출장식 순환 시스템이라면 분원 근무를 불명예로 받아들일 사람은 없다.
"이제라도 우리 보건복지부에서 숫가락 올려야 합니다. 민영병원에서 이렇게 큰 투자를 하는데, 나라에서 해준 게 아무것도 없다니요."
"그, 그래야지. 이제라도 뭐 좀 거 들어야지."
처음에는 그런 게 말이 안 된다고 외면했다.
하지만 충분히 가능할 게 확실해진 이상, 어떻게든 숟가락을 얹어야 한다.
하다못해 상대가 싫다고 해도 지원금을 쑤셔 박아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권력과 가까운 부처로 영전되듯이 이관한다는 자신의 꿈은 날아간다.
윗분들이 자신을 좋게 보지 않을 테니까.
"허 실장, 자네가 병원하고 다시 접촉해 봐. 필요한 게 있는지, 원하는 게 있는지 알아내서 가져와 봐."
"그건 진작 보고드렸는데요."
"병원 소재지를 청담동으로 바꿔달라고? 정말 그거 하나면 된다는 거야?"
"네, 하수영 이사장님은 진심으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장관은 믿을 수가 없었다.
그 많은 돈을 투자하면서, 겨우 삼성동에서 청담동으로 편입만 시켜주면 된다고?
그럴 리가 없다.
분명히 더 큰 것, 투자한 것 이상의 더 많은 것을 원할 것이다.
행정고시를 패스하고 공무원으로서 오랜 관료 경험이 누적된 그로서는 당연한 관점이었다.
"아무튼 빨리 가서 이야기, 아니지. 이번엔 내가 직접 가서 협상할 테니까 자네가 수행해."
"예, 장관님."
***
장관의 면담 요청에 하수영은 처음에는 병원장한테 위임하려고 했다.
하지만 사이즈가 워낙에 크다 보니 최윤석 병원장이 부담스러워했고, 결국 다 함께 만나기로 했다.
하수영이 병원장실에 도착하자, 배성리 장관과 허준혁 실장, 그리고 최윤석 병원장이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어려운 발걸음 해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보건복지부 배성리 장관입니다."
"하수영입니다."
"하하……이거 뭐라고 불러드려야 할지 호칭 선정이 마땅치가 않군요."
하수영이 구의원 신분이기도 하다 보니 난감한 것이다.
민간직 직함으로 불러야 할지, 공직 직함으로 불러야 할지.
"오늘은 병원 이사장 자격으로 왔습니다."
"그럼 이사장님이라고 불러드리겠습니다. 이사장님, 종합응급센터에 대대적인 투자를 하신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보건복지부에 몸담고 있는 공직자로서 이사장님의 큰 포부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이 베풀면서 살아야지요. 제가 기초의원을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모든 사람이 다 이사장님 같았다면 우리나라가 좀 더 살기 좋은 나라가 될 겁니다. 그나저나 병원 운영에 저희 보건복지부에서 도와드릴 것은 없습니까?"
그 말에 하수영이 팔짱을 끼면서 가죽 소파에 몸을 깊이 묻었다.
은근한 권위가 느껴지는, 아랫사람을 내려다보는 듯한 자세였다.
"권역외상센터를 운영해 달라는 부탁에 지원금은 됐으니 행정동 편입만 해달라고 했었는데 거절하셨죠."
"그건 저희 부서 관할이 아니다 보니……."
"다른 일반 외상센터가 런치 세트라면, 우리 병원 종합응급센터는 디너 풀코스입니다. 이건 인정하시죠?"
"……맞습니다."
외상센터의 기능을 수행하면서도 훨씬 더 좋은 풀패키지.
"원래 제가 코 묻은 돈 지원 받는거 별로 안 좋아해요. 이런저런 참견이 붙는 게 싫어서요. 하지만 지금 장관님은 한 번 불발된 거래를 다시 이으려고 찾아오셨죠. 이럴 때 그냥 공짜로 받아주면 제 자존심이 문제되죠."
"죄, 죄송합니다."
상당히 강력한 워딩이지만, 배성리 장관은 반발심도 품지 못한 채 고개숙여 사죄했다.
다른 걸 다 떠나서 상대는 정유업계의 강자 프라임오일의 최대주주다…….
"그래서 뭘 하나라도 더 받긴 받아야겠는데. 청담동 편입 말고 다른 거 추가로요."
"뭘 원하십니까?"
"앞으로 우리 병원에서 공단에 청구하는 의료비는 삭감하지 말고 다 승인해 주세요."
"삭감을 하지 말아달라고요?"
"네, 우리 병원이 환자 상대로 무슨 시술을 했든지 간에 삭감하지 마시고 돈 달라는 대로 다 주세요."
병원은 환자와 건강보험공단, 두곳으로부터 돈을 받는다.
예를 들어 1,000만 원짜리 A라는 시술을 하면 환자한테 100만 원, 공단에서 900만 원을 받는 식이다.
그런데 가끔 공단 심평원에서 트집을 잡는다.
'야! 그 환자는 500만 원짜리 B시술이면 충분한데 왜 비싼 A 시술을 했어? 너네 과잉의료임! 500만 원깎는다!'
'A시술이 B시술보다는 환자 예후에 더 도움이 되니까 비싸더라도 선택한 건데요? 돈 벌려고 그런 건 아닙니다!'
'됐고, 그냥 삭감! 500만 어쨌든 삭감!'
대충 이런 게 삭감이다.
정말 과잉의료인 경우도 있지만, B 보다는 A가 환자 예후나 성공 가능성도 더 좋아서 채택하는 경우에도 가차 없이 삭감을 해버린다.
"과잉진료로 마진 남기려고 그러는거 아닙니다. 그냥, 여기 우리 여기 최윤석 병원장님이 심평원하고 드잡이질하는 거 제가 두 눈 뜨고 볼수가 없어서 그럽니다."
"네, 그 부분은 최대한 반영을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왜 이런 시술을 했느니 안 했느니, 그런 다툼이 벌어질 가능성 자체가 지금 막 지워졌다.
최윤석 병원장은 이게 꿈인가 하는 눈으로 둘러봤다.
다른 병원장들이 오늘 이 자리에서 오간 협상 이야기를 들으면 아마 부러워서 미칠 것이다.
어떻게든 돈 안 주려고 트집 잡는 공단 놈들하고 싸울 일 자체가 사라졌으니, 원래 그런 불필요한 다툼이 사람 피 말리게 하는 법이다.
"그런데 이사장님, 퀸 스텔리온이라는 헬기가 미국에서도 수출이 불가능한 최신형 전략수송헬기라고 들었습니다."
"닥터헬기로 쓴다니까 팔겠다고 했습니다. 10기 사주겠다고 하니 록히드마틴이 더 적극적으로 알아서 하겠다고 했다네요."
배성리와 허준혁은 꼭 한 다리 건너서 전해 들은 것처럼 말한다고 느꼈다.
'1,400억짜리 헬기를 10기나…….'
'그럼 1조 4,000억 원?'
"소유권은 우리 병원이 갖지만 모든 운영은 주한미군에서 맡아서 하기로 했습니다. 우리 병원은 운항지시만 내리는 거고, 조종부터 정비, 관리감독, 보관까지 전부 주한미군에서 맡는 거죠."
"아, 그렇군요."
그제야 배성리 장관은 납득했다.
그런 식이라면 전략헬기라고 해도 미국 입장에서 보안이 유출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닥터헬기로 쓴다고 하니까 여러모로 이미지 상승에도 좋을 테지.
'그래도 대단하다. 어떻게 그런 협상을 했지?'
"미국에 인맥이 상당하신 모양입니다."
"성능 좋은 최신형 닥터헬기 필요 하다니까 나노소프트가 발 벗고 나서줬습니다. 록히드마틴사와 협상하고, 백악관과 미 의회에 로비하고 설득하는 것도 전부 나노소프트에서 해줬죠."
"나노소프트? 그 세계적인 IT회사 말씀이십니까?"
"네, 나노소프트가 요즘 제 덕분에 미국 푸드 시장을 싹쓸이 하는 중이거든요."
이건 또 무슨 이야기인지.
배성리 장관은 돌아가는 대로 하수영에 관해서 더 자세히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냥 돈 많고 땅 많은 기초의원 청년 재벌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아무리 그래도 최신형 군용 전략헬기를 닥터헬기로 사용하겠다니.'
"저, 그럼 종합응급센터 지원금을 받아주시겠습니까?"
최윤석은 만감이 교차했다.
그 깐깐한 보건복지부 장관이 직접 찾아와서 제발 지원금 좀 받아달라고 애원하는 걸 보고 있다.
심지어 앞으로 심평원 심사는 프리 패스로 넘겨주겠다는 약속까지 곁들 여가면서.
"얼마나 주실 수 있는데요?"
"300억 원까지는 예산 집행이 가능할 것 같……."
"아, 헬기 예비 부품값도 안 되겠네요. 그거 그냥 다른 병원 주세요. 우산병원이 요즘 지원금 필요해서 여기저기 기웃거린다던데, 거기 주시는 게 더 나을 거 같네요."
"부탁드리니 제발 받아주십시오. 얼마 안 되는 돈인 것은 저희도 잘 압니다."
"우리한테야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다른 병원은 한 푼의 지원금도 아쉬우니 거기에 주세요."
이걸 받고 우리도 이름 좀 걸치게 해달라니까!
최윤석은 조용히 일어나서 창가로 물러났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음미하면서, 그 콧대 깐깐하던 보건복지부 장관이 애걸하는 모습을 그윽한 눈으로 지켜봤다.
***
서울서해병원.
고지환 병원장은 자신의 앞에 놓인 사직서, 그리고 사직서를 제출한 심장외과 교수 정지심을 바라보았다.
"자네, 정말 이러기인가?"
"죄송합니다, 병원장님."
"자네까지 빠져나가면 우리 흉부외과는 어쩌라고?"
고지환 병원장은 한숨을 크게 쉬며, 서랍을 열어서 그 안에 있던 사직서 뭉치를 꺼냈다.
흠칫한 정지심 교수를 보며, 고지환은 부드럽게 말했다.
"한 번만 더 생각해 보면 안 되겠나?"
"……."
"안 그래도 석환이 그 새끼가 비뇨기과 교수 둘이랑 펠로우 셋 데리고 수영병원으로 가버리는 바람에 당장 나도 오늘 오후부터 외래 들어가야 한다고, 사촌동생한테 배신당해서 피눈물 나는데, 자네까지 이러기인가?"
"설마 고석환 교수 사직서도 거기 있는 겁니까?"
"지금 비뇨 쪽 펠노예, 아니, 펠로우들 죄다 사직서 냈어! 내가 미쳐버리겠단 말이야! 당장 오늘 저녁에 부회장님 불호령 들으러 가야 하는 판인데, 자네 사직서까지 들고 가야 하나? 나 좀 살려주게, 제발."